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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5-12 09:57:27

보내지 않은 하늘이


... 편집부 (2015-03-30 09: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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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있던 음악을 끄고 컴퓨터 자판을 끄집어냈다. 음악이 꺼지는 것을 들었는지 우리 집 막내이자 귀염둥이 고양이 반이가 금세 내 방문을 빼꼼 열고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바로 내 무릎에 앉더니 안아 달라며 가슴에 얼굴을 비볐다. 자판을 밀어 넣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젖먹이 아이처럼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난 고양이 반이의 어린 시절을 본 적이 없다. 딸아이의 친구가 키우던 고양이였다. 입대해야 하는 그 친구 대신 키워줄 사람이 없어서 안락사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엄마, 우리가 키우면 안 돼?”
“엄마는 좋지. 하지만 아빠가 개, 고양이는 질색하잖아!”
“그럼 반이 안락사시켜야 돼. 하늘이 대신 키우면 안 돼?”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늘이라는 이름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늘이는 딸아이 아홉 살 때 우리 가족이 되었다.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던 시동생의 여자친구, 지금의 막내동서가 어디선가 말티즈 한 마리를 얻었는데 키울 수가 없다며 데려왔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난 하늘이는 처음 본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너무 작아서 손안에 들어오는 강아지였다. 점퍼 주머니에 넣어주니 머리를 내밀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강아지 주변에서 구경만 할 뿐, 다가오지 못했다. 내가 강아지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아이들은 식탁 의자에 올라가서 바라볼 뿐이었다.
“아기야. 괜찮아.”
“안 물어?”
“귀엽지 않아? 정말 예쁘지 않아?”
“귀여운데 물 것 같아”
“안 물어. 자영아, 동물은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금방 알아 봐. 그리고 싫어하는 사람도 금방 알아본다. 자영이도 예뻐해 주는 사람은 알잖아.”
“응. 강아지 만져도 돼?”
“당연하지. 자 이제 자영이 동생이야. 그러니까 많이 예뻐해 줘.”
“그냥 강아지잖아.”
“자영아, 있잖아. 강아지이기는 하지만, 함께 같은 방에서 살고, 같이 자고, 같이 밥 먹는 것. 그럼 가족인 거야. 그래서 반려견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함께 살아가는 개라는 뜻이야. 그래서 자영이 동생인 거야. 그러니까 쉬아 해놓으면 닦아주고 밥도 주고 자영이가 동생 돌보듯이 돌봐 줘야 해.”
“그럼 이제 우리랑 같이 살아?”
“응!”
그때야 딸아이는 조심스럽게 강아지에게 다가왔다. 조금은 두려운 듯 살며시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아지도 그 마음을 알았던 모양이다. 금세 자영이 앞에서 꼬리를 흔들며 재롱을 부렸다.
“엄마, 강아지 이름이 뭐야?”
“아직 이름이 없는데? 자영이랑 태훈이가 동생 이름 지어줘.”
“음…. 난 피카츄로 하고 싶어.”
“태훈아, 그건 아니지. 엄마, 난 하늘이로 부르고 싶어.”
“왜?”
“그냥 하늘이 생각났어. 진짜 예쁘잖아. 눈동자를 보니까 하늘이 생각났어.”
“그래, 그럼 하늘이라고 부르자.”
그날 밤.
늦게 들어온 남편은 낯선 강아지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유일하게 우리 가족 중에서 짐승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동물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것은 남편 때문이기도 했다. 이사 오기 전 햄스터를 키우기는 했지만, 남편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키워야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오싹하니 소름이 돋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함께 뒹굴어야 할 강아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나는 밤새 남편을 설득했다. 하지만 남편은 완강하게 다시 돌려보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동물이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는 편견은 좀 버리면 안 되나요?”
“애들도 어린데 강아지 털은 어떡할 건데? 거기다가 배설물은?”
“배설물이야 아이들이 치우고, 내가 치우고 훈련을 시키면 되죠. 그리고 동물 털이 사람한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던데….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 정서에 좋은 것이 동물이잖아요. 동물들과 교감하고 생명을 소중히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은 맞잖아요.”
그렇게 아이들의 정서에 좋다는 말로 남편을 설득했다. 반대가 완강했던 남편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이 밖에서 언짢은 일이 생기면 항상 집에 있는 강아지가 이유가 되기도 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하늘이가 저질러 놓은 일들로 나무라는 일이 점점 늘어갔다.

