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LOGO
최종편집: 2025-05-12 00:31:39

씨망태와 아기 주머니


... 편집부 (2015-05-11 13:22:10)

IMG
세상 살아가는데 정답이 있을까? 어떤 삶이 바른 삶이고, 어떤 삶이 잘못된 삶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까? 예술분야처럼 아마 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참고서 정도는 있을지 모르겠다. 각자의 환경과 여건, 삶의 철칙에 따라 세상을 살아간다. 그 모든 조건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모든 삶이 같을 수는 없다. 다만 어떤 사고로 살아가고 어떤 생각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조금 더 유익한지에 대한 참고서 정도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첫 시작부터 잡설이 긴 것은 아마도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성교육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엄마인 나도 어린 나이였기에 성 문제에 대해서는 지식도 없었고, 그다지 관심을 가지는 분야도 아니었기에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또한, 성교육은 언제부터 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막막했다. 그 고민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됐다. 너무 빠른 고민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계획은 세워 놓고 실행에 옮길 때까지 많은 수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서….

하지만 결론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때 나는 어떤 말로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나의 답은 하나였다. 그냥 솔직하게 답하자. 그것이 정답일 것 같았다.

어릴 때 어머니께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마 모든 사람이 부모님께 한 번쯤 던졌을 물음일 것이다.
“엄마, 아기는 어디서 나와?”
“너 같이 때라 큰 것이 어디서 나와야. 쩌그 영산포 다리 밑에서 주워왔제. 삼신할미가 꿈에 나타나서 영산포 다리 밑에다가 느그 딸 놔뒀응께 델꼬가라 해서 델꼬왔제.”
어머니의 답은 언제나 엉뚱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그 답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거나, 그 답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냥 피식 웃고 마는 일화일 뿐이었다.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답을 해줘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많은 생각을 했고, 그 결과가 솔직한 답이었다.

딸아이가 나와 비슷한 질문을 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정식 성교육은 아니고, 수업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아기가 생겨나고 나오는 과정을 잠시 언급했던 것 같다. 딸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내 무릎을 만지작거렸다.
“엄마 무릎이 왜?”
“여기에서 어떻게 아기가 나와?”
“응? 아기가 여기서 왜 나와?”
“오늘 선생님이 그랬어. 아이는 엄마 무릎 사이에서 나온다고.”
“무릎 사이에서 나오는 것은 맞아. 자영이가 쉬하는 곳 있잖아? 그 아래에 아기가 나오는 길이 있어. 그 길을 따라서 아이가 나오는데, 쉬 하는 곳이 어디에 있어? 무릎하고 무릎 가운데 있잖아.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야.”
“그럼 아이는 엄마랑 아빠랑 사랑하면 생겨?”
“사랑을 어떻게 하는데?”
“뽀뽀하면 사랑하는 거잖아.”
딸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아이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앉은뱅이책상을 놓고 마주 보고 앉았다. 딸아이는 내 대답이 궁금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한참 망설이고 있었다. 직설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그 기능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한참이나 망설이던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자영아, 자영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지? 어떻게 커다란 아이가 엄마 배 속에 있다가 나올까 궁금하지? 우리 자영이는 태훈이가 엄마 배 속에 있는 거, 꿈틀거리는 거 손으로 느꼈었잖아.”
“기억 안 나는데? 내가 그랬어?”
“하긴 기억하는 것도 무리겠다. 태훈이보다 20개월 먼저 태어났으니까. 우리 자영이가 엄마가 태훈이 가졌을 때 모습을 기억하는 것은 힘들겠네? 음…. 우선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 것이냐면. 아빠는 아기가 생겨날 수 있는 씨를 가지고 있어. 우리 저번에 강낭콩 심었잖아. 화분에. 그 강낭콩을 땅에 심으면 싹이 나오지? 그 강낭콩이 씨앗이 되는 거야. 그렇듯이 아빠의 몸에는 아기의 씨가 항상 저장되어 있거든.”
“어디에 있어? 아기 씨앗은?”
“씨망태라고 있거든? 태훈이 고추 아래에 보면 주머니처럼 있잖아.”
“응 꽁알”
“그래 네 표현대로 꽁알. 거기에 항상 아기의 씨가 있거든. 그리고 엄마한테도 아기의 씨앗이 있어. 아빠는 씨망태에 아기씨를 항상 가지고 있는데, 엄마는 씨망태가 없잖아.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만 아기 주머니에서 씨앗이 생겨. 그래서 아빠가 주는 씨앗하고, 엄마가 가지고 있는 씨앗이 만나면 아기가 생기는 거야. 아기가 안 생기면 아기 주머니에 있던 아기 씨앗이 사라지겠지? 그런데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아기의 씨앗이 처음 생겨날 때, 혹시 아기가 만들어지면 보호해줘야 하잖아? 그 보호하는 것도 같이 생기거든. 그런데 아기가 안 생기면 아기 주머니 안쪽이 벗겨지면서 청소가 되는데 그것이 생리라고 해. 자영이도 조금 더 있으면 아기 주머니에서 아기의 씨가 생기기 시작하면 생리를 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쉬하는 데에서 피 난다고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그건 자영이 몸에서 아기의 씨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거니까.”

