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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인 다겐함’이 한국에 전하는 메시지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이유미(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 편집부 (2017-07-09 21: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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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유미)

리타는 남편에게 소리친다. “배려는 특권이 아니라 권리야!” 리타는 파업 중이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흔들리거나 원망하는 사람도 생기고, 노조 내부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할지 결정되지 않았다. 지금 노조에서 파업 지지에 대한 투표가 열릴 예정이라 리타는 투표장에 가려던 참이다. 그런데 리타를 붙들고 남편이 말한다. 집안도 엉망이고 아이들도 내가 돌보지만 투정도 안 부리고 참을 만큼 참고 있다고. 아내가 할 일을 남편이 하면서 배려하고 있으니 알아 달라는 태도에 리타는 말한다. 당연한 배려에 고마워하지 않을 거야. 그것이 내 권리니까.

리타는 1968년 영국 다겐함 지역 포드공장에서 187명의 여성들이 파업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메이드인 다겐함’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권리를 말하는 것처럼 직장과 사회에도 권리를 요구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며 파업을 주도하고 결국에는 동일임금 법제정까지 이끌어냈다. 평범했던 리타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그것은 부조리함에 침묵하지 않는다는 단순함이었다.

포드는 여성직군을 미숙련으로 분류하여 임금을 삭감하려고 했다. 여성들이 고분고분 따를 것이라 여겨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노조에서도 태도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반발하는 제스처를 보이다가 적당히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회사와 노조와의 교섭에 장식품처럼 여성노동자 몇 명을 참석시켰다. 교섭에서 여성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넘어가려 하자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리타였다. 여자들이라 파업 못할 것 같아 무시하는 것이냐,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파업 하겠다.

그녀들이 재봉틀을 놓으면 포드공장은 멈춘다. 시트 없는 자동차는 팔 수 없기 때문이다. 파업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중요한 일을 한다고 여기지도 않았는데 그녀들의 파업으로 공장이 멈춰버렸고 위력을 보여줬다. 리타와 동료들이 회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요구를 굽히지 않았던 것은 임금차별의 이유가 부당해서다. 남성들과 다른 임금을 받는 이유는 단 하나, 여자라는 이유였다. 그래서 그녀들은 주장했다. 여성도 똑같이 일하는데 적은 임금을 받을 수 없다, 여성들이 하는 일이라고 무시하는 것은 거부하겠다. 부당한 차별을 거부하겠다는 단순하고 단단한 마음이 커다란 힘을 발휘했다.

리타의 용기는 오늘날 한국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오랫동안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라는 오명을 쓰고 있어서다.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출산·양육과 직장을 양자택일해야 하고, 경력단절 이후에 취업할 수 있는 곳은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다. 여자들은 남편이 먹여 살리니까 반찬값 정도만 벌면 된다는 생각, 여자들이 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고 쉬우니까 저임금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견고한 성별임금격차를 양산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여성들은 침묵하지 않고 있다. 성별임금격차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청소노동자, 마트노동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더 큰 물줄기가 되어 다겐함의 파업이 영국 전체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한국에서도 더 많은 여성들의 용기로 번져나가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날을 바라본다.


▲영화 ‘Made In Dagenham’(2010)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