아이들은 아빠가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분주해졌다. 하늘이가 어질러놓은 것들을 치워야 했고 혹시 모르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곳에 배변하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했다. 그 번거로움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하늘이는 가족이었고 잠깐도 떨어질 수 없는 동생이었다.

시골에 가는 날엔 외출 준비를 끝내면 하늘이부터 챙겼다. 혼자 두고 며칠 집을 비울 수 없는 탓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하늘이 혼자 두는 것은 절대 안 된다며 우는 바람에 남편도 어쩔 수 없이 허락했었다.
그렇게 하늘이는 가족으로 9년을 함께 살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이 되면 항상 내 무릎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땐 어린아이처럼 가슴으로 파고들어 잠을 자기도 했다. 함께 웃었고 함께 울었고 하늘이 때문에 가족이 뭉치는 날도 많았다.

하늘이가 집으로 온 뒤에 가족이 더 늘었다. 인천에 살던 동생이 군산으로 내려오면서 집 구할 때까지 함께 살았다. 그리고 1년 뒤, 큰오빠의 아이들 둘이 우리 집에서 살게 되었다. 7명의 대가족과 하늘이가 함께 사는 집은 시끌벅적했다.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 왔던 탓에 천장이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집 인테리어를 다시 해야 했다. 커다란 짐들은 창고에 맡기고 자잘한 짐들은 옮겨가면서 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심했던 하늘이는 공사하는 동안 내 방에 갇혀 있어야 했다. 공사하시는 분들의 일을 거들어 주다가 시간이 되면 내 방으로 들어와 하늘이를 챙기고 다시 거실로 나가 물건들을 치우기도 하고 쓰레기를 버리기도 하는 일을 도와야 했다.

