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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행진과 워킹맘의 죽음


... 편집부 (2017-01-22 22: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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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유미)

트럼프 취임식 날 수십만의 미국 여성들이 “여성의 권리가 인권이고 인권이 여성의 권리다”라고 선포하고 워싱턴을 비롯한 각지에서 행진을 했다.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우려되는 여성인권 후퇴에 맞서기 위해서다.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여성비하적인 언행이 문제가 되었고 노골적으로 이주민의 권리를 제약하겠다고 공언한 트럼프의 당선은 다수의 여성과 이주민들에게 충격이었다. 경제사회적 위기로 야기된 불만을 여성과 이주민들을 향한 혐오로 분출하는 경향이 한층 더 공고해질 것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두려움에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들의 비전을 밝히고 행진을 조직했다. 그녀들은 선언문에서 젠더 정의가 인종 정의이며 경제 정의라고 밝혔다. 흑인 여성, 인디언 여성, 가난한 여성, 이민자 여성, 무슬림 여성, 레즈비언, 퀴어, 트랜스 여성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성폭력에 반대하고 낙태 및 피임의 권리와 의료지원의 권리를 요구하며,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여성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를 주장한다.

행진 공동주최자들은 행진이 1월 21일 이후에도 이어지기를 희망하며, 공동체 속에서 관계를 재건하고 분열을 치유하는 것까지 이어져야한다고 주장했다. 단지 여성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여성을 비롯한 동료 시민의 권리를 함께 지키기 위한 사회변화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국여성 행진에 연대하며 같은 날 여성행진이 있었다. 우리는 어떤 권리를 선포할 것인가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게 했다. 바로 며칠 전, 세 아이를 둔 워킹맘이 과로사 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정부가 가임기여성 지도를 만들어 발표하면서 여성들을 애 낳는 기계로 취급하는 태도로 빈축을 산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두 사건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부가 추진한 저출산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없으며 문제적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출산 대책의 일환인 일가정양립 정책은 가사양육의 여성전담을 전제로 여성의 노동을 파트타임 등으로 유연화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가사와 양육은 국가와 남성이 함께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상당부분 여성의 몫이지만, 직장에서는 워킹맘이라고 변명하지 말라고 한다. 과로사 할 정도로 여성을 몰아붙이는 현실에서 여성들이 출산을 선뜻 선택할 리 만무하다. 그런 조건을 바꾸려는 노력 없이 국가는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 취급한다. 가임기 여성지도만이 아니다. 낙태단속 강화시도도 그런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낙태단속이 쟁점이 되는 순간 저출산 문제는 출산을 포기하는 사회구조적 문제는 은폐되고 이기적이고 문란한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문제로 둔갑한다. 여성들은 자유로운 성과 출산의 권리를 통제 당한다.

한국에서도 여성의 권리가 인권이고 인권이 여성의 권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요구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도 가정과 직장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 가사와 양육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여성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을 통해 짐을 덜어줘야 한다. 특히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일수록 부담이 크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으며 저임금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서 발생하는 문제다. 여성저임금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이를 위한 노동조합 가입과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동시에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는 정책적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하며, 자유로운 피임과 임신중단의 권리 그리고 출산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미국에서 여성행진은 선언으로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실천을 선포하는 의미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성의 현실을 알리고 권리를 주장하며 사회를 바꾸는 실천을 이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21일 전세계적으로 여성행진이 열렸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는 수십만 명의 군중이 참가했다. 사진출처=www.aljazeer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