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각의 페미니즘 서적이 출간됐다.
여성의 억압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동권을 강조하고, 여성권을 성욕과 모성의 권리라고 주장한다. 생소해 보이는 주장이지만 저자는 이를 강한 현실적 논거에 바탕해 차분히 증명해낸다.
화제의 저작은 최근 이유미씨(사진)가 쓴 『지금 여기 페미니즘』(부제: 함께 공부하는 여성권 강의)이다(188*257, 194쪽, 1만원). 박상은씨의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부제: 세월호 참사 이후 돌아본 대형사고의 역사와 교훈)에 이어 ‘사회운동 작은책’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다.
저자 이유미씨는 2010년부터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지난 몇 년간 페미니즘을 주제로 노동자와 대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강의, 토론모임, 세미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집필했다.
이유미씨는 이 책의 서문 도입부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를 증오한다. 그래서 나는 ISIS를 좋아한다’는 글을 남기고 시리아로 떠난 한 학생을 언급한다. 그리고 장기불황, 불안정한 국제관계, 인종주의와 테러리즘의 부상 등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한 세계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페미니즘은 증오의 대상이 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페미니즘의 처지가 궁색해진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페미니스트란 일부 여성의 특수한 이익만을 앞세우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늘날 한국은 페미니즘의 과잉이 아니라 페미니즘의 과소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고위직 여성들이 늘어나고 여성가족부가 만들어지는 등 여성의 권리는 외형적으로 신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대다수 여성들이 처해있는 고통과 곤란함을 해결하는 데 페미니즘이 큰 역할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이 기존 질서를 변화시키는 보편적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어려웠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기존 페미니즘의 전략을 반성 내지 비판하면서 “지금 여기 페미니즘”을 강조한다. 페미니즘이 다시 유효한 사상이자 운동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다수 여성이 겪고 있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먼저 저자는 성별분업과 여성노동에 대한 저평가, 성폭력과 성매매 등 여성이 처한 현실을 진단한다. 그리고 이런 여성의 현실을 자본주의적 가족제도의 모순 속에서 분석한다. 나아가 여성이 쟁취해야 할 권리들을 제안한다. 여성이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대해 온전히 통제할 수 있기 위해 필수적인 노동의 권리, 성욕에 대한 권리, 모성에 대한 권리가 바로 그것들이다.
저자는 이 책에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거나 낯설어하는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적인 쟁점들을 풍부히 담았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통념들을 페미니즘의 렌즈를 거쳐 낯설게 볼 수 있게끔 서술했다. 또한 여러 독서모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함께 책을 읽은 사람들이 토론할 수 있는 꼭지도 넣었다. 페미니즘과 여성권에 대한 친절한 교양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보다 쉽게 접하고, 여성의 현실을 바꾸는 길에 함께 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진=출판사 제공 책 표지)
다음은 저자 이유미씨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문) 이번 저작에서 노동, 성욕, 모성의 권리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어떤 중요성 때문인가요?
이) 여성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권리로 노동권, 여성권(성욕, 모성의 권리)이 필요하고 동시에 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콜센터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여성노동자가 있습니다. 임신을 했는데, 회사는 임신한 비정규직은 재계약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성은 생계를 위해서 직장을 다녀야하는 처지지요. 그리고 통화를 하면서 고객으로부터 성폭력적인 말을 들어도 친절을 강조하는 평가시스템 때문에 전화를 끊지 못하기도 합니다. 힘들게 일하지만 임금은 적고 비정규직이죠.
문) 여성이 처한 복합적 현실이 드러나는 사례로군요.
이) 맞습니다. 먼저, 임신을 이유로 계약이 해지되는 것은 여성의 노동권이 제약되는 현실입니다. 또한 생계와 출산을 선택하게 만들어 아이 낳을 권리가 제약되는 것이죠. 고객으로부터 성폭력적인 말을 듣게 되는 것 역시 여성의 노동권이 제약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상황이 된 것이죠.
문) 성욕의 권리와 관련되는 상황인가요?
이) 그렇습니다. 성욕의 권리는 여성에게 성행위의 자율성을 허용한다는 협소한 의미가 아니라, 남성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의미를 포괄합니다. 이 상황은 성욕의 권리가 제약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문) 성차별이 노동시장에서의 차별과 얽혀있다고 해야겠군요.
이) 예시에서처럼 여성노동자 10명 중 6명은 비정규직입니다. 임금도 여성은 남성임금의 60% 수준에 불과하고요. 남성은 생계부양자로 인정되지만 여성을 가사담당자로 여겨 부수적인 수입원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임금과 고용이 불안할 수밖에 없어, 성차별로 인한 권리침해에 취약합니다. 임신으로 인한 계약해지나, 고객성폭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문) 책의 서문에서 ‘대다수 여성’의 현실에 대해 상기시켜 주셨지요. 대다수 여성의 처지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이) 여성이 대통령도 하는 여성 상위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여성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가사와 양육으로 인해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불리한 지위를 점하게 되고, 그로 인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관계가 존속됩니다. 또한 여성의 성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폭력적으로 대상화하는 일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성적 자율성이 제약되고 있는 것이지요.
문) 그 때문에 페미니즘은 노동권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이) 그렇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현실 때문에 여성에게는 노동권이 필요합니다. 반찬 값 벌러 나온 여자 취급당하면서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착취당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모성권이 필요합니다. 임신을 이유로 계약이 해지되어 생계가 위협에 처하는 상황이 없으려면 말입니다. 나아가 성욕의 권리가 필요합니다. 폭력적으로 성적인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문) 여성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전략을 제안할 수 있을까요?
이) 여성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동권과 여성권이 필요한데, 이는 앞서 든 예에서처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근본적으로는 사회전반을 개조해야 실현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불행이나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모순과 여성억압이 착종되어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기 때문입니다.
