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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의 삶을 위하여!


... 편집부 (2016-06-13 13: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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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홍의 시선 5>
설렘의 삶을 위하여!

가슴 설레는 얘기 하나 해보자. 딱히 바쁘지 않다면 천천히 한 단락을 읽고 잠시 눈을 감고 상상을 해보자. 그렇게 한 줄 한 줄 읽어가다 보면 두 가지 반응이 온다. 턱없이 기분이 좋아지거나 한숨이 나오거나……. 난 기분이 좋아지는 쪽을 선택했다. 한숨은 내 건강에 좋지 않으므로.^^

국민의 97%가 난 행복해! 라고 말하는 나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호등이 없고 대규모 공장이나 오염시설이 없는 나라, 맥도날드도 포기한 패스트푸드가 없는 나라, 국민의 행복을 침해하는 모든 게 법으로 금지된 나라, 인구 70만의 개발도상국이지만 돈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게 상식인 나라..... 라고 한다. 내가 가보질 못했으니 정말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정말 사실이라면 대~~~박이다.

중국과 인도 사이에 자리 잡은 히말라야의 산악국가인 부탄은 대한민국의 5분의1 크기인 작은 나라다. 그럼에도 소련과 미국의 냉전시기에 부탄은 두 나라와 관계를 맺지 않았다. 미국의 경제지원도 배짱 좋게 거절하고 이웃한 작은 나라들과 관계를 이어갔다. 강대국의 원조를 받아 빠른 산업화를 이룬 대신 나라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웃 나라들의 전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경제적 풍요함을 추구하다 보면 가족과의 시간이 희생되고 자연과 접하는 기회가 줄어 결국 건강을 해치게 된다. 근대화가 초래하는 부작용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부탄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쿠츠).

부탄의 헌법 제1조 1항, 국토의 60%는 산림으로 유지한다.
부탄공항은 너무 작아서 비행기가 착륙하기 제일 어려운 공항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부탄을 찾는 관광객은 해마다 늘고 있었다. 이때 부탄은 자기 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조건을 내건다. 외국인 관광객은 체류기간 동안 하루에 200달러 이상을 써야 한다는 관광관세가 그것. 작은 나라에 많은 관광객이 몰려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엄격한 규정을 미리 세워둔 것이다.

산악지대로 높은 산이 많은 부탄에는 외국인 등반객 또한 많다. 이에 정부에서는 인구의 90%에 해당하는 농민들에게 이들의 가이드와 짐꾼을 하게 해 농민들의 소득창출에 기여하고자 했다. 하지만 놀러온 외국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기 싫었던 농민들은 농사일이 힘들다고 핑계를 대며 국왕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국왕은 국가에 외화를 안겨다 주는 등반객 유치를 포기하고 농민들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우리에겐 외화를 가져오는 등반객보다 밭에서 일하는 농민들이 소중하다는 생각에서다.

부탄에선 주식인 채소와 농산물의 90%를 유기농으로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10년 안에 모든 농산물을 유기농으로만 생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탄의 농민들은 모두 자기의 농지를 가지고 있다. 오래전 3대 국왕 때부터 왕과 귀족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4대, 5대 국왕을 거치면서 농지를 나눠주는 이 일은 계속되고 있다. 소박한 삶을 원했던 현재의 5대 국왕은 왕궁을 나와 작은 집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부탄에는 또한 노숙자와 양로원, 고아원, 그리고 빈곤층이 없다. 어려운 이웃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 그들의 전통 때문이다. 보살핌이 필요한 노인이나 어린이, 사회적 약자들은 그들의 친척이나 마을 공동체가 나서서 도와준다. 개인과 공동체가 나서서 서로를 보살피는 가운데 국가는 교육과 의료를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부탄의 GDP는 세계 166위다.

국민의 의견을 물어 정책을 세우고 실천하는 나라,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나라, 경제성장이 아닌 국민의 행복을 바라는 나라, 온 국민이 행복한 나라, 부탄!
(참고/인용: 『세상을 바꾸는 편지』 中)

설렘을 방해하는 것 중 으뜸은 억압이다. 내 뜻이 오롯이 발현될 때 우리는 흥분되고 설렌다. 내 바람과 생각이 무참히 짓밟힐 때 설렘은 사라지고 분노와 좌절, 슬픔이 밀려든다. 평일 아침엔 천근이나 되던 눈꺼풀이 주말 아침이면 번쩍 떠지는 건 아마 이런 이치 때문이리라. 돈보다 행복을 애타게 그리는 많은 국민들의 바람 따위엔 아랑곳 않고 위로만, 앞으로만 내닫는 질 낮은 우리의 정치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국민총행복(GNH:Gross National Happiness) : ‘모든 국민의 궁극적 바람인 행복을 추구하는 여건조성이 국가발전 목적에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에 기반을 두어 조사 및 발표되며 부탄왕국의 모든 정책의 결정권한을 가진 최고의 기준이다.’

부탄왕국은 입헌군주제 국가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진보된(?)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체제가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는 필요충분조건은 못 되는가 보다. 부탄이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보다 가난하지만 훨씬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땅에 살고 있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바람과 생각이 존중받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지켜주고 그 가치를 실현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삶이 설렘이고 기쁨이 되지 않을까?

중년의 로맨스만큼이나 설레는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