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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03 23:56:42

[안중만 연재] 마령을 만나다, 마령을 만들다 2 - 학교와 나


... 편집부 (2024-04-02 23: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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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만 연재] 교육, 학교 울타리를 넘다 1 - 교사가 되다 [ 이전 내용 보기 ]

다시 찾은 설렘

교사로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시골 작은 학교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10년 동안 3개의 학교를 거치며 근무했던 전주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진안에서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 출퇴근 시간이 5~10분이면 충분했던 전주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서인지 출근 시간만도 40분 이상이 걸리고, 무엇보다도 해(태양)를 앉고 출퇴근해야 하는 어려움이 크게 느껴졌다. 게다가 1997년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해 급하게 만들어진 ‘소태정 고갯길’을 운전을 해서 다녀야 하는 부담감은 전주와 진안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을 더 크게 만들어냈다. 그래서인지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학교를 빨리 정리할 수 있는 이유가 되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마령초등학교로 발령을 받고 4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학교를 탈출할 명분만을 찾던 나에게 4학년 10명의 친구들은 교사로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둘 갖게 했다. 무엇보다도 수업시간에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에서 교사로 사는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교사가 아니면 배움과 돌봄의 기회조차 변변하게 제공 받을 수 없는 처지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어서인지 역설적으로 수업시간 집중도는 도시학교 아이들과 비교해 훨씬 좋았다. 아이들 덕분에 교사로서 삶이 시작되던 당시의 설렘이 다시 생겨나고,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을 돕는 일에 교사로서의 소명감도 더 커졌다.

존재 자체가 기쁨인 아이들

성장의 과정에서 다양한 결핍을 겪어봤기에 되도록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는 결핍이 없기를 바랬다. 아니 결핍이 있는 아이들에게 되도록 그 결핍을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자그마한 결핍이라도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문화시설과 환경은 시골에서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을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오히려 아이들의 눈빛은 더 생기있게 느껴졌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수업이든 생활이든 교사의 말과 행동에 집중을 잘했다. 교사인 내가 얼마만큼 노력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도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 어떤 일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오롯이 기대할 수 있을까? 아이들과 생활하며 과정 자체의 의미와 즐거움이 가득했다. 설사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해도 아이들은 이미 나에게 존재 자체가 기쁨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손이 필요해 - 돌봐도 돌봐도 계속 돌봐야 하는 아이들

교육현장이 늘 그렇듯 아이들과의 생활이 언제나 웃음으로만 가득하지는 않았다. 여러 이유로(맞벌이 가정,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등) 이미 가족 교육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가정, 그 가정에서 온전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교사와 학교의 힘만으로 온전하게 성장시킨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령초등학교에서의 희망 여정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인정과 존중의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들 스스로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회복된 자존감을 바탕으로 다양한 교육과정과 수업을 경험하며 배움을 가꾸어 가기를 바랬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교육과 돌봄이 가정과 원활하게 연계되지 않다 보니 아이들의 배움에 단절이 생겨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돕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의 단절을 끊어 연결을 강화해야 했고, 단절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아이들과 가정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밖에 없었다. 가정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교육 못지않게 일상적 돌봄이 우선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적정한 때, 적절한 방법으로 도와줄 손이 곳곳에 필요했다. 아마도 학교와 마을,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지향은 이때부터 생겨난 게 아닐까 싶다.

