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LOGO
최종편집: 2025-05-12 00:31:39

공부는 왜 하나요?


... 편집부 (2015-07-06 09:29:14)

IMG
부모의 욕심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행동을 해도 내 아이가 천재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두 번쯤 하게 된다. 그것이 부모다. 내가 이루지 못했던 상위층의 생활을 했으면 좋겠고, 뭐든 잘했으면 좋겠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외모로 자랐으면 좋겠고, 사회의 저명인사로 모든 이의 존경을 받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나 또한 부모이기에 그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반대로 내 기대감은 작아지는 것 같아!”
“왜 그런 생각하는데요?”
“아이들 어렸을 때는 너무 똑똑해서 내가 뒷바라지를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더니 학교 들어가니 고만고만한 것 같고, 좋은 대학이라도 가려나 했더니, 그저 그렇고, 좋은 직장이라도 취직하려나 했다가 이제 그냥 밥벌이할 수 있는 직업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드니 하는 소리야.”
“대신 아이들 착하잖아요? 밝고 활기차잖아요? 부모한테 잘하잖아요? 밖에서 욕먹을 짓 안 하고 뭐든 가족이 우선이고, 대인 관계도 좋잖아요. 전 그거면 충분해요. 그것이 아이들에게 자산이 될 테니까.”
“요즘 세상에 착해서 어디다 쓰게? 독하지 못하고 퍼주기 좋아해서 이렇게 살아가면서도 착한 것이 우선이 되는 거야? 난 아이들만큼은 이기적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어.”
남편의 말에 대해 난 대꾸할 수 없었다. 남편은 자타공인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남편은 언제나 조금은 당차게 이기적으로 세상을 살아야 경제적 “부”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와는 조금 다른 생각이었지만, 남편이 살아온 삶을 본다면 꼭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남편은 아이들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다니면서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딸아이는 중학교에서도 상위권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고, 아들 또한 중학교 1학년 1학기 때까지는 상위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인천에 살던 동생이 군산으로 이사 왔고, 1년 뒤 큰 오빠 가족이 모두 인천에서 군산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큰오빠 가족 중 두 아이만 남기고 훌쩍 서울로 가버렸다. 졸지에 작은 아파트에서 우리 가족, 동생, 그리고 조카들까지 7명이라는 대식구가 살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내가 조카들을 맡지 않으면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서 중3, 고3 두 아이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조카 두 명을 내가 데리고 있기로 했다.

