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규홍)
수국이 아름답게 피던 봄의 끝자락, 하늘도 참 맑고 바람도 좋은 날 오후 너는 신부가 되었구나. 스물세 살, 초여름의 햇살만큼이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이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나이다. 누구는 아직 어리다고도 하고 너무 이르다고도 하지만, 아니다. 지금이란 항상 더없이 좋은 때다. 넌 지금 당당하게 사랑을 선택했고 내일이 아닌 지금 당장 사랑의 달콤함을 누릴 수 있는 행운마저 안게 되었구나. 그러므로 축하한다.
작년 가을이었지? 네가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 가족 모두는 진심으로 너의 결혼 소식을 반갑고 기쁘게 받아들였다. (물론 각자의 속셈은 다 달랐겠지만...^^) 너나 나나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지만 그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돈댁과의 만남에서 결혼식에 따르는 모든 형식과 절차를 다 없이 하자는데 일치를 보고 나니 마음은 더 홀가분해졌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마을의 시설을 빌려 셀프결혼식을 하겠다고 네가 얘기했을 때 나도 덩달아 마음이 들뜨면서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되더구나. 하객들을 불러 모아 잔디밭에서 축구도 한 게임 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너희들의 결혼식은 정말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하루 전에 모인 친구들이 예식장을 꾸미고 온갖 준비를 함께 해 주었더구나. 진심으로 너희들의 새 출발을 축하해 줄 수 있는 가까운 지인들과 직계가족들만 참석한 소규모 정예 하객^^들은 두 시간 가까운 예식 동안 자리를 지키며 함께 울고 웃고는 했다. 신랑신부도 간편한 옷차림으로 하객들을 맞이했고 부모인 우리도 평상시에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마치 나들이 나온 듯 가벼운 마음으로 예식을 즐길 수 있었다. 둘이 밤을 새워 머리를 맞대고 썼을 성혼선언문은 감동이었다. 거기에 결혼 전에 아빠가 네게 했던 당부도 들어가 있어서 난 더 기뻤다. 예식 막바지에 모든 하객들과 함께 축배를 들 생각을 어찌 했을꼬.
결혼식 비용은 이백만 원이 채 들지 않았더구나. 애초에 받지 않기로 했던 축의금이지만 굳이 주시겠다는 어른들이 더러 계셔서 뿌리칠 수가 없었다. 원래 너희들이 모든 경비를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내게 공돈이 생긴 셈이니 그분들께 받은 돈으로 너희들의 동의를 받고 내가 비용을 대신 지불을 했다. 그러고 나니 정작 내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한 푼도 없더구나. 이건 뭐 자식 결혼식을 거저 치른 모양새가 되어 좀 민망하기까지 하다.
삶을 생존경쟁으로 인식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과 결혼조차도 버겁다고 여겨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네가 홈스쿨링을 했다지만 그게 사회가 인정해 주는 스펙이 되는 건 아니니 초등학교 졸업장 하나 달랑 가지고 있는 네가 엄혹한 현실과 맞닥뜨려서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울 게다. 그러나 인간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이기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니?
나는 삶은 곧 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어떤 이들은 더 화려하고 멋진 여행을 준비하느라 지금의 행복을 내일로 유보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들이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모든 청춘들이 지금의 행복을 놓치지 말고 살아가기를 바랄뿐이다. 너희 또한 그러한 선택을 했을 뿐이고.
여행이란 게 죽고살기를 각오하고 하지는 않는 법이다. 하다가 지치고 힘들면 자, 이번 여행은 여기까지.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만이다. 남들보다 더 높은 데까지 올라가 더 멀리 보려다가 하릴없이 얼어 죽는 킬리만자로의 표범보다는 동료들과 어울려 사냥도 하고 썩은 고기라도 즐겁게 나눠먹는 하이에나가 나는 더 행복할 것 같다.
너희들에겐 돌아올 집이 있다. 그 집은 부모이고 친구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이고 그곳의 사람들이다. 예식장에서 우리는 함께 너희의 멋진 여행길을 배웅했다. 그러니 마음 편히 삶이라는 즐거운 여행을 하길 바란다. 부디, 많이 보고 많이 배우고 많이 느껴라. 등에 짐은 조금만 지고.
너희들의 여행길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집에서 아빠가.

▲홈스쿨링으로 맺어진 소중한 인연, 친구들이 축가를 불렀다.

▲신랑 신부와 함께 축배를 올리는 하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