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근오)
동산바치의 “花和人仁”
[아홉번째 이야기 - 과일나무 아래서(3) : 호두]
단풍든 잎들이 땅에 떨어져 나뒹구는 계절, 11월입니다.
대부분 가을걷이도 끝이 나 들판은 스산해지지만, 대신 곳간의 양식은 두둑해지는 때이지요.
이번호에서는 식량으로도 요긴한 과일인 호두에 대해서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호두가 가장 각광을 받는 시기는 아마도 정월 대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즈음에는 부럼을 까먹는 풍습이 있는데, 부럼의 대명사가 바로 호두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과연 언제부터 호두가 부럼 대열에 끼게 된 것일까요?

▲호두나무와 그 열매
호두나무는 가래나무속
(Juglans L.a)에 속하는 낙엽활엽성 교목으로 유라시아 및 아메리카에 약 15종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 중 우리가 재배하는 호두의 원종은 페르시아산
(Juglans regia)으로서 이것이 가래나무
(Juglans mandshurica) 등과 자연교잡을 거쳐 재배종 중국호두
(Juglans sinensis Dode)가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호두는 한자로 胡桃, 영어명이 walnut, 일어명이 クルミ입니다.
오랑캐 복숭아라는 뜻의 한자 胡桃에서 보이듯이 호두는 중국이 아닌 외부로부터 넘어온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2세기경, 중국의 한나라 무제는 서역으로 실크로드를 개척하는데 이때 사신으로 갔던 장건이 여러 서역물품들과 함께 호두를 가지고 중국에 왔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고려말엽인 1289년경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류청신이 호두를 가져와 처음으로 국내에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안 광덕산 기슭에 최초 심겨진 호두나무의 자손이 지금도 자라고 있다고 하니, 천안의 명물로 호두과자가 자리를 잡게 된 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는 거네요.
시간적으로 보자면 호두가 이 땅에 심겨진 것은 근 7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보면, 이미 밤, 잣 등 부럼까기의 풍습이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호두의 전래로 부럼의 종류가 늘어나게 되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땅콩은 19세기 이후 전래되어 부럼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부럼으로 호두 못지않게 인기가 좋습니다.)
부럼을 깨면서는 치아를 튼튼하게 하고 일 년간 부스럼과 종기가 나지 않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고 하지요.
그럼, 호두라는 과일이 피부병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호두 열매의 속씨인 호두알은 영양학적으로 지방이 60%, 단백질이 14%, 탄수화물이 14%인데, 감기나 불면증, 자양강장, 변비, 기억력 증진제로 한방에서 사용합니다.
즉, 호두알은 자연그대로의 건강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지방성분이 대부분 불포화 지방산이므로 성인병에 대한 염려가 없다고 합니다.
또 열매에서 나오는 호두기름은 피부병에 효과가 있으며, 뿌리는 해독 및 살충효과가 있다고 하지요.
호두의 영양가를 접하고 나니, 피부병 치유를 기원하는 부럼깨기 풍속에 호두가 들어가는 건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선조들의 슬기에 다시 한 번 탄복하게 되구요.
한편, 재배종 호두의 원조격인 페르시아산 호두는 중국으로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가까운 서양으로 전래되어 서구의 토속 과일나무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래서 서양의 호두는 동양에서보다 재배역사가 오래되었고, 그에 관련한 풍습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일례로 결혼식에서 호두를 던지며 축하하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우리가 폐백을 드리면서 대추를 던지는 것처럼 자손을 많이 낳고 번성하라는 의미라고 하지요.
유명한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은 독일의 작가 호프만의 원작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 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호두까기용 인형이 상품으로 유통될 정도로 유럽에서는 호두가 매우 보편화된 과일이라는 걸 알 수 있겠네요.
앞으로 다가올 대보름날, 호두알 하나 깨물으면서 우리네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소원을 빌어봐야겠습니다.
호두 깔 만큼 이빨은 튼튼해지고
귀신은 종기, 부스럼과 함께 도망가거라~!
그리하여 자자손손 복을 잇게 해다오...
※ 제목 설명
위 ‘화화인인(花和人仁)’은 ‘꽃은 어울리고, 사람은 어질다’라는 뜻으로 자가제작한 표현인데, 꽃마실 카페 여는 잔치의 부제이기도 했다.
중문식으로 보자면 ‘꽃이 사람과 더불어 어질다’라는 뜻이 될 텐데, 더 나아가 ‘꽃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사람이 어질 수 있다’는 확대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동산바치 소개
본 코너지기인 동산바치 김근오는 현재 전주에서 ‘꽃마실’이라는 플라워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원예학을 전공했으며, 귀농을 준비한 지 오래되었고, 꾸준히 텃밭농사도 짓고 있다. 틈틈이 산과 들의 식물들을 만나며 관련지식을 쌓아 가는 중이라고.
♣동산바치 : 원예사 또는 정원사(gardener)를 뜻하는 순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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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동산바치의 花和人仁>은 월 1회, 네째 주 화요일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