아들은 집에 들어와서 책만 보는 공부벌레는 아니었다. 학교생활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고, 집에서도 운동하러 나가는 시간이 많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조카들은 조금 달랐다. 사연이 많은 가족이어서 아이들만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때 당시 중학교 3학년이고, 딸아이와 생일이 일주일 차이밖에 나지 않은 조카는 가족 모두가 기절할 수 있는 대형 사고를 저지르기도 했다. 문제는 조카들과 함께 살던 때부터 시작됐다.
겨울 방학이 되어 아이들이 모두 집안에서 북적거렸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우편함을 살폈다. 다른 우편함을 보니 아이들이 다니는 중학교 성적표가 있었다. 우리 우편함에 분명 3개의 성적표가 있어야 하지만 단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불렀다.
“다른 우편함 보니까 성적표 있던데? 너희 성적표는 왜 없어?”
모두 말이 없었다. 딸아이만 의아한 표정으로 두 사내아이를 바라보았다.
“너희 것 말고 내 것도 치웠어?”
그때야 상황파악을 할 수 있었다.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두 사내 녀석들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성적표 가져와!”
“고모! 성적표 없어요!”
“그래? 그럼 학교에 다시 발송해 달라고 하든지 E-mail로 달라고 전화하면 되겠네?”
“네?”
“몰랐어? 지금 행정실 가서 직접 받아올 수도 있어!”
아들이 일어나 책상 밑바닥을 뒤적거려 성적표 석 장을 들고 나왔다. 얼굴은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성적표를 숨겼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고, 속이려고 했다는 것이고, 거짓말에 관한 것은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는 내 성격을 알기 때문에 두려웠던 모양이다.
“태훈이 너! 성적표 왜 숨겼어?”
아이는 한동안 옆에 있던 조카 눈치를 봤다. 조카는 눈을 흘기며 태훈이를 째려봤다. 아들은 망설이는 듯하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형이 숨기자고 해서….”
난 한숨을 내리 쉬며 성적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숨이 멎는 것 같은 아찔함을 느꼈다. 1학기 성적과 완벽하게 반대였다. 1학기 때는 앞에서 한 자리 숫자였지만, 2학기 때는 뒤에서 한 자리 숫자였다. 화를 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뒤로 넘기자 조카의 성적표였고, 1학기 때 성적과 2학기 때 성적은 그다지 많은 변화가 없었다. 딸아이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상위와 하위가 다를 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 것 같았다.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렇다고 조카 탓만 할 수는 없었다. 아들이 조카와 함께 공범이 되고, 함께 공부와 담쌓으며 놀았다는 것은 아들 또한 그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도 냉장고에 들어있던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머리가 깨지는 듯 아파지며 오히려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느새 두 아이는 무릎 꿇고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손 내리고, 대신 무릎은 그대로 꿇어! 자! 이야기 좀 해보자. 일단 성적표는 왜 숨겼어? 정호 말해 봐!”
“성적이 나빠서요.”
“성적이 나쁘면 왜 성적표 숨겨야 하는데?”
“공부 못한다고 때릴 거잖아요!”
“고모가 성적 때문에 매를 든 적이 있었던가?”
“…….”
“다시 물을게. 성적표 왜 숨겼어?”
“태훈이가 공부 안 한 것이 그대로 나왔으니까. 고모가 나 때문에 태훈이가 공부 못 했다고 할까 봐. 그럼 시골로 내려가야 할지도 모르니까!”
“고모가 뭐라고 했어? 잘못한 것보다 거짓말하는 것이 더 나쁘다고 하지 않았어?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 것도 거짓말하면 용서 못 한다고 했지?”
“…….”
“공부는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어. 다만 최선을 다하지 않고 공부라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잘못인 것 맞아. 모든 사람이 공부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것도 용서할 수 있어. 그럼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겠지? 솔직히 공부는 하기 싫다고 했으면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자고 했을 건데…. 일단 고모를 속이려고 했으니까 정호는 저기 현관 입구에서 30분 동안 무릎 꿇고 손들어!”
조카는 입을 삐죽이며 현관 입구에 앉았다. 눈에는 분노의 눈길이 가득했다. 무엇이 조카를 분노하게 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중에 딸아이 말을 들어보니 혼자 벌을 주는 것은 분명 태훈이와 차별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림=임솔빈)

