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과 교권이 조화하도록 손봐야 하는 것일까?
최근 전북지역 학교에서 사건과 사고가 이어지면서 학생인권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논란의 종착지는 전북학생인권조례인 것처럼 보인다. 학교를 둘러싸고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권리가 충돌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상호 조화하도록 조례를 고쳐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일부의 침묵과 일부의 ‘조례폐기론’도 눈에 띈다.
전북교육자치시민연대는 11일 전북도의회 세미나실에서 변호사, 학생, 교사, 학부모 등이 참여한 가운데 학생인권과 교권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전휴정 변호사(법무법인 최상)는 ‘전라북도 학생인권조례의 운용에 있어서의 법적 문제점에 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주제 발표를 했다.
전 변호사는 “학생들의 인권은 그 동안 기성세대와 학교교육현실에서 많이 경시돼왔다”면서 “학생인권조례는 이러한 불합리를 줄이기 위해 제정된 것이며 환영할만하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실제 학생인권조례의 운영에 있어서는 학생인권과 교사의 수업권, 학생인권과 타 학생들의 학습권 사이에 충동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인권과 교권의 충돌 사례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행위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행위 △수업거부행위 등을 들었다.
그는 특히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이후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이, 이러한 일을 권리로써 해도 되는 것인데 교사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끔 방해한다는 생각을 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이로 인한 분쟁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교사로부터 양질의 수업을 받을 기회를 그만큼 잃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북학생인권조례에 근거해 만들어진 학생인권교육센터의 운영 문제도 제기했다. 특히 수사기관의 조사결과와 학생인권교육센터의 조사결과가 다른 경우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 수사기관의 조사와 학생인권교육센터의 조사가 중복돼 이뤄지는 경우 이중위험금지원칙 위반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변호사는 결론적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선언적인 규정인 아닌 학생들의 인권과 교사들의 인권 모두를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효력을 가지는 규정이 될 수 있도록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토론자로 참가한 무주 안성중고등학교 문채병 교사 역시 교권침해 상황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졌다.
다만, 학생인권과 교권이 충돌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장은 지독한 진영, 흑백 논리의 오류”라며 “학생인권조례는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도 장애·성소수자·다문화·노동·빈곤학생 등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할 과제가 많고,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인권침해의 또 다른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게 그런 주장의 근거다.
문 교사는 오히려 교육청(교육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생, 학부모, 교사 간 관계가 민주적으로 자리하도록 하는 중심축은 교육청일 수밖에 없는데, 그 동안 교육청은 진영논리에 갇혀 있었고 민원중심주의를 선호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교육청은 감사권을 통한 징계협박, 명예사형을 남발해왔으며, 인권센터의 운영미숙 등으로 학생인권은 학원폭력을 예방하는 기능을 거의 구현하지 못했고, 교사들의 교육권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의 결론은 학생인권과 교권 옹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 구비와 함께 교육청의 책임 있는 각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자 가운데는 학생도 있었다. 고등학생 박지환 군은 준비한 토론문을 통해, 교사와 부모들이 ‘학생인권이 많이 그리고 지나치게 강조되는 현실’을 가정하는 데 대해 반론을 폈다.
박 군은 “우리나라 학생인권조례는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지고 65년 만에, 그것도 많은 반대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2017년 현재까지도 ‘학생의 인권’이라면 부정적으로 인식하시는 분들이 여럿 있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인권조례가 부정당하는 사례를 여럿 들었다. 그가 보거나 들었다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특정 종립학교의 경우, 예배나 미사 시간에 참여하는 것이 선택 사항이 아닌 의무 사항이고, 반 단위로 나가는 성가 경연 대회를 비롯한 여러 종교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종교를 막론하고 의무적이다.
△어떤 학교는 교내 휴대폰 소지를 금지하였는데, 수업시간 중 벨소리가 울리자 담임교사가 1시간 동안 책상 위에 올라가 의자를 들게 하고, 가방과 사물함을 검사하여 휴대폰을 소지한 모든 학생들의 휴대폰을 한 달 동안 압수했다.
△한 학생이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였는데, 보건실에 갔다 수업 중 들어오자, 다른 학생들 앞에서 “다친 게 벼슬이야? 학생이 다쳤으면 부끄러운 줄 알고 조용히 다녀야지, 뭐 하는 거 야?”라고 질책하고, 다리가 다쳐 짝 다리를 짚고 있는 학생에게 제대로 서라고 하였다. 이에 학생이 다리가 다쳐 그런다고 하자, “어디서 말대꾸야?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라고 하였다.
△자습 시간에 다른 학생들이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자 보내주었는데, 특정 학생이 다녀오겠다고 하자, “넌 안 돼. 난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거든.”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 학교에서 조선 학생들을 대상으로, 친구들끼리 서로 뺨을 때리게 하였다. 어른들에게 맞는 것보다 또래 친구에게 맞는 것이 더 치욕적이라는 것을 알고 일제가 자행한 일이 다. 이처럼 또래에게 지적당하는 것이 가장 치욕적인데, 학교에서는 일명 ‘선도부’를 꾸려 학생들이 학생들을 지적하는 권한을 준다.
△학교 등교시간이 아닌 학급 등교시간에 늦은 학생에게 운동장에 15m 정도의 구간을 정해 놓고 왕복 20바퀴를 오리걸음으로 돌게 하였다. 당일에 끝내지 못하면 다음 날 2배로 해야 하기 때문에 점심까지 굶어가며 오리걸음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한 중학교에서는 한 교사가 지시에 불응한 학생에게 슬리퍼로 뺨을 때리는 가혹 행위를 하였다.
△한 여자 고등학교에서 담임교사가 자신의 반 학생에게 피부가 좀 까맣다는 이유로 모든 학 생들 앞에서, “○○이는 고향이 어디야? 필리핀인 줄 알았다.”라고 하며 웃었다.
박 군은 이밖에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곤 하는 인권침해 사례들도 언급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 학생의 성기를 같은 학급의 학생이 휴대폰으로 촬영하였다. 친한 친구끼리는 이러한 장난을 해도 학교 폭력이라고 신고하기는 좀 그렇고, 기분 나빴다고 말하면 좀 소심해 보여 혼자 삭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수학여행에 가서 샤워를 하고 나온 학생의 알몸을 특정 학생이 촬영하였다. 친구들끼리 이러한 일들은 그냥 일상적으로 취급되고, 다른 인권 침해라고 여겨지는 일들도 더 있지만 그러한 것들도 서로가 인권침해인 줄 모르고 행하고, 말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문 군은 “내 인권이 중요하듯이 다른 사람의 인권도 소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교사와 학생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도 나와 상대방의 인권은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인권뿐만 아니라 교권(나아가 학부모의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은 옳은 듯 보인다. 그런데 그런 주장들은 대개 “학생인권은 지나치게 보장되고 있는 반면, 교권은 지나치게 무시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도출한 결론인 경우가 많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전주의 한 중학생은 “‘수업시간에 잠을 잘 권리’나 ‘수업 중 휴대전화를 사용할 권리’, ‘수업을 거부할 권리’ 따위를 주장하는 학생이 있을지 의문이다. 가끔 벌어지는 일과 그것이 권리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라며 “전북 학생들의 인권 실상은 매우 열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