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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력 없는 지침으로 근로기준법 무력화


... 문수현 (2016-01-22 16:04:39)

정부가 일반해고를 도입하고 취업규칙 변경요건을 완화하는 행정지침 확정안을 발표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은 22일 오후3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양대 지침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0일 ‘전문가 의견수렴 간담회’를 열고 저성과자 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과 관련한 정부의 행정지침을 사실상 공식화한 바 있다.

이 장관은 이날 긴급회견에서 “청년일자리, 일자리 이중구조 해소, 비정규 근로자 처우개선을 도모하고자 1년 넘게 준비해 온 노동개혁 실천을 위한 공정인사·취업규칙지침 최종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한 양대 지침 최종안의 내용은 지난달 30일 공개한 지침 초안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핵심내용은 (1) 실적이 부진한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를 허용하고 (2) 사용자가 노동자에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정부의 행정지침에 따르면, 업무능력이 떨어지거나 근무성정이 부진하면 근로제공의 의무를 다 하지 않는 것이며 이는 (일반)해고의 사유가 된다. 한마디로 일을 못한다고 간주하면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저성과 근로자를 평가한 후 교육훈련을 통한 개선 기회를 주고 배치전환 등 해고회피 노력을 했는데도 개선의 여지가 없으면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현재까지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경우는 ‘징계해고’와 ‘정리해고’ 두 가지로 제한돼 있고, 이는 근로기준법 제23조에 명문화돼 있다.

정부가 발표한 행정지침은 또 취업규칙 변경요건도 완화했다. 이에 따르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근로자 대표나 노조의 동의가 없어도 효력이 인정된다. 취업규칙을 변경해 임금피크제 등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취업규칙은 채용, 인사, 해고, 임금, 근로조건 등과 관련된 사규로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과반수나 노동조합의 동의가 있어야 변경이 가능하다(근로기준법 제94조). 하지만 지침대로라면 앞으론 노동자의 동의 없이도 변경이 가능해진다. 그 결과 월급, 노동조건, 노동시간 등 직장 내 모든 문제에서 사용자의 전횡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이 장관은 “양대 지침은 일자리시장의 불확실성이라는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현재의 점멸등을 4색 신호등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를 통해 기업투자와 직접고용문화를 형성하려는 게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침이 시행되면 근로자들의 고용안정과 기업경쟁력 강화, 정규직 직접고용 확대, 비정규직 감소, 특히 청년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1석 4조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월요일인 25일 전국 47개 기관장 회의를 열어 이번 지침을 전달한다. 또, 같은 날 각 지방 고용노동관서에 지침을 시달해 이를 전격 시행할 예정이다.


(▲사진출처=민주노총 인터넷사이트)

정부의 행정지침 강행은 강한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김형동 실장(변호사)은 21일 매일노동뉴스 칼럼을 통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제도는 근로기준법(제94조)에 관한 변경이고, 저성과자 해고제도는 새로운 제도 도입”이라며 “노동자와 사용자의 권리의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 같은 제도는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제정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시적인 구조조정은 노동시장에 정리해고보다 더 큰 충격을 줄 것임에 틀림없다”며 “ 행정부 내부지침으로 운영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지침 강행은 그 자체로 위헌·위법이다”라고 강조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김영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지난해 9월 노사정위 대타협에 대해 “근로법은 헌법에 속한다. 행정지침은 지침일 뿐 법률의 역할을 대신할 순 없다”고 강조하면서 “행정지침은 지침일 뿐 곧 국회로 오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민주노총전북본부 김연탁 사무처장 역시 “지침이란 게 나오려면 먼저 법과 시행령이 제·개정되는 게 순서인데 정부는 이를 완전히 거꾸로 했다”면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노동조합 가입률이 10%밖에 안 되는 국내 현실에서 취업규칙이 노사관계를 실질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걸 사용자 마음대로 불이익변경을 가능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훨씬 더 불리해지고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해고 지침에 대해서도 “인사기준에서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라며 “그런데도 일반해고를 가능케 한다는 건,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사업주에 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위기 때마다 공적 자금 지원을 받아 승승장구해온 재벌 총수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계속된다.

한지원 노동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구조조정 관련 제도들은 재벌 총수의 이익은 건드리지 않고 노동자와 국민경제 전체가 재벌의 손실을 떠안도록 하는 것들이다”라면서 “현재 노동자와 국민경제 전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재벌의 손실을 재벌 총수에게 묻고,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만큼 재벌총수의 소유권은 제약하고, 노동자 생존권은 보호하는 제도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금호그룹의 예를 들면서 “형제의 경영권 다툼과 총수의 막무가내식 사업 확장으로 2010년 그룹 전체가 워크아웃에 빠졌는데, 결국 이후 5년간 워크아웃 동안 채권단과 정부는 노동자를 쥐어짜 빚을 갚고, 박 씨 일가가 경영권을 되찾을 시간을 벌어준 것뿐이었다”며 “ 그동안 노동자도, 지역경제도, 공급사슬의 이해관계자 모두가 큰 고통을 겪었었다”고 상기시켰다.

한편, 정부가 양대 행정지침을 강행한 데 따른 노정 대립이 거세질 전망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30일 양대 지침의 초안을 공개했고, 한국노총에 이에 반발해 이달 19일 ‘노사정 대타협’ 파기와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했었다.

한국노총은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양대 지침을 확정한다고 한 대타협 합의를 전혀 지킬 뜻이 없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며 “앞으로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노동법 개악 저지와 반노동자 정권·정당 심판 투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달 중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거나 지역별 새누리당사 앞 항의집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다음달 24일 열릴 대의원대회에서 4월 총선 반노동자 정당 심판 투쟁 등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23일 서울에서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대회’를 연다. 25일 정오를 기해 민주노총 소속 모든 가맹/산하조직과 단위 사업장이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다. 이어 29일 또는 30일에 서울 도심대회를 조직한다는 계획이다. 또 1월 30일 이후에도 무기한 전면 총파업 투쟁 기조를 유지하면서 양대 지침 무력화를 위해 강력하게 투쟁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8일 총파업 결의대회를 통해 ‘1월 중하순으로 예상되는’ 정부지침을 무력화기 위한 총파업 태세를 확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