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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5-12 09:57:27

야간자율학습(야자) 빼주는 엄마는 계모?


... 편집부 (2015-01-26 09: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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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소중한 시간이다. 그러나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에게는 가장 지겨운 시간이고, 가장 시계가 느리게 움직이는 시간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할 것도 없는 그 시간. 선생님의 눈초리는 무섭고 앉아 있기는 지겨운 시간. 딸아이와 대화하다 보면 가끔 나의 여고 시절이 생각나곤 한다. 성적 때문이 아니라 가정 형편에 의해 마음껏 공부할 수 없었던 시절을 살아온 나에게 아이들의 야간자율학습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추억 중 하나이기도 하다.
딸아이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싫어하는 날이 많았다. 이유는 많았다. 이유가 없는 날도 있었다. 그냥 공부하기 싫어. 그렇다고 야간자율학습 빠지고 집에 와서 특별히 무엇인가 하거나, 밖에 나가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밖에 나가도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있는 까닭일 것이다.

딸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다.
휴대전화는 수업 중에 사용할 수 없었다. 아침에 등교하면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걷어가고, 점심시간에 잠깐 사용하고, 오후 수업 시작 전에 다시 반납해야 했다.
아이들 점심시간 무렵이었다. 딸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오늘은 진짜 야자 하기 싫어”
“왜? 또 위경련 왔어?”
“아니, 어제 남자친구랑 싸웠어. 그래서 그런지 정말 마음도 심난하고 야자가 지겨워!”
“야간자율학습 빼줘?”
“응!”

딸아이 담임선생님의 휴대전화 번호를 찾은 후 찬물을 한 컵 마셨다.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조금 나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신중하게 생각해야 했다. 지난번에는 가족 모임이었고, 그전에는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나주를 내려가야 했었고, 이번에는 무엇이 가장 좋을까. 무슨 말을 해야 아이에게 다른 소리 하지 않고 조용히 보내줄 수 있을까. 한참 생각한 후에 담임선생님의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다.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자영이 엄마예요. 다름이 아니라 자영이 야간 자율학습 빼주시면 안 되나 해서 전화했어요.”
“어머니, 왜 그러세요. 또. 며칠 전에도 자영이 아버님 외지에 계시다가 오셔서 가족들 저녁 식사해야 한다고 자영이 야자 빼달라고 하셨잖아요. 자영이 이제 좀 있으면 고3이에요.”
“선생님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죄송하긴 한데요. 자영이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 아닐까요? 가족이 있어야 자영이도 있는 거잖아요”
“아니, 어머니. 그건 대학 들어간 후에 챙겨도 되는 거잖아요. 지금 자영이한테는 이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그래도 오늘은 자영이 야간자율학습은 빼주셨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친가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날인데, 자영이 혼자 빠지잖아요. 오늘 가족모임 있는 것은 자영이도 알고 있는데 학교에 앉아 있다고 해서 공부가 되겠어요?”
담임선생님과 그렇게 십여 분 넘게 승강이를 벌인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으며 수화기 저편으로 들려오는 담임선생님이 투덜거림이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 여편네 혹시 계모 아니야? 어떻게 된 엄마가 애 야자를 못 빼서 저렇게 안달이야. 미친 여편네 같으니라고”


(그림 = 임솔빈)

한참 동안 전화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씩 웃으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담임선생님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공부하기 싫은데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있다고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머릿속에서는 온통 딴 생각뿐인데, 책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갈 리 없지 않은가. 나 또한 그랬고, 다른 사람들 또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왜 어른이 되면서 학생은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어떻게든 공부할 것으로 생각하는지 솔직히 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싫다는 아이 억지로 책상 앞에 앉혀서 공부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오후 6시가 되자 딸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다지 표정이 밝지 않았다. 언뜻 울었던 것 같아 아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가슴으로 파고들며 울었다.
“왜? 담임선생님이 뭐라고 했어?”
“혹시 엄마가 새엄마냐고 물어봤어. 아니라고 했더니 너희 엄마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엄마라고 하면서 앞으로는 야자 하기 싫으면 조용히 책가방 싸서 집에 가래”
“그럼 좋은 거지 왜 울어?”
“엄마가 새엄마냐고 묻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그럼 넌 뭐라 했는데?”
“선생님은 지독하게 고지식하다고 해주고 싶었어. 근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아무 말 하지 않고 집에 오는데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잖아. 자기가 뭔데?”
“그건, 엄마와 생각하는 것이 많이 달라서 그래. 선생님이시잖아. 오히려 선생님 생각이 옳을 수도 있어.”
“그래도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 거잖아”
“괜찮아. 너희 고모도 엄마한테 계모라고 하잖아!”
아이는 작은방으로 들어가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문을 열어보면 침대에 엎드려 자는 것 같기도 하고, 잠깐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한참 저녁 준비를 하는 시각. 딸아이는 벌컥 작은방 문을 열고 나오더니 주섬주섬 신발을 신었다.
“저녁 먹을 건데 어디가?”
“응? 잠깐 남자친구 만나고 올게. 저녁 먹기 전에 들어올 거야”
“아빠, 금방 오신댔어. 바로 들어와야 해”
“응!”

