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7일 북한은 전격적으로 5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과거 북한의 핵실험들이 대체로 3년 주기로 시행되어왔던 것에 비해 바로 저번의 4차 핵실험 이후 불과 8개월 만에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더구나 1월의 핵실험 이후 한미 양국 정부가 사드(THAAD) 한반도 배치를 발표하고 주변국들의 갈등이 격화되던 와중이라 그 충격은 더한 것이었다.
미국의 포괄적인 대북정책 재검토: 외교관계연구회 보고서
이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대응책을 두고 갑론을박이 거셌다. 그러던 가운데 미국의 초당적인 외교정책 연구기관인 외교관계연구회(CFR; Council on Foreign Relations)가 발간한 한 보고서가 국내 정치계와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9월 5차 핵실험 이후 발표된 <북한에 대한 확고한 선택: 동북아시아 안정을 위해 중국을 관여시키기>(A Sharper Choice on North Korea: Engaging China for a Stable Northeast Asia)라는 보고서다. 해당 보고서가 발표되는 자리에서 미국 합동참모본부 전 의장인 마이크 멀린이 "만약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에 아주 근접하고 미국을 위협한다면 자위적 측면에서 북한(미사일 발사대 등)을 선제타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발언한 것이 국내에 알려지며 유명해졌다.
안 그래도 강경대응을 주문하던 보수언론들은 “북한의 5차 핵실험 후 워싱턴 외교가에서 대북 선제타격론이 제기된 것은 처음”(동아일보, 美일각 “北 선제타격 할수도”… 고개드는 강경론, 2016-09-18.)이라거나 “전직 미군 수뇌부가 '북한 선제 타격론'을 제기 .. 미국 정부의 협조·승인 없이 나오기 어려운 보고서”(조선일보, 美서 나온 '北 선제타격론', 2016-09-18.)라며 환영조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쪽에서는 해당 보고서가 북한과 대화를 강조한 것이며, 미국 정부는 북한과 대화국면에 들어갈 것이니 한국정부와 보수언론은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이러한 주장을 담은 기사로 한겨레, [사설] 미국 쪽의 대북협상론을 주목한다, 2016-09-19.나 오마이뉴스, 북한 향한 미국의 ‘변심’, 한국 준비됐나, 2016-10-16. 등을 참조할 수 있다).

▲미 외교관계연구회 보고서 <북한에 대한 확고한 선택: 동북아시아 안정을 위해 중국을 관여시키기>. 원문은 http://www.cfr.org/north-korea/sharper-choice-north-korea/p38259에서 열람 가능하다.
같은 보고서로 이렇게 다른 주장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해당 보고서 자체가 협상부터 군사적 조치까지 포괄적인 접근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교관계연구회는 공화, 민주당을 막론하고 초당적인 외교 싱크탱크다. 보고서 작성자의 면면을 봐도 오바마 정부는 물론 부시 정부의 유력한 외교, 안보 전문가들이 고루 참여했을 정도다. 따라서 해당 보고서의 내용은 오는 11월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앞으로의 미국 대북정책의 핵심 내용을 담았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이 정도 공신력있는 보고서의 내용을 둘러싸고 국내에서 서로 다른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주장을 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미국의 진짜 구상이 무엇인지, 면밀하게 검토하는 일이다. 그래야 비로소 한반도에 사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좀 더 명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미 대화,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보고서는 북한이 협상테이블에 돌아올 수 있도록 미국은 일정 수준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시 정부 이래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로서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omplete , Verifiable ,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고집해왔다. 그러나 해당 보고서는 초기 협상으로서 ‘북한 핵 능력의 동결과 검증’과 북한이 요구해왔던 평화조약, 즉 ‘종전선언’을 교환할 수 있다고 적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과거의 핵물질 추출, 실험 등까지 검증하는 ‘CVID’에서 한발짝 물러나 앞으로 핵실험, 미사일 발사 실험을 중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재가입 및 감시 등이다. 말 그대로 북한이 일시적 핵 동결을 하면 미국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오바마 정부가 주장했던 ‘전략적 인내’, 즉 북한이 먼저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에 나서지 않는 한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다소 선회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보고서는 협상의 최종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이며, 대화에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 북한에 추가적인 인센티브(식량 지원 등)는 줄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또한 보고서는 대화의 형식에 있어서도 6자회담이 주된 테이블이겠지만, 특정한 이슈에 있어서는 북한, 남한, 미국, 중국의 4자 대화도 가능하고 그 외에도 형식에 있어서 개방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적었다. 과거 무조건적인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주장한 것에 비하면 꽤나 유연한 접근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지난 4차 핵실험 이후 공개한 핵탄두 기폭장치. 사진출처: 미국의소리