딸아이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다보았다. 난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방긋 웃었다.
“지금은 다 이해 못 해도 돼. 자영이가 자라면서 조금씩 알게 될 거야.”
“근데 엄마, 궁금한 것 또 있어.”
“응? 뭔데?”
“아빠가 아기의 씨앗을 엄마한테 어떻게 줘? 선생님 말대로 뽀뽀하면서 줘?”
난감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 것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여덟 살짜리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만한 설명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답한다고 그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난감한 생각에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마침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레고 블록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사랑을 나눌까? 자영아, 남자와 여자가 다른 점이 무엇일까? 왜 자영이는 여자이고, 태훈이는 남자야?”
“음…. 태훈이는 고추가 있으니까 남자고, 난 고추가 없으니까 여자잖아.”
“그렇지? 아빠랑 태훈이는 고추가 있으니까 남자잖아? 그럼 자영이가 블록 쌓기 하는 레고 있잖아? 이거 보면 태훈이 고추처럼 하나는 뾰쪽 나와 있고, 하나는 쏙 들어가 있지? 왜 이렇게 생겼을까?”
“이렇게 끼워 넣어야 둘이 떨어지지 않으니까.”
“그래도 자영이가 이거 떼려고 힘주면 떨어지지?”
“응”
“그럼, 이건 아빠 블록, 이건 엄마 블록. 아빠가 엄마에게 아기의 씨를 줄 때, 이렇게 블록 연결하듯이 쏙!. 넣는 거야. 그럼 아빠에게도 씨앗이 지나가는 길이 있거든. 아기의 씨앗이 그 길을 따라 엄마에게 오는 거야. 그럼 엄마에게도 씨앗이 지나가는 길이 있겠지? 아기가 나오는 길하고 같은 곳이거든. 그렇게 아이의 씨앗을 엄마한테 주는 거야.”
“그럼 엄마는 아빠가 아기의 씨를 주면 지금도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거야? 그럼 엄마 아빠는 이제 사랑 안 해? 맨 날, 맨 날 사랑하면 맨 날, 맨 날 아기 생기잖아.”
“아이고, 우리 자영이 질문이 끝도 없네? 엄마 아빠는 아직 사랑하고 있지. 다만 아기가 생기지 않게 하는 거지. 엄마가 가지고 있는 아기의 씨는 한 달에 한 번만 나온다고 했잖아? 아기의 씨가 나오지 않을 때, 사랑하면 아기가 안 생기겠지?”
“아! 그래서 동생이 태훈이 하나밖에 없는 거야?”
“그렇지. 자영이가 쉬하는 곳은 나중에 자영이가 커서 아기가 자랄 수 있게 하는 곳이니까 깨끗하게 하고 소중하게 해야겠지? 누가 함부로 만져서도 안 되고, 보려고 해도 안 되는 곳이지?”
“엄마, 근데 목욕탕 가면 아줌마들이 다 보잖아.”
“괜찮아 목욕탕은…. 다 같이 보는 거잖아. 그렇다고 만지거나 하지는 않잖아.”
“응!”
아이는 그 이후 매일 비슷한 질문을 했다. 아이가 나오는 길은 어떻게 생겼느냐고 묻기도 하고, 아빠가 아기의 씨를 줄 때, 어떻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다시 설명해 달라고 할 때도 있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기엔 내 설명이 너무 추상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몇 번 반복되는 질문에 답을 주었다. 비슷한 대답이었다.


(그림=임솔빈)

아이가 정확하게 이해했던 것인지는 모른다. 다른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그 전 질문에 대해서는 물어보는 것을 잊어버렸다. 아니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딸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생리가 일찍 시작되었다. 놀라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엄마, 나 생리 시작한 것 같아. 약국에 가서 생리대 사다 하면 되는 거지?”
“응. 사용 방법은 알아?”
“뭐 대충은 알아.”
“처음 하는 것을 초경이라고 하는데, 지금부터 매달 하는 것은 아니고 아마 한동안 없다가 다시 시작할 거야.”
“엄마, 생리는 언제까지 하는 거야? 아기 다 낳으면 안 해?”
“아니, 할머니 정도 되어야 안 하지?”
“그럼 할머니도 생리해?”
“글쎄, 아직은 하실 것도 같은데? 모르지. 그건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르거든. 일찍 시작한 사람은 일찍 끝나기도 하고, 나이가 많은데 하시는 분도 있고.”
“지겹겠다. 난 처음인데 찝찝하고 이상해.”
“배는 안 아파?”
“아직은 모르겠어. 그런데 화장실 가고 싶은 것처럼 배가 먹먹하고 좀 뭐랄까? 찜찜한 기분이 들기는 해.”
“혹시 배가 아픈데 통증이 심하면 엄마한테 말해줘. 약국에서 파는 진통제보다 더 좋은 방법 있으니까. 엄마는 처음 시작할 때 너무 통증이 심해서 데굴데굴 굴렀어. 학교에도 못 갔고. 그런데 할머니가 약을 해주셨거든. 그거 먹고 지금까지 생리통 없거든.”
“알았어. 엄마.”

