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윤희만)
(아래 사례는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에 들어온 상담 내용을 각색한 것이며, 용역회사는 실제 업체명이 아니다.)
김씨는 몇 년 전부터 전주 A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병원 전산망을 관리하는 일이다. 그는 병원에서 일하지만 병원 소속이 아니고 ‘갑을’이라는 파견용역전문회사 소속이다. 작년까지 연봉으로 2100만원을 받던 그는 올해부터 급여가 1900만원으로 줄었다. 용역회사가 바뀌면서 임금이 줄어든 것이다.
김씨는 급여가 줄어든 것에 대해 자신이 일하고 있는 원청인 A병원에 항의해보았지만 A병원 측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고용과 급여문제는 병원과 용역계약을 맺은 ‘갑을’이라는 회사가 책임질 문제라는 것이다.
김씨 급여는 왜 200만원이 줄어들었을까?
일반적으로 원청과 하청 사이에 용역계약을 맺은 경우 계약 내용은 크게 재료비, 노무비, 경비, 일반관리비, 이윤, 부가가치세로 구성된다. A병원은 1억9천만 원에 용역계약을 맺었고 직원들이 받은 임금은 1억3천만 원이고 나머지 6천만 원은 세금과 관리비 이윤 명목이다.
‘갑을’사는 1억9천만 원 중 세금을 제외하고 회사의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직원들의 임금을 일괄적으로 200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을 줄였다. A병원에서 수년간 전산망관리를 하면서 근무를 해온 직원들은 자신들의 업무장소, 업무시간, 업무내용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는데 오직 서류상 소속 회사가 바뀐 이유로 임금이 200~300만원 가량 줄어든 것이다.
A병원과 용역계약을 맺은 하청인 ‘갑을’사는 관리비와 이윤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하였나?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회사가 한 것이라고는 직원들의 임금을 줄인 것 이외 아무것도 없었다. 계약을 맺고 기존에 병원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들을 자신의 회사 소속으로 변경시킨 댓가로 관리비와 이윤을 받아간 것이다.
근로기준법 9조에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A병원과 ‘갑을’사의 관계에서 ‘갑을’사는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해서 중간인으로 이익을 취득한 것 이외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명백한 중간착취이다.
근로기준법 9조를 위반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와 같은 용역계약은 민법상 도급계약으로, 법적으로 합법적인 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계약문서상에서는 용역과제가 주어지는 도급계약이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용역업체인 ‘갑을’은 용역을 수행하기 위한 사업을 한다기보다는 인력의 단순 관리를 하기 때문에 용역이라기보다는 인력 파견에 가깝다. - 심지어 파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관리비를 받아가는 근거는 뭘까? -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하는 근로기준법은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사용주가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에서의 사용자의 책임과 의무는 노동자를 사용하지만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되는 간접고용 형태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다.
- 용역이나 도급은 특정업무나 과제를 보다 전문적인 회사나 인력에게 맡기는 것이 그 취지이지만 현실에서는 중간착취를 합법화하고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는 데 활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지만 직접고용하지 않고 다른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를 데려다 쓰는 간접고용은 일을 시키는 사용주가 임금, 고용, 처우 등에 대해서 법적으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간접고용은 사용자 입장에서는, 특히 소속 노동자의 저임금 고용의 불안으로 인한 고통을 즐기는 여유를 가진 사용자라면 매우 흡족해할 만한 고용방식이다.
용역업체는 근로계약서와 용역계약서만 만들면 통장으로 관리비와 이윤이라는 명목으로 돈이 들어온다.
그런데 용역업체에 관리비와 이윤으로 들어가는 돈은 원래 누구의 돈인가?
A병원의 돈인가? 아니다. 이 돈은 원래 A병원의 전산망을 관리하는 노동자에게 지급되어야 할 임금이다. 노동자에게 지급되어야 할 돈을 용역이라는 명목으로 용역업체에 관리비로 주고 있는 것이다.
A병원에서 수년째 동일한 직원들이 전산망 관리를 하고 있다면 이 업무는 상시지속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A병원이 직접고용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A병원도 인건비를 절감하고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용역계약을 하고 있는 것이다.
A병원이 전산망 관리 직원들을 직접고용하고 용역계약을 위해 지출하는 세금, 관리비 이윤을 인건비로 전환하면 전산망관리 직원들은 300~400만원의 임금인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A병원은 직접고용을 하지 않는다. 간접고용으로 직원의 고용을 책임지지 않고 일을 시킬 수 있는데 굳이 직접고용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고용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법과 제도로 사용자를 규제해야만 한다. A병원장이 상시지속업무에 대해 간접고용노동자를 사용하면 불법이 되게 해야 한다.
용역도급계약 범위와 내용을 명확히 해서 부문별하게 사용되는 것을 막고 중간착취제도로 활용되지 않게 해야 한다.
상시지속업무라면 용역이 아닌 직접고용으로 의무적으로 전환시키도록 해야 한다. 광주광역시가 소속 간접고용노동자들을 직접고용 시켰던 사례와 서울시가 간접고용으로 운영하던 콜센터를 자회사로 편입시켜 직접고용하는 사례 등 최근 공공부문에서 간접고용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이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지금, 공공부문 뿐만 아니라 민간영역까지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노동적폐가 해소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정비를 시급히 해야 할 때이다.

▲근로자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폐지를 촉구하는 민주노총의 2003년 당시 전단지 일부. 여기에 노동자들은 이렇게 적었다.
“남들과 똑같이 일하고도 비천한 신세로 전락한 파견노동자들. 2년 후에도 같은 업무를 시키면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를 지키는 기업주는 없습니다. 오히려 2년이 되기 전에 계약해지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이미 불법파견이 합법파견을 넘어선 이때 정부는 비정규직 권리보장을 위해 법제도를 개선한다는 이유로 파견업종을 크게 늘리고 파견기간마저 확대하려고 합니다. 불법파견마저 합법화하겠다니 이제 파견법은 끝장난 거 아닙니까!” 출처=민주노총(nodo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