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교육청 기관지 <전북교육뉴스> 3월호에 실린 초등성장평가제 특집글에 대해 전주 완산고 박제원 교사가 비판 글을 보내왔다. 이에 대한 반비판 등 건전한 토론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초등성장평가제, 그만두거나 제대로 해라!”
- 박 제 원(전주 완산고 사회교사) -
◯ 초등성장평가제 공상적, 현실에 맞지 않아 ◯ 초등학생 우민화 책임 누가 지려는가? ◯ 준비 없는 시행, 박근혜의 노령연금 지급 공약과 같아 ◯ 차기 선거용이 아니라면 교사역량 키우는 데 집중해야
초등성장평가제와 ‘경쟁교육의 지양’
올해 전북 초등학교의 가장 큰 화두는 경쟁을 지양하려는 ‘초등성장평가제’이다. 강원교육청의 행복성장평가제를 본떠 전북교육청이 실시하는 평가방식으로 기존의 수행·상시평가를 강화하고 객관식 선다형 방식의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폐지했다. 즉 지적능력을 평가하는 지료를 정량적 측면에서 정성적으로 바꿨다.
전북교육청의 ‘생생 통신’이나 ‘전북교육뉴스’의 김소라 교사(중산초)에 의하면 “교육의 본질이 학생의 성장에 있고 학생들의 학력을 책임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학생들은 배움을 즐기면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으며, 교사들은 시험을 위한 시험에 의한 수업을 하지 않게 될 것이며, 학부모는 타 학생과 비교하지 않고 자녀와 학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전주의 중산초등학교와 정읍의 소성초등학교를 전형으로 제시하며 “성장주의적으로 우수인재를 걸러내는 산업사회 맞춤평가를 벗어나 미래사회에서 요구하는 개성과 창의성을 갖춘 뛰어난 인재를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승환 교육감도 지난 2월 15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성장평가제의 핵심은 초등학생들의 성장기록의 권한과 책임을 100% 담임교사에게 돌려주는 것이며, 학생에 관한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 할 경우에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데이터베이스와 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더구나 “도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은 정형화된 지침을 내지 말라”고 했다.
전북교육청이 초등성장평가제를 실시하려는 취지는 ‘경쟁교육의 지양’이다. 지난 과거와 현실을 보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 불공정과 불평등이 지배해온 현실에서 우리 학생들이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삶의 방식을 학습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역사란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추동해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이처럼 좋은 측면이 있지만 지금 추진하는 ‘초등성장평가제’는 공상적이다. 공상적이란 비현실적이란 것으로 당장 중지해야할 제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과 협동에 대한 허구적·이분법적 담론
먼저, 경쟁과 협동에 대한 허구적이고 이분법적인 담론에 빠져있다. 즉 “경쟁은 악이며 협동은 선”이라고 본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경쟁, 협동, 갈등은 상시적이었다. 즉 사실적 현상으로 삶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었다. 특정한 상호작용이 지나쳐서 인간의 삶을 위협한 것이 문제였다.
경쟁이 나쁘다면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고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방적으로 ‘경쟁을 악으로 협동을 선으로’ 규정하는 것은 대중감정을 조작하며 흑백사고의 오류, 사실과 당위의 오류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혼동하고 자연스럽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경쟁은 공정한 규칙을 무시하지 않는다. 경쟁의 참여자들이 규칙에 동의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 경우에만 공동의 목표에 대한 우선적 보상을 승자에게 허용한다.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의 문제이며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려면 공정한 규칙이 있어야 한다.
보통 규칙의 공정성은 세 측면으로 되어있다. 첫째, 규칙이 지향하려는 목표의 가치이다. 인간이 존엄한 사회로 가는 수단이냐는 것이다. 둘째, 규칙의 민주성이다. 규칙의 제정 및 적용과정에 이해당사자가 참여할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졌냐는 것이다. 셋째, 규칙의 가변성이다. 규칙이 사회적 상황을 반영해 개정될 가능성이 열려있냐는 것이다. 이 점을 반영하지 않는 규칙은 공정하다고 할 수 없으며 공정한 경쟁도 없다.
물론 경쟁이 악일 수 있다. 경쟁규칙이 공정한데도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확실하고 분명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경쟁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카오스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즉 나비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 사회에 공정한 경쟁의 규칙이 갖춰져 있었는가를 따져본 후에 경쟁이 나쁜가에 대해 평가해야만 옳은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소위 허구적인 진보 담론주의자들은 협동과 경쟁을 선악의 개념으로 전도시킨다. 협동과 경쟁은 사실적 개념이며 선악은 가치적 개념인데도 상당한 관련이 있는 것처럼 일반화시킨다. 그 과정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보다는 당위론적인 주장에 공을 들인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주장들은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문제든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는 좋은 대안을 찾을 수 없다.
실증적 검토 없이 경쟁을 매도하는 것은 나쁜 진보나 자의적이고 이기적인 권력적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평가는 서열적인 것이다
평가의 목적을 서열화보다는 성장에 두었다는 것도 애매모호하다. 김소라는 “평가를 통해 참학력을 신장시키고 평가 결과에 대한 적절한 정보제공과 추수지도를 통해 교사 학부모가 소통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하지만 참 학력의 의미도 모호할뿐더러 평가의 취지에 대한 개념을 무시한다.
