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교사 10명 중 7명은 교직생활 동안 성폭력 피해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가해자는 주로 일상적으로 만나는 관리자와 동료, 학교교육에 관여하는 학부모와 주민이었다.
여교사들은 최근 학부모·주민에 의한 집단성폭력 사건이 여교사들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선과 성범죄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봤으며, 관사 통폐합,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설치 등 미봉책을 넘어 면밀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같은 실태와 인식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여성위원회와 전문산하기구 ‘참교육연구소’가 지난 10~12일 사흘간 전국 유·초·중·고에 근무하는 여교사 1758명(전교조 58.1%, 한교총・미가입 등 41.9%)을 설문해 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직생활 중 성희롱·성폭력 경험을 묻는 질문(복수응답)에 피해경험이 전혀 없다고 답한 여교사의 비율은 29.3%에 불과했다. 응답 비율이 높은 피해경험은 술 따르기·마시기 강요(53.6%), 노래방 등 유흥업소에서 춤 강요(40.0%), 언어 성희롱(34.2%), 허벅지나 어깨에 손 올리기 같은 신체 접촉(31.9%)이었다.
가해자(복수응답)는 교장·교감 등 학교 관리자가 72.9%, 동료교사가 62.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관리자와 교사에 대한 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결과다.
학부모와 지역 주민의 가해 사례는 학교에서 직책이 있는 경우(학부모 11.0%, 주민 4.0%)가 직책이 없는 경우(학부모 1.8%, 주민 1.1%)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대다수 학부모・주민의 경우와 달리, 학교교육에 관여하는 학부모와 주민들은 교사들과 직접 접촉하거나 공적 활동의 연장으로서 회식을 함께 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설문에 응답한 여교사들은 성폭력과 성희롱이 여교사를 성적인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여겼다(36.9%). 한국사회의 일상적 유흥문화(35.1%), 교장·교감 등 관리자들의 방조 및 부추김(15.2%)도 주된 이유로 꼽았다.
지난달 학부모와 지역주민이 저지른 집단성폭력사건의 원인 또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선(67.1%)과 성범죄에 대한 인식 부족(24.6%)을 꼽았다. 교육부와 언론이 사건의 원인으로 든 ‘관사 CCTV 등 안전시설 미비 및 치안력 부족’에 대해서는 6.5%, 또한 ‘도서 벽지 지역에 신규 여교사 배치 증가’에는 1.7%, ‘여교사의 비율 증가’에는 0.2%만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전교조 여성위원회는 이에 대해 “그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성교육은 여성을 변화시키고 피해자가 취해야 할 행동을 인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선과 성범죄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는 여전히 긍정적인 진전이 미흡한 것이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설문에 응답한 여교사들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에 대해서는 대다수인 90.6%가 긍정적으로 답변했지만, 교육부가 내놓은 ‘관사 통폐합’이나 ‘CCTV 설치’ 같은 대책은 근본적인 예방책이 될 수 없다고 봤다.
특히 ‘CCTV 설치 등 안전대책 마련’에 대해 울산(83.3%), 제주(81.8%), 부산(72.2%) 순으로 긍정 응답이 높았지만, 도서·산간벽지가 많아 관사를 이용해야 하는 지역에서 긍정 답변은 평균 이하이거나(강원 36.4%, 경남 44.7%, 충남 52.6%)이거나 평균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전남 58.0%)이었다.
전교조 여성위원회는 “이번 설문조사의 서술형 응답에서도 빈번하게 지적된 바와 같이, 교육주체로서 학부모와 지역인사의 학교 활동 참여와 소통은 장려되어야 하지만 교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절제될 필요도 있다”며 “학교활동에 참여하는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에 대해 성평등 의식 고양, 교권 침해 방지, 그리고 민주적인 소통 문화 형성과 관련된 학습과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학교장은 교직원, 학생, 학부모 대상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하지만, 최근 1-2년간 학부모 대상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38.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모르겠다는 응답도 25.4%이다. 이는 학부모 대상 성교육이 주요 학교 교육활동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며고 지적했다.
설문 응답자들도 ‘성폭력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과제’를 묻는 질문(2개 선택)에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를 가장 많이 꼽았고(80.0%), 그 다음으로 ‘학부모들에게 영향력이 큰 관리자들의 반성폭력교육 의무화(37.3%)’, ‘도서벽지 근무 교사에 대한 처우 개선(28.8%)’, ‘성감수성 향상을 위한 교육내용을 학교교육과정에 반영(23.31%)’ 순으로 답변했다.
이에 대해 전교조 여성위원회는 “관리자에 대한 교육, 교육과정에 성교육 반영에 대한 요구가 크다는 것은 성차별과 성범죄의 토양이 되는 인식과 문화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전교조는 한편 학교 공동체 내부의 성희롱·성폭력 실태와 공동체 구성원의 의식과 문화를 심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여성위원회와 참교육연구소를 중심으로 설문조사를 포함한 추가적인 조사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