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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5-31 11:05:23

생명의 소중함


... 편집부 (2015-05-08 10: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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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도둑』, 박완서 글, 한병호 그림, 다림 1999.

(사진=조하정)

『자전거 도둑』은 박완서 작가님이 쓰신 책이고 여러 개의 단편소설들이 모여 있는 단편집이다.

이 책 속에는 「자전거 도둑」,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 「시인의 꿈」, 「옥상의 민들레 꽃」, 「할머니는 우리 편」,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지막 임금님」이라는 제목을 가진 소설들이 있다. 이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두 소설은 「시인의 꿈」과 「옥상의 민들레꽃」이다.

「시인의 꿈」

아주 좋은 아파트인 궁전아파트에 살던 호기심 많은 소년은 아파트 앞쪽 길가에 자동차같이 생긴 무허가 판잣집을 발견하였다. 그 무허가 판잣집 안에는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소년은 무허가 판잣집에 무심코 들어가게 되었다. 푹 꺼진 침대, 오래된 음식들, 그리고 낡은 책들 등등. 이런 것들이 할아버지의 판잣집에 쌓여있었다. 책들은 그의 호기심에 의해 펼쳐졌고, 그 오래된 책 속에는 여러 가지의 보지 못한 곤충들의 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다.

무심코 펼친 책을 보는 동안 집에 계시지 않던 할아버지는 돌아오셨다. 아직 호기심을 해결하지 못한 소년은 그 곤충들에 대해 물어보았고, 할아버지는 요즘같이 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라며 슬픔에 빠져 대답하셨다. 할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 차례였다. 할아버지는 양로원에서 오셨고 원래는 시인이셨다. 편안한 양로원에서는 틀에 박힌 삶을 사느라 자유를 원하는 시인으로써의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여, 몸이 편한 것보다 마음이 편한 것을 추구하는 할아버지는 밖으로 나오셨다고 하셨다. 하여튼 할아버지께서는 도로가 포장되고 몸만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 싫으셨고, 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곤충들이 아스팔트 도로 속에 파묻히고 오염된 공기 속에서 죽어가는 사회가 어서 예전처럼 문명이 발달되지 않은 깨끗한 사회로 돌아갔으면 하셨다.

이 글을 읽고 정말 곤충들도 시인들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몸이 편한 것을 추구하는 세상이라지만 굳이 곤충들과 같은 아무 죄 없는 생명들까지 죽여 가며 사람들의 몸이 편안함을 느껴야 할 가치가 있을까? 만약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시인들과 그들의 시의 주인공이 되는 곤충들과 동물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편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계속 생각하다보니 국어시간에 배운 최재천 박사의 「동물들은 모두가 서정시인」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그 글은 최재천 박사가 동물들과 곤충들을 관찰하며 그들이 내는 소리를 시를 쓰는 것에 비유한 글이다. 마지막에 그는 매콜리 경의 말을 인용한다. 인용한 말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시는 거의 필연적으로 쇠퇴한다”였다.

처음에는 이 말을 인용한 이유를 그냥 시를 읽을 시간과 시를 쓸 시간이 요즘 사회에는 없어 사라질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하지만 「시인의 꿈」이라는 이야기를 읽은 후에 최재천 박사가 동물들을 시인들에 비유하는 「동물들은 모두가 서정시인」이라는 글을 떠올려 보았을 때엔 순간 다른 쪽으로 해석이 되었다. 그 생각은 바로 「시인의 꿈」에서 곤충들이 없어지고 있다는 내용과 「동물들은 모두가 서정시인」에서 시는 쇠퇴한다는 내용에서 공통점을 찾으면서 나타났다.

「동물들은 모두가 서정시인」에서는 동물들이 시인이었고, 「시인의 꿈」에서는 사라지는 곤충들이 시의 주인공이라고 하였다. 즉, 「동물들은 모두가 서정시인」에서 최재천 박사는 “문명이 발달할수록 시는 거의 필연적으로 쇠퇴한다”를 인용할 때에 시인들인 동물들이 문명이 발달하여 없어짐으로써 시인인 동물들과 그들의 시가 없어진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너무 발달된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동물들과 곤충들의 없어짐을 뜻한다는 말이다.

「시인의 꿈」을 쓴 박완서 작가 역시 문명이 너무 발달되면 좋지 않다는 것을 「시인의 꿈」 뿐만 아니라 「자전거 도둑」 속에 있는 다른 글에서도 나타낸 바였다. 나는 너무 몸이 편한 삶만 추구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은 것 같아 좋고, 시인들과 시가 사라지지 않도록 동물들과 곤충, 그리고 다른 생물들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 제공 책표지)

「옥상의 민들레꽃」

할머니 한 분이 자살을 하셨다.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시며 좋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은 물론,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으셨던 할머니가 자살하신 것이 벌써 두 번째였다.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무서워 아파트 주민들은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였다. 도대체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으신 할머니가 왜 두 분이나 자살을 선택하셨을까?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등의 주제로 회의는 계속되었다.

왜 자살을 택하였는지에 대한 대답은 예전과는 너무 달라진 오늘날의 삶 때문이라고 결론지어졌다. 하지만 아무도 그 결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에, 어떤 한 아이만이 옛 삶의 그리움이 아닌 민들레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서려고 하자, 그의 엄마는 창피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그 아이가 민들레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이유와 경험이 있었다. 그는 그때보다 더 어렸을 때, 가족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살을 하려고 옥상으로 올라갔던 적이 있었다. 뛰어내리기 바로 직전 그 어린아이의 눈에 띄었던 것은 시멘트로 덮여진 옥상 바닥의 구석 사이로 핀 민들레꽃이었다.

만약, 이 민들레 씨앗이 그 조금의 흙을 만나 아주 작은 옥상 바닥의 틈에 들어가 싹트지 못하였다면 이 민들레꽃마저도 다른 씨앗처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떨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아주 적은 확률로 살아남은 꽃이 마치 자신과 같다는 생각을 한 아이는, 자살하려고 하던 것을 멈추었다. 이렇게 좋은 삶을 사는데 민들레꽃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창피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부모님 품으로 돌아온 그 아이는 부모님의 사랑이 진심이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완서 작가는 이 글을 요즘에 힘들어 자살을 많이 하는 청소년들에게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려고 쓰신 것 같다. 결국엔 이야기 속에서 자살을 택한 할머니 두 분도 가족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껴 자살한 것이었다. 아무리 사랑을 못 느끼는 것 같다 하더라도 그게 잘못 느낀 감정일 수 있으니 한 번 더 고려해보고 자신의 길을 선택을 하라는 의미도 담겨있는 것 같았다. 청소년 때가 그런 결정을 여러 면에서 많이 해야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민들레꽃은 아주 힘든 상황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주 적은 확률로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배경지식 조사를 해보니 사람이 태어날 확률은 100조분의 1이라고 한다. 이렇게 아주 생각도 못할 만큼의 적은 확률로 태어난 인간들은 절대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박완서 작가는 이 글에서 말해주고 있다. 이 글을 읽으니 나도 아무리 힘들더라도 절대 자살은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만 자살로부터 막아야 할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또한 막아야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 작가가 민들레꽃을 사람의 위대하면서도 힘든 삶에 비유한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 글을 읽음으로써 삶의 소중함을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고, 나는 이 책을 모든 자살을 시도하고 싶은 청년들에게 추천한다. 물론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 책만이 유일하게 삶의 소중함을 쉽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풀이한 것 같다.

전북교육신문은 매주 금요일 [내 마음을 움직인 책]을 싣습니다.다음 주에 책을 소개할 사람은 금호기계 공장장 정세권님입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