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늦게까지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다가 아침 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달콤한 잠에 빠져 있는 아침 9시. 부엌이 부산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끊임없이 물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잠시 후 향기로운 커피 향이 자는 코끝에도 스며들어온다. 부스스 눈을 떴다. 고무장갑을 끼고 커피잔을 들고 있는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이 주는 아침 커피 진짜 오래간만이네?”
“고등학교 때 이후 처음이지?”
“응, 고등학교 2학년 때가 마지막이었나?”
“아니, 1학년 때, 2학년 때부터는 방학 때 아침부터 아르바이트 다니느라 못 타줬지!”
“고마워, 아들”
커피잔을 들고 안방에서 나왔다. 부엌이 정신없다. 냄비부터 시작해서 온갖 그릇들, 잡동사니까지 싱크대에 잔뜩 쌓여있고, 부엌 바닥은 물로 흥건했다. 하마터면 들고 있는 커피잔을 놓칠 뻔했다. 나보다 20센티가 넘게 큰 산만한 녀석이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한다며 부산을 떠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잔뜩 늘어놓은 일거리가 심란하기도 했다.
“뭐 하냐 지금?”
“오래간만에 설거지나 하려고…. 엄마 요즘 바빠서 부엌 내버려뒀잖아”
“근데 왜 이렇게 널어놨어?”
“원래 이렇게 했는데?”
아들은 고무장갑 낀 손으로 내 등을 떠밀었다. 내 작업실로 나를 밀쳐 넣으며 끝날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말란다. 어젯밤 하던 일을 하려 다시 컴퓨터를 열었지만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부엌에 있어서 일이 집중되지 않았다.
분명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없을 때, 일이 있어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깔끔하게 치워놓은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하고 있는 모습은 초등학교 때 이후 처음이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아들은 고무장갑을 벗고 내 손을 이끌었다.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었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음식쓰레기며 일반 쓰레기까지 모두 버리고 난 후였다.
“엄마 아르바이트했어. 얼마 줄 거야?”
“200원!”
“에이 초등학교 때랑 같으면 안 되지. 나 시급 7천 원짜리 아르바이트생이야!”
“음, 그럼 점심 사 줄게. 집에 와 있는 저놈들이랑”
“약속한 거야. 점심!”
아들은 집안 일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집에서 아르바이트한다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 때였다.
아들이 무엇인가 빼곡히 적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4학년 겨울부터 키가 자라기 시작해서 내 키와 비슷비슷해지는 시기였다. 아주 처량한 눈빛으로 나의 처분을 바라고 있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종이를 펼치며 물었다.
“뭐 잘못했어? 반성문이야?”
“아니, 보면 알아.”
빼곡히 적힌 글씨를 보며 난 피식 웃고 말았다. 평소에 심부름하기 싫어하는 아들에게 심부름시키며 100원, 200원 주던 것들 목록이 적혀 있었다.
“설거지 100원, 심부름 100원, 청소 200원, 화장실 청소 300원, 거실 청소 200원, 내 방 청소 무료….”
집에서 할 수 있는 잡다한 일들이 적혀있었다. 피식 웃는 나를 보던 아들이 이내 실망하는 눈치였다.
“이런 거 왜 하려고?”
“나는 부자가 될 거야. 그런데 지금 어디 가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르바이트시켜주는 데도 없으니까. 엄마한테 아르바이트시켜 달라는 거야!”
“아르바이트하면 부자 돼?”
“아니, 적어도 엄마한테 내가 필요한 것 사달라고 하지 않아도 되니까. 누나는 휴대전화 있는데 나는 없잖아!”
“휴대전화는 중학교 입학 선물로 해 준다니까?”
“내 친구들은 다 있는데….”
“아르바이트해서 휴대전화 살 거야?”
“아니”
“그럼?”
“모을 거야. 그리고 나중에 내가 꼭 갖고 싶은 거 살 거야!”
“그래, 알았어.”
나는 아들이 적은 목록을 그대로 한글 워드에 기록하고, 옆에 있는 가격을 조금씩 늘려주었다. 지켜보던 아들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내가 그 목록을 완성해서 프린트하기도 전에 벌써 쓰레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르바이트시켜주겠다는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시작한 것이다.