문)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권이 구조적 문제를 건드릴 수 있다는 건가요?
이) 노동권이란 적당한 임금을 받으며 일할 권리를 달라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노동자를 착취해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주의를 변혁해야 하는 과정이 노동권이 실현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문) 성욕의 권리와 모성의 권리에 대해서도 부연설명을 해주시죠.
이) 성욕의 권리 역시, 여성이 자신의 성을 생존의 방편으로 삼게 되는 현실, 그로 인해 여성이 남성 성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하여 인격적 존엄이 손상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여성에게 성욕의 권리란 성이 상품으로 거래되지 않을 권리, 성적 수단으로 취급받지 않을 권리, 성적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모성의 권리는 여성이 아이를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발전을 위해, 대를 잇기 위해 아이를 낳아야 한다 낳지 말아야 한다는 식으로 출산을 의무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자 할 때 출산과 양육이 여성에게 전가되지 않고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문)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돌려보죠. 이 책에서 가족을 특별히 강조하고 계십니다. 어떤 이유인가요?
이) 이 책의 차별성은 가족의 변화를 강조하는 점입니다. 앞서 여성권과 노동권이 동시에 추구되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그것을 위해서는 핵심적으로 가족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보통 가족은 고정불변이라 생각하는데, 실은 역사 속에서 여러 형태로 변화해 왔습니다. 사회의 생산방식과 함께 재생산 방식이 변화하는데 가족은 재생산 기능의 핵심적인 단위라 할 수 있죠. 따라서 가족은 사회의 생산방식의 변화와 함께 변화해 왔다는 것이고, 현재 가족은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한 가족형태라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적 재생산을 담당하는 것이죠.
문) 가족에도 역사가 있다는 얘기로군요. 그렇다면 자본주의적 가족의 특징은 뭔가요?
이) 자본주의적 가족의 특징은 ‘남성=생계부양’과 ‘여성=가사책임’이라는 역할 분담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남성과 여성뿐만이 아니라 아동도 어느 정도 자라면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성인남성이 혼자서 가족을 부양하지 않았죠. 그러나 자본주의적 가족은 남성생계부양을 전제하는데, 일부를 제외한 다수의 노동자 가족은 남성수입만으로 가족의 생계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결국 여성의 노동은 필수적인데 노동시장에서는 부수적 수입원으로 여겨져 임금고용이 취약하고, 노동하면서 가사와 양육을 동시에 수행하는 이중부담에 놓이게 됩니다.
문) 가족에서의 성역할이 그렇게 규정됨으로써 여성에게 어떤 결과로 초래되나요?
이) 여성은 스스로 부양하거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존재로 인정되지 않게 되는 거죠. 사회경제적 지위가 취약하고요. 결국 생계부양자로 인정되는 남성에게 경제적 의존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나 결혼에서 남자는 돈, 여자는 외모가 우선시된다는 이야기가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여성은 경제적 자립이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성적인 매력과 남성의 경제력을 거래하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죠. 이는 비단 직접적인 성매매만이 아니라,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서비스를 비롯하여, 연애나 결혼 등에 내재된 속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제약되는 상황에서 성적 자율성을 쟁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여성의 권리를 위해서는 여성이 자신의 성을 거래하는 물질적 조건, 즉 경제적 자립이 제약되는 조건을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여성에게 의무로 지워진 가사와 양육을 사회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으며, 성적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방식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현재의 가족이 바뀌어야 합니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변화와 재생산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남녀 간의 관계의 변화를 추구하면서 여성의 성욕의 권리와 모성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문) 가족의 변화를 위한 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겠는데, 너무 막연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이) 가족의 변화라는 것이 대단히 막연하게 그려지기도 하는 게 사실인데요,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현재의 시점에서 가족의 변화에 대한 고민이 중요합니다. 현재 경제위기는 자본주의가 구조적 위기에 빠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족 역시 위기에 처했다고 볼 수 있고요.
문) 가족의 위기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나요?
이) 가사와 양육을 담당하던 여성들이 생계를 위해 노동시장으로 진출하면서 가족 내 돌봄이 개별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책임져지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성들은 생계와 가사 양육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부담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게 되면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죠. 가사와 양육을 담당하면서 노동을 해야 하는 여성의 이중부담이 경제위기 시기에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책적으로 사회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인데요, 공적인 서비스 확대가 아닌 민간 서비스 확대로 추진되고 있어 문제가 많습니다.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고, 경제력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달라지며, 사회서비스 사업에서의 이윤추구 때문에 해당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열악합니다.
문) 위기를 극복하려면 어떤 실천을 해야 할까요?
이) 위기에 빠진 가족을 여성의 이중부담을 통해서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노동자들이 가사와 양육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주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서비스가 민간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함을 요구하는 것이죠. 그리고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이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 취급받지 않고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가치 있는 노동을 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에 걸맞는 임금과 고용을 보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바로 새로운 가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이 책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서문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여성혐오가 번져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마치 누군가의 몫을 빼앗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살펴본 것처럼 다수의 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은 사회 전반의 구성원들이 겪고 있는 위기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들은 생계부양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불리한 조건이었고, 그래서 다수 여성이 비정규직으로 취직해 적은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업에서 경험하는 차별, 임신 출산으로 발생하는 해고, 양육과 직장 일을 병행해야하는 워킹맘의 어려움, 은퇴한 남편과 취업을 준비하는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든 50~60대 여성들, OECD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여성노인 빈곤율이 여성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주장하는 권리는 남성의 몫을 빼앗아 여성이 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위기를 함께 바꿔나가자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 필요한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얘기들이 제가 책에서 담고 싶던 주장이고,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