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청소년들의 건전한 문화시설이다. 아주 작은 소도시에서 산다는 취약점 때문에 그 안타까움이 더 강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나마 아들은 운동을 좋아하니, 축구, 농구, 배드민턴 등 주로 운동하는 친구들과 어울렸지만, 운동을 싫어하는 딸아이는 친구들과 공원이나, 친구 집에 모여 수다를 떠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건전한 놀이 문화.
어른들 또한 모이면 건전하게 할 수 있는 놀이 문화는 없다. 기껏해야 특정 취미로 만난 사람들만 있을 뿐, 친목으로 만난 사람들이 가는 곳은 식당과 술집, 노래방 정도가 풀코스다. 물론 특정 부류의 만남은 좀 다르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엔 식당과 술집이다.
아이들은 외박을 꿈꿨다. 딸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친구 집에서 자고 싶어 했다. 가까운 친구들끼리 모여 밤새 수다를 떨고 마음속 고민이나, 이성 친구 이야기하며 하룻밤 정도 외박을 꿈꿨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외박은 금지였다. 학교에서 공식적인 공문이 오는 것 이외에 외박은 금물이었기에 아이들은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내 생각은 흔들림이 없었다.
딸아이의 항의가 시작되었다.
“엄마,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친구 집에서 자고 올 수 있는데 나만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줘요!”
“그럼, 그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그럼 되잖아.”
“친구 집에서 잘 때는 대부분 그 애 부모님이 집을 비우실 때라는 것은 엄마도 알잖아요. 부모님이 계시는데 어떻게 자유롭게 놀아요?”
“너희가 자유롭게 놀고 싶다는 것은 무엇인데? 부모가 계시지 않아야만 할 수 있는 것.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남자애들이랑 노는 것?”
“엄마, 우리 아직 중학생이라 그런 것 안 해요. 엄마는 항상 걱정이 많아서 탈이에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해서 걱정하는 것. 그것도 병이에요!”
“그럼, 친구들을 데려와서 집에서 자. 엄마는 그냥 서재에서 일만 할 테니까. 너희가 알아서 밥 해먹고, 알아서 치우고 놀면 되잖아?”
“그래도 엄마가 있는데 어떻게 놀아요? 애들이 부담스러워서 못 오지!”
“그럼 실험 삼아 하루만 놀아보면 되겠네!”
실수였다. 꺼내지 않아야 하는 말을 난 꺼내고 말았다. 방학 며칠 남겨둔 어느 날, 딸아이는 반항이라도 하듯 친구 다섯 명과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토요일은 격주로 쉬었던 때였다. 금요일 밤에 데리고 온 친구들과 토요일, 일요일을 마음껏 집에서 떠들며 보냈다.
있는 듯 없는 듯, 눈치를 보는 것은 내 몫이었다. 내가 들락거리는 것은 화장실과 커피 타러 가는 것이었고, 아이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온 집안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이 하는 것은 단순한 것이었다. 각자 잠옷을 챙겨와 잠옷을 입고 거실에 여섯 명이 누웠다. 그리고 밤새 수다였다. 남자 친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꺅~” 소리를 질렀다. 여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금요일 밤은 숨죽였다. 내가 방문을 열고 나가면 아이들이 부담스러워 할까 봐 서재에 틀어박혀서 나가지 않았다. 초등학생인 아들도 뭔가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는지 안방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림=임솔빈)
토요일 아침,
여섯 명의 아이들은 천태만상의 모습으로 거실에 잠들어 있었다. 아침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식사 준비를 해 두고 슬며시 내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은 하나, 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까르르 웃기 시작하더니 여자아이들의 주특기 수다 떨기가 시작되었다.
“엄마, 아침밥 주세요.”
“너희가 알아서 챙겨 먹으라고 아침 해 놨어. 엄마 있으면 부담스럽다며?”
“아니, 엄마가 꼼짝 안 하니까 더 부담스러워요!”
