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행동에 관한 내 반응을 생각해 볼 때, 가끔 나 자신도 놀랄 때가 있다. 무관심한 것인가. 관대(寬大)한 것인가. 그 경계선이 모호할 때가 있다. 다른 일은 시행착오가 있다 하더라도 그 실수를 바탕으로 다음에 잘하면 된다. 그러나 자식 키우는 일에는 시행착오란 있어서도 안 되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뒤돌아보면 내가 겁 없이 무모한 결정을 했던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결과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기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행동했던 것은 아니다. 나름의 규정을 만들어 그 기준선에서 판단했던 것은 사실이다. 가끔 그 규정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아들아이에게 그 규정은 무용지물이 될 때가 많았다. 규정을 깨뜨리면서 아이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것이 무관심의 표현인지, 관대함인지 나 자신조차 헷갈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 놓은 기준은 넘어가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편하기 위해 규정된 조건을 관대하게 완화시켜준 적은 없었다는 것이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아들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중간고사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아들아이가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표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무슨 일 있어?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이잖아?”
“병원 가려고 일찍 왔어!”
“왜? 어디 아파?”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애들이랑 유도하면서 놀았는데, 가슴이 너무 아파. 그래서 병원 간다고 선생님께 말하고 조퇴했어.”
“학교에서 다친 거야?”
“그런 것 같아. 애들이랑 놀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의심의 눈초리를 아들에게 보냈다. 주변 친구들이나, 선배들한테 맞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얼굴이나 다른 곳은 상한 곳이 없었고, 멍들었다거나 맞은 흔적은 없었다.
“병원 가자. 크게 다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집 앞으로 갈까?”
“응!”
아들과 집 앞에 있는 의원급 정형외과를 찾았다. 갈비뼈에 금이 간 모양이다. 의학상식이 없는 내 눈에도 미세하게 깨어진 부분이 보였다. 의사는 조금 더 큰 병원 가서 입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소견을 보였다.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정형외과를 다시 찾았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친구들하고 장난치다가 부딪히거나 하면 살짝 금이 가 있는 부분이 깨지는 수도 있으니 입원치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 통원치료도 가능하고요.”
“내일부터 중간고사 시험기간인데….”
“그럼, 시험 끝나고 다시 한 번 보도록 하죠. 학교에서 절대 조심해야 해. 알았지? 무거운 것은 절대 들지 말고, 친구들과 부딪히거나 심한 장난하면 안 돼!”
“네!”
아들은 공부와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시험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시험은 봐야 했고, 그 때문에 3일 뒤에 병원을 가야 했다. 하루, 이틀 정도는 아이가 무척 조심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뛰지도 않았고, 좋아하는 축구를 하러 나가지도 않았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달려왔다. 그렇게 중간고사가 끝나고 병원을 찾았다. 아이는 환자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일 만큼 씩씩했다.
“젊다는 것이 좋긴 하네요. 엑스레이 보이시죠? 저번에 이곳에 살짝 금이 간 것이 보였는데, 지금은 희미하네요. 통원치료 받아도 되겠어요. 지금처럼 좀 조심하면 될 것 같아요.”
아들은 실망한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의사는 피식 웃었다.
“왜? 실망했어?”
“선생님, 그냥 입원하면 안 돼요?”
아들은 내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의사에게 물었다. 간절한 눈빛이었다. 의사는 나를 쳐다보았다. 결정해야 했다. 내가 답이 없자 아들은 나를 바라보더니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시험도 끝났으니까 나도 입원 좀 해보게. 학교 가기 싫은데….”
“학교 가기 싫어서 입원하는 놈이 어디 있어?”
“어머니, 그냥 입원시키세요. 학생들은 3일만 입원시켜 놓으면, 퇴원시켜 달라고 난리죠. 특히 남자애들은 더 심해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노는 것에 익숙한 아이라서 더 즐거워할 수도 있어요!”
“대신, 1주일 넘어야 퇴원할 수 있고 그전에는 절대 퇴원 안 되는 것으로 하죠!”
의사는 나에게 찡긋해 보였다. 자신만 믿으라는 이야기 같았다. 병원비는 실비 보험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입원하기로 했다. 아들은 금방이라도 입원실로 뛰어 올라갈 기세였다. 입원 서류를 작성하고 병실로 올라갔다.
대부분 중장년의 어른들이 병실에 가득 누워 있었다. 보호자로 내가 그곳에 있기엔 뭔가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저녁까지만 있다가 집에 가야겠다. 혼자 있을 수 있지?”
