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정말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어른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고, 어른의 세상에 물들어 간다.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 때, 반장 선거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른들의 국회의원 선거를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 선거에 부모까지 끼어들면 국회의원 선거보다 더 가관이다. 부정부패는 물론이고, 물량 공세, 패가 갈려 치열한 싸움까지.
어른들의 세상을 빨리 알아버린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이야기한다.
“철들었구나!”
철이 들었다는 것은 어른의 세상을 빨리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가난한 부모를 생각해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것이 철들었다고 이야기한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명제에 대해 난 다시 의문점을 가진다.
가난한 부모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철없는 짓일까? 당장은 철없는 행동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미래를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해 본 사람은 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지만, 그 안에 간직하고 있는 부모에 대한 원망과 가난에 대한 저주.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비관. 그 모든 것들을 벗어나기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니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난한 부모보다 자신의 꿈이 더 우선시 되었다면, 적어도 부모에 대해 원망은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마음도 더 가벼워질 수도 있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감은 잃지 않을 것이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본다면 철없는 아이, 순수하게 자신의 욕심을 부릴 줄 아는 아이가 더 현명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바꿔 말하면 순수함이 아닐까? 어른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이에 맞는 생각을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없는 유일한 부분이다. 어른의 세상을 조금 더 늦게 알았으면 했지만, 나 혼자서 그것을 지켜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심의 세계는 오랫동안 간직하게 해줄 수 있었지만, 어른의 세상을 차단할 수는 없었다. 매일 바라보는 것이 TV고 어른이었다. 바라보며 배워가는 것에 대해 막을 수도 없었고, 통제도 되지 않았다.
아이는 어른으로부터 세상을 배워간다. 사회 규범을 배우고, 규칙을 익히고, 예절을 교육받는다. 그렇게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좋은 모습만을 배우고, 좋은 것만 습득하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것을 부모라면 누구나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잘못된 것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것이 바로 부모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어른의 세상을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그때 우리가 살던 집은 바닷가 근처였다. 작은 슈퍼마켓 2층에서 살고 있었고, 아이들 고모 댁에 가기 위해서는 승용차로 20여 분 걸리는 거리였다. 같은 시내에 살고 있었지만,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뵐 수는 없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시누이 댁에 갔었다. 그날은 시누이 생신이었기에 아이들 유치원이 끝나자마자 남편과 함께 시누이 댁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승용차 뒷자리에서 부산을 떨었다. 아빠와 함께 외출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외할머니 댁에 갈 때와 서울 큰댁에 갈 때를 빼면 항상 아빠가 없는 외출이었다.
아들은 아빠가 운전하는 모습이 멋있는 모양이다. 네 살이라도 사내아이인 모양이다. 남편이 운전하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누나! 아빠 멋있지? 그렇지? 한 손으로 빠앙~. 앞에 가는 차들 다 비켜! 우리 아빠가 일등이야!”
“아빠 운전하는 모습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태훈아! 좀 가만히 있어. 누나 옷 밟았잖아! 엄마, 다음에는 태훈이 아기 의자에 앉혀줘요!”
“그래야 하는데, 아기 의자에 앉으면 태훈이 울잖아. 가만있지도 않고!”
“아빠, 태훈이 좀 혼내줘요. 자꾸 일어서서 아빠 옆으로 가려고 해요.”
나는 아들을 무서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내가 앞을 보는 것 같으면 일어나서 남편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앞에 지나는 차들에게 들리지도 않는 소리를 질렀다.
바닷가 근처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나운동에 가까워질수록 차들이 더 많아지고 복잡해졌다. 아들은 여전히 부산했고, 딸아이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와 함께 시끌시끌했다.
한참 시내로 들어가는 길 신호등이 정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횡단보도에는 파란불 신호등이 들어와 있고, 운전자가 봐야 할 신호등에는 빨간불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남편이 슬쩍 신호위반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아들이 울기 시작했다.
“으앙, 아빠 틀렸어!”
난 뒤돌아 아들의 표정을 살폈다. 정말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뭔가 큰일이 난 것처럼 우는 모습에 남편은 당황해 하며 어찌할 줄 몰랐다. 동생이 울면 항상 엄마처럼 먼저 동생을 챙기던 자영이는 뜻밖에 피식 웃으며 딴청을 했다.
“응? 태훈아 왜 울어? 아빠가 왜 틀려?”
“아빠, 틀렸어. 빨간 불인데 갔어.”
“아! 그건, 횡단보도에 사람이 없으니까….”
“아니야, 아니야, 아빠 틀렸어. 빨리 집에 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
“응? 뭐를 처음부터 해?”