근본적으로 평가는 서열적인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고 가치가 희소하기에 공동체적인 삶에서 평가가 이루어진다. 고립된 무인도에서 홀로 산다면 평가라는 언어는 그 의미가 없다. 존재할 수 있지만 무가치하다.
평가의 정도와 범위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평가 없는 삶을 진리라고 하는 것은 ‘도그마’이지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 더구나 도그마를 현실적이라고 강조할 경우에 바람직하지 않다. 그 누구라도 스탈린에 대해서 ‘인간주의자’라고 칭하지 않는다.
성장평가제에서 객관식 단답형 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에 대해 공감한다. 전북교육청이 주장하는 ‘참 학력’ 의 실체는 모르겠지만 비판적 사고를 지향하는 점에 대해 격하게 공감한다. 역사적이고 인간적이며 시대적 상황에 맞는 진보적인 평가방식이다.
전북교육청은 충분한 준비를 했는가?
하지만 지금의 전북교육이 제대로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전혀 동의할 수 없다. 홍보자료 제공, 교원연수의 과정, 찾아가는 컨설팅, 초등성장평가제지원단을 제시하지만 맛난 반찬이 될 수 없다. 제대로 된 재료도 없는데 이것저것 버무리고 막 섞어서 지지고 볶아 모양만 내면 음식 맛이 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상을 차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제철에 나는 갖가지 재료를 내려면 시간과 기술은 당연하다. 좋은 음식점이 갖는 공통점은 다양한 음식을 서둘러서 내는 점에 있지 않고 시간을 갖더라도 재료를 준비하는 데 있다.
전북교육청은 재료를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가졌는가? 지금의 재료로 정말 맛있는 음식을 할 수 있는가? 초등성장평가제의 핵심인 평가방식을 집행할 역량 있는 교사들은 얼마나 있으며 시행의 정당성을 지지할 충분한 객관적인 자료를 갖고 있는가?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 기초교육의 대상자로서 초등학생을 우민화(愚民化)할 수 있는데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지려고 하는가?
중등교육과정으로 이어질 경우에 지적 바보를 만들고, 사회적 비용의 문제, 사교육에 의존이라는 역선택적 상황이 가능한데 의도하지 않은 나쁜 결과에 대해 무엇으로 보상하려고 하는가?
김소라는 가장 중요한 효과를 개별학생들의 지적능력에 대한 지적환류과정을 통해 개별적 돌봄을 할 수 있다는 데 둔다. 하지만 사교육이 일반화된 현실에서 초등학생들의 지적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혁신학교, 자유학기제, 성장평가제의 공통점은 서술형 평가에 있다. 분절적 사고를 지양하고 전체적이며 비판적 사고를 지향하는 것으로 교사와 학생의 논리적 사고과정을 중시한다.
진정으로 전북교육청이 성장평가제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라면 논리적 사고과정에 대한 뿌리 깊은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무엇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지적 위선이다. 박근혜 정권이 지난 대선 때 증세에 대한 고려 없이 ‘노령연금’을 지급하겠다고 온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나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면서 역사의 본질을 이해하라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교사의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전북교육청이 못난 정치를 할 요량이 아니라면, 일부에서 떠드는 것처럼 차기선거를 위한 선정적인 ‘표 모으기’라는 입담이 거짓이라면, 성장평가제에 대한 대담한 홍보와 시행에 집착하기보다 추후에 새로운 교육감이 본격적으로 시행하도록 교사의 역량을 키우는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교사 역량을 키우는 과정을 제대로 개설하고 참여과정에 대해 패널티와 인센티브를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당장의 상징적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권력적 이익을 추구하려고 하거나 자양분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슬픈 웃음을 절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지금 전북교육청은 대입진학과 관련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논술교육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초등교사에게 서술형으로 평가하고 성장과정을 피드백(Feedback)하라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소련의 반격으로 스탈린그라드에서 무기도 빵도 없이 고립된 독일군에게 사수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히틀러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진정으로 구성원들에 대한 애착을 갖는 지도자는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맹자는 ‘항산이면 항심’이라고 했다. 사람들 누구나 선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군주의 제1 덕목은 자신을 섬기라고 하는데 있지 않고 배불리 먹고 마실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항산’에 있다고 말했다.
정책을 돋보이게 생산하려 하지 말고 때깔은 나지 않더라도 교사들이 좋음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배양의 기회와 터전을 줘야 한다. 그렇지 않은 모든 정책은 위선이며 진정한 쾌락과 무관한 골방에서 이루어지는 음습하고 권력내음이 밤꽃처럼 고약하게 풍기는 ‘자위(MASTURBATION)’에 불과하다.
전북 고등학생 대다수가 글의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상황에서 개념 정립도 모호한 초등학생들에게 전일적인 ‘서술형 평가’의 흉내를 내고 참 학력이라는 어설픈 담론을 갖다 붙이는 것을 좋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는 두고두고 따져볼 문제이다.
진보교육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간다가 아니라 제대로 가야만 서울 간다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북교육청은 추상적이고 사탕발림 같은 좋은 이야기 그만하고, 교사의 역량을 키우는 과정에 온힘을 기울였으면 한다. 권력은 바뀌어도 학교는 영원하며 교사의 능력은 교육의 질을 정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은 시공간을 초월한 동서의 진리이다.
교육의 시작과 끝은 인간다운 삶의 지속이며 교육의 본질은 좋은 정체성을 갖도록 노력하는데 있지 않을까? 이 질문은 전북교육청에게 다시 묻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