“엄마 지금 가도 돼! 뭐 못 걸어 다니는 것도 아닌데, 혼자 있어도 돼!”
“친구들 몰려와서 떠들지 말고!”
“알았어요. 알아서 할게!”
“다른 환자들한테 민폐 끼치는 일 하지 말고. 네가 젤 어리니까 심부름도 좀 해드리고….”
“알았으니까. 인제 엄마 집에 가!”
아들은 내 등을 떠밀었다. 아들이 처음 입원하는 날이었다. 아니, 백일도 되지 않았을 때, 급성 후두염으로 입원한 이후 처음 입원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학교에 가야 할 멀쩡한 아이를 입원시키는 것이 맞는지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일주일 동안 병원 입원이 아이에게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집에서 짜증을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주로 축구나 농구를 하러 간다고 나가지만, 운동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걱정이 앞섰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날 점심에 병원에 들렀다가 저녁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열다섯 살짜리 아이가 주변 사람을 의식해서 조용히 한다는 것이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아들보다 더 작은 키의 사내가 아들과 깔깔거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병실이었다. 난 같은 병실 환자를 먼저 둘러보았다. 아들과 사내가 나누는 대화에 같이 웃으며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내는 벌떡 일어났다.
“태훈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아, 네”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내였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수수한 얼굴을 하고 커다란 안경이 그의 얼굴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목례를 하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나 1학년 때, 담임선생님. 엄마가 선생님 만난 적이 없어서 모르지?”
“아, 죄송합니다. 제가 좀 무심한 엄마라서 찾아뵙지 못했어요.”
아들은 1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중간에 한 번씩 내 흉을 봤다. 아들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아들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어색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잘하지 못하는 나였기에 더욱 어색함에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더군다나 1학년 때 담임선생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대화를 나눌 화젯거리를 찾지 못했다. 전 담임선생님께 음료수를 권했다.
“학생들은 집에서 모습하고 학교에서 모습이 다르다던데, 선생님 저희 태훈이는 학교에서 어땠어요?”
“어머니도 아시겠지만, 태훈이가 1학년 1학기 때는 공부를 잘했죠? 그러다가 여름방학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2학기 되면서 공부에 관심이 없어졌더라고요.”
“네, 알고 있어요. 핑계겠지만, 아무래도 함께 사는 외사촌 영향이 큰 것 같아요.”
“그 학생은 저도 알아요. 태훈이 누나랑 같은 반이었다가 졸업했죠? 지금은 익산에서 학교 다니면서 기숙사 생활하고요.”
“네!”
“태훈이가 공부에 관심이 없어진 것 말고는 별다른 문제는 없었습니다. 집에서 모습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까불기는 하지만 예의는 잘 지키고, 거칠기는 하지만 다른 아이들 괴롭히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전 무엇보다 태훈이가 왜 다쳤는지 궁금해요. 혹시….”
“어머니 걱정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태훈이가 누구를 때릴 놈도 아니고, 그렇다고 맞을 놈도 아니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담임선생님도 아닌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병문안 왔다는 것에 나는 스스로 격려했다. 적어도 담임선생님께 나쁜 아이, 못된 아이로 낙인이 찍힌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공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 없는 아들을 둔 엄마라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나쁜 짓만 하지 않는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마음. 딸아이는 무관심이라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되는데, 입원시켰다는 말을 듣고 있던 딸아이는 화를 냈다.
“엄마, 그거 관대함을 포장한 무관심이야. 다른 엄마들 같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잖아!”
“그건 기준 차이 아닐까? 네가 야간자율학습하기 싫다고 담임선생님께 전화해 달라는 것과 같은 것 아닌가? 공부하기 싫은데 억지로 앉아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잖아?”
“태훈이는 원래 공부하기 싫어하는데, 그럼 학교 안 가도 되겠네?”
“그건 아니지! 적어도 학교는 가야지. 예전 엄마 친구가 했던 말이 난 정답이라고 생각하거든. 말했잖아. 엄마 친구가 했던 말. 학교를 아예 다니지 않은 것과 뒷문으로라도 다니는 것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그래서 학교는 가야지!”
“그래, 그런데 왜 입원 시키느냐고! 태훈이가 며칠 투덜대는 거 듣기 싫어서 그냥 입원시킨 거잖아. 그러니 무관심이지”
“그건 아니야.”
