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기홍씨의 두 번째 개인전 ‘바람’展이 19일부터 28일까지 열흘간 전주 동문길 복합예술공간 차라리언더바에서 열린다. 전북민족미술인협회가 주최하는 2014 릴레이개인전의 일곱 번째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 이 작가는 ‘붉은 대숲’ 연작 등 서정성 짙은 최근의 풍경화 작품들을 선보인다.
하지만 그가 그리는 풍경은 대부분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의 모양과 붉고 푸른 색조는 현실과 삶의 모습을 담고 있고, 살풀이춤을 추는 듯한 형상의 옥수수는 막장을 달려가며 피폐해져가는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붉은 대숲. 2014. 240X90cm. 천 위에 아크릴)

(바람_옥수수. 2013. 120X240cm. 판넬 위에 아크릴)
대나무와 옥수수는 최근 5년간 작가가 몰두하고 있는 소재다. 두 식물에서 농촌의 현실을 대표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 형상을 발견하고부터다.
이 작가는 지난 2011년 11~12월 전주 서신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고, 이때 대숲과 옥수수 연작을 처음 선보였다. 늦겨울부터 가을까지 이들의 생장과 소멸을 관찰하고, 예술적 서정성에 작가의 깊은 의도를 결합시켜 그가 생각하는 '진짜 풍경'을 1~2년간 화폭에 담았다.
작가가 처음부터 풍경화에 주력한 건 아니다. 과거 그의 화법(畫法)은 다분히 직설적이었다. 자본주의의 물질만능주의를 풍자하는 작품인 ‘88년 4월’(1988)엔 지폐가 하늘을 뒤덮기까지 한다.
직설화법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는 이제 한결 예술성을 고민한다. 예를 들어, 그가 그리는 대나무는 죽창이 아니다. 직접 죽창을 그려 넣기보다는 보는 이가 작가의 의도를 유추하길 바라며 표현한다.

(바람_대숲. 2013. 80F. 천 위에 아크릴)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작가가 오랜 시간 동학농민혁명에 천착해왔다는 데서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그려온 대나무와 옥수수, 가장 최근 시작해 아직 미완성인 만경강과 동진강 등 강 연작이 사실은 모두 혁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숲을 흔드는 바람 또한 그래서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이번 개인전의 주제이기도 한 ‘바람’에 대해 작가는 “새롭게 불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들고일어날 희망적인 바람을 담을 수도 있고, 오래전 불었던 미완의 혁명에 대한 바람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 중에는 ‘중인리 아침’처럼 마음 자체가 비어있는, 편안한 일상 풍경을 그린 것들도 있다. 풍경화에 현실과 삶의 치열함을 담는 작가에게도 그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풍경은 편안한 위안이 되고 있다.

(중인리 아침. 2012. 50F. 천 위에 아크릴)
한편, 지금도 작가의 마음 한쪽 구석에는 ‘세월호참사’와 관련된 형상이 모양을 잡아가고 있다. 다만,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 작가로서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달할 또 다른 매개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듯하다.
전주대 미술과를 졸업한 이기홍 작가는 <동학혁명 100주년-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 <민중미술 15년 전>, <우리시대 리얼리즘 전>, <광주 5월기념 전>, <2014 화랑미술제>,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 명(命) 전>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면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쳐왔다.
개혁적 성향을 가진 전북지역 화가들이 규합해 1987년 출범한 미술단체 ‘들·바람·사람들’의 초기 구성원이었으며, 현재 전북민족민술인협회 회장이다.

(전야. 1994. 4m20cmX145cm. 천 위에 아크릴. 전주역사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