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전북본부(본부장 윤종광)와 일한민주노동자연대(대표 나카무라 타케시)가 20년째 이어진 교류를 기념하는 ‘한일노동자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두 단체는 1일 오전 11시 민주노총 전북본부 중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노동자 평등과 평화를 선언한다’는 제목으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아세아스와니 투쟁을 시작으로 25년-20년 넘게 교류하는 동안 한일노동자 연대는 국경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진리를 몸소 체득해왔다”면서 “자본과 권력의 탐욕에 맞서 인간다운 세상, 평등한 세상, 평화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한일노동자들은 이를 위해 △노동기본권 강화와 차별 철폐를 위한 한일노동자 연대 △동북아 내 군사적 대결 지양과 평화 정착 노력 △핵무기 폐기와 원전중심 에너지 정책 전환 노력 △한일 정부의 종군위안부 합의 무효화와 재협상 △한일 정부의 역사왜곡 등 우경화 시도에 대처 등 5가지 과제를 실천해나가기로 했다.
노동자들은 “26년 동안 상호신뢰와 존중으로 이어온 연대를 바탕으로 앞으로 위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또한 한국과 일본 정부에 강력히 촉구하는 행동을 실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일한민주노동자연대와 민주노총전북본부가 한일노동자연대 20주년을 맞아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방한단 대표 카키누마 요우수케(일본건설운수연대노조 킨키지방본부 위원장)씨는 인사말을 통해 “우리(일본노동자들)는 5가지 선언 과제 가운데 특히 반전-평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전쟁을 향해 매진하고 있는 한일 양국정부를 한일노동자가 단결해 막아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요우수케씨는 “일본에서는 아베 정권이 작년 9월에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안보법제를 개악해 일본국 헌법 제9조를 매장하려 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아베 정권이 강행하는 전쟁법 행사에 반대해 지난 5월 3일 전국각지에서 ‘전쟁법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고, 오사카에서는 1만8천명이 오기마치 공원에, 코베에서는 1만명이 동부 유원지에 결집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일본 노동자들을 둘러싼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도 언급했다. 일본은 지난해 8월 ‘노동자파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파견노동자가 3년 넘게 한 직장에서 계속 일했을 경우 그 직장에 직접고용을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내용인데, 실상 파견처가 노동자를 직접고용 하기 전에 동일 기업 안에서 배치전환시키면 계속 파견노동자로 만들 수 있게 한 악법이다.
요우수케씨의 표현에 따르면, 이는 파견노동자가 직접고용을 신청하는 규칙의 허들이 높아진 것으로, 자칫하면 파견직 노동자가 평생 파견직으로 일하게 될 수도 있다.
그는 “뿐만 아니라 일본정부는 올해에는 쉬운 해고를 위한 ‘금전 해결 법안’이나 ‘잔업대 미불 법안’을 이번 통상 국회에 제출함으로써 고용의 불안정화와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확대시키고 있다”면서 “우리는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을 증대하는 이 악법을 저지하기 위해 7월에 진행될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정권을 패배에 몰아넣고 전쟁법 폐지와 노동법제 개악을 기어이 막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종광 민주노총 전북본부장도 인사말을 통해 “짧지 않았던 지난 20여년 세월의 연대와 교류를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 다가올 20년도 끈끈한 교류가 후배들을 통해 이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일노동자들은 앞서 31일 오후 전주시의회 5층 회의실에서 ‘민주노총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이날 좌담회에는 민주노총 전북본부 초대 본부장을 지낸 염경석 지도위원, 조성훈 전 수석부본부장, 김정훈 전교조 전 위원장, 윤종광 민주노총 전북본부 본부장, 양희철 공공운수노조 전북평등지부장이 패널로 참석해 토론을 벌였다.
토론자들은 민주노총이 지난 20년 동안 질적으로 성장했다는 데 공감했지만, 비정규직 증가, 전교조 법외노조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등 민주노총이 풀어야 할 여러 숙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교류 20주년을 기념해 지난 31일 방한한 일본노동자 20명은 1일 밤 완주군 상관면에서 ‘한일노동자교류 20주년 연대의 밤’을 보낸다. 이어 이튿날인 2일 오전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진기승 열사 2주기 추모식을 거행하고 오후에는 익산 영묘원으로 옮겨 조문익 열사를 추모한 뒤 출국할 예정이다.
전라북도와 오사카를 비롯한 한일 노동자들의 교류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리(지금의 익산) 자유무역지대에 공장을 세우고 스키장갑을 생산하던 일본회사 아세아스와니는 대부분 10대 후반인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을 폐쇄하고 자본을 철수해버린다. 노동자들은 바다를 건너 원정투쟁에 나선다.
이들은 1989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원정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많은 일본 노동자, 재일교포 등의 도움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1991년 처음으로 일본 노동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과 일본 노동자들 사이에 정기적인 교류가 시작됐고 햇수로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한일민주노동자연대와 일한민주노동자연대가 교류하다가 1996년 2월 7일 창립한 민주노총 전북본부가 한일민주노동자연대를 계승해 일한민주노동자연대와 20년째 교류하고 있다.
아세아스와니 투쟁에 대해서는 최근 반전-평화운동 단체인 평화바람의 단원이기도 한 오두희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스와니-1989 아세아스와니 원정투쟁의 기록>(2014)을 참고할 수 있다.