교실 안과 교실 밖의 다른 삶 – 삶으로 가르치는 교육

교사는 적어도 교실 안에서는 아이들에게 왕과 같은 권한을 행사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교실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 대해 대부분 교사는 판단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일어난 일에 대한 해석과 판단을 내릴뿐더러 때로는 갖가지 보상 기제를 통해 아이들의 특정 행동을 조장하거나 통제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봤을 때 어쩌면 교사의 모습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행사하는 독재자의 모습으로 비칠지 모르겠다. 오래전에 아이들과 황선미 작가의 ‘나쁜 어린이 표’라는 동화책을 읽으며 아이들의 시선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에게 교사는 단순히 교과서의 지식을 가르치는 존재만이 아니다. 교과 지식뿐만 아니라 교사의 말과 행동은 총체적 삶으로 아이들에게 배움의 모체(母體)가 된다. 그러기에 교사는 누구보다 언행일치(言行一致)가 중요하게 요구되는 존재이다. 교사는 아이들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다양한 가치와 주제를 수업과 교육과정으로 다루게 된다. 그 과정에서 교사로서나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삶의 방향이나 실천에 대해 제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제시만 하고 정작 교사 자신은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지 않으며 가르친다면 대단히 위선적인 일이라는 생각이다. 만약 교사의 삶을 살면서 교실 안과 밖에서 서로 다른 모습이라면 교사의 길을 계속 걸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령초에서 만난 아이들로 인해 교사로서의 꿈을 다시 찾게 되었기에 학교라는 공간이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에만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아이들과 수업과 교육과정으로 만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하나둘 해결해 가기 위해 교육공동체의 지혜를 모았고, 집단지성과 동료성을 바탕으로 어렵게 느껴졌던 과제를 해결해 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학교혁신의 결과로 거의 모든 학교에서 운영되는 ‘배움과 성장의 날’이나 ‘전문적 학습공동체’가 마령초에서는 이미 현장 실천의 학교 문화로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학교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민주적 소통, 협의와 합의를 통해 운영되는 민주적 학교문화를 경험한 교사들은 자신들이 담임하는 학급 또한 민주적 자치공동체로 만들어내는 힘을 갖게 되었다. 아이들은 삶을 통해 배움을 전하는 교사들로 인해 더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돌아가는 헛바퀴, 학교라는 공동체!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행복한 배움을 돕기 위해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교원과 아이들의 배움을 지원하는 직원으로 구분된다. 교원과 직원을 합하여 교직원이라 하는데 각자의 역할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위해 자기 노동을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일한다는 명확한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일을 하다 보면 잦은 충돌이 생겨나는 것도 사실이다. 교원과 직원이라는 주체별 요구가 다르기에 생겨나는 다양한 갈등이다.

교원들은 아이들의 배움을 중심으로 함께 이야기할 기회가 많다. 정기적 협의회나 수업나눔, 전문적 학습공동체나 각종 연수의 자리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간혹 발생하는 이견에 대해 함께 조율하며 이견을 좁혀나가기 쉽다. 하지만 바쁜 학교의 일상에서 교원과 직원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협의할 시간을 확보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부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교직원 회의를 통한 전달중심의 소통으로는 온전한 공동체를 세워내기 어렵다.

교원과 직원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학교로 시행되는 공문을 접수하고 담당자를 지정하는 단계에서 생기는 갈등이 있다. 접수된 공문을 배정받은 사람이 그 일을 추진해야 하기에 시행된 공문의 내용이 교무실의 업무인지 아니면 행정실의 업무인지를 두고 해석의 차이에 따라 날카롭게 부딪히곤 한다. 또한, 각종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교무실과 행정실 간의 긴장과 갈등은 수없이 발생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인 것 같다. 갈등을 잘 관리하고 공동체와 함께 공동체가 동의하는 해결의 방안을 찾아가는 것이 리더(학교관리자)의 역할이자 역량이라는 생각이다. 공동체 또한 리더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학교문화를 만들어갈 책임이 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학교라는 공동체가 헛바퀴 돌지 않도록….

혁신학교를 준비하며 다시 꾸는 꿈

교사는 아이들과 수업과 교육과정으로 만나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사들은 잡무로 불리는 수많은 업무로 인해 아이들과 만날 에너지와 시간을 늘 빼앗기곤 한다. 안타깝게도 교사들의 머릿속에는 아이들과 함께할 배움에 대한 고민과 연구보다는 제출기한에 맞춰 내보내야 하는 공문이 더 들어와 있다. 몇 해 전 누군가 “내가 이러려고 000이 되었나?”라는 자조 섞인 고백을 했던 것처럼 교사들에게서는 학교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내가 이러려고 교사가 되었나?’라는 독백이 쉽게 터져 나온다.

어떻게 하면 교사가 교육의 본질적 활동에 집중해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돕는 자기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과 실천에 대한 목마름이 혁신학교를 준비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진 것 같다.

