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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5-12 09:57:27

내가 멀쩡한 게 기적이다


... 편집부 (2017-07-16 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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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버스 졸음운전 사망사고를 보며

(사진=이장원)

지난 7월 9일 오후 2시 45분,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양재 나들목 인근에서 서울과 오산을 왕복하는 광역버스의 졸음운전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사망자 2명에 14명이 다치는 큰 사고였다.

사고 초기,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이 빠르게 보도됐다. 피해를 당할 뻔한 앞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과 버스 내부의 영상이 공개되었다. 누가 보기에도 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임이 분명했다. 포털 사이트 뉴스에는 금세 비난조의 댓글 수천 개가 달렸다. 이미 버스운전사들은 운전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택시와 함께 ‘도로 위의 깡패’라고 불리고 있지 않은가? 기존의 부정적인 인식과 사망한 피해자 부부의 안타까운 사정이 알려지며 시민들의 분노는 증폭되어갔다. 사고를 낸 버스운전사는 하루아침에 몹쓸 살인자가 되었다.

사건 이후 버스운전사의 인터뷰가 보도되었다. 사고가 나기 하루 전, 버스운전사는 하루 18시간 동안 운전했다. 사고가 난 당일에는 오전 6시에 일어나 7시 15분부터 사고시각까지 7시간 30분을 운전했다.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사고 시각 이후로도 10시간을 더 일하고 자정쯤에야 퇴근했을 것이다. 다음날 하루는 휴무였다. 버스운전사의 노동시간이 알려진 후 여론은 달라졌다. “저렇게 일하면 안 졸 수가 없다!” 운전자라면 모두가 공감했으리라. 버스운전사의 가혹한 노동조건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고를 낸 오산교통이 유독 노동조건이 가혹한 것이 아니다. 하루는 종일 일하고 다음 하루는 쉬는 격일제 근무방식은 많은 버스 회사들이 채택하고 있는 노동조건이다. 하루 18시간 일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근로기준법상 합법이다. 근로기준법 59조는 근로시간 특례업종 규정을 담은 조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운수업을 비롯한 11개 업종은 특례업종으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의 상한을 규정받지 않는다. 무제한 연장근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 결과 민간 시외버스를 운전하는 노동자의 하루 최대 근무시간은 17시간 8분에 달한다. 1주 근무시간은 74시간 52분, 월 309시간 33분이다. 근로기준법상 표준 근로시간 월 209시간을 한참 초과한다.

이를 알게 된 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당장 정신을 놓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피곤한 사람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있구나. 요행히도 난 사고가 안 났네? 내가 멀쩡한 게 기적이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버스를 타거나 버스와 같은 도로에서 운전하게 될 나의 안전이 사실은 뿌연 안개 속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사고의 후속대책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버스가 5cm 짧아서 자동비상제동장치 설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뉴스가 보인다. 물론 안전장치는 부착되면 좋겠지만, 여기에서 그친다면 졸음운전의 원인은 놔둔 채 임시방편만 마련하는 꼴이다. 답은 간단하다. 졸리면 자게 하면 된다. 근로기준법 59조를 폐기하고 연장근로를 강하게 규제하여, 8시간 근무하면 집에 가서 쉬게 해야 한다. 기업이 이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덜 일하는 만큼 신규채용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돈이 더 들고 이윤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렇게 해야 할 이유는 허탈하게도 이것뿐이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노동권은 노동자 자신의 안전이자, 그와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의 안전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모든 버스운전사들이 충분한 임금과 충분한 휴식, 그리고 적당한 노동시간을 보장받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생긴 공백에는 새로운 버스운전기사들이 충원되어 시민의 건강한 발이 되길 바란다. 이 일을 기업이 돈이 없어서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애초에 사업을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차라리 국가나 지자체가 공영화하여 운영하는 모두를 위한 대중교통을 만들어 모두의 안전을 확보하자.


▲지난 12일 경부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광역버스 졸음운전 사고 당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