(그림 = 임솔빈)
심부름이나 쓰레기 버리는 일은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설거지나 집안일은 아이들이 보지 않을 때 다시 해야 했다. 설거지는 세제도 씻기지 않았고, 밥풀이나 고춧가루도 그대로 그릇에 남아 있었다. 화장실은 물만 한 번 뿌리면 그것이 청소였고, 거실은 청소기로 가운데만 쓱 밀고 나면 끝이었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 있는 두 시간 안에 모두 해결해야 했다. 그럼에도 도와준다는 뿌듯함과 자신이 일한 만큼 받는 첫 경제생활에 재미를 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대목은 명절이나 제사였다. 집에서 명절이나 제사를 모시고 있었기에 그때는 심부름할 일도 많았고, 치워야 할 것도 많았다. 그날만 벼르고 있는 아이 때문에 일부러 시키는 것도 있었고, 나중에 심부름시킬 거리를 남기고 시장을 봐오기도 했다. 아이는 신이 났다.
“태훈아, 두부 깜박했다. 그리고….”
아이는 지갑에서 천 원짜리 꺼내어 들고 벌써 현관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한 가지 이야기가 나오면 다음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자주 심부름할수록 돈이 늘어나기에 한꺼번에 두, 세 가지 사오면 자신이 손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침뿐이었다. 나중에는 다시 나가는 것이 귀찮아서 한꺼번에 적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잔돈은 남겨오는 법이 없었다. 심부름에 대한 옵션으로 잔돈은 자신의 몫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잔돈을 꼭 남겨오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기에 500원 이하는 아이가 갖게 해주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 졸업할 때까지 방학이 되면 아이는 매일 은행에 갔다. 학교 다닐 때에는 심부름과 쓰레기 버리는 일만 했다. 그리고 은행에는 가지 않았다. 은행 업무시간과 맞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기 중에는 돈 씀씀이가 더 크기에 모으는 것보다 쓰는 일이 더 많았다.
명절 때나 가족들 모였을 때 받았던 용돈과 아르바이트해서 매일 은행에 넣었던 돈이 꽤 많이 모였다는 것을 대충 알고 있었다. 현재 얼마가 저축되어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무엇을 살 것인지에 대해서는 항상 허락을 받고 지출했다. 유치원 때부터 용돈을 주며 돈 관리를 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 큰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중학교 입학하던 때쯤. 통장을 보여주었다. 100원, 200원짜리 아르바이트와 용돈을 모아서 40여만 원의 돈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남편과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에 가장 많은 날이 2천 원이었고, 대청소하는 날만 5천 원 정도였다. 하지만 대청소는 한 달에 잘해야 한 두 번이었고, 대부분 평균 천오백 원 수준이었다. 방학 때만 모은 푼돈이 명절의 용돈과 함께 모이니 목돈이 되었다.
그렇게 100원짜리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던 아들은 중학생이 되어서는 액수가 늘었다. 그리고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같았지만,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부모의 동의하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며 부모 동의서를 작성해서 내 작업실로 들어왔다.
“꼭 밖에서 아르바이트해야 해?”
“하고 싶어”
“용돈이 부족한 거야?”
“아니, 내가 다니는 학교는 상업고등학교라 인문계인 누나처럼 시간이 빠듯한 것도 아니고, 일찍 수업 끝나고 오후 되면 괜히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면서 사고나 치고….”
“사고를 많이 치긴 했지? 하지만 아르바이트하면 사고 치거나 하는 일들이 줄 것 같아? 내가 봤을 땐 더 심해질 것 같은데?”
“적어도 밖에서 사고를 치는 애들이랑 멀어질 수 있는 계기는 되니까”
“그것이 목적은 아니잖아?”
“……. 사실은 나도 명품 옷도 입고 싶고, 신발도 사고 싶고…. 엄마는 명품 같은 건 용납하지 않고, 사주지도 않으니까. 내가 스스로 일해서 사고 싶어!”
“당구장인데, 괜찮겠어? 오히려 너와 어울려서 사고 치던 애들이 좋아하는 곳이잖아?”
“그래도 같이 어울려 나가지는 못하니까….”
