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LOGO
최종편집: 2025-05-12 00:31:39

철없는 엄마 청개구리


... 편집부 (2015-06-22 00:40:13)

IMG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일까. 아이들이 이미 성인이 된 지금도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물질적인 풍요를 주는 부모, 부족한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춰줄 수 있는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지만, 그때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고, 아이들과 하나가 될 수 있고, 아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는 엄마가 가장 좋은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눈높이로 이야기하고 싶어 했고, 아이들 기준에서 생각하려 노력했다. 다 채워주지 못하기에 언제나 부족한 것이 엄마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청개구리 엄마인지도 모른다. 다른 엄마들과 조금은 다른 관념으로 아이들과 함께 성장했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는 나도 유치원생이었고, 지금은 성인이다.

“당신은 아이들과 같이 크고 있는 것 같아. 평소에는 못 느끼겠는데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애들이랑 똑같아. 어쩌면 그리 철없이 보이는지….”
“칭찬이죠?”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멍하니 나를 보더니 약속이 있다며 이내 밖으로 나가버렸다.

집은 텅 비었다. 북적거리던 아이들도 평일에는 아무도 없다. 주말이 되면 우리 아이들과 주말 딸, 그리고 아이 친구들이 장사진을 이루지만 평일에는 아이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럴 땐 내 기억은 오빠 가족과 함께 어울려 살던 아이들 유년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한여름이었다.
해 질 무렵이 되자 낮에 달구어졌던 아스팔트에서 뜨거운 열기가 밤공기를 데우며 모기를 불러 모으는 그런 날이었다. 일찍 일이 끝난 셋째 오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내려왔다. 셋째 오빠는 5분 거리도 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날 더운데 과일 좀 들고 바닷가나 다녀오자!”
“저녁 먹을 때 다 됐는데? 임 서방도 들어올 때 됐어.”
“오늘 자영 아빠 늦을 거다. 거래처 사람들이랑 약속 있다고 먼저 밥 먹으라더라.”
“그래? 근데 네 명이나 되는 애들 데리고 어디 가게?”
“내초도나 비응도로 가면 여기보다는 더 시원할 거다. 바닷가이기도 하지만, 농촌이기도 해서 시원해. 그리고 애들이랑 앉아서 쉴 곳도 많고!”
“나야 군산 살아도 그쪽은 안 가봤으니 모르지.”

외항 쪽은 처음이었다. 군산이라는 작은 어촌에서 살기 시작한 지 6년 만에 그 방향은 처음 가 보았다. 군산 공항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그 근처를 지나간 적은 있었지만, 직접 땅을 밟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운전면허증도 없었고, 있었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태우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다. 오빠나 남편이 있어야만 멀리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 가 본 외항은 공장지대였다. 해망동에서 외항까지 가는 동안, 작은 공장이나 큰 공장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외항을 지나 더 깊이 들어가니 멀리 바다가 보였다.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웠다. 바다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자동차 공장만 있을 뿐, 그 주변은 온통 풀밭이었다. 바다가 육지가 되고, 논이 공장이 되어 공장 굴뚝에 갈매기가 앉아 서럽게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동차 생산 공장을 준설하기 위해 바다를 간척해서 공장을 세우고 자동차가 생산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아이들 손을 잡고 주변을 돌다 작은 정자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 자그만 농촌 마을 입구였다. 논에서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요란스러웠다.
“이 동네는 황소개구리는 없나 봐. 토종 개구리 울음소리만 들리네?”
“정말이네? 황소개구리 소리는 안 들린다. 나주 집에 가도 토종 개구리 소리 못 듣는데….”자영이는 목청을 가다듬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어느새 네 명이 합창하고 있었다.
여섯 살, 다섯 살, 네 살짜리 둘.
네 살짜리 아이들은 웅얼웅얼 따라 할 뿐이고, 딸아이와 큰조카만 소리를 질렀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아이들은 개구리 소리가 들리는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았다. 개구리를 잡고 싶은 것인지 살금살금 점점 논 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셋째 오빠의 얼굴에 장난기가 감돌았다.
“풀밭에 있으면 뱀 나온다. 개구리가 많은 곳에 뱀도 많아!”
자영이는 깜짝 놀란 듯 벌떡 일어서서 논두렁으로 올라왔다. 아이들은 자영이를 따라 논두렁으로 올라왔고, 정자에는 미리 준비한 음료수와 과일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임솔빈)

