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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5-12 00:31:39

기다림이 무서운 아이들


... 편집부 (2015-05-18 09: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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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 홀로 앉아있다. 거실에 5촉짜리 등 하나만 불을 밝힐 뿐, 모두가 어둠이다. 오직 내 작업실만이 부산할 뿐이다. 자정이 다 되어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모두 귀가 전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오늘은 기다림이 두렵다. 집 안에서 나는 소리는 내가 두들기는 자판 소리와 내 숨소리밖에 없다. 적막이 무섭다.

난 기다림이 싫었다. 더군다나 텅 비어있는 집에서 홀로 있다는 것이 공포였다. 지금은 부모님이 나를 버리고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것이 두려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다림은 언제나 공포를 가져온다. 특히 텅 빈 집에서 혼자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부모님은 막냇동생만 데리고 외출을 하셨지만, 밤이 깊도록 돌아오지 않으셨다. 운동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은밀한 즐거움이었다. 노을이 서산으로 넘어가는 무렵이었지만, 내 마음은 들떠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내 마음껏 그 무엇을 한다 해도 소리를 지르거나 잔소리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집에서 꼭 해야 할 일은 있었다. 아버지가 아침에 쑤어놓은 여물을 소에게 줘야 했고, 들에 매여진 염소도 데려오고, 개밥도 주고…. 또 빠진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니 닭 모이 주는 걸 잊었다. 닭은 벌써 닭장으로 알아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난 의미심장한 웃음을 토방에 흘렸다. 무엇을 할까 생각 중이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해보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그러나 막상 하려고 보니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혼자 마땅히 할 것도 없었다. 아이들은 아직 마을창고 앞에서 놀고 있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가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계셨다면 난 벌써 마을창고 앞에서 남자 아이들과 비석 치기, 말뚝박기, 구슬치기를 하며 몇 명은 울렸을 터였다. 그러나 막상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니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어찌 됐든 어머니께서 하지 말라는 것은 모두 다 해보고 싶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작은방 벽장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춘향전 딱지 본, 콩쥐 팥쥐 딱지 본 등 귀한 책들이 많았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락에 촛불을 켜 놓고 벽장문을 닫았다. 책을 읽으려 했지만, 재미없었다. 어머니께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는 마음이 없으니 벽장에서 책 읽는 것이 심심했다. 촛불을 끄고 벽장에서 내려오니 어느새 어둠이 내렸다. 아이들 소리도 조용해졌다. 은행나무가 스산한 소리를 내며 바스락거렸다. 은행나무에 귀신이 거꾸로 매달려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며 등골이 오싹했다. 항상 상상력이 문제였다. 안방에 TV를 켰다. 사람 소리라도 들리면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름 특집으로 매일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던 때였다. 조금 늦은 시각이라 켜자마자 하필이면 귀신이 피를 질질 흘리며 으스스한 음악이 공포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텔레비전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빨리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임솔빈)

벽장에서 꺼냈던 책이 생각났다. 전래 동화 모음집이었다. 한, 두 편 읽고 나니 귀신이 나온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 어느새 나는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서 도술을 부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나의 시선은 대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부모님은 돌아오시지 않으셨다. 마루에 앉아 대문을 바라보았지만, 어둠뿐이었다. 난 집이라는 탈을 쓴 어둠의 아가리에 앉아 있었다. 시계를 바라보았다. 겨우 9시가 지났다. 모기는 내 온몸을 구석구석 탐색하고 있었지만, 방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1초라도 부모님을 빨리 만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시간이 지날수록 귀신은 상대할 수 없는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다. 부모님이 동생만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려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귀신 따위가 접근할 수 있는 공포감이 아니었다.

