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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5-12 00:31:39

재미있고 맛있는 밥상


... 편집부 (2015-04-20 09: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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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봄이 식탁에 앉았다. 구수한 된장찌개와 함께 앉은 봄은 알싸하게 입안에서 맛의 꽃을 피운다. 그러나 조용히 밥 먹는 소리 말고는 들리는 것이 없다. 입은 봄을 만끽하지만, 마음은 아직 시린 겨울인 것 같다. 말없이 밥 먹던 남편이 침묵을 깼다.
“밥은 맛있는데 왜 먹는 것 같지 않는지 모르겠네?”
“마음이 공허하니까.”
“당신도 그래?”
“당신도 나랑 생각이 비슷할 걸요? 여기에 아이들이 앉아서 도란도란 하루의 이야기를 들으며, 깔깔거리며 시끌벅적한 밥상을 생각하잖아요.”
“밥 먹는 시간이 10분도 안 걸려. 그래서 그런가? 분명 맛있게 먹는데, 먹은 느낌이 아니야. 그냥 채운 느낌이지.”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직장 생활 하느라 객지에 나가고, 아르바이트하느라 새벽에 들어오면서 저녁 식사는 남편과 단둘이 하는 날이 많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없어도 서로 하루의 일을 물어보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식사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매일 컴퓨터 앞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나, 현장에서 매일 같은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하는 남편. 새로운 일이 있는 날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이들이 큰 문제 없이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으니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도 길지 않았다.
밥숟가락을 놓고 일어나던 남편이 텅 비어 있는 집을 휘이 둘러보더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래서 나이 들면 취미가 필요한 것 같아. 난 자는 것이 취미라 그냥 서류나 정리하고 잘 테니까 당신은 하던 일 해.”
조용한 저녁 식사는 매일 반복되었다. 먹는 것이 그다지 즐겁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유년 시절에 남편은 언제나 부재중이었다. 모처럼 아이들과 소풍을 가는 날에도 남편은 없었다. 군산에서 일한다 하더라도 주말이 없는 자영업이었기에 함께 하는 날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침에 남편은 새벽 6시에 출근하고 약속이 많아서 밖에서 식사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가 가끔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날이면 남편은 우리들의 식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우리 반 애가 태훈이를 밀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가서 우리 반 남자애 때려줬어. 그러니까 태훈이도 일어나서 그 남자애를 확 밀었거든? 근데 비겁하게 선생님께 일렀어. 나빴지?”
“그러네? 그 남자 애가 먼저 태훈이 밀었잖아? 근데 왜 밀었어?”
“으응, 태훈이가 크레파스 없다고 우리 반으로 왔거든. 근데 뒷문에서 내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느라고 문에 서 있으니까 그냥 밀었어.”
“진짜 나쁘네? 태훈이는 다치지는 않았어?”
“응, 안 다쳤어. 근데 그 형아가 울었어. 내가 이긴 거지? 그렇지?”
아이들은 밥 한 숟가락 넣고, 반찬도 없이 오물거려 삼킨 후 다시 말을 시작했다. 남편의 얼굴이 점점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아이들은 겨우 두어 숟가락 입에 넣은 상태였다. 남편은 식탁에 수저를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누가 식탁에서 시끄럽게 밥풀 튀어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거야? 밥 먹을 땐 조용히 밥 먹고 이야기하면 되잖아? 밥 먹을 땐 조용히 밥 좀 먹자.”
아이들은 놀란 눈망울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내 눈치를 살피더니 꾸역꾸역 밥을 입에 구겨 넣고 있었다.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딸아이의 눈에서 억울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영이 밥 먹을 때 울면 안 되지. 체하잖아. 아빠가 몰라서 그래. 괜찮아!”
“엄마가 밥은 맛있게 재미있게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빠가….”
“아빠는 항상 바쁘니까 밥 빨리 먹고 일하는 것이 습관 돼서 이해 못 하시는 거야. 괜찮아 울지 마. 아빠가 자영이 미워서 소리 지른 거 아니야!”
“아니, 내가 뭐라 했다고 지금 우는 거야? 자영이 아빠가 야단친 거 아니잖아?”
아이들은 말없이 밥그릇을 비우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자신이 먹은 빈 그릇과 수저는 싱크대에 가져다 놓고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난 남편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리 쉬고 조용히 설거지했다. 남편은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이들 방을 기웃거렸다. 언제 울었느냐는 듯 둘이 앉아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안방으로 들어갔다.