“태훈이 너는 왜 성적이 이렇게 됐는데? 곧잘 했잖아?”
“…….”
“그냥 하기 싫었어?”
“아니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응? 공부? 학생의 본분이니까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러니까 왜 학생은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아빠도 대학 안 다녔지만, 아빠만의 일을 하고 있잖아요. 엄마도 공부 많이 안 했어도 글 쓰고 있잖아요. 연예인 중에서도 고등학교 중퇴했는데 유명해진 사람도 있잖아요.”
나는 당황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대학의 꿈을 접고 직장 생활 할 때도, 결혼해서 혼자만의 공부를 하면서도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점을 갖지 못했다.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당연히 공부밖에 없었으니까.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내가 입을 뗀 것은 어색한 침묵이 한참 흐른 뒤였다.
“엄마도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런데 지금 엄마 경험을 빗대어 생각해 보면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대학을 좋은 곳으로 가면 그 꿈에 더 가까워질 수 있으니까 고등학교 때까지는 좋은 대학 입학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 꿈을 구체적으로 이루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 아닐까?”
“꿈이 운동선수라면 운동만 하면 되잖아요. 가수가 꿈이면 노래 잘하면 되니까 대학보다는 연예인 소속사를 가야 꿈을 더 빨리 이룰 수 있잖아요.”
“그런데 태훈아. 만약 운동선수가 꿈인데 이룰 수 없는 상황이 오면? 할 줄 아는 것은 오직 운동밖에 없는데 그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까? 만약 법관이 꿈이었던 친구가 꿈을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어. 그런데 갑자기 꿈이 의사로 바뀌었어. 그럼 하던 공부가 있으니까. 대학을 법대에서 의대로 선택하면 되잖아? 그런데 운동선수가 꿈이어서 운동만 했어. 그러다가 어느 날 의사가 되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어. 그럴 때는 어떡해야 할까? 다시 기초부터 공부해야겠지? 그렇게 되면 다시 몇 년을 공부 더 해야겠지?”
“그럼 전 공부를 왜 해야 해요? 의사도 싫고, 법관도 싫고, 운동선수는 엄마가 반대하고, 그렇다고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가수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지금은 꿈이 없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생길 수도 있잖아? 그때를 준비해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지만 엄마는 태훈이가 공부가 싫다면 억지로 공부하라고 할 생각은 없어. 그냥 우선 네가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인지,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부터 생각하고 결정했으면 좋겠어.”
“지금은 무엇이 좋을지 아무것도 생각 안 나요.”
“그래 당장 결정하라는 것은 아니니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오늘 엄마를 속이려고 한 것은 잘못한 것 맞지? 형 옆에서 너도 30분간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아들은 조용히 조카 옆에 앉아 손을 들었다. 먼저 들고 있었던 조카는 손을 내리고 투덜거리며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고, 아들은 바닥만 바라보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미래의 자신을 생각해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방황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꿈을 찾지 못했다. 꿈이 없는 아들을 보면서 처음 후회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들은 운동선수가 꿈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학교 운동선수였던 내 유년을 생각해보면 운동선수로 성장하기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가 아들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 줄 자신도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야 내 꿈을 위해 한 발자국씩 내딛기 시작했는데 그 꿈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들이 운동하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내 욕심 때문에 아들이 꿈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후회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아르바이트 갔다가 늦게 들어오던 아들이 일찍 들어와 내 방문을 열었다. 식탁에서 의자를 하나 들고 오더니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한참 홈페이지 제작하고 있던 때였기에 잠자는 시간마저도 줄여 일하느라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왜?”
“엄마랑 대학교 원서 쓰려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제작하고 있던 것들을 모두 저장하고 다시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꿈이 생겼어?”
“누나가 일단 대학은 가라는데? 그런데 내가 다닐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찾아보니까 조금 관심 가는 분야가 있었어!”
“뭔데?”
“육군 부사관 학과가 있더라고. 옛날에는 하사관이라고 했다는데?”
“그거 성적이 어느 정도 좋아야 하잖아?”
“일단 수시로 넣어 보려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뭐 해보자. 되면 정말 좋겠지만 대신 안 돼도 실망하거나 낙담하기는 없기다!”
“내가 공부 안 해서 그런 건데 뭐. 중학교 때던가? 꿈이 생기고 바뀔지도 모르니까 언제든지 도전할 수 있게 공부해야 한다고 할 때 조금이라고 할 걸 그랬지?”
“이제 후회돼?”
“아니 진작 후회했지. 누나 대학가는 거보고…. 근데 좀 늦었더라고. 그때 처음으로 공부하라고 말 하지 않았던 엄마가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어. 억지로 공부하라고 했으면 공부했을까?”
“엄마도 가끔 후회해. 억지로라도 시킬 걸 그랬나 하고.”
“근데 안 했을 거야. 엄마가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면 더 도망갔을지도 모르지.”

아들의 부사관 학과 지원은 모두 떨어졌다. 면접 성적은 좋았다. 면접을 도와주던 학생이 일부러 나와 꼭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들 고등학교 때 성적은 거의 바닥이었고, 부사관 학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리고 부사관 학과가 떨어질 것을 대비해 또 하나의 꿈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사회체육학. 결국, 아들은 사회체육학과를 선택했고 어느 대학에 교수 추천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중학생 이후 처음으로 아들이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강요가 아닌 스스로 자신의 꿈을 위해 자격증 공부를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이루고 싶은 꿈이 아들을 책상 앞에 앉게 했다.

군대 제대 후 복학해서 아르바이트하며 학교 다니는 아들을 본다. 지금 준비하는 꿈이 진정한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루고자 하는 꿈에는 나이가 없다. 꿈과 전혀 다른 일을 하다가 어느 날 꿈이 생기면 그 꿈을 향해 전진할 수 있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그 꿈을 너무 늦지 않을 때 찾았으면 한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스물세 살이니까.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