“일단 너를 믿을게. 믿으니까 부모 동의서에 사인은 해 주는데, 대신 엄마랑 약속하자.”
“응?”
“아르바이트도 일종의 직장이야. 네가 그 집에서 일하겠다고 했으니 그 사장님도 네가 성실하게 나올 것을 믿고 너를 아르바이트생으로 쓰겠다는 것이니까. 적어도 무단결근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만두더라도 3개월은 채워야 하고, 아르바이트하는 것 때문에 어떤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때는 언제든지 엄마의 결정이 따른다는 것! 여기 각서 써.”
아이는 각서를 쓰고, 난 그 각서에 아들의 도장을 찍게 하고, 부모 동의서에 사인을 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당구장에서는 한 달을 버티지 못했다. 우려하는 것처럼 친구들이 아닌, 우여곡절 끝에 함께 살았던 친정조카의 친구들이 아르바이트하는 당구장에서 매일 살다시피 했다. 그리고 게임비는 모두 아들에게 떠맡기고 사라지는 일이 허다했다. 결국, 아이는 나에게 사실대로 이실직고한 후 당구장을 그만두었다.
한 달도 버티지 못한 것은 당구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두 번째 부모 동의서에 사인해 줄 때는 잘못된 행동은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세 달을 버티지 못한다면 앞으로 아르바이트하겠다는 말은 꺼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모든 아르바이트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토바이 배달 아르바이트는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달 아르바이트를 빼면 고등학교 남자아이들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식당 아르바이트였다. 홀 서빙 아르바이트는 남학생들의 경우는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함께 아르바이트하던 아이들도 하나둘씩 배달 아르바이트로 전환했다. 하지만 내가 허용하지 않는 아르바이트는 할 수 없었기에 아들은 묵묵히 홀 서빙만 고집하며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갔다.
상업고등학교였기에 2학기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공부를 놔버린 아들은 대학에 흥미가 없었지만, 누나의 대학생활을 보며 주변 아이들의 대학 진학을 보며 조금은 흥미가 생긴 모양이다. 대학에 진학하는 방법에 대해 나에게 의논을 하더니 대학 등록금은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며 취업을 공장으로 나갔다.
“왜 하필 공장이야?”
“엄마, 몇 개월 일해서 등록금 마련하기에는 공장이 제일 좋아. 시급도 많고, 잔업이 많아서 홀 서빙보다 돈 모으기가 더 수월하거든. 아들 한 번만 더 믿어봐”
“근데 대학 첫 등록금은 엄마가 해주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꼭 공장에 취업 안 해도 되고, 그냥 학교 다니다가 전문대라도 알아보면 되지 않을까?”
“엄마, 대학은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 해서든 전문대라도 갈 테니까. 내가 공부는 못해도 인맥은…. 크아! 내가 생각해도 인맥은 짱이여!”
아들은 결국 공장에 취업했다. 그리고 한참 2학기 수시모집을 하던 때, 공장에 휴가를 내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아들을 발견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뚜렷하지 않지만, 부사관이나 운동 관련 쪽 학과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워낙 성적이 좋지 못한 탓에 면접 분위기는 좋았지만 수시모집에는 모두 떨어졌다. 무척 실망하는 눈치가 보였다. 나 또한 나름 아이의 적성에 맞는 학과를 몇 군데 찾아보기는 했다. 딸의 조언도 받았다. 그러나 면접 보고 온 후 아들은 항상 실망하며 공장으로 출근했다.
그렇게 대학 수시모집이 끝나던 때였다. 아들이 신 나는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수시모집에 넣어 둔 학교에서 재직 중인 교수 한 분이 추천까지 해 주셔서 합격했다는 것이다. 또한, 교수추천의 경우 입학금이 면제라며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네가 그 학교 교수를 어떻게 알아?”
“전에 식당 아르바이트할 때, 그분이 날 잘 보셨나 봐. 저번에 일 끝나고 공장 사람들이랑 회식하는 식당에서 다시 만났었는데 대학 어찌 되었냐고 물어보시기에 지금 어디 어디 수시 넣어두고 있는데 성적이 좋지 않아서 안 될 것 같다고 했더니 기다려보라 하시데? 그러더니 오늘 합격 통지서 받았어!”
