IMG-LOGO
최종편집: 2024-03-27 15:16:03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

[특별기고] 유기만 - ‘박근혜정권 퇴진 전북비상시국회의’ 상황실장


... 편집부 (2017-03-12 22:50:43)

IMG
※ 글쓴이 유기만은 민주노총 전북본부 조직국장이다. 박근혜정권 퇴진 전북비상시국회의 상황실장으로 일하면서 전주 촛불집회의 사회자로 가장 여러 번 무대에 올랐으며, 그의 웅변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편집자]

(사진=유기만)

지난해 10월 24일 국정농단의 발단이 된 JTBC의 태블릿 pc 보도 이후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신속하게 비상시국회의를 결성했다. 이미 백남기 농민 대책위가 꾸려져 활동을 하고 있었고 백남기 대책위가 전주지역 시민사회단체에 비상시국회의를 제안하여 전주지역 67개 단체가 참여했다.

10월 28일 첫 집회가 있었으며 시민 300명이 참여했고, 민주노총이 주관한 29일 집회에는 시민 500명이 참여했다. 11월 5일 1차 총궐기 때엔 3000명이, 11월 12일 총궐기에는 1만5000명이 참여했다. 성과퇴출제 폐기를 외치며 철도와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파업을 하고 있던 민주노총은 신속하게 정권 퇴진에 온 역량을 쏟아 부었고 농민, 빈민 등 사회단체들도 민중총궐기를 조직 중이었기에 집중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민주노총이나 사회단체의 움직임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몇 가지 지점이 있다.

첫 번째는 전북지역의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의 외침이다. 비권 총학생회로 유명한 전북대 총학생회가 첫 촛불집회가 있던 10월 28일 시국선언을 했다. 총학생회 간부에 따르면 이날 시국선언은 총학생회에서 주도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총학생회를 추동해서 열게 되었다고 한다. 대학생들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전주교대의 경우 총학생회의 제안으로 거의 전교생이 시국선언을 하고 500명이 거리행진을 했다. 전주대, 한일장신대도 시국선언을 하고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중·고등학생의 경우는 더욱 뜨거웠다. 촛불집회 초기였던 11월 9일 경찰이 되고 싶은 학생들로 이루어진 남원여고 동아리 ‘나라를 빛내는 사람이 되자(나라빛)’의 제안으로 남원의 중·고등학생 500명이 촛불집회를 한 것이다. 남원의 전체 인구가 약 8만이고 시내 인구가 약 5만임을 감안하면 짧은 시간 안에 학생 500명이 모였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김제에서도 중학생 스스로 집회신고를 내고 친구들과 함께 거리행진을 했다. 익산과 군산의 경우 고등학교학생회연합이 중심이 되어 학생들이 촛불집회에 수백 수천 명이 집단적으로 참여하여 주최 측을 놀라게 했다. 전주에서도 전북고등학교학생회연합이 시국선언을 하고 시국문화제를 주최했다.

광우병 촛불 때도 많은 학생(중·고등학생)이 있었지만 그때는 준비된 광장의 촛불에 참가하는 수준이었다면, 이번에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초기 촛불을 이끌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의 자유발언 속에서 제일 많이 언급되었던 건 세월호 사건이었다. 3년 전, 당시 중학생이었던 중학생 시민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고등학생이었던 고등학생 시민은 대학생이 된 것이다. 또래의 죽음을 함께 슬퍼했고, 또 국가의 무능을 함께 규탄했던 세월호의 촛불들이 국정농단의 사건과 만나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장에서 거대한 촛불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청년들의 촛불 참여도 많았다.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취업준비생으로 불안한 미래 속에, 열정만 바라는 사회에 절망한 청년들도 자유발언을 통해 목소리를 높였다. 젊은 비정규직 용접공과 알바를 하며 취업을 준비한다던 청년들의 특권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현실에 대한 절망의 목소리. “박근혜가 내려온다고 제 삶이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라는 말이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서울광화문에서 민중총궐기가 열린 11월12일 전북도민 1만5천여 명이 상경했다. 같은 시간 전주 풍남문광장에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3천여 명에 이르렀고, 주최자 없이 성사된 시국토론회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두 번째는 시민들의 사회비판이다. 총궐기의 주요 기조 중 하나는 시민들의 자유발언을 총궐기의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전문가의 견해나 시국회의의 입장을 시민들에게 알려야할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매회 시민들의 자유발언을 그 자리에서 신청 받아 총궐기를 진행했다.

