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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5-12 00:31:39

엄마는 나의 롤모델


... 편집부 (2015-10-05 10: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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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아이를 기르면서 내내 궁금했던 것이기도 하고 걱정한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에 고집부리지 않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으려 했던 엄마의 모습을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할 때가 많다. 그 때문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내 모습이 가끔 답답하기도 했었다. 가끔은 짜증내는 아이들에게 나도 짜증 난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다독거리면서 상처받는 날도 있었다. 그랬던 내 모습을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상처는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다.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어떤 말을 한다 한들 상처받을 일은 없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 그중에서 가족에게 받는 상처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크다. 나의 어머니는 일상적인 말처럼 나에게 툭 내뱉곤 하는 말들이 있다. 어머니는 평상어이지만 나에게는 모두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찢는 말이었다.
“썩을 년. 니 인생 니 알아서 해라. 내가 니 인생 살아 주는 것도 아닌디!”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말 같이 느껴졌던 것은 왜였을까. 내 기억 속에 어머니가 나에게 던졌던 첫 비수는 그 말이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했던 일들에 대한 부정. 어머니가 회피하고 싶은 일에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리는 무정함 등이 그동안 어머니와 살아오면서 내가 받았던 상처였다. 가볍게 내뱉은 나의 언어가 아이들 가슴에서 비수로 싹 틔울 수 있다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대부분 들어주고 다독여 주는 것을 선택했다. 가끔은 그것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먼저 짜증부터 낸다. 말을 시키기도 어렵다. 아니 말을 건네면 모든 짜증이 나에게 돌아온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받은 상처가 싫었기에 아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들이 오히려 나에게 비수로 꽂히는 날도 있었다.
“아 진짜 엄마 오늘 정말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짜증 나 죽겠는데 엄마까지 왜 그래?”
“엄마, 이제 간섭은 그만했으면 좋겠어. 이제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때가 됐잖아!”
아이들에게 그런 말들을 들었을 때, 난 내 방에 들어와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밤새 낙담하고 내 심장을 두들겼다. 나에게 말을 함부로 해도 되는 분위기가 되도록 아이들을 너무 이해하려고만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음날 아무 일 없다는 듯 밝게 웃으며 애교를 떤다. 그렇게 잊어버린 상처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일상적인 반복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들은 것은 지금까지 많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항상 심장이 기억하는 모양이다. 아이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리면 심장은 벌렁거린다. 그리고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어 성인이 되었을 무렵, 아이들이 바라보는 엄마는 어떤 존재로 아이들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을지 궁금했다.

딸아이가 대학 졸업하기 전이었다. 컴퓨터 속에서 종일, 아니 10년 넘게 디지털과 살다 보니 컴퓨터 그래픽이 신물이 났다.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그냥 뚝딱 만들어지는 존재의 가벼움이 싫었다. 그래서 유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우선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유화를 선택했다. 하지만 또 다른 욕심이 있었다. 내 시를 내가 직접 서예나 캘리그라피로 써서 시화를 만들고 싶은 것이 내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먼저 유화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그림에 대한 욕심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포토샵에서 사진을 편집하다가 보니 직접 그린 그림이 훨씬 더 고급스럽고 유용하게 사용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시화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시화는 그림보다 글씨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화는 보류하고 서예를 본격적으로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을 때였다. 학원에서 함께 배우는 사람들끼리 서예 모임을 만들고 회원 전을 기획했다.

배운 지 일 년도 되지 않았기에 많이 서툴고 어색했지만, 함께 하는 분들이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딸아이가 대학 졸업을 앞둔 마지막 겨울 방학쯤 회원전이 시작되었다. 첫날 딸아이가 전시회장으로 작은 화분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내 작품 앞에 서서 환하게 웃는 딸아이의 모습에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서툰 작품 때문에 조금은 부끄러웠고 뭔가 시작하고 결과를 얻는다는 것에 아이에게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딸아이가 방명록 앞에 앉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방명록에 글을 썼다.

