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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성과자 일반해고, 갑에 무한권력?


... 문수현 (2015-12-31 02:23:57)

정부가 30일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지침 초안을 발표했다.

노동계는 반발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이 같은 지침이 노동법의 근간을 훼손하고 노동조합을 무력화할 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에게 쉬운 해고와 낮은 임금을 강요하는 노동개악의 신호탄이라며 강력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30일 ‘전문가 의견수렴 간담회’를 열고, 저성과자 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과 관련한 정부의 행정지침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고용노동부가 이날 발제한 자료는 두 가지로,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 마련을 위한 논의 검토자료’(가이드북)와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 개정을 위한 논의 검토자료’(취업규칙)다.

‘⓵저성과자 해고’ ‘⓶취업규칙 불이익변경’으로 나눠 분석한다.

가이드북은 “근로계약의 본질상 업무능력 결여, 근무성적 부진 등의 경우는 근로제공 의무를 불완전하게 이행하는 것으로, 이는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표현하면서 저성과자(실적부진자) 해고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법원의 판례 인용을 통해 이 같은 일반해고(통상해고)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실적부진만을 이유로 해고할 수 없다는 판례가 있는 데다, 고용노동부가 인용한 판결들은 대개 사용자의 인사권 남용을 판단하는 것들이라는 게 문제다. 노동부 지침이 판례를 왜곡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근로기준법상 해고 사유인 ‘정당한 이유’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고용노동부의 주장도 반론에 부딪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23호 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법원도 이 조항에 따른 해고에 대해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행해져야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일관되게 판시해왔다.

실제로 법원이 해고의 ‘정당한 이유’가 되는지 판단해온 사례들은 학력·경력의 사칭·은폐, 이력서 허위 기재, 무단결근 등 불성실 근무, 전근·전보·전적 등 인사 명령 불응, 업무상 지시 위반 등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는 그와 같은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에도 해고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현행 법체계상 용인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정부는 이 같은 일반해고의 정당성 기준과 절차의 구체화를 위해 ▲평가제도 설계 ▲평가방법의 타당성 ▲평가 실행의 신뢰성 등 부대조건들을 열거했다.

문제는 법원이 근로자에 대한 인사고과 평가를 사용자의 고유권한으로 보고 있고 평가기준 자체가 사용자의 주관에 달려있는 현실에서, 사용자가 의도적으로 근로자들에게 하위의 인사고과를 부여해 저성과자로 만든다고 할지라도 그 부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부대조건은 부대조건일 뿐이라는 점도 문제다.

고려대 노동대학원 김성희 교수는 30일 YTN라디오에 출연해 “근로계약서조차 잘 작성이 안 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 지침이 시행된다면, 부대조건 때문에 (해고)재량권을 사용하지 않을 기업들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지침을 악용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지는 데 반해 그것을 방비한 장치는 미약하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결국, 균형 있는 기준을 객관적으로 만들어놓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법적 효력이 없는 행정지침이 ‘사실상 구속력’을 가질 경우 법치주의의 이념적 기초마저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지침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실적부진(저성과)을 구실로 형식적인 교정 기회 제공만으로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게다가, 일반해고제가 도입되면 노동자 생존의 마지노선을 의미하던 ‘해고로부터의 보호 법제’가 사용자의 해고행위를 합법화해주는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저성과자 해고제가 도입되면 노동조합 간부나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인 조합원을 적절히 섞어서 저성과자로 분류해 해고해도, 사용자가 노동조합원에게 불공정하게 평가 점수를 부여했는지 객관적으로 알 도리가 없기 때문에 부당노동행위 시비를 피할 수 있게 돼, 결과적으로 노동조합의 존립도 위태롭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는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게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의 시각이다.

민주노총 류주형 정책부장은 “정당한 이유 없이는 해고당하지 않는다는 노동법의 대원칙이 무너지고, 사용자가 정한 성과를 해내지 못하면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독단적이고 가혹한 통념이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류 부장은 “특히 현재와 같이 정부·여당이 불황기 과잉·부실자본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해고제 도입은 구조조정과 해고의 악순환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며 “일반해고제는 장기간의 수익성 위기와 국제 경쟁에 노출된 조선해운·철강·석유화학 등 주력 수출산업·업종의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앞서 인력을 언제든 쉽게 줄이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김연탁 사무처장도 우리 사회 노사관계의 현실에 주목하면서 “노조 조직률이 10% 미만이고,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률은 2%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지침이 관철된다면 그 파급력은 현장에 파멸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울하게 내다봤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이날 새누리당 전북도당 앞에서 예정한 기자회견 장소를 급히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으로 바꾸고 “정부가 노동개악 가이드라인을 강행한다면 총파업 총궐기로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경총은 노동계와 정반대의 입장을 드러냈다. 경총은 30일 자료를 통해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가이드라인과 지침의 주요 내용이 공개된 것은 다행”이라며 “(하지만) 실제 지침과 가이드라인에는 노동시장을 활성화하여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활력을 높이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합리적인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고 도리어 정부를 압박했다.

(‘⓶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