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한 대립은 언제나 윗사람이 승자다. 목소리 큰 사람이 승자고, 권위를 가진 사람이 승자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립의 결과다. 지금처럼 자동차 보험이 일반화되지 않았을 때, 그래서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 마음에 꼭 맞는 아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니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부모의 기대는 크고 아이들의 역량은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반대로 난 아이들에게 마음에 드는 부모일까? 그 의문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부모라는 관점을 떠나서, 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일까? 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좋은 엄마, 좋은 부모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언제나 고민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대화였던 것 같다. 대화를 통해 아이들의 생각을 읽고, 생각하고, 내가 배려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는 혼자만의 답을 찾았다.
이야기가 아닌 대화를 나누었을 때, 아이들의 생각은 성장한다. 또한, 부모의 생각을 닮아가고 행동이 닮아간다. 아이들이 자신의 사고를 표현할 무렵, 나는 역으로 아이들에게 대화로 설득당하고 뒤돌아보면 내가 속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아이들은 나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나를 설득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언제나 새벽 1시까지 아르바이트하고 들어와 쓰러져 잠들기 바쁜 아들이 조심스럽게 내 방문을 열었다. 내 방에 들어오면 언제나 그러하듯 서예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밝은 표정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울상도 아니었다. 약간 음흉한 미소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심란한 표정인 것도 같았다.
“왜? 오늘 손님 없었어?”
“세 팀 있었어. 손님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도 눈치 보이네?”
“차라리 바쁜 것이 낫지?”
“아무래도 아르바이트는 손님 없고 장사 안되면 해고 1순위니까 눈치가 좀 보여.”
“힘들겠다.”
“엄마, 나 잠깐 나갔다 와도 돼?”
“응? 이 새벽에 어디를 가려고?”
“여자 친구가 생리통이 심해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는데, 약 좀 사다 먹이고 뭐 맛있는 거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아서.”
“여자 친구도 부모님 계시잖아? 혼자 사는 것 아니잖아?”
“두 분 여행 중이셔서 신경 써줄 사람이 없어.”
“그렇다고 피곤하게 일하고 와서 이 새벽에 나간다는 것이 말이 돼? 여자 친구네 집도 멀다면서 차 끌고 가야 하잖아?”
“엄마, 만약에 나도 집에 없고, 엄마 아빠 시골 갔는데, 누나가 혼자 아프다고 생각해 봐. 그럼 남자 친구라도 약이라도 사오고, 밥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주면 고맙겠지?”
“그거야….”
“내가 좀 피곤하더라도 그래도 남자 친구인데 그 정도는 챙겨줘야 하는 거잖아 엄마.”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딸아이가 몸이 약한 탓에 자취하면서 몇 번 병원 가야 할 상황이 있었다. 그때 주변에 부탁할 사람도 없었기에 딸아이 혼자 아픈 몸으로 큰 도로까지 나가 택시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가는 동안 통화를 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고 애타는 마음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나는 아들에게 자동차 키를 내밀었다.
“약국 문을 연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 약 사다 먹이고 일찍 들어와!”
“네에!! 다녀오겠습니다.”
아이가 키를 받자마자 전화기부터 들었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의 발걸음은 바쁘기만 했다. 점점 멀어지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지금 갈게. 조금 늦었지? 엄마한테 허락을 받아야 나도 마음 편해서 그래. 응! 지금 가!”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아들 목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언제부터인가 내가 반대하거나 싫어하는 일을 하고자 할 때,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억지가 아닌 합리적인 방법으로 아이들 또한 대화를 시도했다. 아주 사소한 노트 한 권 더 사는 것, 가지고 장난감이 왜 필요하고 왜 갖고 싶은지 나를 설득했다. 그러나 합당한 이유가 되지 않으면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나를 설득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아이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말은 나에게 진리였다. 아이들 어릴 때부터 9시면 자야 한다는 원칙을 두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9시면 잠자리에 들어가야 했고, 아이들이 학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당연하다는 듯 알아서 잠자리에 들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 되어도 딸아이는 씻지 않았고 내 주변을 서성거렸다.
“9시인데 안 자?”
“엄마, 저 할 말 있어요!”
“왜?”
“왜 꼭 9시에 자야 해요? 좀 늦게 자면 안 돼요?”
“9시에 자야 하는 이유는, 우선 너희 나이 때는 성장이 중요하니까. 키도 크고, 몸도 건강해지려면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 일찍 활동하는 것이 도움되니까 9시에 자라고 하는 거지!”
“조금 늦게 자는 애들도 키 크잖아요. 저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있지만, 그 아이들보다 작아요.”
