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LOGO
최종편집: 2025-07-19 00:42:43

(2) 취업규칙 불이익변경...‘낮은 임금’ 의도


... 문수현 (2016-01-03 18:55:17)

정부가 지난달 30일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지침 초안을 발표했다. 저성과자 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과 관련한 정부의 행정지침을 사실상 공식화한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이날 발제한 자료는 두 가지로,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 마련을 위한 논의 검토자료’(가이드북)와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 개정을 위한 논의 검토자료’(취업규칙)다.

노동계는 반발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이 같은 지침이 노동법의 근간을 훼손하고 노동조합을 무력화할 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에게 쉬운 해고와 낮은 임금을 강요하는 노동개악의 신호탄이라며 강력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⓵저성과자 해고’에 이어 ‘⓶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자세한 내용은, 민주노총이 30일 발표한 ‘박근혜 정부 노동개악 2대 행정지침 초안 비판’ 자료를 참조할 수 있다.

취업규칙이란 근로자에 대한 노동조건과 복무규율에 관한 기준을 집단적이고 통일적으로 설정하기 위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준칙을 가리킨다. 노조 조직률이 낮은(10% 수준) 우리 현실에서 90%의 무노조 사업장은 거의 전적으로 취업규칙에 의해 노동조건이 규율된다. 따라서 취업규칙의 제정, 변경, 특히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과정의 적법한 절차는 매우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사용자에게 취업규칙을 작성해 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하고(제93조), 취업규칙을 작성 또는 변경하는 경우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과반수 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또한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제94조).

이처럼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도록 한 것은 근로조건 대등 결정의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근로기준법 제4조(근로조건의 결정)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지침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도 변경 내용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 효력이 있다는 내용이어서,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 제94조를 사실상 배제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은 아무런 법적 효력도 없는 행정지침에 불과하다는 점에서도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정부가 취업규칙 변경을 밀어붙이는 것은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체계를 개편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노동계가 정부의 취업규칙 지침을 ‘낮은 임금 지침’으로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년연장법을 구실로, 주로 정년보장형 또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도입될 전망인데, 이 모두 근로조건의 불이익한 변경에 해당한다.

노동계는 또, 취업규칙 변경 지침이 노동조건 대등결정의 원칙을 훼손하고 노동조합을 무력화해,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낮은 임금’을 강요하는 지침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예상은 기우가 아니다. 정부 지침이 공식 발동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공공부문에서는 지난 한 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적지 않게 일어났다. “현장은 이미 무법천지”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서울대병원, 전북대병원, 경상대병원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동의 없이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의결했다.

해양과학기술원, 극지연구소,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는 다수 노조가 있는데도 노조의 동의 없이 노동자들의 개별 동의서를 받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경우다.

과반노조가 없다는 이유로 개별 동의 서명을 받았지만 과반을 넘지 못해 부결됐음에도, 기간을 연장하거나 2차 투표를 통해 과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한 경우도 있었다. 경북대병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국가핵융합연구소가 그런 경우였다.

경북교육청은 근무성적 평가 결과 3회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은 경우를 해고 사유로 일괄 규정한 ‘교육실무직원 관리규정’을 신설했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하지만,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이처럼 노조가 있는 공공기관에서도 사용자의 일방적인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시도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사용자의 일방적 변경이 좀 더 쉽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노동조합 등과의 충분한 협의 노력’을 요건으로 제시하지만, 90% 이상의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사실상 사용자 마음대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셈이다.

당장 12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8일이 고비다. 국회의장이 노동법안 직권상정은 위법이라며 버티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의 압력이 거세고, 이번 임시국회를 넘기더라도 정부 여당과 재계가 양보할 분위기는 아니다.

한편, 백기완 통일문제 연구소장과 박순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 등 시민사회 원로들은 지난달 28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추진되고 있는 소위 ‘노동시장 구조개편’ 관련 법안과 행정지침 개정안은 장기근속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저성과자’라는 이름 아래 마음대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하며, ‘해고 위협’으로 인해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 비인간적 차별로 고통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실상의 노예 상태를 2년 더 연장하는 명백한 노동 개악”이라고 규탄했다.

원로들은 “경제위기를 임금 삭감과 해고, 비정규직화 등 노동착취로 대응하는 것은 경제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와 국민에게 전가하고, 국내 재벌들이 고통 분담을 회피하려 시도하는 것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면서 “수십 년 간 국민으로부터 받을 지원은 다 받고, 져야 할 책임은 항상 회피해 온 재벌들의 행태는 이제 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로들은 이어 “우리는 노동 개악을 저지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농성과 총파업 투쟁을 지지한다”며 “정부는 즉각 노동개악 강행 시도를 중단하고 민주노총과의 대화에 나서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