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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5-12 09:57:27

술 마시는 초등학생


... 편집부 (2015-02-02 09: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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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아이들이 일찍 배웠을 때 문제가 되는 점들은 분명 많다. 아직 신체가 발달되지 않아 신체에 미치는 영향도 있을 뿐만 아니라, 간에 무리도 가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친구들끼리 배우며 습관처럼 굳어져 버리는 술주정이다. 또한, 제대로 알고 마시는 술과 멋대로 마시는 술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술을 가지고 온 학생들이 있어서 몇몇은 어울려 어른 흉내를 내며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한두 명이 아니라 반 아이들 대부분 호기심에 술을 마셨고, 자신도 한 잔 마셨는데, 달짝지근 맛있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며칠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중학교 올라가면 더 심해질 것이 분명했다. 어느 부모나 딸아이 걱정에 대해서는 같은 마음일 것이다. 딸의 경우 술을 마시고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마시고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잔다고 생각하면 걱정을 앞서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경우 좋은 일보다 좋지 않은 일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술 취한 모습이 그다지 예뻐 보이지는 않는다.

아이들 여름방학 때쯤이었다. 방학이라서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학원만 다니고 있어서 거의 집에 있는 일이 많았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 어떻게 술을 가르쳐야 할지 난감했다. 아니 꼭 지금 저 나이에 가르칠 필요가 있느냐라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남편이 안다면 미쳤다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친구들끼리 모여 호기심에 마실 수 있는 여지는 분명히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하지만 내 아이는 절대 그럴 일 없다는 무모한 믿음을 난 갖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같은 사회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2박 3일 집을 비울 일이 생겼다. 이때다 싶었다. 아이들에게는 가볍게 과일을 먹자며 거실로 불렀다. 술은 맥주와 복분자 와인을 준비했다. 처음부터 독한 소주로 술을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아빠가 없는 시간에도 가족 시간이라 생각하고 하던 것들을 멈추고 거실로 나와 앉았다. 과일을 하나 집어 먹던 딸아이가 이상한 듯 바라보았다.
“엄마, 아빠도 없는데 왜 술잔이 세 개야?”
“음 너 술 마시라고. 술 맛있다며?”
“어휴, 엄마 그건 아니라고 봐. 내가 안 마시고 나서 나중에 선생님들이 알면 내가 고자질했다고 할까 싶어서 그냥 분위기 때문에 입에만 가져간 거지. 술이 맛있었던 것은 아니야!”
“자 지금부터 엄마가 하는 말 잘 들어. 태훈이도!”
“태훈이도 마셔?”
“응.”
“엄마 태훈이 인제 11살이야!”
“엄마가 봤을 땐, 11살이나 13살이나 같아. 그리고 어차피 남자아이들이 술은 더 빨리 배울 것 같고, 그럴 바엔 처음부터 엄마한테 배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엄마한테 괜히 수학여행에서 술 마신 이야기했어. 걱정 많은 우리 엄마 또 걱정 하나 시작됐네!”

아이들은 걱정 반, 호기심 반의 표정으로 술잔을 들었다. 난 일어나 앉으며 무릎을 꿇고 오른손으로 잔을 들고, 왼손을 오른손 아래에 받치는 모습을 해 보였다. 아이들은 그대로 따라 했다. 내가 편하게 앉자 아이들도 따라 앉으려 했다.
“아니, 어른에게 술잔을 받고, 마실 때는 항상 무릎을 꿇고 술을 받고, 고개는 어른이 계시는 곳 반대 방향으로 몸이 절반 정도 틀어질 정도로 돌려서 마시는 거야. 이야기할 때는 편하게 앉아서 해도 되는데, 술을 받거나 마실 때는 항상 그 자세여야 해!”