“엄마, 개구리가 우는 거야? 아니면 노래하는 거야?”
“노래하고 있나? 울고 있나? 그건 듣는 사람 생각에 따라 다르지?”
“그런데 왜 자꾸 울어? 엄마가 없어?”
“노래한다는 것이 맞을 것 같아. 개구리가 짝을 찾는 소리이거든. 나 여기 있어요. 나 이렇게 목소리도 예쁘고 멋진 남자예요. 하면서 사랑 노래를 부르는 거야.”
“왜요?”
“자영이는 남자친구가 못생기고 머리도 안 감고, 침도 질질 흘리고, 목소리는 모깃소리처럼 가느다란 못난이가 좋아? 아니면 잘 생기고 멋지고, 깔끔하고 노래도 잘하는 남자친구가 좋아?”
“노래 잘하는 남자친구!”
“그렇지? 개구리도 자영이랑 똑같은가 봐. 노래 잘하는 남자친구를 좋아해. 그래서 남자 개구리가 노래를 하는 거야. 나 목소리 멋지고, 노래도 잘해요. 그러니까 나 사랑해주세요! 하는 거야.”
“여자 개구리가 아니고 남자 개구리가 노래하는 거야?”
“응!”
사내아이들은 어느새 풀밭에서 놀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모기도 극성을 부렸다. 아이들은 모기도 상관없는 모양이다. 오빠 큰아들 준호가 개구리 뒷다리를 잡고 정자로 뛰어왔다. 네 살짜리 아이들도 형을 따라 뛰어왔다.
“아빠, 개구리! 개구리가 오줌 쌌어.”
“준호가 괴롭히니까 무서워서 오줌 싸는 거야! 얼른 놔줘.”
오빠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나도 멋쩍은 마음에 생긋 웃고 말았다.
“그래도 엄마 됐다고 다르긴 하다. 그렇지?”
“내가 뭐!”
“너 저만할 때, 개구리 가지고 놀다가 그냥 놔 준 적 있냐?”
“나야 기억에 없지. 기억나는 것은 개구리 똥구멍에 보릿대 꽂아서 바람 넣어두면 개구리가 뛰어가면서 방귀 뀌는 것이 너무 웃겼던 거 밖에 기억 안 나!”
“그거 봐라! 너는 개구리들의 천적이었어. 뱀보다 더 무서운 천적. 계집애가 개구리는 또 어찌나 잘 잡던지!”
그때였다. 준호는 나와 오빠 이야기를 듣더니 오빠에게 개구리를 쑥 내밀었다. 그리고 초롱초롱하고 말간 눈빛으로 간절히 원하는 듯 오빠를 바라보았다.
“똥고에 바람 넣어줘!”
“응?”
“고모가 했던 것처럼 개구리 똥고에 바람 넣어줘. 나도 볼 거야. 개구리 방귀 뀌는 거!”
“아이고!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더니! 자영이 엄마 네가 이거 전문이잖아. 보여줘라!”
“이제 못하지. 그때야 철없고 겁이 없을 때라 오빠 하는 것 보고 따라 한 것이고…. 지금은 개구리 만지면 그 차가운 느낌이 싫어!”
오빠는 두리번거리며 보릿대 비슷한 그 무엇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들과 하나 되어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자영이도 그 무리에 끼어 있었다. 아이들이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오빠가 개구리 항문에 바람을 넣은 모양이다. 박수를 치며 웃더니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도 했다.

“언니는 오빠가 아이들이랑 잘 놀아주니까 좋지?”
“그렇지? 대신 내가 저렇게 놀아주지 못하잖아.”
“난 자영 아빠가 저렇게 애들이랑 놀아줬으면 좋겠어. 하긴 애들 얼굴 볼 시간도 없는 사람인데…. 쉬는 날이면 친구들 만나러 나가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이라서….”
“대신 아가씨가 잘 놀아주잖아!”
한동안 개구리를 가지고 놀더니, 아이들은 풀무나 여치 잡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멀리 가로등 불이 없다면 서로의 얼굴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워졌다. 한참 풀밭에서 동생들과 놀던 자영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왜?”
“엄마, 개구리가…. 개구리가….”
“개구리가 왜?”
“개구리가 뱃속에 들어갔나 봐. 아까부터 배에서 개구리 소리가 들려!”
“응?”
“잘 들어 봐. 개구르르 개구르 내 뱃속에서 개구리 소리가 나!”
아이의 천진난만한 생각이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올케언니랑 나는 마주 보고 웃었다. 하지만 아이는 아주 심각한 얼굴로,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영이 배고프구나? 배에서 꼬르륵 소리 나?”
“아니, 개굴개굴 소리 나!
아이들과 간단한 저녁 소풍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이미 잠이 들었다. 9시만 되면 그곳이 어디든 잠이 드는 아이들이기에 이럴 때는 불편한 것도 있었다.