“네가 성장이 좀 느린 것일 수도 있잖아? 그리고 지금도 키도 작고 등치도 다른 아이들보다 작은데 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면 더 느리게 성장할 수도 있잖아. 그런데 왜 늦게 자려고 하는 건데?”
“…….”
“말을 해야 엄마가 허락하든, 반대하든, 뭔가 결정할 수 있잖아?”
“엄마가 허락하지 않으실 것 같아요. 하지만 아무리 다른 생각을 해봐도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어서…. 다른 말로 엄마를 설득할 자신이 없는데…. 제가 말하는 이유로는 허락하지 않으실 것 같아요.”
“뭔데?”
“저도 11시에 자고 싶어요. 아침에 학교 가면 아이들이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모르는 이야기라 항상 할 말이 없어요. 그래도 아이들 이야기만 듣는데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재미도 없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자꾸 놀려요. 유치원생도 아닌데 어떻게 9시에 잘 수 있느냐고.”
“네 생각대로 그런 이유로는 허락이 힘들 것 같아. 드라마는 엄마도 안 보는데 자영이가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낭비한다는 자체도 이해 안 되는데?”
“하지만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왕따까지는 아니지만, 점점 심해지면 왕따 당하지 않을까요?”
“자영이가 너무 깊게 가는 것 같은데? 설마 드라마 안 본다는 이유로 왕따까지 시킬까?”
“일부러 따돌리지는 않지만, 저 스스로 왕따 되는 기분이 들어요. 애들은 항상 드라마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엄마랑 같이 본다는데요?”
“엄마가 생각은 좀 해보겠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허락을 하지 못할 것 같아. 오늘은 일단 늦었으니까 자고, 내일 다시 이야기해 볼까?”
“엄마도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세요.”
“그래!”
딸아이는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TV를 바라보았다. 허락받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그러나 고집을 부리거나, 울거나 하는 것으로 내 허락을 받아 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림=임솔빈)
다음 날 아침
다른 날보다 1시간 정도 늦게 잤던 아이가 제시간에 일어났다. 대부분 타지에서 일하는 남편이 집에서 아침을 먹는 날도 많지 않았기에, 아이들 아침 식사는 대부분 남편의 식사 시간인 새벽 6시였다. 6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씻고 학교 갈 준비를 마친 아이가 식탁에 앉으면서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음 생각해 봤는데,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어. 있다 저녁에 이야기해 보자.”
“네!”
딸아이는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학교로 출발했다. 왠지 어깨가 처져 보이는 것은 내 기분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저녁.
남편은 늦어진다는 연락이 있었고, 아이들과 셋이 저녁을 먹었다. 딸아이의 주제는 TV 드라마였다. 영화는 좋아하지만, 드라마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나는 딸아이가 왜 드라마를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엄마, 저 다른 거짓말로 엄마를 설득해 볼까 생각해 봤는데요. 그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다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엄마한테 제안 하나만 하고 싶은데 해도 돼요?”
“뭔데?”
“그럼, 일단 일주일만 지켜봐 주세요. 10시에 하는 드라마 11시에 끝난대요. 그럼 11시에 잤다가 항상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고, 아빠랑 같이 밥 먹는 것도 절대 빼먹지 않을게요.”
“엄마가 걱정하는 것은 아이들은 밤에 성장 호르몬이 많이 분출된대. 그걸 놓칠까 봐 걱정하는 거야!”
“엄마가 조금만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아이들이랑 이야기하면서 밥도 먹고, 쉬는 시간에 드라마 이야기도 하고, 학교 끝나고 올 때 애들이랑 이야기하면서 오고 싶어요.”
가슴에서 뭉클한 것이 한주먹 내려앉은 기분이 들었다. 묵직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아이들이랑 함께 밥을 먹지만, 자신은 이야기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쉬는 시간에도,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시간에도 같이 행동하고 있지만, 이야기에 끼어들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키 크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컸던 모양이다. 결국, 딸아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이는 한 달 동안 자신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드라마만 찾아보는 것 같았다. 나 또한 딸아이와 대화를 위해 가끔 드라마를 함께 보기도 했다.
예상대로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 식사시간 대화의 주제가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걱정할 단계는 아니었다. 나 또한 아이들과 드라마를 보며 주고받는 대화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아이들은 내가 반대하는 것에 대한 반항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설득하고, 이해시키면 허락해 준다는 것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일주일 용돈 5,000원이 적은 이유를 설명하고, 용돈 기입장을 내밀면서 나를 설득해서 결국 만 원으로 합의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두 아이 모두 대학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딸아이는 한 달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한 이유를 설명하고 나를 설득한 후 생활비를 40% 인상하는 과감한 반항도 망설이지 않았다.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허락한다 해도 남편의 허락이 필요한 사항도 있었다. 다만 남편은 합리적인 대화가 나처럼 허용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아이들은 더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아빠한테 비밀로 해줄 테니 하고 싶으면 해도 돼.”