서예학원 선배님들과 찾아오신 손님들을 맞이하고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딸아이는 집으로 돌아갔다. 한차례 관람객이 빠진 후 자리에 앉았다. 긴 한숨을 내리 쉬며 물 한 모금 마실 때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방명록이었다. 딸아이가 한참 동안 쓴 글을 찾았다. 옆에 있던 선배 한 분이 내 어깨를 다독였다.
“아이들한테 그런 엄마 되기 쉽지 않은데 정말 아이들 잘 키웠나 보다. 부럽다!”
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까지 읽은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적어도 부끄러운 엄마는 아니었구나. 언제까지 엄마 품에서 애교 부리며 어리광하던 아이일 줄 알았는데, 이제 엄마를 인정해 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임솔빈)

“재작년엔 출판기념회, 작년에는 유화 전시회, 올해는 서예 작품 전시회…. 하는 것도 많고 매년 취미가 늘어나는 우리 엄마. 가끔 이런 엄마가 피곤하기도 하지만 취미를 직업처럼 하는 우리 엄마가 대단해 보이고 나는 뭐하나 싶을 때도 있다. 대단하다. 나의 롤모델 우리 엄마. 엄마 전시회 축하해 진짜 멋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연화야, 롤모델이라는 말 정말 멋있다. 더군다나 딸이 엄마를 롤모델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엄마의 소망인데…. 멋지다. 연화도, 딸도!”
“고마워 언니!”
그날 딸아이는 SNS에 비슷한 내용을 올렸다. 딸아이 친구들 반응은 대체로 어머니께서 진짜 멋지게 사신다는 내용이었다. 댓글을 바라보고 있으니 흐뭇하고 나에 대해 조금은 당당해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남편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딸의 방명록에 관해 이야기했다. 남편은 내 어깨를 감싸며 날 다독였다.
“애나 엄마나 다 애처럼 살더니…. 좋아? 딸이 롤모델이라고 해서?”
“당연하지. 롤모델이 뭐야? 내가 닮고 싶은 사람, 내가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 본받기를 바라는 사람이잖아. 근데 난 우리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니까 딸도 그럴 줄 알았거든. 닮아가는 거니까. 닮기 싫어도 엄마와 딸은 닮아가니까.”
“당신이랑 장모님이랑은 전혀 다르지. 장모님이랑 당신은 대화 자체가 안 되잖아?”
“그건 뭐 꼭 엄마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지. 나도 엄마한테 애교 한 번 부려본 적 없는데 뭐. 엄마가 그러잖아. 아들만 다섯 키웠다고.”
“장모님이 곁을 내어주지 않으니 다가가고 싶어도 못 갔던 거지. 그렇잖아도 아까 딸이랑 통화했어. 좀 길게 했는데 방명록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비슷한 이야기 하더라. 엄마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을 계발하면서 헛된 시간 만들지 않고 열심히 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고. 엄마가 항상 뭐든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당연히 저도 그렇게 살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서 자신한테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하던데?”
“근데 자영이도 모르는 것 하나 있어. 나도 젊은 시절에는 시간을 헛되이 사용했다는 것. 그냥 아이들 키운다는 이유로 종일 TV 앞에 앉아 있는 날도 많았으니까.”
“그랬어? 그런데 난 왜 그걸 본 기억이 없지? 나도 당신 생각하면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서 전문적인 위치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주부 역할, 엄마 역할, 딸 역할에 시댁 식구들 뒷바라지…. 정말 시간이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하거든.”
“그거야 당신은 항상 집에 없었으니까. 내가 노는 걸 못 본 거지. 그리고 시간을 헛되이 보냈던 건 오래됐지. 아이들 유치원 들어가기 전까지만 그랬으니까. 그 이후로는 내가 하고 싶은 글부터 쓰기 시작했잖아!”
“그래! 교육은 지식을 쌓는 것만 교육은 아니야.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고, 어떻게 자신을 계발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는 세상 살면서 터득하기 참 힘든 것 중에 하나지. 그런데 당신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미 몸으로 실천해 보였잖아. 아이들에게 그것보다 더 큰 유산이 어디 있겠어. 나도 당신 존경할게!”
“또 놀리죠?”
“아니야. 진심이야!”
남편은 활짝 웃어 보였다. 늦게야 아르바이트를 마친 아들이 손에 화분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전시회장으로 가져가려고 했지만, 이번 주 내내 시간이 맞지 않는다며 축하 선물을 집으로 들고 온 것이다.
“엄마는 꽃다발은 싫어하잖아. 며칠 지나면 시들어 버린다고. 그래서 작은 화분으로 사왔는데 잘했지?”
“그래 고마워!”
“엄마! 내가 생각해도 엄마는 진짜 대단해. 그런데 엄마한테 바라는 것 있는데 말해도 돼?”
“응!”
“난 엄마가 다른 사람들 위해서 해주는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바쁜 것은 엄마에게 이익도 안 되고 시간만 뺏기고 뒤돌아서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인협회 일이라든가. 다른 사람들 시집 내면 홍보물 만들어 주고…. 그런 것은 그만했으면 좋겠어. 그 사람들 자신이 얻고자 한 것 얻으면 다 떠났잖아. 엄마 출판 기념회 왔던 아줌마도 그렇고!”