▲1989년 아세아스와니 연대투쟁(일본). 사진제공=민주노총전북본부.
<다음은 ‘한일노동자 공동선언문’ 전문(한글)>
한일노동자, 평등과 평화를 선언한다!
1989년 아세아스와니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과 자본철수에 맞선 노동자들의 원정투쟁과 일본노동자들의 연대를 바탕으로 인연을 맺고 한일노동자 정기교류를 시작한 지 26년이 되었다. 1996년 2월 10일 민주노총전북본부가 출범한 후 시작된『민주노총전북본부-일한민주노동자연대』의 교류도 20주년을 맞이했다.
아세아스와니 투쟁을 시작으로 한일노동자들은 현대사를 정면으로 가르며, 25-20주년을 향해 달려왔다. 우리는 25-20년 넘게 교류하는 동안 한일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맞서 투쟁하고, 연대하며 한일 노동자들의 우정을 쌓아왔다. 한일노동자 연대는 국경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진리를 몸소 체득해 왔던 역사이다. 우리는 이런 진심어린 교류를 바탕으로 종전 70주년을 맞는 2015년 『평등·평화를 위한 양국 노동자 공동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경제위기,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현 정세는 우리에게 한일노동자 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역사적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교류 20주년을 맞는 올해, 우리는 그간 연대의 역사를 되새기며 앞으로의 20년을 결의하고자 한다.
한일노동자연대 25-20주년을 맞이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빈곤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손을 들어 준 파견법 개악으로 인한 파견노동자 확대 등으로 국가의 책임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한국도 파견법, 비정규직법 개악으로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2천 만 명에 이르고,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역시 8백 만 명에 이른다. 정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일본의 청년들은 ‘프리터 족’이라고 불리며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고, 한국의 청년들은 ‘N포 세대’로 불리며 ‘헬(hell.지옥)조선’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자본주의가 한일 민중들에게 양적, 질적 행복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한일 노동자들은 25-20주년 동안 이런 경제적 불평등에 문제제기해왔으며, 앞으로도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면서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며 공동행동을 지속할 것이다.
평등한 세상은 평화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지구상 어디에서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한일 노동자들은 제2차 제국주의 전쟁에서 보여준 야만을 극복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25-20년 동안 한일 노동자들의 교류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것이 바로 전쟁이라는 주제였다. 전쟁이 안겨준 것은 오직 공포와 상처뿐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한일 노동자들은 그래서 더욱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 한일노동자 연대는 국경이 노동자들의 평화로운 마음을 갈라놓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연대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한일 노동자들이 지난 20년 간 신뢰와 우애로 동지애를 키워왔듯이, 앞으로도 동지로서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한일 노동자들은 자본과 권력의 탐욕에 맞서 인간다운 세상, 평등한 세상, 평화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자본의 탐욕에 맞선 노동기본권 강화와 모든 노동자의 차별 철폐를 위한 한일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를 강화한다.
양국의 경제 성장은 정체되어 있고 경제위기의 책임은 노동자에게로만 전가되고 있다. 자본의 탐욕에 맞선 노동기본권 강화, 비정규 노동자 및 이주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들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실천할 것이다.
2. 동북아시아 내의 군사적 대결을 지양하고,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한다.
일본정부는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전쟁 수행이 가능한 보통국가로 전환하려 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THAAD 배치를 통하여 동북아 전쟁 위기를 고양시키고 있다. 또한, 양국의 노동자들은 미군기지 문제 해결이라는 공동의 과제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국경을 넘어 연대하고, 동북아 내에서 전쟁반대, 평화정착을 위한 활동을 실천할 것이다.
3. 핵무기 폐기와 원전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기 위해 노력한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방사능 유출 사고는 핵에너지가 근본적으로 안전하지 않음을 명백히 보여줬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다시 핵발전소를 가동하려 하고 있고, 외국으로의 수출까지 시도하고 있다. 한국정부도 핵에너지 확대 정책을 고집하면서 원전과 송전탑 건설로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또한 평화적인 핵은 존재하지 않으며, 핵에너지는 결국 핵무장의 가능성으로 귀결된다. 양국의 노동자는 핵에너지 정책을 반대하고, 핵무장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4. 피해당사자의 동의 없이 체결된 한·일 정부의 종군위안부 합의는 무효이며, 일본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전제로 한 재협상을 위해 노력한다.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는 양국 노동자·민중들에게 큰 아픔으로 남아 있으며, 특히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의 민중들, 그 중에서도 여성들에게 더 큰 상흔을 남겼다. 하지만, 2015년 12월 28일, 한·일 정부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피해당사자의 동의 없이 위안부 문제를 합의하였다. 우리는 이 협정이 무효임을 선언하고, 일본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전제로 한 재협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5. 한·일 정부의 역사왜곡 등 우경화 시도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역사가 올바로 정립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한·일 정부의 과거사 청산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우경화된 역사왜곡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정부의 계속되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왜곡. 그리고, 한국정부의 친일·독재 미화와 교과서 국정화의 과정은 과거 제국주의 침략과 독재를 정당화시키는 책동이다. 우리는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원칙 속에서 역사를 바로세우고 평화적인 우호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한일 노동자들은 26년 동안 지속된 상호신뢰와 존중을 기반으로 한 연대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위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또한 한국과 일본 정부에 강력히 촉구하는 행동을 실천할 것을 선언합니다.
2016년 6월 1일
민주노총전북본부·일한민주노동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