“엄마, 그건 아냐. 사실 엄마한테 말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는 것들은 해 봤는데 마음이 조금 찜찜했어. 엄마가 알아차릴까 봐 불안하고, 죄짓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아빠도 설득할 거야.”
“엄마가 조언하는데, 급하게 생각하지는 마. 그리고 아빠한테 허락을 강요하지도 마. 정말 네가 하고 싶으면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아빠가 못 해줘서 미안하게 하는 방법도 하나의 방법이야. 천천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꾸 이야기하다가 보면 아빠도 이해하게 되거든.”
“알았어. 다음에 엄마가 절대 반대하는 사항이 있으면 꼭 엄마한테 그렇게 할 거야!”
“아빠 설득하는 방법을 알려줬더니 엄마한테 사용한다고? 너무 하는 것 같은데?”
아이와 깔깔거리며 한바탕 웃어넘겼지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웃다 생각해 보니, 딸아이는 내가 허락하지 않은 일에 대해 한 달이 넘도록 조용히 나를 조여오는 중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여유를 갖고, 보채지도 강요하지도 않으며, 원하는 모든 것을 다해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에 미안해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이용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알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고 아이들이 나에게 주는 또 다른 행복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아이들의 성장을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철컥!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으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모양이다. 아들은 피곤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먼저 안방 문을 열었다. 자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들어오면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보고부터 한다. 그리고 다시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래, 맛있는 것도 사줬어?”
“응, 배고프다고 해서 국밥집 가서 둘이 국밥 먹고, 집에 데려다 주고 왔어.”
“그래서 기분 좋아?”
“기분 좋다기보다는 조금 안심이 되긴 하지. 그리고 엄마한테 좀 미안한 마음도 있고!”
“엄마한테 왜 미안해?”
“엄마가 싫어할 거 알면서도 내 욕심이 앞서서 새벽에 여자 친구 만나고 왔으니까.”
“괜찮아! 사람 아프다는데 도와줄 수 있으면 좋은 거지 뭐. 혹시? 설마? 안 아픈데 그냥 만나고 싶어서 거짓말한 거야?”
“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 새벽이라 약국 문이 다 닫혀서 24시간 하는 곳 찾아다니느라고 좀 늦게 만났으니까. 약국은 수송동에 딱 한 군데 문 열었더라고.”
“피곤할 텐데 어서 들어가 자라!”
“엄마, 사랑해.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해해줘서!”
“이럴 때만 사랑하지?”
“아닌데…. 평소에도 우리 엄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아들의 얼굴에는 피곤과 미소가 함께 묻어있었다.
아이들의 요구 모두를 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멀리 있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차가 꼭 필요하다는 아들의 설득과 요구는 끝내 실패했다. 나도 허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남편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지만, 강요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아들의 설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딸아이는 커다란 요구는 없었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집요하리만큼 오랜 시간을 설득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아들은 처음 제시한 것을 몇 년이 지나도록 밀고 나가는 형태이고, 딸아이는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면 제시하고, 방법에 대해 합의점을 조절한다는 것이 조금 차이가 있다.
딸아이가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많이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학교에서도 그랬지만 직장이라는 틀에서 대화보다는 호통이 우선이 된다는 것에 적잖게 놀란 모양이다. 인턴 기간 내내 바로 위 상사와 대화가 되지 않고 일방적이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그래도 자꾸 시도해 봐. 호통을 들어줄 때는 들어주고 나중에라도 대화를 시도해 보는 쪽으로.”
“그렇게 시도하고 있는데, 정말 힘들어. 대화를 별로 해보지 않았나 봐. 자신의 의견을 조금 조절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 그래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좀 힘드네?”
집에서 대화 습관은 사회에 나가서도 통용되었다. 딸아이나 아들아이 모두 누군가와 핏대를 세우며 우격다짐하는 것보다 타협하고 대화로 합의점을 찾는 것에 더 익숙해 있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길러진 습관이고 인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길들여놓은 습관에 가끔 내가 역습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반항하는 단계가 점점 진화되어 가고 있다. 며칠 전부터 아들이 외박의 자율성을 호소하는 중이다. 군대생활까지 마친 성인이니 외박은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 옆에서 딸아이가 협력하고 있다. 합리적인 반항에 내가 곧 무너질 것 같다. 그래도 기분 좋은 무너짐이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