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권혁선)
교육개혁, 무엇부터 할 것인가?
‘장미대선’, ‘촛불대선’도 이제 종착역에 이르기 직전이다. 그동안 각 당의 당내 경선으로 교육 관련 정책이 제대로 제시되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선거 승리만을 목적으로 한 자극적인 공약만 있을 뿐이어서 안타까움만 더해 갔다.
특히 최순실·정유라 대학 입시 부정으로부터 시작된 박근혜 전 대통령 해임으로 인해 다양성과 창의성을 추구해야할 교육 현장에 공정성과 통제 가능한 획일성만을 외치는 주장들이 난무하여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본격 대선 경쟁이 시작되면서 모든 대선 주자들이 내신 절대 평가제, 고교 수강 신청, 수능 자격 고사 등을 주장하면서 지나친 입시 수단으로 전락한 학교 현장의 모순 개선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인재 양성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지 않아 이번에도 구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개혁을 위해서는 많은 문제점을 해결해야만 한다.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것은 당연히 내신 ‘절대평가제(성취도 평가)’이다. 2005년 5월 공교육 정상화라는 슬로건 아래 실시된 고교 내신 평가제에 대한 반발로 광화문에서는 고교생들을 중심으로 촛불 시위가 시도되기도 하였다. 학교와 지역 간 격차 해소를 목적으로 실시되었지만 같은 학급의 동료 친구들과 경쟁을 해야만 하는 구조로 인해 많은 우려와 반발 그리고 고교생들의 죽음을 불러오기도 하였다.
벌써 13년째 상대평가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상대평가 실시로 인해 학교 현장은 오로지 시험만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년에 4차례 실시되는 정기고사로 인해 1개월 수업을 하고 나머지 1개월은 시험 준비에만 몰두해야만 하는 기형적인 학교 현장 모습이 만들어졌다. 요즘은 수시 입학 전형의 확대로 내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2개월 전부터 학교 정기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1년 12개월 가운데 6~8개월을 정기고사 준비를 위해 매달리는 형국이다. 비록 결과중심이 아닌 과정중심평가를 위해서 수행평가를 강화한다고 하지만 결국 학생들의 내신 등급을 결정하는 것은 지필고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상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암기식 공부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수학여행이나 수련 체험활동 기간에도 참고서를 가져가 공부하는 학생들도 나타났고 교사들은 이러한 장면을 보면서 오히려 기특한 마음(?)으로 자랑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내신 상대평가는 망국병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학생들을 무한 공부 지옥으로 몰아넣기 때문에 상대평가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평가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
상대평가는 ‘각자도생’과 ‘적자생존’만을 삶의 목표로 삼는 제도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는 창의력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학문적 교차점을 찾아 새로운 영역과 사실을 발견하는 협업을 또한 중요한 덕목으로 판단하고 있다. 고교 현장에서도 학종 강화 추세에 맞추어 다양한 동아리 활동과 모둠 수업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동아리 활동과 프로젝트형 모둠 수업과 1점을 가지고 다퉈야만 하는 내신 상대평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러한 모순을 현장 교사들과 교육 당국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성취도 평가를 실시하면 ‘성적 부풀리기’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쉽게 학교 현장에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성취도 평가가 실시되는 중학교에서 모든 과목 ‘A’의 성취도를 가진 학생들이 무한 생산되고 있다. 물론 교육부가 제시한 성취 요소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절대적 성취 기준이 없이 학교 자율로 성취도가 결정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고등학교의 경우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몇몇 성취도 평가 연구학교에서도 성취 기준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점수 기준이나 수강 학생 비율 기준과 같은 기본적인 사항까지도 결정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만약 국가에서 획일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평가한다면 학교 교육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방법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과 집중’ 그리고 ‘고교 학점제’가 실시되기 위해서라도 ‘성취도 평가’는 반드시 실시되어야만 한다.