공사가 거의 마무리 되어가던 날이었다. 마지막으로 전기에 관련된 공사만 남아 있었다. 거실에서는 벽에 아트박스를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목수 두 분이 공사하고 계셨고 거실에는 각종 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아주머니, 커피 한 잔 주실 수 있으세요? 좀 쉬었다 할 건데….”
“네, 커피하고 음료수, 과일 좀 드릴까요?”
“그럼 좋죠!”
난 작은 방에 하늘이와 함께 있다가 살짝 문을 닫고 거실로 나갔다. 하늘이는 밖으로 나가는 나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항상 함께 있었는데 공사하는 일주일 동안 거의 같이 있지 못했다. 외로웠던 모양이다.
과일을 준비하고 있는 사이, 전기 공사를 맡은 분이 오셨다. 이 방, 저 방 콘센트와 전등을 체크 하느라 종이에 뭔가를 적으며 작은 방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하늘이가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난 소리를 질렀다.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조카 이름을 불렀다.
“미희야, 하늘이 잡아!”
조카는 하늘이 뒤를 따라 현관 밖으로 맨발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다.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늘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 통의 전화벨이 울렸다. 조카였다. 조카는 울고 있었다.
“왜 그래?”
“고모, 하늘이가….”
“왜?”
“여기 아파트 후문인데요. 하늘이가 도로로 뛰어나갔는데 버스가….”
나는 주저앉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일어설 수가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간신히 일어서서 신발을 신고 아파트 후문으로 나갔다. 조카는 도로를 막고 서 있었고 그 아래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하늘이를 발견했다. 아직 심장이 뛰고 있었다. 죽어가면서도 나를 알아보는 모양이다. 힘겹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다리는 완전히 뒤틀려 있었고 머리 쪽에서 피는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이를 가슴에 안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파트 단지로 들어왔다. 그렇게 죽어가는 하늘이를 안고 바닥에 주저앉아 언제까지 울고만 있었다. 마지막 인사라도 하듯 있는 힘을 다해 피 묻은 내 손을 핥는 하늘이는 내 품에서 싸늘히 식어가고 있었다.
“미희야, 저기 쓰레기장 가서 자그만 상자 하나만 가져올래? 집에서 하늘이 깔고 자던 담요도 가져와.”
울음 섞인 내 목소리에 조카도 울고만 있었다. 하늘이는 이미 싸늘해졌다. 심장도 뛰지 않았다. 내 몸은 이미 피범벅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이 입에 뽀뽀를 해주었다. 잘 가라는 나의 인사였다.
한참 후 조카는 하늘이가 덮고 자던 담요와 자그만 상자를 하나 들고 왔다. 하늘이를 담요에 조심스럽게 싸고 상자에 넣었다. 워낙 작은 종류의 강아지였지만, 그렇게 작은 줄은 몰랐었다. 상자를 닫을 수가 없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연락을 받은 남편이 달려왔다. 울고 있는 내 목소리에 놀라서 달려왔다. 조카는 아이들에게 연락했던 모양이다. 오전 수업도 끝나지 않을 시간이었다. 딸아이와 아들아이 동시에 집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하늘이를 찾으며 두리번거렸다. 공사는 중단되었고 인부들은 모두 돌아간 뒤였다. 아이들은 소리 내어 하염없이 울었다. 특히 딸아이의 하늘이 사랑이 유별났기에 그 슬픔은 더 컸던 모양이다. 담요 채 끌어안으며 우는 딸아이를 보니 다시 눈물이 흘렀다.
“묻어주고 오자. 보내 줘야지”
“아빠, 바다가 보이는 곳에 묻어주고 싶어요.”
남편과 아이들은 하늘이가 든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가며 돌아봤다. 그러나 난 따라갈 용기가 없었다. 난 보내지 못할 것 같아 그냥 어지럽게 짐들이 쌓여있는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남편과 아이들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난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며 울었다. 조카들은 그런 내 모습에 어쩔 줄 몰라 숨죽이며 작은 방에 있었다.

한동안 아이들은 침울했다.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은 버릇처럼 문을 열면서 하늘이가 뛰어나올까 봐 조심히 열다 울기도 했다. 청소하다가 나오는 하늘이 물건 하나에도 아이들은 숨죽여 울었고 책상에 하늘이와 찍은 사진을 보고 울기도 했다.
그렇게 침울했던 분위기도 계절이 바뀌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가끔 딸아이가 주말에 어딘가 다녀오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아니었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 갔다 왔어?”
“하늘이한테…. 혹시 조그맣게 세워둔 비석을 누가 치웠을까 봐. 그리고 하늘이 보고 싶기도 해서 다녀왔어.”
“그래….”
그렇게 하늘이는 우리 기억 속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고 동생도 같은 아파트 앞 동으로 이사를 했다. 조카들은 제 엄마에게 돌아갔고 다시 우리 가족들만 남은 생활이었다.

딸아이가 대학 합격했기에 노트북을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하늘이를 보내고 5년이 훌쩍 넘은 어느 날이었다. 주말에 내려왔던 딸아이는 친구들 만나고 온다며 나갔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엄마, 지갑 집에 있는지 확인 좀 해줘. 친구들이랑 만났는데 나 지갑이 없어. 오다가 흘린 건가?”
아이 방으로 들어가 찾아보니 책상 위에 있었다. 딸아이에게 있다는 말을 전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항상 넉넉하게 주지 못하는 생활비가 마음에 걸렸다. 내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고 딸아이 지갑을 열었다. 가슴이 뜨끔하더니 눈물이 흘렀다. 딸아이는 아직 하늘이를 보내지 않고 있었다. 지갑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에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자영이와 하늘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자영이 품에 안겨서 자영이 얼굴을 핥고 있는 하늘이는 평화로웠다.