몇 번이나 마을 창고까지 나가보았지만, 부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앞집 오례네 집에서는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와 상관없는 행복한 웃음소리는 어린 심장에 못질하는 소리로 들렸다.
집으로 돌아와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루에 앉아 있었다. 기둥에 기대어 울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내가 잠에서 깬 것은 어머니의 천둥, 벼락같은 호통소리 때문이었다.
“오매, 오매 호랭이 씹어 물어갈 년, 이것이 뭔 일이당가. 오매, 오매 모기 뜯긴 거 좀 보소. 늦는다고 했응께. 밥 처묵었으믄 방에 들어가서 잘 일이제. 시방 마루서 퍼 자빠져 자고 있냐? 에마리오 어찌께라? 모기가 을매나 뜯어 처묵었는가 온몸이 시뻘건 허당께요!”
“모기 물렸다고 죽것어?”
“모기도 많이 뜯기믄 뇌염인가 뭔가 걸린다고 허드만!”
아버지께서는 이미 어머니보다 키가 더 커버린 나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얼굴부터 시작해서 발가락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눈물이 났다. 부모님이 돌아오셨다는 기쁨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음마? 가시낭년 서럽게 우는 것 좀 보소. 누가 뭐라 허드냐? 뭐시 서러워서 운다냐잉?”
“당신이 소리 지릉께 놀래서 글제!”
아버지께서는 물파스를 여기저기 바르시더니, 얼굴 부위에 빨간약을 바르셨다. 눈물 때문에 빨간약이 흘러 얼핏 보면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딸랑구 전설에 고향 나가믄 딱 좋것네. 귀신이 피눈물 흘리는 것 같당께. 고만 울어. 뭐땀시 울어. 밥은 묵었어?”
“예!”
“음마? 우리 딸 철들었는갑네? 아부지한테 존댓말로 대답도 허고?”
어둠 속에서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그 어둠이 주는 무한한 상상력은 언제나 슬픔으로 결론이 난다는 것을. 기다림은 처음엔 은밀한 즐거움을 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가 된다는 것을.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이셨기에 어쩌다 한 번 귀가가 늦었던 것뿐이었지만, 그 공포는 언제나 반복됐었다.

딸아이가 학교 들어가서 처음 사귄 친구가 집에 왔다. 어린이집 다닐 때는 종일반이어서 친구들과 집에서 놀 시간이 없었기에 딸아이가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엄마밖에 모르던 아이가 밖에서 친구를 사귀었다는 것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점심을 먹이고, 직접 간식을 만들어 먹였다. 아이들은 무슨 말이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인지 오후 내내 쫑알거리며 입이 쉴 새가 없었다.

그런데 딸아이 친구가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저녁까지 같이 먹었지만, 그 친구는 다시 딸아이와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숙제도 하고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심 걱정이 되었다.
“혜선이 엄마가 기다리실 것 같은데 괜찮아?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괜찮아요. 엄마는 밤 10시 넘어야 집에 오세요.”
“그럼, 아빠는?”
“아빠는 항상 11시 넘어야 들어오거나, 집에 아예 안 들어오시는 날도 많아요.”
“그럼 집에 아무도 없어?”
“네!”
혜선이는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하지만 내가 꺼낸 말에 눈치가 보이는지 책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난 아이들에게 과자와 주스를 내어주며 혜선을 자리에 앉혔다.
“괜찮아, 있다가 아줌마가 집에 데려다 줄게. 10시 이전에 집에 가면 되는 거지?”
“네!”
“정말 집에 아무도 없어? 그럼 혜선이는 언제부터 집에 혼자 있었던 거야?”
“유치원 다닐 때는 할머니가 계셨는데요,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회사 다니셔야 한다고 이제 다 컸으니까 혼자 있으라고 했어요.”
“그럼 점심이랑 저녁밥은?”
“집에 가면 점심때 먹을 빵하고 우유 있고요. 저녁은 엄마 오시면 먹어요.”
“저녁에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아?”
“….”
아이는 맑은 눈동자로 나를 빤히 바라다보았다. 고개를 젓고 있었지만, 나와 마주친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눈물만 뚝 흘렸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에 아이를 끌어안았다. 혜선이는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나와는 다른 마음이겠지만, 또 다른 공포와 조용히 싸우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여덟 살, 아직은 혼자 있기에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모를 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혜선이 부모님 또한 나름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느 부모가 어린아이만 집에 두고 싶을까. 밖에서 일한다 한들 마음 편히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남편이 들어와서 낯선 아이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며칠 동안 비가 온 탓에 외지에 나가지 않고 군산에서 밀린 일 처리를 하는 중이었다.
“시간이 늦었는데, 부모님이 기다리겠다.”
“10시 넘어야 온다는데? 집에 혼자 있어야 한다고 해서 데리고 있었어요. 이제 아이 데려다주려고 나가려던 참이에요.”
“알았어!”

