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역 일반고 교육과정 편성에 가장 큰 쟁점 가운데 하나는 탐구 과목을 어떻게 편성하고 운영하는가이다. 그동안 지역 대부분의 학교는 학년제를 기반으로 탐구 과목을 편성·운영하였다.
학년제는 동일 과목을 1학기와 2학기에 나누어서 배우는 것을 말한다. 다음은 학년제 교육과정 사례이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경우로 운영되고 있는데, <사례1>은 과목의 운영 단위를 6단위로, <사례2>는 과목의 운영 단위를 4단위로 운영하는 경우이다. <사례1> 경우 탐구 영역은 사회 3과목, 과학 3과목만을 선택할 수 있다. 만약 사회나 과학을 1과목 신청한다면, 사회나 과학은 2과목밖에 수강할 수 없다. 학생의 선택권을 심각하게 저해한다고 볼 수 있다.
<사례2>는 탐구 과목을 1년 4단위(학기당 2시간)로 편성하는 학교다. 학생은 4과목을 선택할 수는 있다. <사례2> 경우, 사회 4과목, 과학 4과목 모두 선택할 수 있다.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으로 사회 2과목, 과학 2과목도 가능하다. 3과목 선택이 갖는 모순이 해결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 학기에 수업해야 할 교과목이 지나치게 증가하여 학생의 수업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 때에 따라 일반선택 이수 과목이 10과목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10과목 이상을 한 학기에 이수하면서 호기심과 자기 주도적인 역량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학생 중심 수업이 가능할까 하는 점이다. 수업의 절대 시수(5단위→4단위 감축 운영)도 부족하고 또 학기당 내신 반영 선택 과목이 지나치게 많아 정기고사를 앞두고 과도한 시험 준비로 학생이 느끼는 심적 부담감이 너무나 크다. 여기에 수행평가의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심지어 전학을 신청하는 학생까지 발생할 정도이다. 실제 주당 수업 2시간에 1, 2차 정기고사, 수행평가까지 더하여 실제 수업 시간은 17차시 가운데 13~14차시 정도밖에 되지 않는 학습 결손이 발생한다.
학년제 교육과정 이수의 문제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매년 4월 30일이면 대입 4년 예고제에 따라 2년 후에 실시할 대입전형 시행계획(전형계획)을 발표한다. 즉, 2학년 1학기가 이미 시작되어 1차 고사가 실시되는 상황에서 2년 후 진학 희망 대학의 전형계획을 비로소 알게 된다. 학생 중심 교육과정을 강조하는 2015나 2022 교육과정의 대학 입시에서는 학생의 교육과정 선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또, 아직 학점제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각 대학은 전형계획을 해마다 대폭 개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입 전형계획에 따른 교과목 선택도 교육과정 운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따라서 발표 시점이 매우 부적절하며 향후 개선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과정을 학년제로 운영하는 경우 1년 동안 과목 선택을 변경할 수 없기에 진로 선택에 고민하는 학생에게 더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 학기제에서는 한 학기 동안 교과목을 이수한 이후에 새로운 과목 선택을 할 수 있기에 학생의 진로 선택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사례3>은 학기제로 운영하는 사례이다. 학기제는 학기 집중 이수제이다. 탐구 과목을 학기제로 운영하면 학기당 2과목씩 선택할 수 있으며, 중간에 학생의 진로가 변경되어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도 있다. 또한 학생이 한 학기 이수 과목이 8과목 이하로 감소한다. 학기당 탐구 2과목 수업이 진행되어 학생의 절대적 학습 부담이 감소한다. 당연, 끔찍한 내신 부담도 줄어든다. 학습량이 감소하는 만큼 2015와 2022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학생 중심의 자기 주도적인 질 높은 수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주당 수업 4시간의 시수를 활용하여 다양한 교육 활동을 하면서 수업 전개할 수 있다.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수업 시간에 수행평가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심화 학습은 진로 선택 교과목을 통해 할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다.
일부 학교와 일부 교사들은 수능 시험 대비를 언급하면서 학기제를 반대한다. 그러나 1학기에는 탐구 과목의 기본 역량을 함양시키기 위한 과목을 학습하고 2학기 본인이 지원할 수능 과목을 선택할 수 있기에 수능 시험 대비에 학년제가 유리하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교과과정 편성에 절차상 어려움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학년제는 학년 초에 1회만 교육과정과 시간표를 편성하면 되지만 학기제에는 이러한 번거로움을 2차례 해야 하기에 행정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한다. 부분적으로 합리적이지만 교무 행정의 전산화가 진전되면서 학생의 교과 선택을 온라인으로 처리하면 행정 낭비는 거의 없다. 다만, 단위 학교에서 각자도생으로 겪고 있는 시간표 편성 등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도 교육청 프로그램 제공 등 백그라운드 지원은 필요하다.
내신의 유불리를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생 선택권이 없는 학교 중심 교육과정에 비해, 학생에게 선택권을 충분하게 제공한 경우가 내신 성적에 훨씬 유리하다는 다양한 사례는 이미 여러 차례 발표되었다. 따라서 지나친 기우에 불과하다. 학기제에서 4학점 과목의 내신 관리를 실패하면 내신 관리상 타격이 엄청 크다는 지적도 있다. 같은 내신 2등급이지만 과목 수업 단위가 2시간인 경우와 4시간일 경우는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주당 2시간 수업으로는 학생 중심 수업이 어려우며 교과 세부 특기 사항(세특)의 기록이 다양하지 못하다. 내신 등급과 수업의 질을 서로 바꾸는 듯한 느낌이다. 정량적인 내신 평가를 중요시하는 전형은 지역 국립대학 학생부 교과전형이다. 특히 지역 상위권 학생들이 가장 집중하는 치·의학 계열의 교과 전형이다. 이 전형은 까다로운 수능 최저와 높은 내신 등급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역의 모든 학교가 학생 중심의 학기제 교육과정을 편성한다면 내신에서의 유불리는 의미가 없다. 오히려 학생부 종합 전형 중심의 수도권 대학 진학을 생각한다면 학기제 교육과정이 대학 입시에도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전북지역 학생의 수도권 진학률이 해마다 하락하는 것은 수능성적이 좋지 못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에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기마다 생활기록부를 기록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국·영·수 과목은 학기별로 학생부를 기록하고 있고 또 탐구 과목은 선택 과목이기에 한꺼번에 많은 학생의 특기 사항을 기록하는 것보다는 1/2로 나누어 기록하는 효과가 있기에 오히려 기록의 질을 더욱 향상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난 수십 년 계속되던 관행을 쉽게 바꾸기는 어렵다. 그래서 다양한 구실을 찾으며 실행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례 분석을 통해 학기제가 교육적으로 학생 중심 교육과정 운영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하며 교육청의 강력한 행정지도가 필요하다. 만에 하나라도 인적 물적 자원의 부족으로 학기제 실행에 어려움이 있다면 교육청은 최우선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교육청은 현장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할 때, 비로소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