며칠 전 병원에서 퇴원한 딸아이가 집에 있기에 딸아이 친구들이 몰려왔다. 왁자지껄 떠들던 아이들의 대화 내용이 영화 이야기에서 생리 이야기로 옮겨졌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생리했는데, 죽을 병 걸린 줄 알았어.”
“야,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4학년 때인가? 학교에서 성교육하잖아. 그때 생리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때 졸았나 봐. 학교에 있을 때, 생리가 터졌는데 너무 놀라서 조퇴하고 엄마한테 가서 울고불고 죽을 병 걸렸다고 아주 난리를 쳤잖아.”
“자영이 너는 처음에 안 놀랐어?”
“어휴, 우리 엄마 알잖아. 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생리에 관해 설명해 주더라. 놀라고 자시고 할 것 없었어. 그냥 생리 시작하니까. 아, 엄마가 말한 것이 이거구나. 그런 생각밖에 안 했어.”
“진짜?”
“우리 엄마 알지? 아주 특이하신 거. 초등학교 때 엄마한테 아기는 어떻게 생기느냐고 물어봤더니 엄마가 뭐라고 설명하신 줄 알아?”
“우리 엄마는 그러시던데? 그냥 남자랑 자면 아기 생긴다고.”
“야, 우리 엄마는 남자랑 손잡으면 아기 생긴다고 해서 나 중학교 때까지 모시마랑 손잡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거 봐. 보통 엄마들 다 그렇게 설명하잖아? 우리 엄마는 아예 사실 그대로 설명하셨다. 아빠가 가지고 있는 아기의 씨를 엄마한테 전해주는데, 레고블록에 뾰족한 것이 아빠, 들어간 것이 엄마. 해가면서. 근데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내가 엄마한테 자꾸 물었었나 봐. 6학년 때 우리 성교육 또 받았잖아. 근데 그때 엄마 설명이 생각나더라. 그때 속으로 엄마 설명이 더 쉽고 재미있다는 것 알았다.”
“하여간 어머니 특이하셔. 어머니 여덟 살짜리가 이해한다고 생각하셨어요?”
“아니, 그냥 설명한 거야. 나중에 뭐 대충이라도 생각나겠지 한 거지….”
딸아이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장난기 어린 눈초리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딸아이는 하지 말라는 듯 나에게 고개를 저었다. 아들 친구들과 다른 모양이다.
“엄마, 오늘은 여기까지. 엄마가 그런 거 물어보면 얘들 아마 기절할 거야.”
“뭔데? 어머니 특이하신 거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 준비됐어. 놀랄 준비.”
“우리 엄마 저 눈빛이 지금 뭘 이야기하는 것인 줄 알아? 지난번에 태훈이 친구들이 집에 몇 명 놀러 왔었는데, 술 한잔 마시면서 우리 엄마 느닷없이 소리쳤다. ‘어디 보자 아직 총각 딱지 못 뗀 놈이 어느 놈인지 볼까? 근데 너희들! 피임은 하고 여자애들이랑 자는 거지?’ 이랬더니 태훈이 친구들 아주 표정이 볼만했다. 너희한테도 지금 엄마가 그거 물어보려는 거야.”
딸아이 친구들은 혼비백산하듯 멍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난 배시시 웃었다.
“왜? 너부터 대답하려고?”
“아이고 어머니, 저 사양하겠습니다. 대신 술 따라 드릴게요.”
딸아이 친구들과의 대화는 항상 즐거웠다. 아니 그 아이들의 이야기만 듣고 있어도 내가 그 또래가 되는 것 같았다. 아이들도 부담이 없는 모양이다.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날도 있었지만, 가끔 집에 와서 함께 밥 먹고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하는 날도 많았다. 그때마다 난 그 아이들 손에 이끌려 내 방을 벗어나기도 했다. 이제 슬슬 결혼 이야기가 거론될 나이가 되어가는 아이들.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본 아이들이라서 아직 어리기만 한데, 벌써 2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새벽 늦도록 아이들은 어릴 때 받았던 성교육과 현실에서의 차이점에 대해 열띤 토론을 즐겼다. 어른들의 답은 한 편의 소설이었다는 말과 어떤 것이 더 유용한 답인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답은 없었다. 나 또한 아이들 대화의 틈새에 끼어 듣고만 있기도 하고,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에 답변도 해주었지만, 나의 결론은 항상 같았다. 세상 살아가는 것은 답이 없다. 다만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에 대한 참고사항만 있을 뿐이라는 말이었다.
거짓 답을 듣고 자란 아이나, 직접적인 답을 듣고 자란 아이나 바르게 성장하고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내면까지는 알 수 없으니 내 잣대로 평가했을 때, 잘 살아가고 있다고 답을 내리기도 어렵다. 하지만 표면상으로 그 아이들은 가장 평범하고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너무 일찍 성교육을 시켰던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아이 스스로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었다는 자부심은 조금 가지고 있다. 아이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신체 변화를 차분히 인정할 수 있었다는 것. 그것 말고 무엇이 필요할까. 그다음 성장은 인간의 본능이기에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을….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