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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7-28 15:21:30

할머니가 파업을 한다면?


... 편집부 (2017-05-01 09: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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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유미)

할머니가 파업한다면 한국사회는 버틸 수 있을까? 할머니에게 어린 자녀를 맡기고 있는 상당수의 직장인들은 출근할 수 없을 거다. 아픈 노인들도 간병할 사람이 없어 방치될 것이다. 할머니네 가족들만 문제가 될까? 아니다. 할머니는 손주와 아픈 남편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돌보고 있다. 사회서비스 노동자로 간병인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노인과 환자를 돌본다. 할머니가 파업하면 병원과 요양시설도 멈출 것이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경제성장도 멈출 것이다. 2010년 이후 한국경제는 저임금 일자리 증가로 성장하고 있으며 그 핵심은 50대 여성의 사회서비스 진출 확대로 분석되고 있다. 이처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아동과 노인, 환자를 돌보며 사회를 지탱하고 경제성장까지 이끄는 주역이 할머니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한국은 할머니의 출혈노동으로 유지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즉, 50~60대 여성이 가족과 사회의 공백을 메우며 사회를 지탱하는 현실이다.

50대 이상 중고령 여성 취업자가 증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추정된다. 하나는 자녀로부터 부양을 기대하기 어렵고 국가지원이 취약하다. 자녀들의 취업준비기간이 늘어나고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 중고령 여성들이 부양을 기대할 수 없고 오히려 자녀를 지원해야 할 처지다. 또한 국가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다. 고령자 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한국은 60% 이상으로, 고령자 노동소득 비중이 20%대인 OECD 가입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높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이유는 저출산 고령화로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확대되어 여성인력 수요가 증가해서다.

50~60대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어나고 있지만 일자리 질은 나쁘다. 대다수가 저임금 일자리다. 2016년 3월을 기준으로 50대 여성 임금근로자의 47%가, 60대는 73%가 저임금노동자(중위임금 2/3 이하)다. 남성의 경우 50대 저임금 비중이 14%, 60대에는 51%다. 남성에 비해 여성저임금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지 않은 50~60대 여성들이라고 해서 삶이 편안한 것은 아니다. 손자녀를 돌봐야 한다. 신조어로 ‘손주병’이 생겨날 정도다. 손자녀를 돌보다가 허리나 무릎 관절염에 걸리거나 심지어 우울증을 겪는 일이 늘고 있다. 조부모가 맞벌이 가구의 절대적 양육지원자이기 때문이다. 조부모가 손자녀 양육을 맡게 되는 주된 이유는 자녀의 직장생활을 지속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신뢰할만한 보육시설의 부족,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30대 여성의 직장생활은 할머니의 조력으로 유지되는 현실이다.

한국사회는 돌봄노동의 공백을 중고령 여성들의 노동으로 메꾸고 있다. 가족 내에서 할머니로서 손자녀를 기르고, 아내로서 아픈 남편을 돌보고, 사회서비스 노동자로서 일터에서 장애인과 환자와 노인을 돌본다. 한마디로 부족한 사회서비스 인프라와 사회서비스의 시장화가 빚어낸 구조적 문제를 중고령 여성들에게 전가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손자녀 돌봄은 할머니의 사랑으로, 사회서비스 노동은 나이든 여자들이나 하는 쉬운 일로 여기며 정당화하고 있다. 할머니가 허리 좀 펴고 삶이 나아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손주의 재롱이 아니다.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 손주들이 할머니 손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보육시설에서 자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