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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현대자동차 전주금암대리점 판매사원 9명이 대리점 대표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사실상 해고다. 판매 실적이 저조하다는 게 주된 구실이었지만, 지난해 이맘때 전국자동차판매연대노동조합에 가입한 게 실질적인 문제가 됐다. 대리점 대표는 노조 설립을 주도한 판매사원은 물론 단순가입 조합원까지 모두 잘라냈다.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된 조합원들은 19일 현재 100일째 복직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100명 이상이 해고됐고 심지어 6개 대리점은 아예 폐점을 해버렸다. 그러는 가운데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했거나 오해하고 있던 자동차판매 영업사원들의 열악한 노동실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들이 긴 침묵을 깨고 ‘인권선언’을 하지 않았다면 이 같은 실태가 결코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카마스터’들의 노동조합 결성과 그 이후의 과정, 이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 이들 판매사원들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 등을 세 차례 나누어 싣는다.
①노조설립에서 복직투쟁까지
일명 ‘카마스터’ 등으로 불리는 현대·기아차 등 판매 대리점 노동자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권리선언에 나섰다. 지난해 9월 전국자동차판매연대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마침내 노동조합을 설립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한 뒤로 무차별 해고를 당하는 등 생존권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노동조합을 설립한 이후 현재까지 100명 이상 해고됐고, 이들이 출근해 일하던 대리점 가운데 현대차 4곳과 기아차 2곳 등 6곳은 아예 문을 닫았다.
전주 금암대리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월 노동조합은 점주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노동조합을 설립했으니 사용자로서 교섭 요구를 받아들여 교섭에 나서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대리점 대표는 이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으면 7일간 그 사실을 사업장 게시판에 공고해야 한다. 하지만 대리점 대표는 그조차도 하지 않았고, 도리어 노조에 가입한 판매사원 9명 모두에게 지난 4월~7월에 걸쳐 계약해지(=해고)를 통보하는 것으로 맞섰다. 해고 사유 또한 ‘판매목표지향 사고 결핍’, ‘시장 점유율과 고객 만족에 대한 인식 부족’, ‘영업 실적 평균 미달’ 등 임의적이고 일방적인 것들이었다.
앞서 자동차판매노조는 이미 서울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은 상태였고, 준사법적 행정기관인 전북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잇달아 대리점 대표에게 시정명령을 내려 교섭을 촉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대리점 대표는 “대리점 판매원들은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니고 따라서 그들이 결성한 단체도 노조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되뇌면서 행정소송까지 제기해놓은 상태다.
한편, 노동위원회에서 쟁점은 이들 판매사원들이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에 모아졌다. 법적으로 근로자는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에서 따로 정의하고 있는데, 노조법상 근로자란 어떤 묵시적인 근로계약이 없더라도 사용자에 대한 업무의 종속성이 있어(독립사업자 성격이 없어) 단결의 필요성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는 근로자들을 말한다. 이들에게 단결의 기본수단은 물론 노동조합이다.
이에 대해 전북지노위와 중노위는 지난 3월과 4월 명백한 해답을 내놨다. 요점은 이렇다. 대리점 자동차판매사원들은 그 채용과정에서부터 수행업무의 구체적인 내용, 각종 규제와 포상, 수많은 금지사항과 구체적인 업무의 지시 등 업무수행의 전반적인 모든 영역에서 대리점 대표 및 현대자동차에 완전히 종속되어 근로를 제공하고 있어, 이들을 독립된 사업자라고 볼 만한 구체적인 사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결정에도 불구하고 왜 대리점 대표는 막무가내 행보를 가져가고 있는 걸까.

▲현대자동차 판매 금암대리점 해고노동자들이 대리점 앞에서 원직복직과 고용안정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김선영 노조위원장은 “현대·기아차에서도 자기들이 사용자고 우리가 노동자인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 “대형 로펌의 변호를 받아 대법원까지 소송을 이어가면 3년이라는 시간을 끌 수 있고 그 안에 노조를 깰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라며 “그들도 자기들이 법적으로 이긴다고 생각하진 않고 있다. 재계약에 목맬 수밖에 없는 대리점 대표를 압박해 우리를 악랄하게 탄압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리점 대표가 이들의 1차적 사용자이지만, 그 뒤에는 진짜 사용자인 현대자동차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판매사원들에게 수많은 지시를 실제 행하고 있음에도, 이들과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뒷짐만 지고 있는 상태다.
본래 자동차판매 영업사원은 다 정규직이었다. 현대자동차는 IMF 외환위기 당시 비용 절감을 위해 대리점 제도를 신설하고, 다수의 정규직 직원들을 퇴사시키고 현대자동차와 판매대리점 계약을 맺도록 했다. 그 뒤로 자동차 판매는 지점과 대리점에서 이뤄지게 됐다.
지점은 현대자동차가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판매사원들 모두 현대자동차 소속 정규직 근로자인 반면, 대리점에서 근무하는 판매사원들은 이른바 ‘비정규직’ 신분인 데다가 기본급 또는 고정급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근로기준법은 물론 4대보험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근로자이면서도, 대리점 대표와 근로계약이 아닌 판매용역계약을 맺고 있는 등 개인사업자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판매노조 조합원 소식지 이름 <‘0원’ 통신>은 이 같은 실정을 잘 나타내준다.
정수양 자동차판매노조 전주금암분회장은 “2000년 10월 금암대리점이 개점할 때부터 2016년 8월 부당해고를 당하기까지 16년 동안 근무했다”며 “노조가 없던 탓에 대리점 대표의 상식 이하의 부당한 처우도 참아왔지만, 노동조합을 만든 뒤론 큰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동조합 결성 당시 금암대리점 직원 13명 가운데 12명이 직급을 초월해 노조에 가입할 정도로 이들 간의 공감대가 컸다. 하지만 사용주의 끊임없는 회유와, 이어지는 노조 탈퇴 압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대리점 대표는 매장 로비 벽면에 해고자들의 이름을 인쇄한 현수막까지 걸어놓았다.
이런 가운데 금암대리점은 2년마다 갱신하는 현대자동차와의 재계약 여부가 이달 안에 결정된다. 이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노동조합으로 뭉친 6개 대리점을 폐쇄한 바 있다. 금암대리점도 그렇게 폐쇄될 가능성이 높다. 일하던 판매사원들을 다른 대리점으로 옮겨 일하도록 보장해야 하지만, 그러기는 커녕 이들의 전환 배치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씹다 버리는 껌 취급이다. 노조에 참여했다는 게 이유다.
19일 현재 판매사원들은 원직복직과 고용안정을 요구한 지 100일을 맞았고, 시민들의 관심을 강력히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