“그래도 그 사람들 홍보도 됐고, 또 엄마한테 감사하다고 했고…. 그럼 됐지 뭐. 엄마가 못 하면 안 해 줄 수도 있지만 할 줄 알면서도 그냥 못 한다고 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나중에 어찌 되었든 그 일을 하는 동안 엄마가 즐거웠으면 됐지 뭐.”
“나도 내 일에 최선을 다해서 살고, 시간 아까운 줄 알고 시간 관리하면서 사는 것은 엄마처럼 살고 싶고 닮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 때문에 시간 뺏기고 상처받고 살아가는 건 싫어. 그건 진짜 닮고 싶지 않아! 바보 같잖아!”
“그러게 알면서도 잘 안 되네?”
“그런 건 아빠 닮아야 해! 사람은 좀 이기적으로 살 필요도 있는 것 같아!”
“그래, 그건 맞아!”
“그래도 난 엄마가 정말 존경스러워. 우린 젊어서 그런가? 뭔가 하다가 안 되면 포기해 버리는데 엄마는 신경질 부리면서도 끝까지 하잖아. 기어코 이루어 내는 그 모습은 정말 내가 배워야 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할 수 있어. 내가 이걸 배워서 뭘 해야겠다 하는 목적. 엄마는 배우고 있는 것들이 모두 글이나 책하고 관련 있는 것은 알지?”
“응! 나도 엄마한테 지지 않으려면 뭐든 최선을 다할 거니까. 엄마도 긴장해!”
“네 아드님!”
그러나 안다. 지금까지 내가 무언인가 도전할 수 있었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내가 무엇인가 도전할 때, 가족 어느 한 사람도 반대하지 않았다. 다른 가족의 위치에서 생각했을 때, 어처구니없는 일도 많았다. 그림을 제대로 배울 수 없어서 연필화, 색연필 화를 집에서 독학하겠다며 전문가용 색연필을 샀을 때, 애도 아닌데 그런 걸 왜 하느냐 반문하는 사람 없었다. 모두 응원했다.
“엄마는 할 수 있어. 엄마랑 그 교수랑 인연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엄마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돼!”
“엄마, 색연필도 종류가 많아. 내가 봤을 땐 수채 색연필을 쓰면 좋을 것 같아!”
“나야 그림은 모르니까. 당신이 하고 싶어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열심히 해 봐! 하면서 당신이 즐거우면 되는 거야!”
만약, 가족 중 한사람이라도 그런 것 뭣 하러 하느냐고 반문했다면 난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가족이 싫어하는 일을 매일 마음 편하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불협화음이 시작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 하나 반대하는 사람 없었다. 아니 가족 누군가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그것이 조금은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나쁜 일만 아니라면 응원해 주는 가족이었다.
그 가족이 있었기에 거의 삼십 년 가까이 글을 쓰고 있고, 컴퓨터를 배울 수 있었고, 시낭송을 할 수 있었고,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어 영상을 만들 수 있었고, 유화를 그릴 수 있었으며 서예를 하고, 지금은 캘리그라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이 가족의 응원 덕분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가족은 하나의 구성원이다. 그중에 단 한 사람만 삐끗해도 가정 전체가 중심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구성원의 중심에는 엄마가 있다. 아빠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고 가족이라는 원형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난 그 구심 역할을 그래도 조금은 잘해낸 모양이다. 이제 성인이 되고 자기 일을 찾아 각자의 위치에 서 있는 아이들이 착하고 밝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진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는 괴물이었다. 괴짜였다. 선생님의 시각에서나 시댁 어른들 시각에서 나란 존재는 어리고 철없는 괴짜 엄마였다. 그리고 사고뭉치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나는 친구였고, 언니였다. 함께 생각하고 함께 자라는 형제였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 아이들을 잘 키웠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아이들은 이제야 자신의 삶을 한 발짝 내디뎠을 뿐이다. 하지만 그 첫걸음이 비뚤어지지 않았고, 밝고 건강하게 출발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사고뭉치 엄마가 아이들과 놀고 숨 쉬는 괴짜 교육법이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였다는 것이 딸아이의 방명록 글로 증명이 되었다. 이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다. 나도 성인으로 이제 자라났다. 지금부터는 교육 방법이 아닌 함께 참된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며 노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인 것 같다. <끝>

- 그동안 연재 수필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설연화).-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시낭송가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