아이들에게 아침을 챙겨주었다. 아침을 먹는 동안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그 또래가 되어서 아이들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 드라마 너무 웃기지 않아? 무슨 우연히 알게 되는 것들이 너무 많지 않아? 꼭 중국 무협 보는 것 같더라. 왜 그런 것 있잖아.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알고 보니 무림의 고수, 그래서 사랑에 빠지고 그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그런 중국 무협 드라마 같더라니까?”
“맞아요. 진짜 우연히 만나서 우연히 사랑하고, 알고 보니 출생의 비밀이 있고, 우연히 다른 남자랑 있는 것 보고, 막 그런 것들이 좀 억지스럽긴 해요.”
“그래도 그 사랑이야기는 너무 재미있지?”
“네~!”
“근데 넌 남자친구 없어? 자영이는 맨날 남자친구랑 싸웠다고 투덜거리는데?”
“전 어제 헤어졌어요.”
“왜?”
“엄마가 남자친구랑 데이트하는 걸 보셨거든요. 아직 남자 사귈 때 아니라고 헤어지지 않으면 학교 안 보낸대요. 그래서 그냥 헤어졌어요.”
“그냥 쉽게 헤어져?”
“뭐 그냥 말로만 남자친구인데요. 뭐! 우리 사귀자. 그래! 그렇게 시작해서 그런지 헤어지자. 했더니 그래. 하던데요?”
“음…. 내가 자영이한테도 말했는데, 남자친구 사귈 때는 정말 마음 설레게 하고, 남자친구한테 예쁘게 보이고 싶고,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이 생기게 하는 그런 남자친구가 좋을 것 같은데?”
“그건 드라마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진짜 그런 남자친구가 있어요?”
“왜 없어? 당연히 있지. 너희가 좀 더 크면 그런 남자친구 생길걸?”
“와~!”
“근데 누구나 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고, 너희가 사랑할 때쯤이면 자신의 마음이 사랑인지 호기심인지 잘 알아야 해. 호기심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면 상처도 많이 받게 되고, 자신의 마음도 정확히 몰라서 많은 방황을 하게 될 거야.”
아침을 먹으면서 시작한 수다는 점심 무렵이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한참 호기심 많은 중학생이었던 탓인지 남자친구에 대한 호기심이 끊이지 않았다.
여자아이들이 한차례 온 집안을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전쟁터 같았다. 거실에서부터 시작해서 온 집안이 장난감, 책, 이불, 베개, 옷 등이 제자리에 놓인 것이 없었다. 아이들과 놀다 들어오겠다고 딸아이도 나갔다. 한참 정리하고 내 서재로 들어와 난 씁쓸하게 웃었다. 분명 딸아이의 반항이었다. 그러나 딸아이의 참패다. 딸아이는 친구들과 별다른 짓 하지 않고 이렇게 놀면서 밤을 보내는 것이니 외박을 허락해 달라는 무언의 반항이었다. 하지만 난 아이들과 어울려 수다 떠는 것이 즐거웠다. 딸아이가 봤을 때, 아이들과 재미있게 보내는 엄마가 조금은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아들도 심심하면 한, 두 명은 데리고 와서 집에서 자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은 딸 친구와 아들 친구가 함께 몰려와 같이 게임을 하며 밤을 새우기도 하고, 티격태격 싸우는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난 가운데 서서 아이들을 각자 자신들의 방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어느 날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외박은 절대 안 된다고 해? 엄마도 봤지만 다른 집 엄마들은 그냥 누구네 집에서 자요. 하면 대부분 허락하거든.”