다음날,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는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동생은 아직 계단을 오르지도 않았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다급한 목소리로 엄마를 찾았다.
“왜? 무슨 일 있어?”
“엄마, 엄마 있잖아. 개구리는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는 거래!”
“응?”
“어제 엄마가 그랬잖아. 개구리 소리는 사랑해 주세요. 저 노래 잘 불러요. 하면서 노래하는 것이라고.”
“응!”
“그래서 오늘 선생님께 물어봤는데 우는 거라고 하셨어!”
“그랬어? 왜 개구리가 우는지도 알려 주셨어?”
“응! 개구리가 너무너무 말을 안 듣고 거꾸로만 했대. 엄마가 공부하라고 하면 밖에 나가서 놀고. 엄마가 씻으라고 하면 손에 더러운 것을 묻히고, 엄마가 밥 먹으라고 하면 밥 안 먹고, 먹지 말라고 하면 먹었대. 그런데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는데 혹시 산에 묻으라고 하면 냇가에 묻을까 봐 냇가에 묻어 달라고 했대. 그런데 개구리가 엄마가 죽으니까 엄마 말 안들은 거 후회하면서 냇가에 묻었대. 그래서 비가 오면 엄마가 물에 떠내려갈까 봐 우는 거래!”
“우와~! 선생님께서 우리 자영이한테 정말 이야기 잘 해주셨나 보다.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을 다 기억했어? 우리 자영이 정말 대단하다!”
“엄마, 엄마 그러니까 개구리는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는 거 맞지?”
“음, 근데 자영아. 그건 청개구리야! 가끔 우리 고추 심어놓은 화분에 앉아 있는 초록색 아주 작은 개구리 있잖아? 그 개구리를 청개구리라고 해. 청개구리는 비가 오면 서럽게 울거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엄마가 물에 떠내려갈까 봐 우는 것은 청개구리야!”
“우리 태훈이도 청개구리잖아.”
“아니야. 나 청개구리 아니야! 엄마 말 잘 들을 거야!”
어느새 계단을 올라와 딸아이와 내 대화를 들으며 옆에 있던 아들은 강하게 손사래를 저였다.

“태훈이도 청개구리 이야기 알아?”
“차에서 누나가 자꾸 나한테 개구리라고 했어!”
“그래서 우리 태훈이 화났어?”
“응!”
“개구리는 엄마 말 잘 듣지. 그래서 아들, 손자, 며느리 다 같이 노래한다고 하잖아!”
“응, 태훈이는 개구리. 누나는 청개구리야!”
“아니야, 누나도 개구리야. 엄마 말도 잘 듣고, 태훈이랑 잘 놀아주고. 누나도 개구리야!”
“음…. 누나 개구리야? 그럼 똥고에 바람 넣어!”
“그런 장난 하면 절대 안 돼! 알았지?”
놀랐다. 어제 셋째 오빠의 장난을 아이들은 신기하게 보았었다. 그러더니 어느새 아이 기억 속에 각인 된 모양이다. 개구리라는 단어에 당연하다는 듯 항문에 바람 넣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쉽게 어른을 따라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뒤로 얼마 동안 외할머니댁에 가서 개구리를 만나면 아이들은 항문에 바람 넣는 것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따로 나무라거나, 야단을 칠 수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잊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TV 프로그램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체험현장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부모를 볼 때마다 그렇게 해주지 못한 것이 가끔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자연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체험 현장보다 더 값진 경험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부모 마음이란 한도 끝도 없는 모양이다. 좀 더 좋은 곳에서, 좀 더 값진 경험을 아이들에게 선물해 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이미 성인이 된 아이들의 삶을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나는 좋은 엄마였을까. 아이들 눈높이에서 친구가 되어 함께 성장하고 있는 나는 눈높이 교육을 핑계 삼아 엄마의 몫을 놓치지는 않았을까. 부모로서 아이들의 삶을 이끌어 줘야 할 부분에서 놓친 것은 없을까.
조금 더 엄마의 위치에서 아이들 공부에 대해 집착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랬다면 지금 아이들의 삶이 다른 방향에 서 있지 않을까. 개구리로 장난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자치기를 알려주고, 갯벌에서 조개를 잡는 것보다 수학 한 문제 풀어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부모들이 하는 것을 하지 않고 아이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했던 나는 철없는 청개구리 엄마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든 밝고 맑은 웃음을 간직한 성인으로 성장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 나는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오늘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욕심을 내려놓았을 때, 아이들은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엄마는 철없는 청개구리였지만, 아이들은 멋진 개구리로 성장해 줬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번 주말에는 아들에게 술친구를 부탁해 봐야겠다. 철없는 청개구리 엄마는 오늘도 아빠가 하지 말라는 일을 찾고 있다. 아이들과 한 걸음 더 거리를 좁히기 위해!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