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 입시 대세는 소위‘통섭’이다. 인문과 자연의 벽을 허물고 융복합적인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교과목을 다양하게 잘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통섭형 인재 양성론’이 학생들의 교과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2009개정 교육과정에서 고등학교는 한국사 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선택 중심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학생 선택보다는 학교 교사 소요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농어촌 소규모 학교는 학생 선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교사 소요를 맞추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는 학생 선택 교육과정 편성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지역에서도 상대평가가 학생들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학생 선택권을 그다지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대학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는 학생들의‘특기와 진로’를 발휘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을 편성하여 운영하는 것보다는 상대평가에서 유리한 등급 학생의 양산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학이 대학 입시에서 낮은 비중을 차지하는 예체능 계열 학생들의 경우 일반 학생들에게 수학 내신을‘헌상’하는 존재로 전락하였고 교육과정에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가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달려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사회 탐구나 과학 탐구도 본인 진로에 적합한 진로 선택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보다는 교사의 소요, 내신 성적 산출과 수능 시험에서 유리한 방향으로 교육 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학생 진로에 대한 고민 없이 탐구 과목 전체를 이수하는 경우나 진로 선택 트랙형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경우나 대학 입시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대학은 과학중점학교와 같이 전 과목을 학습한 경우를 더 선호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학생들의 진로 희망을 반영하고 있지 못한 교육과정이 계속 유지되는 한 잠을 자고 있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활동하는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학생들의 진로 선택형 교육과정 편성을 위해 일찍부터‘성취평가제(절대평가)’를 주장했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현상은 난처하기까지 하다. 현행 상대평가에서는‘경제, 세계사, 물리Ⅰ,Ⅱ’등 본인의 진로에 적합한 교과목을 선택하고자 할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교과목이 어렵고 따라서 선택희망학생이 적어 내신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교육 과정 편성에서 소외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 절대평가제로 전환이 필요하다.
전북 교육청에서는‘전북형 평가제도’에 바탕을 두고 지필평가보다는 서술형 수행평가 비중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도교육청에서는 평상시 수업 시간에 협력을 통해 토론하고 발표하는 과정을 수행 평가에 반영해서 생활기록부에 기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수업 환경 개선이 없어도 과목 세부 능력은 충분히 기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선뜻 변화를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현행 9등급으로 서열화된 상대평가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주관적이고 절대평가 성격이 강한 수행평가 비중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커다란 혼란을 불러오고 있다.
협력학습으로 모둠수업을 전개하고 수행평가를 실시했는데 결과를 상대평가로 기록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며 나눔과 배려라는 협력 학습의 취지에도 배치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토론과 발표, 협력 수업, 교과 융합 수업 등은 학생들이 해당 교과목을 좋아해야 하고 또 이수 교과목 수가 적정해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 편성과 진로 트랙에 의한 집중 이수를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금년 2학기부터 학생들에게 최소 5개 이상의 선택 교과목을 수강 신청할 수 있는 시범학교를 운영하기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리고 성공 사례로 서울 하나고와 삼각산고를 제시하고 있다. 두 군데 모두 성공적인 융복합형 수업 전개로 대학 입시에서 상당히 성과를 거두고 있는 학교들이다.
아마 서울시 교육청이 한다면 경기와 강원, 전북도 내년 정도에는 학생 중심 수강 신청 시스템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변화의 선택에서도 상대평가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학생들의 선택권이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일부 상위권 학생들이 피해를 호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중학교 2학년 학생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2018학년도에는 입학생이 전국적으로 15만 명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히 교육부는 학생 수가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인위적으로 감소시키지 않고 이번 기회에 학급 수업 환경을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학급당 학생 수를 OECD 평균으로 맞추어 토론과 협력 그리고 융복합형 수업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더욱이 지금 중2학년부터는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해야만 할 것이다. 이번 기회를 학생 중심 선택형 교육 과정을 편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할 것이다.
만약 강한 반대 의견으로 인해 절대평가의 도입이 어렵다면 조심스럽게 표준편차에 의한 Z평가로 전환을 제안해 본다.
Z값은 9등급이 아닌 60등급 평가로 평균과 원점수를 이용한 표준편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교육과정 편성이 자유롭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