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녔을 때,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쪽지들을 코팅해서 앨범에 넣어 두었다. 쪽지들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유년시절을 추억한다는 것이 가끔은 행복을 가득 안겨주기도 한다. 앨범에 항상 함께 있는 두 아이를 보며 나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것이 여섯 살 때였다.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엄마와 함께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또한, 대부분 친구들은 젖먹이 때부터 유치원, 어린이집, 놀이방에 가야했고 놀이터에는 우리 아이들밖에 없었다.
조금은 고민해야 했다. 친구들이 없기에 딸아이라도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보내야 될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이 마음껏 놀게 한 다음에 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갈등을 가져왔다. 다섯 살 가을쯤이었다.
“자영이 유치원 가고 싶어?”
“음…. 가고는 싶은데 그러면 태훈이 혼자 놀아야 하잖아.”
“엄마랑 놀면 되지?”
“항상 같이 있어야 한다고 엄마가 그랬잖아.”
“그래도 친구들이랑 노는 것이 더 좋잖아.”
“음…. 그건….”
아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서도 갈등이 생기는 것 같았다. 결국, 내 의견에 따라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아들아이는 겨우 네 살. 아직 엄마 품에 더 있다가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딸아이만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3월이 되었다. 자영이는 어린이집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거울 앞에서 몇 분을 서성거렸다. 버스 올 시간은 다 되었지만, 딸아이가 어린이집 옷을 입고 있을 때부터 아들아이의 울음이 시작되었다.
“나도 갈래. 누나랑 갈 거야!”
“누나 금방 올 거야. 태훈이는 다음에 같이 가면 안 될까?”
“싫어! 누나랑 갈 거야. 태훈이도 어린이집 갈 거야!”
“엄마는 안 가는데? 거기 가면 엄마가 없는데 갈 거야?”
“응 갈 거야!”
버스 올 시간이 다 되어서야 아들을 안고 겨우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때까지 아이의 떼쓰기는 끝나지 않았다. 무서운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았지만,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어린이집 차가 자영이 앞에 멎었다. 안겨있던 아들아이는 소리 내어 울며 딸아이의 가방을 잡았다.
“어머니, 오늘만 태훈이 데리고 갈까요? 엄마가 없다는 것 알면 내일부터 따라가지 않을 텐데. 어머니 괜찮으시면 오늘은 함께 데리고 갈게요.”
“괜찮으시겠어요? 혹시 내일도 따라가겠다고 하면 같이 보낼까 생각 중이기는 했어요. 네 살 반에 자리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태훈이는 누나를 따라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들아이가 엄마 품에서 떨어진 첫날이었다. 태어나서 어린이집 갔던 그 날까지 단 한 번도 엄마와 떨어진 적이 없는 아이가 걱정되었다. 더군다나 낯가림도 심했다. 아무나 따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엄마가 옆에 있어도 다른 사람 품에 안기는 일이 없었다. 처음부터 종일반으로 시작했기에 아이들은 5시가 넘어서 어린이집이 끝난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데리러 가겠다고 말은 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아이들이 탄 어린이집 버스가 집 앞에 도착했다. 조금 먼 거리에 있었기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아들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태훈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태훈이가 어린이집에서 누나만 찾았어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엄마를 찾는 것이 아니라 누나를 찾으며 우는 것에 조금 놀랐어요.”
“그랬어요? 그럼 자영이는….”
“네 살 반 아이들과 수업을 함께 했어요. 혹시 태훈이가 내일도 따라가겠다고 하면 등록하셔도 될 것 같아요. 네 살 반은 조금 자리가 있어요.”
자영이는 첫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투덜투덜 걷는 딸아이를 앞세우고 이층으로 올라가자 딸아이는 그래도 조금은 기분이 풀렸는지 담임선생님이 주신 알림장을 내밀었다.
알림장 첫 장에 작은 메모지 한 장이 붙어있었다.
“동생을 참 많이 아껴요. 아래층에서 태훈이 목소리가 들리니 수업에 집중을 못 했어요. 그래서 네 살 반에서 수업을 받았지만, 태훈이가 자는 시간에 올라와서 자신의 수업을 하는데 잘 따라오고 있어요.”
난 딸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그다지 화난 표정은 아니었다. 버스에서 잠들었던 작은아이가 잠에서 깨자마자 누나를 꼭 안았다. 엄마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태훈이는 누나가 엄마보다 더 좋아? 어린이집에서도 누나, 누나 하면서 울었다면서?”