“난 엄마가 태훈이한테는 공부도 하라고 하고 강제로 책상에 앉혀 놓기도 했으면 좋겠어. 지금처럼 ‘네가 하고 싶은 목표를 찾아봐’라는 말로는 태훈이가 책을 펼 수 있도록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딸아이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다른 것에 있었다. 집을 지겨워한다거나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해지는 것을 우려했다. 어떤 말도 들어줄 수 있는 엄마가 있고, 어떤 이야기도 통하는 집 분위기를 유지해서 아이가 집을 벗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싶었다. 사춘기만 넘어가면 다시 공부에 관심을 두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림=임솔빈)
아들은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이 지나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은 지루함과 따분함에 견디기 힘든 모양이었다. 집에 있는 나에게 전화나 문자를 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삼일 째 되는 날이었다.
“엄마, 나 퇴원하면 안 돼?”
“응, 안 돼!”
“왜?”
“너 의사선생님하고 약속했잖아. 일주일은 무조건 입원하기로!”
“엄마가 말해서 퇴원 좀 시켜줘!”
“아니, 나도 의사선생님 의견에 찬성이야!”
“아, 진짜 심심해! 애들도 학교 끝나야 올 수 있고 전화도 안 되고!”
결국, 아들은 일주일을 넘어 8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하던 날, 아들은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들과 친분이 두터워져 있었다.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기도 하고, 작별의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태훈아, 학교 갔다가 공부하기 싫으면 또 입원해. 나 앞으로 6개월은 병원에 있어야 한다.”
“삼촌, 저 절대 입원은 하지 않을 거예요. 가끔 병문안은 올게요!”
그 뒤로 몇 번인가 병원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만난 인연들과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스쳐 가는 바람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친화력을 가졌다.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은 친화력이었다.
“자영이는 공부하는 쪽으로 관심이 많은데, 아들은 사람 사귀는 쪽으로 타고 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요즘 세상에 인맥이 재산이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의 말이었다.
그 뒤로 아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일은 없었다. 운동하면서 가끔 다치기는 했지만, 입원할 정도는 아니었다.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유전적 요인인지 건강하게 군 생활까지 마쳤다.
딸아이는 아들아이와 다르게 약체였다. 서울로 취업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서 딸아이는 급하게 군산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입원이었다. 1년에 한 달 정도는 병원에서 살았다. 이번에도 역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딸아이는 병원에 입원하고 내내 잠만 잤다. 서울 생활을 그다지 오래 한 것도 아닌데, 이미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내리 사흘 동안 잠만 자던 딸이 눈을 떴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들은 혀를 내둘렀다.
“누나, 병원 지겹지 않아?”
“난 좋아. 병원만 오면 그렇게 잠이 잘 와. 나 서울에 있는 동안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는 것이 소원이었잖아. 일찍 끝나고 와서도 잠이 오지 않아서 거의 날 꼬박 새우고 출근하고, 그걸 반복하다가 보니 너무 힘들었어. 그리고 병원이 뭐가 힘들어? 가만히 있어도 세끼 다 주지 잔소리하는 사람 없지. 자고 싶을 때 실컷 자도 되잖아!”
“근데 엄마! 누나한테 엄마가 무관심한 것 인정하지?”
“응?”
“요즘처럼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 힘든 때에, 잘나가는 광고회사에 취업했잖아. 그런 좋은 곳을 그만둔다는데 그냥 그래라 하는 엄마가 어디 있어?”
“아프다는데 그럼 어떡해?”
“회사 가기 싫으니 아프다고 하는 거지!”
그때였다. 딸아이는 동생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내가 너냐? 회사 가기 싫다고 아프게?”
“누나도 일주일만 있으면 병원에서 나가고 싶을 거야!”
“작년에 한 달 넘게 있었는데 난 병원 편하더라.”
두 아이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관심과 관대함의 경계선은 어디일까? 나는 지금 아이들에게 관대하다는 마음으로 포장하고 무관심한 것은 아닐까. 진정 아이들을 위하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생각을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고집을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일까? 아직은 어떤 것이 정답인지 찾지 못했다. 다만, 약간은 무관심해 보이지만,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합의점을 찾는다면 아이들 스스로 제 일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아이들이 잘못된 선택은 하지 않았다.
얼마나 더 지나야 어떤 것이 답이 될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 판단이 필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든 그들만의 인생의 답은 그들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무관심과 관대함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내 어머니도 이런 걱정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머니의 답은 무엇이었을까?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