“글쎄, 엄마도 잘 모르겠는데. 네 말대로 걱정이 너무 많은 것인지도 모르지. 언제나 사고는 한순간이고, 한때의 기분이거든. 네가 어떤 말썽을 일으키고 싶어서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기분이고, 너희 또래 애들이 모여 있으면 객기가 발동하는 경우가 많거든. 그런 것 있잖아. 너 이거 해봤어? 안 해봤지? 이런 건 어른들이 하는 건데, 나 해 봤다. 이러면서 어떤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청소년 사고가 대부분 그런 식으로 나타나거든. 너희는 몸은 어른 크기와 비슷해졌지만,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아직 세상에 대한 판단이 명확하지 않을 때라서 그 위험이 더 크지. 그런데 거기에 호기심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날 때거든. 어린아이들의 호기심과는 또 다른 차원이지. 그런 것 있잖아. 게임에서 이거 해 봤는데, 진짜로 될까? 그런 것!”
“그건 외박하지 않아도 평소에 그런 이야기들 많이 하는데 뭐.”
“그래, 그런데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곳, 부모님의 간섭을 쉽게 받을 수 없는 곳에서 외박하는 경우. 그 강도가 좀 심해지지. 그래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삶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잖아.”
“거 봐. 엄마는 역시 걱정이 많아. 그건 일부잖아.”
“꼭 일부일까? 매일 교통사고가 일어나는데, 우리 집과는 상관없는 일일까? 매일 암으로, 병으로 또 다른 그 무엇으로 사람들이 죽는데, 우리 가족과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엄마, 운전한다고 모두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니잖아?”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지는 거지!”
딸아이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역시 결론은 내가 걱정이 너무 많은 데다가 상상력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벌어지는 상황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딸아이는 외박하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
정기적으로 집에서 자고 가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부모님이 크게 싸우셨기에 무서워서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날에 딸아이 친구나 아들아이 친구는 고민하지 않았다. 일단 우리 집으로 와서 자고 가면 그만이었다. 집에서 사고치고 일단 피신부터 하고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들아이가 고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 집에 자주 들락거리던 아이가 며칠째 집에 가지 않았다. 아침에 아들아이와 함께 학교에 갔고,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특별한 무엇인가는 하지 않았다. 아들과 공터에서 운동했고, 씻고, 밥 먹고, 아이들 방에 들어가서 자는 것이 전부였다.
“어머니, 저 형 좀 만나고 올게요. 태훈이 일어나면 그렇게 전해주세요.”
“그래, 알았다.”
그 친구가 나가고 한참 지나서야 아들은 제 방에서 나왔다. 두리번거리며 그 친구를 찾는 것 같았다.
“네 친구? 형 만나고 온다는데? 근데 그 애 집에서 걱정하지 않을까? 지금 거의 일주일 다 됐지? 집에 안 들어간 지….”
“걱정 안 해도 돼 엄마. 그 자식은 우리 집이 훨씬 편하고 좋데. 특히 밥 먹을 때, 너무 행복해 보여서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는데?”
“아니 그 애가 문제가 아니고, 부모님이 걱정하시잖아.”
“걱정하지 않는다고. 아빠는 주로 야간만 하니까. 그 애가 집에 들어왔는지, 외박했는지 모르고, 그 애 엄마는 관심도 없고, 상관도 안 해. 집에 일찍 들어가면 오히려 욕하고 성질 부려서 집에 될 수 있으면 새벽에 들어가서 잠만 자고 나와.”
“새엄마야?”
“아니, 친엄마야. 근데 아빠를 너무 닮아서 엄청나게 싫어한다나 봐.”
“부모가 그런 게 어디 있어.”
“여하튼 걱정 안 해도 돼. 아마 내일모레는 집에 들어갈 거야. 형이 찾으러 온 것 보면….”
아들은 그 친구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았다. 친구의 비밀을 지켜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연민이었을까? 안쓰러운 마음이었을까. 아들아이의 그 친구가 집에 오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더 신경이 쓰이고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더 챙겨주고 싶었다. 아이는 부쩍 나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그 친구는 집에 오지 않았다.
“태훈아, 너 그 친구랑 싸웠어?”
“아니, 전학 갔어.”
“응? 왜?”
“엄마, 아빠 이혼해서 아빠 따라갔대. 누나들은 엄마랑 살고….”