아이들은 어색한 몸동작으로 술을 마셨다. 딸아이는 복분자 와인을 마시면서 입맛을 다셨다. 달짝지근한 맛이 마치 음료수를 마시는 느낌이 들고, 뒷맛에 약간 알코올 냄새가 나는 와인이었다. 아들은 한 모금 마시더니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 저는 맥주 마실래요. 맛이 이상해요”
“넌 어릴 때 포도주 담가 놓으면 포도만 다 건져 먹었잖아? 그러면서 뭘?”
“그건 기억에 없고, 지금 이 맛은 되게 이상해요. 달면서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요”
그리고 아들은 맥주를 마셨다. 그러나 한 잔 마신 후 10분도 지나지 않아 아이 얼굴에 발갛게 달아올랐다. 술기운이 오르는 모양이다. 이내 한 잔을 더 마시더니 비틀거리며 제방으로 들어가 잠들어 버렸다. 복분자 와인이 맛있다는 딸아이는 제법 마시는 것 같았다. 소주병보다 조금 작은 와인 두 병을 딸아이와 나눠마셨다. 아이는 멀쩡했다. 얼굴색이 변하지도 않았고, 취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술 마신 후 멀쩡하게 TV를 보고 시간이 되자 제 방으로 들어가 잠들었다.

처음 술을 마셨을 때, 딸아이는 술에 대해서는 나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다. 처음 내가 술을 접한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였다. 회사 동료들과 회식자리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과 함께 처음 술을 마셨다. 하지만 처음 술에도 취하지 않았고 다른 분들과 끝까지 함께했었다. 딸아이의 첫 술은 그랬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 모습을 잃지 않았고, 발음 또한 평소와 같았다. 그러나 작은 아이는 제 아빠를 닮은 것 같다. 어떤 술이든 두 잔만 들어가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바로 잠들어야 하는 체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딸아이는 어디에서 누구와 어울리든 술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아들은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두 번째 술잔을 들었을 때, 딸아이는 맥주 한 잔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아들은 맥주를 세 병 가까이 비웠지만 멀쩡했다. 잦은 술자리는 아니었다. 잘해야 두 달에 한 번쯤 마련되는 술자리는 거듭할수록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딸아이는 와인 정도의 약한 술은 어느 정도 이겨냈지만, 맥주나 소주는 거의 몸에서 거부했고, 아들은 약한 술은 몸에서 거부했지만, 맥주나 소주는 초등학생임에도 나와 대작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딸아이의 졸업식 날 밤. 온 가족이 모여 딸아이의 졸업을 축하해주고, 딸아이 졸업 선물로 휴대전화를 건넸다. 그때만 해도 초등학생 중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은 아이들이 더 많았던 때였다. 그래서 중학교 들어가는 입학선물로 휴대전화를 주기로 했었고, 우선 딸아이에게만 선물했다. 그리고 졸업 축하 기념으로 온 가족이 술 한 잔씩만 하기로 했다. 남편은 놀랐다. 아이들이 술 마실 때의 태도에 놀랐고, 술을 마셔도 흐트러짐이 없는 아이들 반응에 놀랐다.
“음마? 나 몰래 애들 술 갈켰는 갑시야?”
“응!”
“이 사람아, 인자 초등학생인디 벌써 술을 갈키믄 된당가?”
“어차피 지네들끼리 일찍 마실 것 같은데, 그렇게 배우는 것보다 먼저 부모한테 배우는 것이 낫지 않아?”
“하나는 알고 둘은 생각 안 혀?”
“뭘?”
“남자애들은 영웅심리라는 것이 있어서, 나 이거 할 줄 알어. 느그들 못허지? 그람시로 더 마신다는 말여. 그랑께 친구들 모였을 때, 술 마시자고 주도하는 놈이 될 수도 있다 이거제!”
“그걸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그런데 내버려 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 어찌 되었든 배울 것이라면 미리 제대로 배우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한 거지!”
그렇게 아이들이 술을 마시는 것은 공식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님이 인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가족과 함께 마시는 것 이외에는 절대 금지한다는 조건이었다. 다짐도 받았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된 후부터는 전체 가족모임에서도 술 한잔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시댁 어른들이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뻘이라 조심스럽게 마셔야 하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른들 앞에서 마실 때 긴장감이었다. 역시 아이들은 긴장했고, 흐트러짐은 보이지 않았다. 어른들은 걱정이 앞섰다. 벌써 어린 애들 술 가르쳐서 어떡할 것이냐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랬다.
“아이고 어미가 어려서 애들이 뭔 고생이랴. 계모도 그렇게는 안 하긋다.”
“병원에서 낳은 거 본 사람이 없었으면 정말 계모라고 하겠지요?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시도한 것이니까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은 했지만 조금은 억울한 마음이 들어 혼자 중얼거렸다.
‘적어도 누구처럼 술 먹고 개망나니 짓 하는 꼴은 못 볼 것 같아 미리 가르칩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뜻대로 마음대로 자라준다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그렇게 무난히 아이들의 술 가르치기는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인가 싶었다. 딸아이는 체질상 술이 맞지 않아서 고등학교 진학 후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고, 어쩌다 한 잔 마시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트러블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아들은 날이 갈수록 주량이 늘어나고 있었다. 아빠가 없는 날. 집에서 아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 내 주량을 능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번이고 주의를 시키고, 적당히 마시라는 것과, 술이 취해 인사불성이 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었던 것 같다. 늦게까지 식당 아르바이트를 다니던 아들이 들어올 시간이 되어서도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지만, 방학 때는 항상 부모 동의서를 받아서 아르바이트했다. 그리고 밤 11시면 귀가하던 아이가 새벽 1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앞섰다. 이미 대학생이 된 딸아이에게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광고공모전 때문에 정신이 없다며 나중에 연락한다는 메시지만 남기고 감감무소식이었다. 아들 친구들에게 전화하기에도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혹시 싶어 아이가 아르바이트한다는 식당을 가보았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을 때, 아들 휴대전화 번호가 찍힌 벨이 울렸다.
“어머니, 저 태훈이 친구 L인데요. 태훈이가 취해서….”
“지금 어딘데?”
“여기 집 앞에 다 와 가는데요. 아예 몸을 못 가눠요. 어머니 혼자 데리고 못 들어가실 텐데!”