혁신학교를 준비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2011년 가을 어느 날 교무회의를 통해 혁신학교를 준비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제안에 따른 토론이 진행되었다. 그 당시 우리 구성원들은 ‘전북형 혁신학교’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다. 혁신학교의 철학이나 원리, 가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에 혁신학교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데 따르는 많은 파행이 예상되었다. 따라서 공동체가 혁신학교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하고서 그 후에 혁신학교를 해볼지 어떨지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 이후 1년여 기간 동안 각종 연수, 독서 토론, 혁신학교에 대한 탐방을 통해 혁신학교의 철학과 가치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되었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교직원들 각자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가 만들어갈 학교의 모습에 대해 함께 상상하며 마령초등학교 교육 활동의 지향을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학교 교육의 지향(슬로건)을 만들어내기까지는 약 1년여 시간이 필요했다. 기나긴 배움과 토론을 거쳐 여러 사람이 여러 시간을 통해 정리해낸 핵심 키워드는 배움과 즐거움, 행복이었다. ‘배움’, ‘즐거움’, ‘행복’이라는 핵심 키워드에 마령초등학교 아이들의 삶과 배움을 다 녹여내려 했다. 지금도 우리의 지향으로 외치는 마령초 교육의 지향(슬로건)인 ‘배움이 즐거운 행복한 학교’는 그렇게 탄생했다.

다시 하는 말이지만 혁신학교를 준비하며 견지한 일관된 방향성은 교육의 일상성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교육의 일상성은 수업으로 구체화 될 수 있기에 너무도 당연히 교실수업혁신에 학교혁신의 중심과 노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물론 이러한 혁신학교운영의 방향성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간의 활발한 토론을 통한 논의와 소통이 전제되어야 했다.

학교와 아이, 교육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들을 하나로 모아내고 공동의 지향을 세우기까지는 버거울 정도의 논의와 협의를 통한 합의의 문화가 필요했는데 뒤돌아보니 마령초등학교는 혁신학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학교혁신의 전형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혁신학교를 준비하며 가장 기뻤던 일은 학교와 교육에 대한 희망을 키울 수 있었던 일이다. 학교를 희망의 공동체로 만들어가기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고, 함께 하는 동료들과 어우러져 그 일을 이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즉, 다시 꿈꿀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혁신학교를 준비하던 2011년 이후로 어느새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혁신학교 및 학교혁신 운동으로 인하여 학교 현장에서 시급히 해결되어야 했던 많은 적폐들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도 여전히 무겁게 남아있는 것도 현실이다. 대표적인 해결과제가 ‘교원업무정상화’, 또는 ‘학교업무최적화’로 표현되는 교원업무경감이 아닐까 싶다.
‘언제쯤이면 교사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라는 꿈을 오늘 다시 꿔본다.

학교가 정말 마을과 지역, 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지역사회에서 학교가 갖는 역할은 상당히 크다. 단순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써의 역할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통과 연결의 창구가 되어주기도 하고, 마을공동체 공동의 역사와 문화, 삶의 흔적이 추억으로 남아있는 기억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또한, 지속 가능한 마을과 지역을 위한 최소한의 보루의 역할을 감당하기도 한다. 학교가 사라진 마을에서는 지역 또한 쉽게 사라지게 되는 급격한 지방소멸을 목격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학교와 마을,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꿈을 꿔야만 한다.

1999년 9월 1일. 교직에 들어서며 처음으로 부임하게 된 학교는 김제시 만경면에 위치한 전교생 14명의 자그마한 분교 (만경초등학교 장흥분교)이었다. 그나마 분교로라도 학교의 명맥을 유지하며 남겨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학부모와 마을 주민들이 학교 존치의 필요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고, 이를 통해 행정기관에 대한 압박이 실효를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정부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 1998년 2월 25일 ~ 2003년 2월 24일)가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었기에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폐교를 막아내는 일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만큼 학교를 지키기 위해 학부모와 졸업생, 지역 주민들이 얼마만큼 애썼을지 미루어 짐작된다.