“빨간 불인데 그냥 지나갔잖아.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 빨간불은 멈추고, 파란 불은 지나가는 거잖아. 틀렸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

(그림=임솔빈)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내가 등을 돌려 아이를 설득하려 했지만, 아이는 계속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며 집으로 가기를 원했다.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자영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아들을 보며 한숨을 내리 쉬었다.
“이 바보야! 그것은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너한테 알려주려고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거잖아. 아빠는 어른이니까 그렇게 하는 거야!”
“아니야! 선생님이 그랬어. 빨간불에 지나가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단 말이야. 아빠 죽으면 어떻게 해. 그러니까 빨리 집으로 다시 가!”
자영이는 울고 있는 제 동생의 눈물을 닦아주면서도 한숨을 내리 쉬고 있었다. 한심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들은 시누이 댁에 도착했지만,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여전히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오늘 고모 생신이라서 케이크 먹을 건데, 태훈이는 고모 집 안 가고 차에만 있을 거야?”
“케이크?”
“응, 아까 고모 드린다고 태훈이가 케이크 엄청나게 큰 거 골랐잖아. 그거 현성이 형아랑, 대영이 누나랑, 자영이 누나가 다 먹을 건데?”
남편이 들고 있는 케이크를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아들은 눈물을 닦고 차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여전히 신호위반 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몇 번 차 안을 살펴보더니 밖으로 나왔다.
시누이 댁에 들어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조금 전 이야기를 하니 모두 깔깔 웃었다. 남편은 땀 닦는 시늉을 하며 난감했던 마음을 토로했다. 형제를 만나면 유독 사투리를 고집하는 남편의 목소리는 어느 시골 사랑방을 연상케 했다.
“갑자기 울어 젖히는디, 워매 내가 뭔 큰 잘못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식은땀이 나드랑께요. 근디 태훈이 말이 맞긴 맞는디. 아따 일이 늦게 끝나가꼬 마음은 급허고 횡단보도 건너는 사람은 없고 헝께 신호 위반을 했는디…. 인자 아그들 태우고 조심해야제 안 되것어”
“그래도 효자다잉. 긍께 니가 신호 위반한 것 땜시 운 것이 아니고, 니가 죽을 수도 있응께 울었다는 말 아니것냐?”
“…. 긍께? 듣고 봉께 그라네?”
시누이는 아들을 무릎에 앉혔다.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주며 입에 케이크 한 입 넣어주었다. 아이가 케이크 잔뜩 묻은 입술로 시누이 얼굴에 뽀뽀했다.
“케이크 준께 고모가 이삐냐?”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누이는 고개를 숙여 아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태훈이 아까 왜 울었어? 빨간불인데 아빠가 그냥 지나가서 울었어? 아빠가 죽을까 봐 울었어?”
아이는 느릿느릿 단어를 연결하고 있었다. 남자아이치고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말문이 트였었다. 느리고 더듬거렸고 단어 선택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말을 정리하면
“선생님이 그랬어. 빨간불에 건너면 차가 와서 꽝한다고. 그러면 죽을 수도 있다고. 빨간불은 절대 건너면 안 된다고. 근데 아빠가 빨간불인데 그냥 건넜어. 아빠 죽을까 봐 무서웠어.”라는 내용이었다.
다들 웃고 있었지만, 아이가 하는 말에 그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다. 아이가 케이크를 먹고 있는 동안, 운전하면 할수록 점점 대범해지고 어느 땐 큰 대로에서 신호위반 할 때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게 운전하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결론으로 씁쓸한 표정들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꽤 늦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시누이 댁에서부터 잠이 들었다. 아이들 때문에 조심스럽게 운전하던 남편은 텅 빈 도로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다. 오가는 차들도 거의 없었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남편은 파란불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아들이 무서운 거예요? 아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아들이 더 무서운 것 같아. 지금이야 신호위반 했다고 울지만, 저 아이가 자라서 운전할 때가 되면 지금 내 모습 그대로 따라갈 것이라 생각하니 무섭네. 내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저 아이가 그대로 따라 할 거잖아.”
“그거야 맞죠. 지금 내 모습이 미래의 아이들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걸요? 직업이 다르고 생김새는 다르겠지만, 아주 작은 버릇 하나까지 비슷하게 닮아갈 수밖에 없잖아요. 항상 보고 따라 하는 사람은 부모니까.”
“불현듯 그 생각이 드니까.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치더라니까!”
“이야! 아들이 아빠 교육 제대로 했네!”
그날 이후, 남편의 운전습관은 완벽하게 달라졌다. 완전한 운전교본이었다. 차량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과속하지 않았고, 신호위반은 지금까지도 거의 하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이 뒷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더 조심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이들이 자라서 신호위반 했다고 울어 줄 아이가 없음에도 바르게 운전하는 습관이 아예 몸에 배어버렸다. 아이는 아버지도 바꾸는 무서운 힘을 지닌 강한 존재였다.
