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민주노총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 8월 22일~23일, 민주노총 창립 20년 만에 처음으로 정책대의원대회가 열렸다. 21살을 맞은 민주노총이 앞으로 20년의 미래를 내다보며 전망을 수립하기 위한 대의원대회였다. 정책대의원대회의 주요 안건으로 ‘노조 할 권리를 쟁취하자’, ‘전략 조직화로 계급대표성을 확보하자’는 의제가 제출되었다. 전체 노동자 중 채 10%도 안 되는 노동자만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는 현실,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반절을 넘어서는 현실은 민주노총에 무거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민주노총 최초의 정책대의원대회를 알리는 포스터.
한국 노동시장 구조 :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민주노총은 정규직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보수언론과 정권은 민주노총을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골몰하는 세력으로 낙인찍고, 귀족노조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이를 악의적인 선동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민주노총의 당면 과제를 고민하기 위해서는 한국 노동시장 구조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노동시장은 간접고용이 확대되고,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격차가 확대되고, 비정규직 내부에서도 격차가 확대되면서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다. 양극화 현상은 소득, 복지, 고용안정 등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노동시장 양극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자 결과는 노동조합 조직률에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는 1,300만 명이고, 이 중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는 558만 명에 이른다. 그리고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가입률은 상급단체를 불문하고 0.35%(46,734명) 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1,0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수는 130만 명,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는 노동자 수도 130만 명이다. 통계의 사소한 오차를 고려하더라도 거의 100% 조직률로 볼 수 있다. 노총의 전체 조합원 중 70% 이상이 1,000인 이상 대기업 조합원인 현실은 근래의 변화는 아니다. 이는 민주노총, 한국노총 양쪽이 동일하게 공유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대공장, 대기업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격차가 확대되는 것은, 조직된 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의 후퇴에 방어를 하면서 속도를 지연시킬 수 있지만, 미조직된 노동자들은 후퇴 압력을 그대로 수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으면, 설사 그것이 아무리 친사용자적인 어용노조라 해도 노동조합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노동조건의 후퇴를 지연시킬 수 있다. 정규직 과보호론의 실체는 노동조합 가입률 0.35%에 불과한 영세·비정규 사업장 노동자를 수탈하고 있는 천박한 자본과 정권의 합작에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곤란은 자본과 정권의 공격에만 있지 않다. 민주노총은 계급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 창립 이후 지속적으로 산별노조 건설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별 중심의 조직체계에서 산별 교섭체계를 구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고 각 산별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취지에 미달하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노총은 꾸준히 전략 조직화 사업을 기획해서 집행해오고 있지만, 그 조직화 대상 역시 대기업의 하청 노동자, 지역에서 큰 규모의 미조직 사업장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 사회 전체 노동자의 절대 다수를 점하는 20인 미만, 5인 미만 영세·비정규 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해 낼 뚜렷한 묘안을 마련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민주노총은 계급 대표조직을 자임해야 한다
이미 오랜 시간 제기되어 왔고, 다양한 방책을 모색했던 문제이다. 여기에 어떤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새로운 방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구체적인 질문을 놓고 고민을 시작한다면 반 보 내딛을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조금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보자면, 당장 전북에서 5인 미만 사업장, 년 단위로 직장이 바뀌는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겠다고 찾아왔을 때 이들을 어떤 조직에 담을 수 있을까? 이들에게 어떠한 권리를 제시하고 누구에게 요구할 것인가?
거칠게 답을 하자면, 민주노총은 ‘계급 대표성’을 자임하고서 전체 노동자에게 파급될 요구에 보다 힘을 쏟아야 한다. 다수 노동자를 포괄하는 조직률 확대를 통한 ‘계급 대표성’ 확보는 이런 노력에 따른 결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노조 할 권리’, 전체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 ILO 협약 비준 등의 요구가 형식적인 공문구가 돼서는 안 된다. 노조 할 권리를 가로막고 착취를 수월하게 하는 간접고용 규제는 중요한 요구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주35시간으로의 단축보다 영세·비정규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더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탄력근로시간제를 폐절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타당하다. OECD, ILO 등 국제기구의 기준을 국내에 제도화시키는 노력, 역으로 국제 표준을 설정하고 상향시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민주노총전북본부는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전북도청을 상대로 2010년부터 노동자·서민 요구안을 제출하고 논의해오고 있다. 저소득층 건강보험료 지원,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할 권리, 친환경 무상급식 확대, 국공립 보육 시설 확충 등의 내용이다. 요구안을 제출하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요구안을 제출하면서 전 조직적 과제로 받아 안게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정책대의원대회에서는 이런 질문과 의제를 두고 논의를 진행했다. 조직 확대, 노조 할 권리 쟁취의 중요성에는 별 이견이 없이 합의가 이루어져 안건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각론이다. 정책대의원대회 결정 사항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조직된 노동자의 틀을 넘어서 명실상부 2,000만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강문식은]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 교육선전부장입니다. 사회의 주요 쟁점들을 분석해 월1회 독자들과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