(그림= 임솔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딸아이가 들고 온 노트북을 열었다. 역시, 바탕화면이 하늘이 사진이었다. 디지털카메라를 배우면서 찍었던 하늘이 사진 수십 장을 한 장으로 만들어서 바탕화면에 깔아두고 있었다. 딸아이의 일상은 언제나 하늘이와 함께였고 매일 하늘이에게 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딸아이가 들어왔다.
“자영아, 잠깐 엄마랑 이야기 좀 하게.”
“왜?”
“자영이 지갑에 하늘이 있더라. 이제 그만 보내줘도 괜찮아.”
“그 생각은 했는데…. 아직 못 보내겠어. 우리 집 막내였잖아. 엄마가 동생처럼 아껴주라고 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보내. 지금도 엄마 하늘이 이야기하면 울잖아.”
“그래도 보내줘야지.”
“그냥 더 잊어버리면 그때 보낼게. 지금은 컴퓨터를 열 때마다 하늘이가 파이팅 해주는 것 같아서 좋아. 우리가 다시 동물 키울 일은 없겠지만, 다시 누군가 하늘이 대신할 수 있으면 그때 보낼게.”
“요즘에도 하늘이한테 가?”
“지난번에 왔을 때, 정말 오래간만에 갔었어. 그런데 이제 흔적도 없어. 이제 흙이 되었겠지 뭐. 벌써 몇 년인데….”
아이 눈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그날 새벽, 딸아이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딸아이에게 메일을 보냈다. 동영상에 찍혀있는 하늘이 모습이었다. 딸아이가 메일을 확인했지만,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의미를 알고 있다. 딸아이는 사진으로 하늘이를 추억하고 있었지만, 나는 동영상으로 하늘이를 추억하고 있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었다.

딸아이의 문자가 왔다.
“엄마, 반이 동영상 좀 보내줘! 요즘 반이 보고 싶어 죽겠어.”
“지금 뭐 하고 있는지 그대로 찍어서 보내줄게.”
내 품에 안겨 그르렁거리고 있는 반이의 동영상을 짧게 찍어 보내주었다. 2년 동안 다른 곳에서 파양을 여덟 번이나 당했던 반이었다. 우리 가족이 된 지 2년이 넘었다. 딸아이 지갑에는 하늘이 대신 반이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하늘이가 죽은 후, 바로 새로운 가족이 왔었다면 어땠을까? 딸아이의 아픔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남편의 반대 때문에 어떤 동물도 키우지 못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다시 고양이를 키우는 지금. 남편은 완전히 바뀌었다.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부르는 것은 고양이 이름이었다. 씻고 나오면서 찾는 것도 고양이고 잠들 때 부르는 이름도 반이었다.
“하늘이 있을 때 그렇게 좀 해주지. 그럼 하늘이가 낯선 사람 경계하지도 않았을 테고, 그럼 사고도 나지 않았을 텐데….”
“강아지는 지금도 싫어. 반이는 하늘이랑 다르잖아. 이거 봐. 품에 안겨서 쓰다듬어 달라고 내 얼굴에 제 얼굴 비벼대는데 어떻게 미워하고 싫어해. 강아지는 이러지 않잖아.”
그렇게 우리 가족이었던 하늘이는 잊히고 있었지만, 보내지는 않았다. 항상 가슴 속에 우리 가족으로 우리 집의 영원한 막내로 남아 있다. 컴퓨터 파일로 저장된 하늘이 영상을 열어보았다. 종이가방을 목에 걸고 거실을 돌아다니면서 마지막엔 내 품으로 쏙 들어오는 영상이었다.
“이제 좋은 곳에서 예쁜 꿈 꾸며 잘 지내고 있지? 우리 막내 하늘이!”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