“응, 근데 누나가 와서 같이 놀았어!”
“그래서 재미있었어?”
“응, 엄마 나 내일도 따라갈래!”
그때였다. 자영이는 입을 뾰루퉁 내밀었다.
“누나는 공부해야 되는데 네 살 반에 가서 놀기만 해야 하잖아!”
“누나랑 같이 노니까 재미있잖아!”
아이들은 모든 것을 함께했었다. 분명 20개월이라는 차이가 있음에도 옷도, 신발도, 가방도 심지어 머리 모양도 똑같이 해야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다른 것은 색깔이었다. 태훈이는 파란색, 자영이는 분홍색, 노란색은 둘 다 좋아하는 색깔이어서 가끔 노란색을 나란히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모양이나 형태는 똑같아야 했다.

(그림=임솔빈)
다음 날 아침.
태훈이는 다시 어린이집 버스에 올랐다. 난 오후에 어린이집을 방문해서 태훈이를 등록해야 했다. 어린이집 등록하지 않은 아이를 매일 같이 보내는 것도 어린이집에 미안한 일이었다. 태훈이 입학을 위해 어린이집을 찾았을 때, 아이들은 바깥 놀이를 하고 있었다. 태훈이 옆에는 자영이가 있었다. 네 살 반 아이들의 바깥놀이였던 모양이다.
난 아이들 몰래 사무실로 들어갔다. 원장은 나를 보자마자 웃으며 반가이 맞아주었다. 같은 동네 살고 있기에 오가며 자주 마주친 원장 선생님이었다.
“자영이가 네 살 반에서 수업받고 있는 것 같아요. 괜찮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일주일은 태훈이와 함께 네 살 반에 있을 거예요. 아마 일주일이 지나면 태훈이도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노느라 누나는 찾지 않을 거예요. 오늘도 오전에는 따로 수업했어요. 점심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더니 누나 찾아 여섯 살 반으로 태훈이가 직접 왔더라고요. 오늘은 울지는 않았어요.”
“다행이네요. 그럼 일주일 정도면 적응을 할 수 있을까요?”
“태훈이는 조금 더 빠를 수도 있어요. 친구들과 친화력이 참 좋더라고요. 금세 친해졌어요.”
“아직 엄마랑 떨어져 지낸 적이 없는데….”
“참 특이한 것이 있어요. 다른 아이들도 형제, 남매가 같이 다니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도 세 살, 네 살 아이들은 엄마를 부르며 울어요. 그런데 태훈이는 누나를 부르며 울더라고요.”
“네. 선생님 메모에서 읽었어요. 저도 참 신기하네요. 왜 누나를 부르며 우는 것인지.”
아이들의 수업 받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고 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무렵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두 아이는 신 나는 표정이었다.
“태훈이 오늘은 안 울었어요!”
“오늘도 누나 찾아갔었지?”
“누나가 여섯 살 반에 있는지 보려고….”
네 살짜리 아이는 당당했다. 누나가 함께 있으면 세상이 무섭지 않은 모양이다. 매일 아침 손을 잡고 버스에 오르고 매일 저녁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태훈이는 유치원에서 무서운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선생님의 메모가 두 장이 들어있었다. 한 장은 급하게 쓴 것 같았다.
“태훈이가 오늘은 수업을 잘 받았어요. 울지도 않았고 누나도 찾지 않았어요. 그리고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무엇이든 먼저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태훈이가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일곱 살짜리 형에게 당당하게 말했어요. 아이는 괴롭히면 안 돼! 보호해줘야 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태훈이가 아주 멋있었어요. 오늘 수업 내용이었거든요.”
그렇게 태훈이는 어린이집에 적응했다. 그리고 누나 사랑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대학을 다니던 딸아이는 주말이나 방학 때, 가끔 집에 내려왔다. 방학이라고 해도 집에 내려올 수 있는 날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날 때 집에 내려오곤 했지만, 집에 있는 날 또한 많지 않았다. 대부분 단짝 친구들과 함께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술을 못하는 딸아이와 술을 잘 마시는 아들이 함께 귀가했다. 무슨 대화가 그리 심각한지 집에 들어와서도 내내 둘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일하다 말고 살며시 아이들 대화에 끼어들었다.
“엄마 빼놓고 둘이 너무 속닥거리는 것 같은데?”
“엄마, 태훈이 오늘 완전히 감동이었어!”
“응? 왜?”
