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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죽음 부른 특성화고 감정노동 현장실습


... 문수현 (2017-03-06 03:56:26)

전주의 한 통신업체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학생 A양이 지난 1월 23일 전주시 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자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서도 수사 종결은 미루고 있다. 교육당국과 노동당국 등 관계기간들은 경찰 발표도 없지 않느냐며 진상조사와 대책마련에 미지근한 태도다.

전북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와 희망연대노조 등 시민·노동단체들은 회사, 노동부, 교육청 등이 진상파악에 적극적이지 않고 서로 책임을 떠넘긴다고 규탄하고 있다. A양의 죽음이 업무와 관련돼 있을 개연성이 매우 높은데, 정작 관계기관들이 책임 있게 나서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단체들은 지난 2월 26일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우리는 A양이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담당했는지, 노동조건은 어땠는지, 그래서 죽음에 억울한 점은 없었는지를 살피기 위해 노력해왔다”면서 “그 결과 드러나고 있는 진실은 참담하다”고 밝혔다.

드러난 바에 따르면, A양은 수탁업체인 C사에 취업해 근무했으며, 고객센터 안에서도 가장 인격적 모독을 많이 당한다는 세이브(SAVE)팀, 소위 ‘해지방어’ 부서에서 근무했다. 이미 변심한 고객의 마음을 되돌려 붙잡는 게 임무였다.

지난 2014년 한 노동자가 실적압박과 감정노동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하며 ‘회사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가 근무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당시 유서에는 고객센터가 시간외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퇴직하는 노동자의 인센티브를 착복하는 방식으로 거대한 이익을 챙기고, 영업목표를 할당하고 이를 채우지 못하면 퇴근을 시키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이 업체는 해마다 10명 안팎의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하는 곳이어서, 이들도 비인격적인 노동현장을 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회적 관심과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숨진 A양은 주변 친구들에게는 물론 가족에게도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여러 차례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가족에게는 직장 일이 힘들다며 그만두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숨지기 한 달여 전인 12월부터는 울고 들어온 날도 꽤 있었다고 한다. 고객이 욕하는 건 참아도 회사 사람들이 욕 하는 건 못 참겠다는 말도 부모님에게 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가족이 경찰에게 회사를 조사해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시민단체들도 A양의 죽음이 업무와 관련돼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이 전북교육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취업 1주일 전인 9월 1일 해당업체, A양, A양의 학교장이 체결한 협장실습협약서와 실제 취업일인 9월 8일 A양이 회사 대표와 맺은 근로계약서의 내용은 임금과 근로시간 등이 상당히 달랐다.

협약서에 적힌 임금은 160만 원대였지만 근로계약서에는 수습기간 110~120만 원대, 7개월차 이후에도 130만 원대였다. 근로시간도 길었다. 표준협약서에 따라 현장실습 학생은 1일 7시간 근무가 기본이고 초과근무는 1시간까지로 제한하고 있지만, 근로계약서는 “을은 업무의 특성 또는 업무량에 따라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를 하는 데 동의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실제로 A양이 하루 8시간 넘게 근무한 날이 드물지 않았다는 게 주변인들의 증언 내용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성명서에서 “현장실습표준협약서는 특성화고 현장실습 학생의 노동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법적으로 작성이 강제돼 있지만 A양의 현장실습협약서는 유명무실했다”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현장실습 학생의 노동권이 취약한 현실을 기업이 악용해 현장실습협약을 무력화시킨다는 점을 고려할 때, A양의 근로계약서 내용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교육당국에게도 있었다. C사가 현장실습협약서와 관련 정부 지침을 지키는지 점검했어야 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학교는 회사가 표준협약을 잘 이행하고 있다고 보고했고 교육청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실적압박과 감정노동의 강도가 센 부서에 현장실습 학생을 일하도록 하는 게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다. A양이 일한 ‘해지방어’ 부서 근무자는 고객센터 직원들 사이에서 ‘욕받이’로 통했다.

게다가 해당업체는 2014년 한 노동자가 “회사가 거대한 사기꾼 같다”며 “고용노동부,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에 (이 유서를) 꼭 접수해 달라”고 유언한 곳이었다. 학생들의 안전과 근로보호가 가능한 기업체를 발굴·선정한다는 현장실습 운영 기준에 어긋난 셈이다.

현장실습이 학교 교육과정의 하나이고 다양한 직업 체험이 목적인 점을 감안하면, 전공과 관련 없는 업무에 실습학생을 추천하는 점도 문제다. 야속하게도 전북교육청의 ‘특성화고 현장실습 운영 지침’에는 “학교는 학생이 이수하는 전공 교육과정과 관련 있는 현장실습을 실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버젓이 들어있다.

희망연대노조 박장준 정책국장은 “노동부 또한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4년 같은 회사의 상담사가 ‘회사가 과도하게 착취하고 있다’는 유서를 쓰고 스스로 숨졌고, 3년이 지난 지금에도 노동자의 죽음과 업무스트레스가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부는 인지수사에 나서야 하지만 미동도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해당회사는 불법을 저지른 당사자다. 지금이라도 고인이 어떻게 일해 왔는지, 현장실습협약과 근로계약과 실제 노동조건의 내용이 왜 모두 다른지 경위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청, 노동부, 회사 모두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유족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렇다면 특성화고 학생들의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대책이 마련돼야 할까. 박 정책국장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현행 실습생의 소정근로시간은 7시간입니다. 그리고 당사자가 동의하면 1시간 연장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고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회사는 실습생을 8시간 이상 굴리고, 협약을 맺은 임금에 미달하는 돈을 월급으로 지급합니다. 취업연계를 미끼로 실습생을 착취하는 것이죠. 첫 사회생활에서 낙오하지 않고 취업에 성공하려는 실습생이 회사에 문제제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정부가 이 지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실습생의 노동인권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이 필요해요. 교육청은 현장지도를 강화하고, 노동부는 근로감독을 수시로 실시해야 합니다. 학교는 노동권 교육을 의무화하고, 회사는 현장실습 일지를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