난 멍한 얼굴로 아들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잘생긴 얼굴도 아니고, 호감형도 아니다. 눈썹 끝이 확실하게 올라간 것 때문에 주변 아이들이 무섭다는 말도 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고, 그 사람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 내 기준에서는 얼른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항상 가장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아들의 계획대로 몇 개월 공장에서 일한 결과 첫 등록금은 스스로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공장 아르바이트가 끝났나 싶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리 쉬었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면서도 아들의 아르바이트는 끝나지 않았다. 시급이 채 5천 원이 되지 않을 때, 7천 원을 받으며 식당 홀 서빙을 했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자동차 공장 하청업체에 들어갔다. 방학 내내 먼지를 뒤집어쓰고 힘겨운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쓰러져 자는 아들이 안쓰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다음날이면 거뜬히 일어나 일을 나가고, 어느 땐 새벽 늦게까지 잔업을 할 때도 있었다.
아들이 아르바이트하지 않은 것은 군대에 있을 때뿐이었다. 군 제대를 한 달 앞두고 휴가 나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제대 후 아르바이트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제대하자마자 3일 쉬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다시 복학하기 위해서 등록금이 필요하다며 아침에 공장으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오면 다시 식당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엄마의 입장에서 아들을 바라볼 때 대견스러운 마음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더 크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찌 되었든 등록금은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돈 버는 재미에 길들여진 아이는 집에 있는 시간이 가장 아까운 시간이라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빠지는 날은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거나. 군대 간 친구가 휴가 나오는 날. 그 이외에는 없었다.
“아, 진짜. 며칠을 쉬라는 거야. 피곤은 하루만 쉬면 다 풀리는데, 일이 없어서 쉰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차라리 식당 아르바이트가 더 나을 뻔했어.”
약속한 점심을 먹다 울리는 메시지 음에 휴대전화를 보던 아들의 투덜거림이었다. 오늘까지 3일째 공장 아르바이트를 쉬고 있었다. 자동차 부품 공장이었지만 요즘 경기불황으로 그다지 일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밤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을 그 회사 사장이 알고 난 후, 시급도 올려주고 작업 시간도 늘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일이 없어서 오히려 더 일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100원짜리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한 아들은 이제 못하는 아르바이트가 없다. 아니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도 거의 없다. 이미 돈 버는 재미와 쓰는 재미를 모두 알아버렸기에 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도 없다. 고단한 생활을 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좀 더 편하게, 좀 더 넓은 세상을 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지만 말할 수 없다. 그저 단순하게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안다면 돈 씀씀이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작했던 100원짜리 아르바이트가 아이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 식당 아르바이트 가려던 아들이 통장을 내밀었다. 며칠 전에 공장에서 일한 월급이 들어온 모양이다. 통장과 카드가 함께 있었다.
“왜?”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애들이랑 자꾸 술 마시는 것으로 다 쓰게 되는 것 같아서.”
“엄마가 다 쓸 거야. 엄마 사고 싶은 거 엄청나게 많은데.”
“그래도 돼! 그런데 엄마 그거 등록금 모으는 통장이야. 엄마가 쓰고 채워서 등록금 내줘!”
아들이 나간 후 통장을 열어 보았다. 식당 홀 서빙 아르바이트는 매일 현금으로 주는 모양이다. 아침 시간대에 4만 원, 5만 원 입금된 날이 무척 많았다. 대책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병이다. 감성을 조금만 건들어도 눈물이 흐른다. 눈물 꼭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피곤함을 견디며 매일 공장과 식당을 오가며 고생한 것이 숫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힘겹게 살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지만, 힘겨움을 자처하는 아들에게 부모로서의 미안한 마음이 감성을 건드린 모양이다.
커피잔을 들고 베란다 창문 앞에 섰다. 오늘은 날씨가 따뜻한 모양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파트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다. 한동안 저 웃음소리 안에 내 아이들도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뒤돌아보지 않고 잰걸음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고 있다. 항상 좀 더 찐하게 마실까 했던 커피가 오늘따라 씁쓸한 맛만 입안에서 감돈다. 아들의 고단한 일상이 커피에 녹아든 모양이다. 쓰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