아이가 성인이 된 지금.
난 매일 아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군대 전역한 아들은 예전처럼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야 하고 콩나물시루에 박혀있는 콩나물처럼 끼어있는 그 상태가 무척 싫다는 이유로 매일 아침 내 차를 끌고 학교에 간다.
“오늘 엄마 전주 가야 해!”
“나도 오후에 약속 있는데 어떡해 그럼. 엄마가 버스 타고 가!”
“너 학생이잖아. 그러니까 네가 버스 타고 가는 게 맞지. 엄마도 사람들 만나러 가는 거란 마랴!”
“나도 오늘 멀리 가야 하는데, 내 차 가지고 가기로 했다고 며칠 전부터 말했잖아!”
아이와 합의점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엄마가 아들을 이길 수 없었다. 아들이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면 본인뿐만 아니라 세 명이 더 고생해야 한다는 논리로 나를 이겨버렸다.
“그럼 전주 갈 때만 네가 태워다 줘. 올 때는 버스 타고 올게!”
아들이 운전면허 취득한 후, 한동안 내가 도로주행 연습을 시켰었다. 하지만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것은 그다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밖에 나가는 일이 드물었던 것도 있지만, 아들과 같이 나갈 때는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운전했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들은 당연하다는 듯 운전석에 앉았다.
군산 시내를 빠져나와 자동차 전용도로를 진입하기 위한 도로를 지날 때, 아들은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이 없자 빨간불을 무시하고 전진했다. 얼마 전부터 이 글을 쓰기 위해 일기장과 메모를 뒤적거렸던 터라 아들이 제 아빠한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틀렸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 집으로 가!”
“응? 뭔 소리여?”
“너 틀렸잖아. 빨간불인데 그냥 지나갔잖아. 빨간불일 때 그냥 지나가면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틀리지 않을 때까지 다시 해야 해!”
“아 진짜! 그냥 가는 거지. 뭘 또다시 시작해! 유치원생 교육 받어?”
“응! 네가 그랬어. 어린이집 다닐 때!”
“내가 언제?”
아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물론 기억한다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네 살 때 일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들은 소리 내서 웃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그랬어? 네 살 때?”
“응! 아빠가 운전 정말 얌전하게 하잖아. 엄마보다 더 교본이지?”
“그건 그렇지? 아빠한테 운전 배울 때, 나 죽는 줄 알았잖아. 조금만 틀려도 어찌나 소리 질러서 운전대 놓고 집에 오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것이 다 너 때문이야! 네가 하는 말에 충격받았거든!”
“그때부터 아빠가 운전 그렇게 얌전하게 하는 거야? 그래도 운전하다가 다른 운전자들한테 욕은 가끔 하잖아?”
“다른 건 다 고쳤는데 그건 못 고치더라!”
“죽을지도 모르니까 집에 갔다가 다시 할까 엄마? 히히”
아들도 제가 했던 이야기가 쑥스러웠는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웃고 있었다.
신호위반 했다며 울며 떼쓰던 아이가 이제 어른 세상에 완벽하게 적응해서 제 아빠 모습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순수했던 마음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이다. 아니, 성인이 된 지금 네 살 때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순수한 마음,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란다면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조금은 안타깝다.
세상은 아이들에게 빨리 어른이 될 것을 요구한다. 순수함은 어느새 어리석음이 되고, 철없음이 된 지 오래다. 물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의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또 분명한 것은 빨리 어른이 되어야 융통성 있는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다. 그래서 아이들은 점점 더 빨리 순수함을 벗어버리고 어른이 되고 있다. 스무 살이 되면 피임약을 사용해야 한다는 광고를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보다 약한 사람은 짓밟고서라도 도전해야 한다며 가르쳐주고 있다. 어린 다섯 살짜리 소녀가 춤을 추며, 어른의 노래를 부르며 어느 가수 오디션에 나와 어른이 되었다. 다섯 살에 나보다 못한 사람을 이겨야 내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순수함은 이제 동심에도 없다.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다운 아이는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어른들의 치열한 경쟁구도는 학교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고, 세상의 비관도 아이들의 몫이 되었기에 스스로 꽃잎을 옥상에서 던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떤 세상이 바른 세상일까. 모두가 현명하게 어른 세상을 일찍 깨우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졌다 하더라도 난 순수한 아이들을 꿈꿔본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동경해본다.
달도 날이 차야 보름달이 될 수 있듯, 아이들도 세월이 지나야 완전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인정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이제는 그랬으면 좋겠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