혜선이는 우리 집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 집이 학교 앞 큰 도로였고, 혜선이 집은 큰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가면 있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난 그때야 그 아이 목에 걸려있는 현관문 열쇠를 보았다. 집에서는 옷 안에 감춰두고 있어서 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기 위해 열쇠를 손에 쥐었다. 그때 누군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더니, 나를 쏘아 보았다.
“뉘신대 남의 집 앞에 서 있는 거죠?”
“아, 혜선이 어머니세요?”
여인은 정장 차림에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차림새로 봤을 때, 전문직 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아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저희 집에 무슨 일이죠?”
“혜선이 친구 자영이 엄마예요. 아이가 집에 밤늦게까지 혼자 있어야 한다고 해서 저희 집에서 데리고 있다가 늦은 밤이라서 데리고 왔어요.”
“죄송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럼 전 이만….”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세요.”
“아니에요. 시간도 늦었는데 다음에 주세요. 혜선이 낼 보자.”
“네, 안녕히 가세요.”
그녀는 내가 계단을 다 내려갈 때까지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6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선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난 5층 계단에 내려와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너 엄마가 아무나 집에 데려오지 말랬잖아! 너 혼자 있다는 이야기도 하지 말랬지?”
“자영이 엄마 좋은 사람인데….”
“네가 어떻게 알아? 잘 대해주면 다 좋은 사람이야? 너 당장 내일부터 외삼촌 학원에서 엄마 올 때까지 공부해! 알았어?”
“싫어! 외삼촌도, 외숙모도, 언니도 다 나 싫어한단 마랴! 엄마 욕하는 것도 싫어!”
아이를 데려다주면서 혜선이 엄마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아이를 돌봐준다는 것이 오히려 아이를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내 오지랖이 또 한 아이의 눈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내 기우는 또 다른 오지랖이었는지도 모른다. 혜선이는 매일 자영이와 함께 들어왔다. 자영이가 피아노 학원 가면 함께 따라갔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쌍둥이를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몇 번 혜선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자리에 없었다. 지금이라면 휴대전화라도 있어서 연락이 쉬웠겠지만, 그때 당시 휴대전화는 상용화되지 않았었다.
연락할 방법이 없어 혜선이 외삼촌이라는 분께 연락해 놓고 혜선이는 매일 밤 9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매일 데려다 주었지만, 혜선이 어머니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혜선이는 혼자 집에 있으면 뭐가 가장 싫어?”
“무서워요.”
“아파트는 현관문만 닫으면 아무도 못 들어오잖아. 그러니 무서워할 것 없어! 혜선이가 문만 열지 않으면 돼!”
“엄마가 오지 않을까 봐 무서워요.”
“응? 엄마 일 끝나면 당연히 오시잖아! 매일 오시니까 이제 그런 생각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가끔 제가 말 안 들으면 엄마가 그랬어요. 아빠처럼 나가서 오지 않을 거라고!”
“그거야 속상하니까 그렇지. 혜선이 엄마는 일도 해야 하고, 혜선이도 키워야 하잖아. 그러니까 항상 힘드신데 혜선이가 말 안 들으면 더 속상해서 그렇지! 엄마가 항상 집에 들어오시지? 혜선이가 집에 있으니까 당연히 들어오시는 거지! 이제 무섭지 않겠지?”
“그래도 무서워요. 아무도 없으니까. 심심하고 밤 되면 무서워요. 맨날 엄마 언제 오나 베란다에서 주차장 보고 있는데, 베란다 창고에서 사람이 나올 것 같아요.”
아이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던 나도 느끼는 공포였다. 무한한 상상력에서 나오는 공포. 가끔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책을 보다가도 문득 벽장을 보면 사람이 벽장에서 기어 나올 것 같은 생각에 아이들을 끌어안고 누운 적이 많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벽장에서 요정이 밤에 나와 아이들과 놀아주는 동화를 만들어 들려주기도 했다.