상대평가에서는 30여명 이상의 수강 학생을 확보해야만 정상적인 도수분포에 의한 등급을 산출할 수 있다. 그리고 수강 학생이 많을수록 1등급과 2등급의 학생 수가 증가한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학교 교육과정 편성에서 보다 쉽고 다른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과목만이 살아남는다. 우수한 등급을 차지하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적성이고 진로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하위권 학생들의 경우에는 교육과정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희망하지도 않고 적성에 맞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어야만 한다. 무수히 많은 ‘수포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대평가에서는 성취 평가 기준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기초 학력이 부진해도 성취도 평가가 최하로 나타나고 진급과 졸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그냥 앉아만 있는 학생들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상대평가에서는 유리하다. 지금 일반고의 현실에서 공부하는 10명의 학생과 잠자는 20명 학생의 조합이 좋은 성적을 만들어내기 위해 가장 좋은 생태 환경이다. 가장 비교육적 상황이 학교 현장에서는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4차 산업혁명도 다양성과 학생 개개인의 진로에 적합한 교수-학습 지도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성취도 평가는 반드시 실시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문제로 인해 교육 당국이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성적 부풀리기를 방지하면서 성취도 평가를 실시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성취도 평가, 이렇게 실현하자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성취도 평가는 절대적 점수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현재 수능에서도 영어와 한국사 교과목은 점수를 기준으로 9등급으로 나누어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점수와 평균 그리고 표준편차를 함께 생활기록부에 기재한다면 표준점수 산정을 통해 무분별한 점수 부풀리기는 방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은 항구적인 방법은 아니다.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상대평가에서는 다양한 학생들의 꿈과 끼를 수용한 교육과정 편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도기적인 조치로라도 반드시 시행되기를 희망해 본다.
다만 이런 경우 평균값이 낮을수록 표준편차가 커지기 때문에 상위권 학생에게는 유리하겠지만 하위권 학생들의 성취 점수가 지극히 낮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모순에 빠지게 되어 학력 미달 학생이 대량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학업 미달 학생에 대한 책임은 교과 담당 교사에게 일차적으로 주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위권 학생들에게 유리하도록 시험 문제를 어렵게 출제하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단위 학교에서는 상위권과 하위권 학생들의 성적이 조화를 이루는 최상의 도수 분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물론 도수분포 값은 교사들의 노력만으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착에는 많은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과목 이수가 되는 현실을 볼 때 성취도 평가가 학교 현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것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와 동시에 5지선다 평가가 아니라 객관적 기준 마련을 통한 블라인드 채점 방식을 통한 서술형 평가가 학교 현장에 정착된다면 성취도 평가의 실현 시기는 지금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다.
‘성취도 평가’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학습과목 선택권을 부여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이제 학생들은 최소한 1~9등급이라는 악령(?)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비록 소수 학생일지라도 본인의 전공과 희망에 따라 교과목을 신청하게 될 것이다. 예체능이나 수학의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는 학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은 더 이상 ‘수포자’라는 귀신같은 악령에서 벗어나 본인이 희망하는 다른 교과목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강의실이 확보되어야 한다. 현재까지는 획일적으로 수업을 했기 때문에 1학급에 교실 1칸을 기준으로 모든 것이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고교 학점제’가 실시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교실이 확보되어야만 하고 교사 또한 지금의 법정 정원 75%로는 어림없게 될 것이다. 반드시 법정정원 100%가 확보되어야만 한다. 결국 현실적으로 교육재정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 토론에서‘고교학점제’에 대한 토론을 통해 대선 주자들이 제도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밖에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소료 예산 10조원 이야기는 얼핏 사실에 가깝다.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설 확충과 교사 충원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도가 실시되기 위한 전제 조건인 내신제도 개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것에서 ‘고교학점제’에 대한 몰이해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년도 2018학년에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의한 신입생이 입학하는 첫 번째 해가 된다. 대선이 끝나면 ‘고교학점제’실시여부와 더불어 고교 내신제의 절대평가 전환 여부를 결정하고 교육과정 편성에 따른 시설 투자와 양질의 교원 확보를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변화될 학교 모습