남편을 깨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 고민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깨워야 할 것 같아 자는 남편을 깨워 자초지종을 말했다. 남편은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를 버럭 지르며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집 앞에 있는 마트로 나가자 아들은 차가운 도로 바닥에 친구에게 기대어 드러눕다시피 하고 있었다. 억장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무리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엄마라 할지라도 그 모습에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모가 아닐 것이다. 술을 왜 일찍 가르쳤을까 하는 후회부터 아무 소용 없는 짓에 아이만 망가트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이를 나무라기도 하고, 소리치기도 하고 술에서 깨워 보려 했지만 아이는 인사불성이었다. 남편이 아이를 업기도 무리였다. 남편보다 한 뼘 반이나 더 큰 키를 가진 아들을 남편은 업을 수도 안을 수도 없어 아이 친구와 함께 양쪽 어깨를 둘러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잘한다 잘해! 그래 초등학생 때 술 가르칠 때 알아봤어. 내가 뭐랬어? 어쩔 것이여 인제!”
할 말은 없었다. 그렇다고 나도 속상하다고 소리치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가 잠들어 있는 방구석에서 아이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자책과 후회하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아이는 이미 코를 골며 잠이 들었고, 남편도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잠이 들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고 남편은 동이 트기 전 현장으로 나갔다.

그때야 마음이 가라앉은 모양이다. 앉아 있는 자세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잔 것일까. 누군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이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반성문도 내 앞에 잔뜩 쌓아놓고 있었다. 한 장 쓰고 나서 내가 깨어나지 않으면 다시 한 장 쓰기를 반복했던 모양이다. 꽤 많은 양의 반성문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무엇을 잘못했는데?”
“술 마신 것 잘못했어요”
“그게 다야?”
“아니요. 엄마 허락 없이 마신 것도 잘못했어요.”
“또?”
“가장 큰 잘못은 술을 마셨는데 인사불성 된 것!”
“그래서 뭘 어쩔 건데?”
“앞으로는 절대 인사불성 되는 일 없게 할게요.”
“술 안 마신다는 말은 안 하지?”
“…….”
아이는 미리 준비해놓은 듯 아르바이트 급여가 들어오는 통장과 도장, 카드와 함께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자청하는 벌이었다.
“얼마 동안?”
“…. 2주 정도면”
“그 정도의 잘못밖에 안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네?”
“그건 아니고요. 2주 뒤면 방학 끝나니까…….”
아이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난 다시 아이에게 휴대전화와 통장을 내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가려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쪼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있었던 탓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이는 놀란 듯 나를 부축했다.
“괜찮아. 그리고 이제 너의 행동에 대해 네가 책임질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18살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나이라고 생각해. 엄마의 벌이 필요 없는 나이. 그러니까 네 행동에 대해서는 너 스스로 책임져. 너라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 부모가 생각하는 너의 이미지를 점점 흐리게 하지 마. 난 반듯하고 책임감 있는 아들이 좋으니까!”
“네, 엄마.”

