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을 둘러싼 정부와 시도교육청의 갈등이 더욱 커가고 있다. 날선 공방이 오갈 뿐, 이렇다 할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보수성향의 대구·경북·울산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교육청 교육감들은 3일 오후 1시30분 서울교육청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박 대통령이 약속해 공약으로 내세운 누리과정은 국책사업으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같은 날 3시30분 기자회견을 자처해, 시도교육감들이 제안한 ‘범사회적 협의기구’를 한마디로 거절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교육감들이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편성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날 황교안 국무총리도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갈등과 관련해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학부모 불안을 가중하는 시도교육청은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감사원까지 나섰다. 감사원은 3일 누리과정 예산 편성 문제에 대해 전격 감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전체를 감사 대상에 올렸지만, 주요 대상은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지난달 8일 공익감사를 청구한 서울·세종·광주·경기·전북·전남·강원교육청 등 7개 교육청이다. 표적 감사이자 정치 감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서울시의회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의회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더불어민주당은 4일 오후2시 의원총회에서 누리과정 편성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의원총회에서는 △유치원 누리과정 2개월 예산 편성 △유치원만 예산을 편성 △유치원과 함께 어린이집까지 일부 편성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하지만 의원 간 극심한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합의 도출은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서울의 경우, 유치원과 어린이집 모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정부의 입장이 워낙 강경하다는 점도 적절한 해결책 마련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시도교육청에 목적예비비 3000억 원을 누리과정 우회지원비로 차등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누리과정 예산에 턱없이 못 미치는 금액인 것도 문제지만, 누리과정 예산 편성 수준에 따라 시도교육청에 차등 지급하겠다고 밝혀 ‘교육청 길들이기’ 논란까지 불러왔다.
게다가 전북교육청에는, 유치원 예산은 전액 편성했지만 어린이집 예산을 전혀 편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예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다. 유치원 과정을 전액 편성하고 어린이집은 2개월 치만 편성한 경남교육청이 50%의 지원을 받는 데 비추어, 전북교육청에는 이른바 ‘괴씸죄’를 묻는 셈이다.
누리과정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지만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 등 정치권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