변화될 학교 모습을 머릿속에 미리 그려 본다. 일정 수준에 도달한 학생은 ‘Pass’를 통해 한 단계 수준이 높은 심화 교과목 선택 수업을 통해 본인이 희망하는 전공 연계 교과를 학습하게 될 것이다. 또 방학을 이용해서는 학교나 혹은 주변 대학연계학습이나 ‘MOOC’ 혹은 온라인 학습 시스템을 이용하여 더 많은 지식을 탐구하고 학습할 것이다. 학교에서는 이러한 학생의 학습 내용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해주면 될 것이다. ‘Fail’ 학생은 방학 혹은 야간을 이용하여 별도 방과후 수업을 통해 과락 교과목을 재이수해야만 하기 때문에 지금과는 달리 학생 스스로가 선택한 교과목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지고 학습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현행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는 ‘나눔과 배려’의 미덕을 중요한 덕목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기초 학력이 부진한 친구들과 함께 학습하는 모둠 활동이나 ‘또래 나눔’ 활동이 이전보다 자연스럽게 활발한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아울러 교육 당국에서도 기초학력 학생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특수교육’ 시스템을 운영하여 지도할 것이다. 특히 교육열이 강한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사교육을 통해서라도 ‘과락’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제는 같은 학년, 같은 학급의 학생일지라도 총 이수 단위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게 될 것이고 또 일반, 심화 교과의 선택 여부에 따라 학생의 평가가 분명하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즉, 지금은 동일 교과목에 대한 획일적인 평가였다고 한다면 ‘고교 학점제’ 운영을 통해 다양한 교육과정 이수 여부를 통해 학생들의 전공과 흥미 그리고 학습 능력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표준점수를 통한 평가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능력이 부족한 학생이 필요 이수 과목을 신청할 경우 학점이 좋지 못하게 나타나 오히려 대학 입시에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많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시설 투자와 교사 확보를 통해 일반 학습 환경이 변화한다면 사교육을 유발하고 본래 설치 의도와는 다르게 운영되기도 하여 많은 문제점을 초래하였던 자사고와 특목고는 존재 의미가 없을 것이다. 특히 특목고의 경우 일반고에서도 전공 심화 교과목 개설이 가능한 여건이 만들어진다면 더 이상 위화감을 조성하면서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말 어학이나 과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무학년제’로 학생이 희망하는 교과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아마 기존 특목고들은 심화나 전공 교과목을 위탁해서 학기별로 관리해주는 기관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진정한 교육개혁의 시작을 위하여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직 아니다. 모 후보가 언급한 것처럼 농어촌 학교의 문제가 남는다. 일정 규모를 가진 도시 학교들은 단위학교 혹은 주변학교와 연계하여 공통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거점 교육과정 시스템 구축을 통해 부족한 시설과 교원 충원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다.
현재도 농어촌 학교들은 현행 상대평가 실시에 따른 내신 성적의 장점으로 그나마 현상유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농어촌 학교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면단위 학교들은 학생 수가 적어 내신 성적에서 불리하게 되기 때문에 읍 단위 학교들로 쏠림 현상이 심화되어 큰 고통을 받고 있다. ‘교과 선택제’가 실시되면 이러한 학교들은 부득이하게 거점 학교를 중심으로 교육 과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이는 면단위 고등학교의 통폐합을 의미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농어촌 교육의 황폐화를 앞당길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만들어내는 일 또한 시급한 과제가 될 수 있다.
학생의 학습권과 학생 인권은 본인이 희망하고 꿈꾸는 전공과 일치하는 교과목 선택을 통해 학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만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거의 매일 잠만 자던 학생들이 대학에 가면 비록 힘들지만 전공에 맞는 학습을 하면서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제 이러한 학습 환경을 고등학교에서 미리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 개혁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의 상대평가가 사라지면 선행학습을 위한 중학교 사교육도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아마 사교육은 정말로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만이 받는 것이 될 것이고 이럴 경우 마을 공동체 형태의, 우리가 이상적으로 꿈꾸었던 사교육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꿈같은 현실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이번 선거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갈망해 본다. 그러나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지도자의 뚜렷한 교육 철학과 의지 그리고 그에 합당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예산 투자가 집행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제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