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와 한일 군사정보호호협정 논란을 보며]
최순실 게이트가 온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내 기억을 되돌려보면 대학 시절, 어떤 교수님은 나라 운영을 집안의 살림살이를 빗대며 ‘공공의 살림살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각하와 ‘진짜 각하’ 최순실은 진짜로 집안살림마냥 국정을 운영해왔던 것이다. 그런 국정농단이 나름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라 자부했던 우리들에게 큰 부끄러움을 주고 있다. “이게 나라냐” 하고 말이다.
이 와중에 한때는 ‘새누리당’, ‘보수’라는 한집 살림을 하던 이들의 행보가 흥미롭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보가 큰 위기에 직면해있고 경제도 어렵다”며 버티고 있지만 똑같은 경제위기, 안보위기를 이야기하면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와 조선일보는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민주주의를 원하는 촛불시민들과 함께 갈 수 있는 것일까? 이들의 위기의식은 일관되게 현재의 안보위기-경제위기를 박근혜 세력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하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박근혜는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날로 엄혹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새로운 백악관의 주인이 되면서 미국의 한반도 방위공약이 불확실성에 빠졌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이들은 한국은 “국방을 사실상 미국에 맡기고 우리끼리 싸우는 데 더 열중해왔다. 심지어 나라 지키는 일을 남의 일처럼 여기는 풍조까지 만연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조선일보, <[사설] 미국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 상황에 대비돼 있는가>, 2016-11-10).
다른 글은 더 솔직하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다. 정부는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막으려면 일본과 군사정보를 교환할 수 있어야 하고, 따라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일본의 발달된 대 잠수함 탐지능력과 한국의 인적 정보를 교환하자는 것이다. 사실 이 협정은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 밀실에서 추진되다 반발에 부딪혀 실패한 바가 있다. 물론 과거사 문제로 인해 일본과 군사 협정을 맺는 것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여전하다. 게다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국민 공감대 등 여건 조성이 우선”이라면서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열지 않고 관련 부처 협의만으로 협정을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는 여기에 어떠한 태도를 보였는가? 11월 12일자 사설에서는 “이 협정 문제로 반일 정서까지 가세할 경우 일이 더 악화될 수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수준이었다(<[사설] 응당 해야 할 '한·일 군사 정보 공유'도 부담되는 현실>). 그러다 11월 14일에는 더욱 강경해졌다. “좌파들 마음에 안 드는 외교·안보 사안에 '최순실 사업' 꼬리표를 붙여 반대하는 분위기다. 국민 생명을 놓고 정치 장난은 하지 말아야 한다”며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사설] '최순실' 때문에 절박한 외교·안보 현안 중단할 수 없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도 “야당이 한일군사정보협정을 두고 거짓 선동을 하고 있다”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만은 최순실 사태와 관련 없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결국 이들이 원하는 민주주의는 그저 형식적인 것일 뿐 그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거부한다. 그러나 보수신문이 규정하는 것과 달리 시민들의 요구는 박근혜 하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앞서도 언급했듯 시민들의 분노는 공공의 살림살이, 즉 우리 모두의 문제를 공적으로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문제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모두를 드러내놓고 재논의해야 한다.
나는 안보위기가 단지 보수세력들의 집권을 위한 ‘북풍(北風)’이나 ‘내부정치용’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엄연한 현실이다. 미-중 간의 잠재적인 갈등이나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 상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저들이 얘기하는 안보위기를 자초한 장본인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

▲한국일보 보도사진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사드 배치 결정, 북한 흡수통일론이라 비판받았던 ‘통일대박론’ 등에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지만, 이러한 주요 결정에 새누리당과 조선일보는 한결같이 찬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긴장을 한층 높여왔다. 사드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은 안보위기의 근원인 동아시아의 군비경쟁을 부추기는 핵심요인이다. 사드가 북한 핵 미사일을 막는 데에는 소용이 없다거나 중국의 핵 능력 강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시민사회의 우려에 박근혜 정부가 제대로 답한 적이 있는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먼저라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어떠한가? 작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으며 한미일 군사동맹, MD 협력 강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제대로 된 국민적 토론이 있었는가? 없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야기된 동아시아 정세의 불안정함은 우리 모두의 안전한 미래에 위협을 주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불통에는 분노하면서 안보정책에서는 불통하자는 조선일보의 논조는 기만적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말 안보문제가 국가적 대사라면, 박근혜의 퇴진만이 아니라 그가 수행해왔던 정책에 대해서도 드러내놓고 재검토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거리에 나서게 한 소중한 가치 - 민주주의가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