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자유학기제 대비가 매우 미흡하며, 지금이라도 전북교육청이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학생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우식 이일여자고등학교 교사(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원장)는 내년도 중학교 자유학기제 전국 전면시행을 앞두고 전주YMCA가 연 토론회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전주YMCA는 9일 전북도의회 회의실에서 전북지역교육연구소와 공동 주관으로 ‘자유학기제와 지역중심 청소년진로활동의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이일여고 정우식 교사(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원장)는 “자유학기제와 관련해 전북은 안타깝게도 교육부 예산을 비롯한 지원, 예컨대 진로진학상담교사 연수, 학교 지원, 선도교육지원청 지정 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며 “전북은 준비가 제대로 안돼 있고 출발선은 한참 뒤처져 있다”고 진단했다.
정 교사는 또 “자유학기제를 시행하는 데 필수적인 지방자치단체나 지역사회의 의식변화와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지역사회의 인적·물적 자원을 네트워크화하고 협력을 구해야 했지만 전혀 그러지 못했다“며 ”이러한 미흡한 대응과 준비는 모두 진영논리에만 갇혀 전북과 아이들의 미래를 폭넓게 보지 못한 전북교육감과 교육청의 인식 수준에서 비롯된다“고 쓴 소리를 쏟아냈다.
정 교사는 이어 “자유학기제에 대해 전북교육감은 시범실시 초창기부터 교육현장에 말과 행동으로 강력하게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해왔다”고 보면서도 “반성할 건 반성하며,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분발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실제로 자유학기제는 강원, 광주, 경기, 서울 등 이른바 진보교육감 교육청에서 앞장서 이끌어가는 모양새다. 정 교사에 따르면, 진로진학상담교사 배치와 자유학기제에 소극적인 전북교육청과 달리 강원, 광주, 대구교육청은 2015년 중학교 100% 자유학기제 시행, 경기교육청은 경기형자유학기제 90%, 서울교육청은 서울형자유학기제 70% 시행 등 교육부의 당초 권고수준인 50%보다 오히려 앞서고 있다.
강원교육청의 경우 2015년 중학교 100% 자유학기제를 실시했고, 진로상담교사 배치율은 100%를 기록했다. 여기에 전국 최초로 내년도에 진로학생교육원 준공을 앞두고 있고, 2014년부터 고입연합고사를 폐지하고 내신제를 실시해 자유학기제 시행을 위한 기초를 닦아왔다.
광주교육청도 2015년 중학교 100% 자유학기제를 실시했고, 진로상담교사 배치율 100%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전북교육청은 2015년도 중학교 자유학기제 실시 목표율을 30%로 잡았고, 진로진학상담교사 배치율은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위 박혜자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9월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진로진학상담교사 배치현황을 분석해보면, 전국 17개 시·도의 평균 진로진학상담교사 배치율은 94.9%(전북을 빼면 99.3%)인 반면, 전북의 배치율은 최하위인 27.3%에 불과했다.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보면, 전북의 경우 전체 중·고등학교 341개교 중 진로상담교사 배치 학교수는 93개교, 배치율은 27.3%로 전북을 제외하고 가장 배치율이 낮은 인천(94.9%)과 비교해도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이러다보니 전북교육청은 전국 시·도교육청 평가 중 「진로탐색·진로설계 지원」항목에서도 2014년·2015년 두 해 연속으로 최하위 평가점수를 받았다.
박혜자 의원은 당시(9월) “진로교육법 시행이 불과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현재까지도 전북은 진로진학상담교사의 자연감소에 따른 충원 외에 배치 확대를 위한 인원을 선발하지 않고 있으며 내년 선발계획 또한 전무한 상태”라고 지적하면서 “교내에서부터 다양한 진로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고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전북 지역 학생들만 제한되어 있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박 의원은 “전북교육청은 지금부터라도 내실 있는 진로진학상담교사 선발·배치 계획을 마련해 지역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우식 교사는 “자유학기제의 초기 정착 단계에서 진로진학상담교사는 각 학교의 가장 핵심적인 추진 주체”라며 “전북은 209개 중학교 중 진로진학상담교사 배치율이 10% 미만이며, 이는 두고두고 학교현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했다.
정 교사는 이 같은 준비부족이 학교 현장에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태도 예상했다. 자유학기제라는 새로운 제도가 정착하려면 학교의 업무가중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진로상담교사 배치율이 이처럼 낮으면 진로상담교사가 없는 학교에서는 이 복잡하고 힘든 업무를 누가 맡을 것인가를 두고 옥신각신이 벌어질 거라는 예상이다.
정 교사는 “교육과정 관련이니까 교부무장이 맡아 적당히 교육과정 배정 차원에서 해결하거나 하다가, 결국에는 서류상으로는 어찌 꾸며질지 몰라도, 슬그머니 자율학습 시간으로 변질되고 말 위험성마저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게 되면 피해자는 결국 아이들이다. 성실히 준비된 자유학기제를 제공받은 지역의 아이들과 그저 시간 때우기 식 자율학습 시간으로 보낸 아이들의 미래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 교사는 전북교육청이 자체 연수 등을 통해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고 혁신학교 수준의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혁신학교의 성과를 자유학기제가 덮을까 염려스러워 전북교육청이 다른 시·도 교육청과 달리 유독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학교현장 일각의 지적이 있지만, 설마 그러기야 하겠느냐”며 “전북 자유학기제의 안정적 정착 여부는 혁신학교 교사들의 자발적 에너지와 노하우를 자유학기제와 자연스럽게 결합해낼 방안을 어떻게 찾아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학기제와 혁신학교 두 정책은 (서용선이 분석한대로) ‘공교육 정상화’, ‘시험부담 완화’, ‘학생 참여’, ‘다양한 체험활동’ 등 적지 않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상호보완적인 요소도 많다는 것이다.
정 교사는 한편, 교육청과 지자체가 상시적으로 협의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지역 대학 및 민간 기업, 문화·예술·체육단체,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과의 협력과 지원, 네트워크도 절실하고, 자치단체가 설립해 지역학교-주민-학부모를 연계하고 교육·지원하는 완주군교육통합지원센터도 좋은 사례라고 강조했다. 또 타 시·도처럼 도지사, 시장·군수 산하에 교육보좌관 제도를 두자는 제안도 내놨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전북 도내 교육관련 단체 인사 등 7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토론회 좌장은 전북지역교육연구소 이미영 소장이 맡았으며,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최창욱 박사와 청소년자치연구소 정건희 소장 2명의 주제발표와 이일여자고등학교 정우식 교사, 순창군청소년센터 이경신 대표, 영광중학교 신은총 학생 등 7명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교육과정 중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중간·기말고사 등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수업 운영을 토론·실습 등 다양한 체험활동이 가능하도록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제도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최창욱 선임연구위원은 주제발표를 통해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와 일본의 체험활동 지원정책 등 외국사례를 소개하면서 △학력격차와 문화격차 문제를 해소할 대책 필요 △지역사회연계의 구심점 필요 △학교 및 지역사회의 부담 경감책 필요 등을 시사점으로 제시했다.
최 연구위원은 이어 자유학기제 성공을 위해서는 △학습공동체로서의 지역사회 구축 △청소년 요구에 부합하는 프로그램 운영 △청소년의 자기주도성 강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