“아….”
안타까운 마음 하나가 또 먼 곳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 자리는 다시 누군가가 채우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 우리 올해 여름휴가도 같이 가요!”
“아아, 난 좀 빼 줘. 작년에 너희 여덟 마리랑 노는 것 그다지 쉬운 일 아니었다.”
“올해는 진짜 어머니는 따라만 가시면 돼요. 밥도 저희가 다 할게요!”
“작년에 바빠서 내가 빠졌다고 주말 딸들이 나는 안 끼워주네?”
“아버지는 바쁘시잖아요! 저희도 멋쟁이 아버지와 같이 가면 정말 좋죠!”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은 11명이었다. 서울에 있다가 1년 만에 내려온 딸과 그 친구 셋. 그리고 동서가 사고 때문에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지 못해서 매일 밥 먹으러 오는 조카 둘. 우리 부부, 그리고 아들과 아들 친구 둘. 식구가 너무 많아서 식탁에서 먹지 못하고 거실에 제사 때나 쓰는 상 두 개를 펼쳐놓고 삼겹살 파티 중이었다.
딸아이 친구들은 금요일 새벽에 함께 들어오더니 토요일 내내 거실에서 뒹굴다 밥 먹고, 다시 군것질거리 사다 먹으며 수다 떨다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첫 마디가
“어머니, 우리 오늘 저녁에는 삼겹살 먹을까요?”
그 말 한마디에 삼겹살이 준비되었고 아무것도 몰랐던 아들은 평소처럼 친구 둘과 집으로 들어왔다. 모처럼 아르바이트 쉬는 날이었다. 모두 집에서 살다시피 하는 아이들이었다. 항상 마주치는 아이들이라서 딸 친구들과 아들 친구들은 친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지내기도 했다.
“야 너는 얼른 반찬 뚜껑 닫아서 냉장고로! 너는 과일 깎고, 태훈이는 설거지하고, 자 각자 움직여!”
딸아이는 서서 말만 하고 아이들은 분주했다. 난 소파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작은 집에 10여 년 넘게 들락거린 아이들은 집에 있는 모든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제집처럼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전주에서 아직 학교 다니는 딸아이 친구만 남았다. 술이 좀 부족했던 모양이다. 내 방 문을 빼꼼 열더니 씩 웃는다.
“어머니, 한 잔 더 하실래요?”
“왜? 술 부족해?”
“조금요. 술은 제가 사왔어요.”
“그래 한 잔 더하지 뭐.”
딸아이는 술을 마시지 못했다. 밖에서는 한, 두 잔 마셨지만, 집에서는 거의 술 마시는 일이 없었다. 전주 사는 딸아이 친구는 우리 집에서 주말 딸로 불렸다. 딸아이가 집에 있을 때, 주말마다 집에 와서 함께 자고 갔던 탓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아이와 소주 한 잔 더 하기 위해 싱크대 앞에서 술안주를 만들고 있었다. 주말 딸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슬며시 팔짱을 두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어머니께서 저의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제가 주말 딸이어서 정말 좋아요.”
동병상련이었을 것이다. 나만큼이나 딸로 태어난 것을 원망스럽게 생각했던 아이였기에, 그 마음을 끌어안아 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와 밤새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아이의 눈에서 좌절과 원망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닦아주며 파이팅을 외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상처가 있는 아이들은 우리 집을 참 좋아했다. 그냥 우리 집을 들락거리는 아이들은 철없는 친구 엄마가 편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 데서나 드러누워서 농담을 던져도 같이 놀아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지금도 나는 청소년 탁아소를 운영하고 있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잠시 마음을 쉬었다 갈 수 있는 탁아소. 그네들이 나이가 들어 결혼하고, 나처럼 아이 키우는 엄마, 아빠가 되었을 때도 난 탁아소를 운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힘들고 상처받은 아이들이 와서 울고 힘겨운 마음을 털어버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작은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