난 아들의 반성문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힘이 없었다. 아들에게 실망한 탓도 있었고, 내가 그동안 아이들 교육을 잘못했는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힌 탓이기도 했다. 아이의 반성문을 읽었다. 언제나 비슷한 말이다. 이제 능수능란하게 반성문이라는 것을 쓸 줄 알게 되어서 엄마의 감성을 살짝살짝 건드리는 것도 제법이다. 엄마를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마지막 남은 반성문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잠에서 깨기 직전 아이가 쓴 반성문인 것 같았다. 알고는 있다. 한글을 배운 직후부터 반성문을 쓰기 시작한 아들은 어떻게 하면 엄마의 화가 풀리고, 자신이 벌을 덜 받을 수 있는지 뻔히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이 진심이든 거짓이든 엄마는 알면서도 감동할 수밖에 없는 감수성 동물이 된다는 것이다.

“엄마, 쪼그리고 앉아 잠들어 있는 모습 처음 봐요. 밤새 제 걱정하시느라 편하게 잠 못 주무셨다고 생각하니 제가 너무 많은 잘못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다시는 엄마 걱정하는 일 하지 않을게요. 제가 사고 칠 때마다 엄마 한숨도 못 자고 계시는 것 알아요. 그런데 마음으로만 알았다가 엄마 그렇게 잠들어 있는 모습 보고 너무 놀랐어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죄송해요 엄마.” -그때 당시 아이의 반성문 전문-

아이는 자신이 벌을 받지 않았다는 것에 기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벌을 받지 않은 것이 내심 걸리는 모양이었다. 내가 안방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내가 해야 할 일을 아들이 모두 해놓고 아르바이트를 가고 없었다. 밤새 우렁각시가 다녀간 것 같았다. 빨래도 모두 널려 있었고, 설거지, 청소는 물론이고 화장실 대청소까지 모두 해놓고 식탁에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매일은 못하지만, 오늘은 반성하는 의미로 엄마 일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알바 가요.”
내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들의 마지막 반성문과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쫑알거렸다. 아들의 반성문을 읽은 남편은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내심 뿌듯한 모양이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 이후 아들의 술 취한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인사불성이 되거나 술을 먹고 주정을 부리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니 밖에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될지언정 집에 들어올 때는 어떻게 해서는 술이 깬 상태에서 들어왔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안방 문을 열어 들어왔음을 보고하고 내가 일하는 서재로 들어와 얼굴을 보이고 잠이 들었다.

“아 진짜. 인제 하다 하다 엄마 해장국까지 아들이 끓여야겠어?”
“어제 빈속에 마셨더니 속 쓰리고 머리도 아프고 너무 힘들어!”
“엄마가 그랬지? 술 마신 후 그런 변명은 필요 없는 거라고. 그걸 자신의 머릿속에 계산하고 자신의 술 마시는 속도를 조절해서 마시라고 엄마가 그랬거든?”
“인제 나이가 들어서 그게 잘 안 돼! 그래서 술국은 뭐 끓이는데?”
“콩나물 국!”
동창 모임이 있어 빈속에 술만 마셨다가 아침에 속 아파하는 나에게 아들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군 제대 후 부쩍 잔소리가 늘었다. 난 듣는 둥 마는 둥 서재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았다. 아들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심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아빠는 새벽에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고, 나도 졸업하면 취업해서 나갈 것이고, 그럼 그때는 엄마 혼자 어떡하려고 그러는지. 엄마 그러니까 좀 이제 술도 조금만 마시고, 밥도 좀 챙겨 먹고. 저거 봐. 속 쓰리다면서 식탁이 아니라 컴퓨터 앞에 앉는 거. 이제 그거 습관 좀 바꾸면 안 돼? 뭔가 먹고 컴퓨터 앞에 앉는 걸로”
“아, 저 잔소리꾼. 알았어, 알았어. 엄마 오늘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그랬어.”


(그림 = 임솔빈)

아들의 잔소리가 행복한 노랫소리로 들리는 것은 이제 내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싫지만은 않다. 엄마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지 않을 잔소리이기에, 엄마에게 무관심하다면 하지 않을 잔소리이기에. 아들의 잔소리로 하루를 열어가는 오늘도 행복한 마음은 콩나물국에 가득하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