뛰어 나갔던 딸아이가 금세 돌아왔다. 침울했던 표정이 밝아졌다. 흥얼흥얼 노래도 불렀다. 욕실에 들어가 세수하고 나오더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들에게 눈짓을 해 보였다. 슬쩍 작은방 문을 열어보던 아들이 씩 웃으며 다가와 속삭였다.
“누나 수학 공부하는데?”
“싫어하는 수학공부를?”
“인터넷 찾아가면서 열심히 하는 중이야. 잠깐 하고 말겠지. 폼만 잡는 거지”
“너는 폼이라도 잡아봤냐?”
“난 책보면 졸려. 그래서 만화책도 안 보잖아”
“아이고! 자랑이세요.”
저녁을 먹고 난 후 오래간만에 온 가족이 모여 담소를 나눴다. 그렇다고 해서 진지하거나 특별한 시간은 아니다. 과일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수다 떠는 시간이다. 재미있는 드라마 하는 날엔 같이 보며 깔깔거리는 것으로 가족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날 이후, 딸아이 담임선생님께 야간자율학습 빼 달라는 전화는 하지 않았다. 딸아이의 요청이 없었다. 반 아이들 앞에서 ‘너희 엄마 새엄마 아니냐?’라는 말이 상처가 됐던 모양이다. 2학년이 끝날 때까지 아이는 야간자율학습은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3학년이 되면서 다시 담임선생님과 전쟁 아닌 전쟁이 시작되었다. 담임선생님은 고3이라는 시기에 가족 식사, 가족 모임, 아빠 생일, 집에 사촌 동생들이 와서라는 이유로 야간 자율학습을 빠지기도 하고, 조퇴하는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어머니, 자영이 고3이에요. 수능 준비해야죠. 자영이 성적이 뛰어난 것은 아니잖아요?”
“오늘은 쉬고 내일 열심히 하면 되죠.”
“오늘도 열심히 하고, 내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거잖아요!”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 있다고 모두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희는 가족 모임에 가족 한 사람이라도 빠진 적이 없어서 아마 오늘 자영이 공부되지 않을 거예요.”
2학년 담임선생님께 했던 말을 3학년 담임선생님께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3학년 담임선생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 고등학교 역대 담임선생님들께 자영이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학부모였고, 가장 골치 아픈 학부모였다.
3학년 담임선생님은 한숨을 내리 쉬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담임선생님께서는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니, 언제 시간 나시면 학교에 한 번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영이 진학 상담도 해야 하고요. 지난번 진학상담 때 오시지 않으셨죠?”
“아이가 가고 싶은 곳이 이미 정해져 있고, 목표 대학도 정해져 있는데, 엄마와 상담이 중요할까요? 아이의 목표가 중요하죠.”
“여하튼 자영이 성적과 진학,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게 학교에 나와 주세요.”
“내일 가능한데 언제쯤 가면 되죠?”
“아이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맞춰서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날 저녁 무렵 아이가 매일 아침 걸어 다니고 있는 길을 따라 학교로 걸어갔다. 고등학교 지망할 때, 우선순위는 집에서의 거리였다.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는 내 주장에 따라 좋은 학교, 대학 많이 들어가는 학교가 우선이 아닌 집에서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 아파트 단지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니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학교가 보였다.
‘이 언덕을 올라 다녀서 종아리 굵어진다는 소리를 하는 거구나. 힘들긴 하네.’
혼자 투덜거리며 교무실을 찾아 들어갔다. 자영이 2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자 목례를 했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3학년 담임선생님은 멀리서 한 번 뵌 적이 있었다. 입시 설명회를 하던 날 직접 상담은 하지 않았지만, 교실까지 들어가 몇 마디의 질문을 던지고 담임선생님의 의견을 들었기에 나는 담임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자영이 엄마인데요.”
담임선생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위아래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놀라는 표정이다. 조용히 앉더니 다시 일어나 옆에 있는 의자를 나에게 밀며 권했다. 자리에 앉았다. 담임선생님은 한참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목소리만 듣고는 연세가 있으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혹시, 자영이 새어머니 되시나요?”
“네? 아닌데 왜 그러세요?”
담임선생님은 미리 준비한 생활기록부와 성적표를 뒤적이며 무엇인가 찾는 듯했다. 이내 나를 다시 바라보며 어색한 듯 웃어 보였다.
“일찍 결혼하셨나 봐요? 목소리에 비해 너무 젊으셔서 놀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아이 중학교 담임선생님부터 시작해서 여기 고등학교 역대 담임선생님들 모두 저한테 계모냐는 물음 많이 던지셨는데요. 뭐. 이제 익숙합니다.”
담임선생님과 나의 대화는 한 시간이 넘기고 있었지만,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고3의 중요성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난 아이가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과 자유로움에 관해 이야기했다.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담임선생님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고 있었고, 나는 이해와 설득을 위해 분주히 많은 이야기를 해야 했다.
“어머니 말씀이 옳긴 해요. 하지만 그건 아주 먼 미래의 교육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당장은 다른 아이들과 경쟁해야 하고, 다른 학생보다 더 열심히 해도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현실은 아니잖습니까.”
“하지만 먼 미래도 지금부터 조금씩이라도 변화해야 다가오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고,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공부가 중요하죠. 자영이는 잘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어머니! 일단 어머니 의견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 분위기 문제도 있고 하니 지금처럼 자주 야간자율학습에 빠지는 것은 제가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학생들 공부하는 데 방해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누군가는 빠질 수 있는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생각이 들면 사기도 떨어지고요.”
“그래도 자주가 될 텐데. 저도 선생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서 아이와 이야기해 볼게요.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아이가 체력이 좀 약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위경련이 오거나, 몸이 아픈 증상으로 나타나는데, 그건 좀 선생님께서 잘 살펴봐 주셨으면 해요. 꾀병이라는 생각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아이에게 빠져나갈 근거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제가 판단하겠습니다.”
“사실인데….”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무런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다만 앞으로 전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아이가 직접 이야기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정말 중요한 일인지 아닌지 자신이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면담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에 찜찜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선택과 판단에 맡겨도 될 것 같은데, 선생님은 아직 아이들의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법했다. 하지만 경쟁구도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교육 현실에 담임선생님께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하니 더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 뒤 자영이는 야간자율학습에서 빠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정말 중요한 가족모임이 있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확인 전화가 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1학기가 지나가고 2학기가 시작되면서 딸아이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 새벽에 응급실로 달려가는 날이 많았다.
"어휴, 당신 예민한 성격보다 더 예민한 것 같아. 어떻게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저렇게 위경련이 일어나는지 원.“
“어쩔 수 없잖아. 그래도 잘 버텨주고 있는데 뭐. 고3이잖아.”
“그렇다고 우리 애들이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잖아?”
“분위기지 뭐. 공부를 잘하면 스트레스 덜 받을까? 여하튼 약한 체력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어쩌겠어.”

