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규홍)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다. 최씨와 박씨 성을 가진 두 여인이 주거니 받거니 한 문서의 내용을 보자니 아마 두 사람을 비롯한 그 일당들은 나랏일을 무슨 계모임 쯤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꼭두각시처럼 누군가의 조종을 받으며 나랏일을 처리해 온 대통령이나 그 등에 올라타 권세를 부려온 사람들이나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참혹한 일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를 수 있었겠는가. 이쯤 되면 호가호위라는 말도 무색하다. 누가 호랑이고 누가 여우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오로지 잘 살게 해 주겠다는 꼬임에 속아 그 사람들을 나라의 지도자로 뽑아 준 국민들이 뒷목을 부여잡고 제 얼굴에 떨어진 침을 닦을 차례다. 누굴 탓하랴!
언제부턴가 우리는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보고 평가를 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코흘리개 유치원생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똑같다. 무한경쟁, 각자도생이 무슨 생존의 법칙처럼 자리 잡은 지금 한 사람의 생각이나 철학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무슨 수를 쓰든 좋은 학교 가면 그만이고, 좋은 직장 잡으면 그만이고, 그래서 잘 살아남으면 장땡이라는 생각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되짚어 볼 때가 된 것이다.
상처는 메달로 감출 수 있어
얼마 전 4등이라는 영화를 봤다. 1등, 금메달, 일류대학 진학, 그리고 그 결과로 얻게 될 폼 나는 인생……. 이 단순한 공식을 신앙처럼 받들고 행동에 나서는 엄마와, 때려서라도 1등을 만들겠다는 단순무식한 수영코치가 합심해 어린 아이를 학대하는 잔혹동화 같은 영화다. 금메달 따게 해 주는 (폭력)코치를 소개해 주는 여인이 아이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를 하자 주인공 준호의 엄마는 그 상처는 메달로 가릴 수 있다고 단호하게 응수한다. 1등만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참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준호의 엄마는 결국 코치의 폭력으로 피멍이 든 아이의 등을 보고도 침묵함으로서 폭력의 공범이 되고 만다. 아니 엄마의 폭력은 이미 이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아이의 바람과 동떨어진 금메달을 아이에게 바라는 것부터가 잔인한 폭력이었다.
대부분의 욕망은 내 안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비롯된다. 내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욕망하기보다는 사회가 인정하고 가족이 원하는 것들이 나의 욕망으로 탈바꿈을 하기 일쑤다. 준호의 욕망은 그저 즐겁게 수영을 하는 것이었지 경쟁을 해 1등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1등은 부모의 욕망이었을 뿐. 나의 욕망을 타인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폭력이다.
삶이 그대를 속이거든...
당연히 슬퍼하고 분노해야지 않을까.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돈 많은 부모를 가진 것도 실력이고 능력이라고 했다. 결과가 모든 걸 말해주는 무한경쟁의 논리를 신봉하는 부모의 영향을 받은 걸까? 그런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그 결과로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다 실력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 수 있었던 것일 게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대한민국은 정유라 같은 생각을 정당화시킨다. 반면에 정직하고 배려심 많고 성실한 패배자를 조롱한다.
경쟁을 피하고 싶은 아들을 향해 너 커서 뭐될래? 찌질하게 살래? 라고 몰아붙이는 준호엄마의 마음이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한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비정상적인 생각들도 자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 되어버린다. 박근혜 같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있는 게 별로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던 것도 국민들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면 이제라도 분노하고 슬퍼하며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