혜선이와 딸아이를 위해 동화를 만들었다. 물론 내용을 구체적으로 구성하거나, 동화의 형태를 갖춘 동화는 아니었다. 대략 줄거리만 생각하고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동화들이었다. 그때 일기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매일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베란다 창고에서 나온 자그만 토끼와 우정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였다. 벽장에서 나온 요정 이야기와 맥락은 비슷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낮에는 인형처럼 아이의 가방에 매달려서 하루 종일 함께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밤이 무섭지 않고 외롭지 않아 언제나 즐겁게 지낸다는 이야기. 혜선이의 공포를 조금이라도 없애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였다.

며칠 뒤
혜선이 어머니가 찾아왔다. 슈퍼마켓 2층에서 초라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적잖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아주 작은 부엌과 냉장고 하나 들어가면 방과 방으로 연결된 통로로 사용되는 거실. 그녀는 들어서며 두리번거렸다. 난 작은 찻상에 차를 들고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다.
“좀 누추하죠? 제가 좀 게을러서요.”
“아…. 아니에요. 아담하고 정겨운데요. 뭐.”
“그리고 참 죄송해요. 혜선이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는데, 자리에 안 계셔서.”
“아니에요. 제가 죄송해서 찾아뵈었어요. 사실은 저희가 서울로 이사 가는데, 가기 전에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게 하고 싶어서 자영이 집에 있다는 거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며칠 전부터 달라졌어요. 1년 가까이 집에 혼자 있었는데,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저도 마음이 아팠고요. 그런데 며칠 전부터 재미있어하더라고요. 물어보니 작은 토끼 요정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혹시 동화 작가세요?”
“아니에요. 혜선이 상황에 맞춰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뿐이에요. 공포를 이기는 방법은 호기심이잖아요. 공포를 느끼는 것에 어떤 의미부여를 해 주면 그것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아이들이 저 벽장을 보고 무섭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요정 이야기를 해줬는데 처음에는 별 반응 없었지만, 반복하니 호기심도 생기고 무서움도 잊어버리기에 비슷한 이야기를 해 준 것뿐이에요.”
혜선이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는 떠났다. 혜선이도 떠났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혜선이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난 가끔 그 밝고 해맑은 아이를 생각해 본다.

맞벌이가 당연하게 생각되는 시대에 들어서면서 아이들은 기다림을 일찍 배운다. 밤늦도록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이 늘면서 우리 집은 객식구가 끊임없었다. 친구들과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두 아이 덕분이었다. 그 아이들이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기다리는 무서움이었다. 혼자라는 공포였다. 기다림은 공포를 만들고, 공포는 상처를 만든다. 그렇게 일찍 기다림을 배운 아이들은 기다림을 가장 두려워한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지 않고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아이들에게 기다림을 배우게 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라는 상실감을 일찍 가르쳐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내 작업실 문을 여는 것이다. 텅 빈 집에 들어오는 것이 싫은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맞벌이해야만 숨이라도 쉴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엄마의 자리를 운운한다는 것은 배부른 소리인지도 모른다. 경제,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세대에 조금 덜 쓰고, 조금 더 가난하더라도 아이의 해 맑은 웃음을 지켜달라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줌마의 헛소리일 수도 있다. 지금이 조선 시대도 아닌데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무엇을 위해 밖에서 일해야 하는지 한 번만 더 생각해 본다면 해답이 있을 것 같다. 왜 아이가 홀로 집에서 기다림의 고통을 배워야 하는지 한 번만 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엄마로서 가장 행복할 때는 아이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일 때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