수능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아이는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수시 모집에 몇 군데 원서를 냈지만, 아직 발표 날짜가 남아 있는 상황이라 두 가지 사항 모두 아이에게는 스트레스였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급한 목소리였다.
“어머니, 죄송해요. 죄송해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아이가 점심 무렵부터 배 아프다고 해서 꾀병인 줄 알고 나무랐는데, 조금 전에 의식 잃고 쓰러져서 지금 학교 근처 병원에 왔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급하게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이의 얼굴은 창백하니 핏기가 없었다, 의식은 되찾은 모양이다. 나를 보더니 왈칵 눈물부터 흘렀다. 난 아이를 안고 다독였다.
“많이 힘들었어? 괜찮아. 너 노력했잖아. 잘될 거야.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그 뒤 딸아이는 원하는 날 야간자율학습을 빠질 수 있는 특권이 생겼다. 물론 수능시험이 며칠 남지 않은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담임선생님과 담당 의사와 상담 후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게 딸아이는 고3을 무사히 넘겼고,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수시로 합격하는 행운을 안았다.

새벽 두 시. 광고업체에서 일하는 딸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엄마, 회사는 엄마가 전화해서 일 빼주는 거 못하는 것이 좀 아쉽네?”
“왜? 일 힘들어?”
“지금도 야근이야. 나야 이제 인턴 끝나고 막내라서 시키는 것만 하고 있는데, 다들 정신없이 바빠. 근데 피곤하고 일하기 정말 싫어 오늘은.”
“회사는 엄마 전화 안 통하는데 어쩌지?”
“한 시간 뒤에 퇴근이야. 오늘 해야 할 일은 거의 마무리 됐어.”
“그래도 하고 싶은 일 하니 좋은 거지. 다른 사람들은 하기 싫은 일도 그렇게 해야 되는 거잖아.”
“응, 알아.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어. 엄마 팀장님이 찾는다. 나중에 연락할게.”
바쁠 때는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는 딸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니까 조금만 더 힘내라는 이야기밖에는. 그리고 아침 10시 출근 시간에 맞춰 오늘도 힘내라는 문자를 보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이제 아이가 내 품에서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조금은 쓸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체력이 약한 아이가 오늘도 무사히 건강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