그러나 국내 언론이 기대하는 만큼 전향적인 대화국면이 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한의 태도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북한은 공공연히 핵보유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이 줄곧 비핵화와 평화협정(북-미 관계 정상화)을 동시에 추진하자고 북한을 설득해왔지만(이번 미국 외교관계협의회의 보고서도 이를 일정 수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미 3년 전에 자신들도 같은 내용을 제안했지만 미국이 전략적 인내에 따라 거절했다며 더 이상 평화담판의 기회는 사라졌다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핵 무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해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연합뉴스, 조선신보, '한반도 긴장' 美에 책임전가…"3년전 비핵화 언명", 2016-03-15). 더 이상 미국과 줄다리기 협상에 나서기보다는 강압적인 힘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여전한 대북 군사적 압박 조치
보고서는 동시에 대화가 실패했을 시 미국이 취해야 하는 ‘억지책’, 즉 군사적 조치도 명시했다. 특히, 북한이 탄도미사일 실험이라고 선언하든, 비군사용 위성 발사체라고 선언하든 관계없이 한미일 3국이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여기에는 한국의 보수언론이 미국이 선제타격을 공언했다고 보도한 ‘예방적 타격(preemtive attack)’, 즉 미사일을 쏘기 전에 북한의 미사일기지를 타격한다는 개념까지 포함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미사일을 쐈을 때, 이를 요격한다면 북한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이다. 북한은 이를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추가적인 군사적 활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보고서는 한미일 3국의 협력을 강조하며 ‘어느 하나에 대한 공격은 3국 모두를 향한 공격’이라고 선언하는 집단안보공약(collective security commitment)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 상 3국 군사동맹의 완성을 의미하기에 중국의 반발, 또는 한국과 일본 내의 반발 등으로 집단안보공약 자체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상당한 수준의 한미일 군사협력을 추진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위의 미사일 요격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국제적인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예를 들어, 이번 여름처럼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에 떨어질 때, 일본이 이를 공격으로 간주하여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 북한이 이에 반발하여 일본 자위대를 추가로 공격하면, 집단안보공약을 발표한 한국과 미국도 이 충돌에 자동으로 휘말리게 된다.
보고서는 위에 적힌 군사행동 시나리오가 지금까지 실행된 적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한미일이 적극적이고 비례적인 대응을 할 것이라는 신호를 공동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북한이 ‘새로운 도발’에 나서면 반드시 ‘처벌’받을 것이라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본때’가 경고로 그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소결

▲ 이미 실패한 6자회담, 그 이후의 군사적 갈등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있는가? 특히 북한이 이를 잘 알기에 오히려 대화국면 자체가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출처: 월간 오늘보다
약소하나마 향후 북한 핵을 둘러싼 갈등을 전망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앞으로 미국은 적어도 ‘전략적 인내’에서는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외교관계연구회의 보고서와 여러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일정한 대화의 장을 열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썼듯이 그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더 이상 비핵화협상에는 매력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제국으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자국의 핵심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에서 군사력 우위를 유지·강화할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대화의 가능성은 더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이미 대화와 군사적 압박을 병행한다는 (그리고 햇볕정책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클린턴 정부 시기의 ‘페리 프로세스’와 6자회담이 좌절한 역사를 알고 있다.
물론 북한과 미국이 당장 전면적인 (핵)대결로 갈 것이라는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향후 몇 년 간 대화와 갈등이 반복되면서 그러한 가능성이 조금씩 커져갈 것이다. 게다가 중국을 포함하여, 어느 다른 나라도 협상이나 중재의 키를 쥐고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파국의 시나리오로 무게추가 좀 더 기울어져있는 것 같다.
북한 지도자의 핵무장 논리도, 남한이나 미국 지도자의 군사적 압박과 선제타격 논리도 아닌, 제3의 길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제3의 길은 지도자들의 손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시민들의 평화운동만이 열어젖힐 수 있을 것이다.
※ 반전과 평화를 주제로 한 이준혁님의 칼럼을 정기적으로 게재합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