설거지를 끝내고 과일과 커피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누워서 TV를 보고 있는 남편 옆에 앉았다. 남편은 나에게 시선만 한 번 흘깃 던지고 내내 TV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리모컨을 찾아 TV를 껐다.
“왜? 또 무슨 말 하려고. 난 당신 그런 표정 보면 겁부터 난다. 또 앉아 봐. 이야기 좀 하게. 이거 하려고 그러지?”
“알고 있으면서 왜 누워 있는데?”
남편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한참 동안 남편을 바라보던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편은 높은 쪽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나는 낮은 쪽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소한 것이지만 남편의 이해를 구해야 할 때의 나의 행동이었다. 동등한 위치가 아니라 내가 더 낮은 위치에서 당신에게 부탁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당신, 요즘 군산에 있기는 하지만, 일주일에 아이들과 몇 번이나 저녁 먹어?”
“잘해야 한 번?”
“하나만 물어볼게. 아이들 몇 학년 몇 반인지 알아?”
“태훈이가 2학년…. 2반?”
나는 한숨을 내리 쉬었다. 말문이 막혔다.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남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지만, 남편은 더 이상 어떤 말도 이어가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지? 태훈이가 2학년이면 자영이는 4학년 일 텐데. 이제 10살이고, 3학년인가? 싶지?”
“그러네? 태훈이가 이제 1학년인가?”
“당신과 아이들이 한 달에 잘해야 한두 번 같이 밥 먹고, 아이들과 마주칠 수 있는데, 밥 먹을 때마다 5분 만에 뚝딱 먹어치우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니 애들하고 대화할 시간이 없잖아.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묻지도 않았고, 알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지?”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하잖아!”
“만약 당신이 나이가 들어서 아이들에게 얹혀산다고 생각해봐. 그럼 아이들이 당신 나이쯤 될 거야. 그렇지? 그때 지금 당신처럼 5분 만에 밥 뚝딱 먹고 일어나서 바쁘다고 들어가버린다면 당신은 아무렇지 않을까? 아니면 30분이든, 한 시간이든 밥 먹으면서 오늘 지낸 이야기도 물어보고, 요즘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어보고 당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좋을까?”
“그거야….”
“근데 그게 나이 들어서 갑자기 습관이 생길 수 있어? 그리고 밥 먹을 때 야단치지 좀 마. 밥을 즐겁고 맛있게 먹어야 그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지. 밥 먹을 때마다 밥상에서 야단치면 밥 먹고 싶겠어?”
“알았어, 알았어. 다음부터 조심할게. 이제 나 보던 거 봐도 되지?”
남편은 나의 말에 건성이었다. 더 말을 해봐야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잔소리로 들을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은 언제 나왔는지 거실에서 TV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남편은 며칠 조심하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밥상에서의 대화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외지로 나가 있는 날이 많았기에 밥상에서 부딪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갈 무렵이었다. 타지의 일이 마무리되고 군산으로 내려와 며칠 쉬는 동안 남편은 집에 있었다. 그날따라 아이들 귀가가 좀 많이 늦어졌다. 헐레벌떡 뛰어들어온 아들은 남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바로 식탁에 앉았다.
“먼지 뒤집어쓰고 와서 손도 안 씻고 밥 먹냐?”
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밥상에 앉았다. 딸아이는 오자마자 손을 씻고 밥상에 앉았다. 남편의 눈초리가 딸아이의 동선을 따라가고 있었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옷이 그게 뭐냐? 초등학생이면 초등학생답게 입어야지. 옷을 입은 것도 아니고, 벗은 것도 아니고, 허리에 묶어서…. 거지새끼도 아니고 참. 도대체 애들 교육을 어떻게 하는 건지. 애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줘서 뭐 어쩌자는 건데?”
식탁에서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던 것인지 말없이 재빠르게 밥을 먹고 있었다. 남편은 딸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냐? 요즘 TV만 보는 것 같던데?”
“숙제 다 해놓고 봐요.”
“숙제가 공부냐? 태훈이 너는 공차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하지? 학원도 안 다니면서 왜 이렇게 집에 늦게 들어와?”