어쨌든 정식 교사로서 첫 번째 부임한 학교(1999년 9월 1일)에서 3, 4학년 복식학급 담임을 맡게 되었다. 3, 4학년을 합쳐도 일곱 명이 전부였지만 어느 학교 어떤 교사보다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되돌아보니 그 당시에 이미 배움의 공간이 교실과 학교를 넘어 마을과 지역으로까지 확장되었던 것 같다. 틈만 나면 아이들과 마을로 나가 배움을 이어갈 수 있었다. 여러 인생 이야기를 삶으로 간직한 마을 사람들, 마을의 야산, 실개천, 만경강과 김제평야가 나와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배움의 공간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어느 책(정원가의 열두 달)의 표현(‘개인이든 국가든 언제나 봄 속에 살지는 못한다.’)처럼 행복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정확히 6개월이라는 시간이 일장춘몽으로 끝나버렸다. 많은 진통 끝에 분교는 결국 이듬해 폐교되고 말았다. 폐교를 결정하기까지 학부모 총회를 비롯해 여러 번의 논의 과정이 있었다. 때로는 물리적 충돌이 벌어질 직전의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이토록 치열한 논의 과정에서 당시 나는 신규교사에 불과해 어떤 가치 판단도 내리지 못하고 학교와 교육청의 방침을 일방적으로 따라야 했다. 폐교 결정으로 눈물 흘리는 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조차 맘껏 전하지 못했던 그 날의 행동에 대해 후회스러운 마음이 가득이다.

수년 후에 다시 찾아간 분교는 전주 어느 교회의 수련 시설로 바뀌어 있었다. 학교가 사라져버리니 학교를 중심으로 남겨진 당시의 기억과 갖가지 추억은 잊혀진 역사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물론 마을의 황폐화는 말할 것도 없고….

신규교사로서 처음 부임했던 학교(분교)의 폐교 이야기를 길게 했다. 함께 나누고자 하는 부분은 학교가 사라지니 마을과 마을 사람들이 공유했던 역사와 문화도 자연스레 휘발되고, 마을 역시 빠른 속도로 쇠락했다는 것이다. 학교가 폐교되면 학교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학교가 사라지면 지속 가능한 마을과 지역도 불가능한 미래가 되고, 마을과 마을공동체의 역사와 문화, 기억과 추억, 소통과 나눔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수년 전부터 혁신학교와 학교혁신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에게서 마을교육공동체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학교가 마을이고, 마을이 학교다’라는 표현도 서슴없이 사용한다. 그만큼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돕는 행복한 배움을 위해서는 학교와 마을, 지역이 함께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마을교육과 마을교육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되기에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학교는 지속 가능한 마을과 지역을 위한 희망이 될 수 있다. 단적인 예를 하나만 들자면 2015년 시작되어 2022까지 추진되고 있는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은 학교(마령 유, 초, 중, 고)와 교육을 중심으로 지역을 살려낼 수 있다는 계획이 농식품부에 의해 받아들여져 80억이 지원되어 마을과 지역을 살리는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안중만 소개


1971년 전주에서 태어나 금평초, 전주서중, 동암고, 전주교육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1999년 9월 1일, 김제 만경초 장흥분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으로 전주신동초, 전주동신초, 전주북초를 거쳐 2010년 마령초등학교에 이르렀다.

2012년부터 전북형 혁신학교 운동을 진행하며 학교혁신의 마중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마령초등학교의 다양한 학교혁신 사례를 전북교육청 직속기관(전북교육연수원, 지역청, 학교 등), 제주, 세종, 충북, 울산교육청 연수를 통해 전국적으로 소개해왔다.

그동안 전주교육대학교에서 ‘교사론’ ‘교직실무’ ‘특별재량활동의 이해’에 대해 강의했다. 전라북도교육청에서 예산 TF 위원과 주민참여예산제 위원(2011~2017)으로 품앗이를 했고, 현재는 청소년정책위원회 위원, 혁신학교운영위원회 위원, 학교자치활성화 지원단 위원으로 역할하고 있다.

전교조 전북지부에서 부지부장, 참교육실장, 전주초등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전교조 진안지회 지회장을 맡고 있다. 또한 농림축산식품부 주관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진안군 마령면 추진위원(2015~2021)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전히 아이들이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생태시민으로 자라가도록 교육과정의 생태적 전환에 힘쓰고 있다. 학교와 마을, 지역이 더불어 행복한 마을교육공동체 구축 운영에도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