“오늘 친구들이랑 자주 가는 클럽에 갔었거든. 항상 같이 가는 애들 있잖아. 대부분 스트레스 풀러 가는 것이지 남자 만나러 가는 것은 아닌 것 엄마도 알지? 그런데 옆자리에서 술 마신 애들이 우리 자리를 자꾸 들락거리면서 추파를 던지잖아. 그래서 친구들이랑 그냥 나오려고 했거든. 근데 그때 태훈이가 딱 클럽에 오잖아!”
“그랬어? 군산이 좁긴 하지? 노는 곳도 한정되어 있으니까 만날 수밖에 없었겠지?”
“그래서 같이 클럽에서 놀았어. 그랬더니 친구들이 미쳤다고 하잖아. 어떻게 동생이랑 클럽에서 같이 놀 수 있느냐고. 우린 아무렇지도 않은데 친구들은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
“그러게? 내가 생각해도 같이 놀 수도 있잖아? 노래방도 같이 다니는데 클럽은 왜 안 되는데?”
“그러니까! 있잖아, 엄마. 그걸 완전히 뒤집어 버린 사건이 생겼어!”
“응?”
“아무리 같이 놀고 있지만, 태훈이도 친구들이 있잖아. 그래서 테이블은 따로 잡았었지. 가끔 우리 테이블로 왔다 갔다 했었거든. 그런데 또 술 취한 남자애들이 우리 테이블에 와서 전화번호 물어보고 같이 춤추자고 난리 났잖아. 그때 태훈이가 나타나더니 남자애가 내 손목 잡고 있으니까 그 손목을 잡아채면서 하는 말. ‘내 여자 친구한테 볼 일 있어? 손은 놓고 말하지?’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남자애들이 태훈이 쳐다보더니 슬슬 도망가 버렸어!”
“태훈이가 무섭게 생겼나?”
“그런 건 아니지 엄마는! 태훈이 뒤에 친구들도 많고 표정을 보니 장난이 아닌 것 같거든. 거기다가 키도 태훈이가 훨씬 크고 등치도 좋았거든!”
“엄마! 내가 무섭게 생겼어? 너무 하는 것 아니야? 엄마가 적이네?”
“아니, 그런 곳에서 잘못하면 시비 붙고 그러면 또 싸움이 일어나니까 하는 말이지!”
“그래서 친구들이 완전히 감동했잖아. 내 친구들이 태훈이 테이블 술값까지 다 계산했어. 태훈이 완전 짱이지? 진짜 오늘 멋있었다니까!”
“누나, 엄마가 그랬잖아. 엄마가 없으면 누나가 엄마고 아빠가 없는 곳에서는 내가 보호자라고.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보호해야지!”
이후 남매가 술집이나 클럽에서 어울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딸아이 친구들도 클럽이나 술집에서 만날 때는 항상 아들을 부르는 것 같았다.
아들이 외출할 때는 항상 바빴다. 특히 여자 친구 만나러 나가는 날에는 거울 앞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서울에 있는 딸아이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었다.
“엄마, 누나가 이 스타일이 괜찮다는데 엄마 보기엔 어때?”
“여자 친구 만나러 가?”
“응, 지금은 초반이니까 잘 보여야지. 아들 멋져?”
“뭐 그다지. 그냥 봐 줄만은 하다.”
“역시 엄마가 적이었어. 그냥 누나하고 이야기할 거야!”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도 아들은 제 누나에게 많은 의지를 한다. 딸아이 또한 망설여지는 일이 있을 때, 동생과 먼저 의논하고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아이들이 그렇게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복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꽃샘추위가 시작되던 날.
밖은 추웠지만, 햇살은 봄볕이었다. 베란다에 앉아 오래간만에 다육이를 돌보며 몇 개월 동안 연락이 없는 셋째 오빠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오빠 뭐해?”
“바쁘다.”
“알았어.”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언니도 동생도 없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빠들밖에 없었지만, 다정다감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유년시절에 가장 가까웠던 셋째 오빠지만 쉰 줄에 앉은 지금은 그저 명절에 가끔 볼 뿐이었다. 형제, 자매가 함께 살면서 같이 의지하며 늙어갈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이 아닐까 싶은 내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차갑기만 한 어머니의 성격을 가족이 모두 닮은 모양이다. 베란다의 햇살은 따뜻하지만, 밖은 춥다. 내 아이들은 꽃샘추위 같은 형제애가 아니라 따뜻한 봄날 같은 마음으로 언제까지 살아가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