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8일 전주의 한 초등학교 학생 17명이 전북교육청을 찾아가서 기간제교사이던 담임선생님의 조기 계약해지를 막아낸 ‘미담(美談)’이 며칠간 언론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6학년생인 이 초등학생들은 석 달 간 정들었던 선생님과 2월 중순에 있을 졸업식 때까지만이라도 함께 있고 싶어 했고, 전북교육청은 병가를 냈다가 조기 복직키로 했던 애초 담임선생님의 ‘흔쾌한 양해’를 구해 복직 시기를 두 달 늦춤으로써 기간제교사의 계약기간을 보장해주었다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북교육청은 언론보도가 있은 지 며칠 뒤인 9일, 김승환 교육감의 지시에 따라 기간제교사의 고용안정을 위한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그 방식은 “사문화하다시피 한 복직심사를 강화해 방학 시작 시점에 복직하는 것을 가급적 막겠다”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별도의 복직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실질적인 심사를 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런데 이 ‘미담’의 이면에는 기간제교사가 흘려온 눈물 뿐 아니라 정규직 교원에 대한 휴가업무처리에 있어 김승환 교육감과 전북교육청의 관리·감독 소홀이 자리 잡고 있고, 나아가 그 부작용의 책임을 일선 교사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언론보도가 나온 이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수업이나 업무 부담이 거의 없는 방학에 맞춰 조기 복직하는 일부 정규직 교사를 막기 위해서는 학기 단위 휴직이 필요하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기간제교사의 권리도 보호하고 학생들의 안정적인 학교생활도 보장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정규직 교사의 일탈’이 문제라는 듯한 인상을 주는 말이다. 앞서 일부 언론에서는 이 ‘일부 정규직 교사’들의 행위를 ‘얌체 짓’으로 표현한 바 있다.
과연 그럴까? 전북교육청의 지침에 따르면 일부 교사의 책임보다는 오히려 교육청의 관리·감독 소홀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북교육청 문서인 ‘유초등교원 인사업무 처리요령’은 “모든 휴직은 학기단위로 기간을 정하여 휴직하도록 적극 권장하고, 휴직에 따른 기간제교사 임용도 학기단위로 임용하여 정원관리에 적정을 기하도록 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이 내용처럼 그동안 학기단위 휴직을 적극 권장해왔다면 이제 와서 그 필요성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아예 없었을 것이다. 이 제도가 정착되지 못한 책임을 일부 교사에게 떠넘기기보다는 잘못한 것을 반성하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하겠다고 밝히는 것이 옳았다.
언론을 통해 이번 일을 접한 한 현직 교사는 “교육감은 초등학생들이 교육청까지 찾아온 것은 대견한 일이라고 했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하게 만든 것은 사실 창피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방학 중 복직 방지라는 내부규정을 뒀으면서도 그에 따른 관리·감독을 못한 책임을 정규직 교사의 ‘일탈’에 떠넘기는 것은 도교육청이 스스로 무능함을 드러내는 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전북교육청이 “복직심사를 강화해 방학 시작 시점에 복직하는 것을 가급적 막겠다”거나 “별도의 복직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실질적인 심사를 할 것”이라는 얘기는 진일보한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실제로 그렇게 한다는 조건에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전북교육청이 이번 일을 계기로 “기간제 교사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선언의 진정성을 증명하려면 교육청의 또 다른 문서인 ‘기간제교원 운영 지침’의 내용을 손질해야 한다.
지침에는 ‘임용계약기간 중 계약해지’라는 항목이 있다. 계약기간 중 계약해지라는 내용 자체가 반인권적이다. 여기에는 9가지 사유가 열거돼 있는데 그 중 “휴직교원의 조기 복직, 결원의 보충 등 임용사유 소멸로 인한 불가피한 경우(계약서에 해임조건의 명시)”라는 조항이 있다. 기간제교사는 휴직 교원이 조기 복직하면 계약기간 중이더라도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다는 내용이 버젓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 조항은 다른 시도교육청의 운영지침에서도 발견된다. 그런데 2002년도 시도교육청의 운영지침에는 이 부분이 나타나지 않는다.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진 못했지만 정규직 교원들이 '노동권'을 키워가면서 포함된 조항이라 여겨진다.
이에 대해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윤희만 대표는 “정규직 교원의 순환이라는 행정의 편의를 위해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정한 근로조건으로 보인다”며 “처음부터 기간제교사에게 불리한 계약이므로 심각하게 문제제기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침에는 그뿐 아니라 ‘학교장의 정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은 경우’ ‘업무를 태만히 하거나 업무수행능력이 부족한 때’처럼 학교장이 임의로 적용할 수 있는 조항들도 있다. 이것들은 군부독재시절 반민주 악법에서 흔히 보던 내용들이다.
초등학생들이 만들어낸 ‘미담’이 전북교육청의 미담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도교육청이 언론보도에 따른 ‘반짝 대응’에 그쳐서는 안 된다. 도교육청은 먼저 기간제교사의 실태를 파악하고 ‘기간제 교사의 권리 보호’라는 다짐과 모순되는 ‘운영 지침’ 같은 비정규직 차별적 내부규정의 문제조항들을 대대적으로 손보는 데 나서야 할 것이다.

▲사진제공=전북교육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