내 인내가 한계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 또한 꾸역꾸역 밥만 먹고 있었지만, 남편은 의식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식탁을 벗어나기 위해 재빠르게 밥그릇을 비우고 있었다.
“밥 먹을 때, 대화하면서 밥 먹으라고 해놓고 왜 다들 꿀 먹은 벙어리야? 왜? 아빠랑 대화하는 것은 싫어?”
“제발 좀…. 그만 하죠?”
“아니 밥 먹으면서 아이들한테 관심 보이라면서?”
“그건 관심이 아니라 야단치는 거잖아요!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네! 당신은 이 분위기가 지금 즐거운 분위기에요?”
“이 사람아. 나는 당신이 밥 먹을 때 대화하라고 해서 하는 거잖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있다가는 큰 싸움이 날 것 같은 판단에서 입을 다물어버리겠다는 내 의지였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나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급체였다. 놀란 남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를 업으려고 했지만, 난 거부했다. 내가 급체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경 예민한 나는 분위기가 어색한 식탁에서는 항상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더군다나 꾸역꾸역 밥을 삼켰던 것이 원인이 됐던 모양이다.

우선 수지침으로 손을 따고, 소화제를 먹었다. 그래도 어지럼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열 개의 손가락을 따고 발가락을 수지침으로 모두 찔러댔다. 한 방울의 피도 아까운 모양이다. 손가락, 발가락 다 찔렀지만, 한두 방울의 피만 흘렀을 뿐이다.

그날 밤, 남편은 다시 “여기 좀 앉아 봐”라는 나의 말을 들어야 했고, 나의 부연설명은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아이들의 공부에 대해서 신경 써주고 옷차림에 대해 아빠가 관심을 가지고 항상 보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야단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부터 남편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야단치기보다 아이들에게 먼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식탁에서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먼저 물었다. 남자친구에 관해 물었고, 담임선생님에 관해 물었다. 그리고 드라마 내용에 대해 아이들과 식탁에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나의 흉을 보는 것도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빠, 엄마가 하는 말 중에 제일 무서운 말이 뭐에요?”
“할 말 있어. 여기 좀 앉아 봐. 난 이 소리가 제일 무서워!”
“아빠, 우리도 그래요. 분명 나 잘못한 것 없는 것 같은데, 엄마가 ‘자영아, 이야기 좀 하게 앉아 봐’ 이러면 막 가슴 떨리고 내가 뭐 잘못 했는지부터 생각한다니까요? 그렇지? 태훈아!”
“난 엄마 목소리가 더 무서워. 장난할 때는 목소리 톤이 높으면서 큰 소리로 부르는데, 야단칠 때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부르잖아. 전설의 고향에서 나오는 귀신 목소리보다 더 무서워!”
“얼라? 시방 뭐시여? 내 흉보는 것 맞지? 그럼 나도 시골 할머니처럼 막 쌍욕 섞어서 야단치면 되는 거지? 워매~ 저 호랭이 씹어 물어갈 년. 그랑께 시방 니가 공부는 안 허고 남자친구랑 노래방을 간다고야! 염병을 허든갑다! 이래 가믄서?”
친정어머니 흉내에 모두 깔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고 있었다. 식탁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은 밥 먹는 시간을 기다렸다. 남편도 밥 먹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적응되었다.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밥 먹는 시간에는 일단 모든 것을 보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났다. 남편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방금 다른 일로 신경전을 벌였지만, 밥 먹을 때만큼은 서로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밥 먹는 자리에서 신경전이 오가면 난 항상 응급실로 뛰어가야 하는 불상사를 맞이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밥 먹을 때 그 즐거움을 가족 모두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중에 야단맞더라도 밥 먹는 시간만큼은 즐거움으로 가득해야 했다.

가족이 모두 모이면 외식을 하는 날도 있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우리만의 대화는 허용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있다는 것이 민폐가 되기도 했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외식은 삼갔고, 온 가족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깔깔거리는 식사를 즐겼다.

온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함께한다는 것이 이제 거의 희박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남편이 나를 흉보는 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삭막하다. 가끔 딸아이의 외로움이 가족을 식사자리로 부르기도 했다. 서울 생활이 힘들기보다 외로움이 힘들다는 딸아이는 한 달에 한 번은 주말에 내려와 토요일 저녁에 밥만 먹고 일요일 날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식사의 즐거움이 가장 그립다는 것이다.

가족을 그리움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자리가 밥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온 가족이 밥상에 앉아 하루의 일과를 들으며, 삶을 들으며, 반주로 소주 한잔 하는 행복이 그립다. 재미있고 맛있는 밥상에 온 가족의 사랑을 얹고 싶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