발언대에 올라온 시민들은 이미 시국회의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정보를 알고 있었고 자신의 사례를 통해 시국을 풀어가는 시민들의 발언은 어떤 발언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정경유착, 국정화교과서, 위안부합의, 재벌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 광장의 의제도 시민들의 발언 속에서 확장되었다. 도대체 이런 이야기들은 어디서 정보를 얻는 것일까?

촛불이 계속될수록 광장에 나오는 사람들도 낯익어지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래서 몇몇 젊은 친구들에게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25살의 청년인데 촛불집회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팟 캐스트 방송을 통해서 사회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청년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젊은 세대들은 기존 TV나 라디오 같은 미디어보다 팟 캐스트나 인터넷 같은 것을 통해 정보를 얻고 소통하고 있는 것 같다. 짧은 시간에 많은 청소년들이 조직될 수 있었던 것도 SNS 소통이었으며, 시국회의 자원봉사자 모집도 페이스북을 통해 할 때 가장 잘 되었다. 청소년들의 조직 방식도 SNS를 통해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일상적인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세 번째는 광장 민주주의에 대해서다. 광장에 참여한 시민들의 요구는 단순히 박근혜 퇴진에 그치지 않았다. 총궐기를 진행하는 동안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대선 후보 등 정치인이 등장할 때였다. 하지만 이미 광장엔 기성 정치의 설 곳이 없었다. 야당이 헛발질을 할 때마다 그에 대한 광장의 비판이 있었기에 야당을 끝까지 견인할 수 있었으며 광장은 이미 시민들이 주인공으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어떤 정치인도 무대에 올라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발언을 제한한 것이라기보다는 광장의 이야기를 정치인이 경청하는 자리로 대회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11월 19일 전주 관통로[충경로] 사거리에서 열린 촛불집회.

다른 하나는 발언 중 여성, 장애인, 청소년 등에 대한 폄하 혹은 비하 발언이 나왔을 때다.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다. 이 문제가 광장에서 충분히 토론되거나 논쟁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긴장이 남아있고 이 긴장을 유지해가면서 서로에게 열리는 과정이 광장 시민이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광장 안에 참여자에 대한 상호 존중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활력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노동자, 농민, 여성, 장애인, 청소년 들은 사회 구조적 폭력 속에 놓여있는 존재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광장이 풀어야할 앞으로의 과제라 생각한다. 시민들과 함께 한 사회개혁을 위한 원탁회의와 계획했지만 시도하지 못한 광장 토론 등은 광장 민주주의를 더욱 더 풍성하게 해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이 말할 때 민주주의”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된 원탁회의는 준비하는 기획팀에게도 참여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이 칼럼의 제목을 ‘광장에서 만나 사람들’로 뽑은 이유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하고 글을 마치려고 한다. 시국회의에 참여한 단체들은 다양했다. 어린이집연합회, 한우협회부터 평소에는 교류가 힘든 여러 단체들이 함께 했다. 상황실도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진보정당부터 시민사회단체까지 정말 다양했다. 10년 이상을 지역에서 일하면서도 한 번도 서로의 생각을 진지하게 들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단체에 대한 선입견들이 존재했고 그런 것들이 운영함에 있어 긴장을 불어오기도 했지만 촛불이 지속되는 5개월 동안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했던 만남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만남! 그것이야 말로 광장이 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이제 광장으로 집중되었던 힘이 여러 가지 사안으로 뻗어나가고 작은 광장들이 펼쳐질 것이다. 우리의 만남으로부터 말이다.

사회개혁을 위한 촛불 시즌 1이 끝났다. 이제 본격적인 대선전과 권력 교체가 있을 예정이다. 촛불이 “죽 쒀서 개 주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가 광장에서 염원하고 외쳤던 것은 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우리 삶과 사회의 변화였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보면 죽 쒀서 개 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이번 촛불 혁명, 주권 혁명의 경험은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근혜가 내려온다고 제 삶이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했던 청년의 말을 기억하며 촛불 시즌 2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확정된 3월 10일 촛불집회에서 전북비상시국회의 상황실 일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