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 무엇이든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그 말에 동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소중하다. 그 또한 삶의 가치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고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면서 그 생명을 앗아야 할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학교 앞에서 사 온 병아리가 새벽마다 울음 우는 수탉이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도 세 마리가 병아리에서 닭이 되었다면.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3월. 아이들의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학교 정문에는 병아리를 파는 장사치가 나타난다. 학교 앞에서 살았던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병아리를 발견하고 돼지저금통을 뜯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잔돈으로 천원을 들고 나가더니 샛노란 병아리 네 마리를 까만 비닐봉지에 넣어 들고 왔다.
“엄마, 지금 물주면 안 된대. 물은 내일 아침부터 줘야 하고, 병아리 밥은 아무 때나 줘도 된다고 했어.”
“병아리 금방 죽을 거야. 원래 좀 병이 있는 병아리 가지고 나와서 파는 거래. 작년에도 너희가 사온 병아리 일주일도 안 돼서 다 죽었잖아. 그런데 또 사 왔어?”
“아니야. 이번에는 꼭 키울 거야.”
“방에서 키울 거야? 우리 집은 마당도 없는데?”
“예쁘잖아. 방에서 키워도 되지 뭐.”
“병아리도 응가 하는데? 자영이가 치울 거지?”
“응!”
나는 아래층에 내려가 작은 상자를 하나 가지고 올라왔다. 그 안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자그만 밥그릇도 하나 놓아 주었다. 딸아이는 물그릇을 놓는 것만으로도 물을 주는 것으로 아는지 절대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병아리를 안방에 풀어 놓았다. 삐악 거리며 온 방 안을 헤집고 다니는 병아리를 버릴 수도 없고, 키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병아리부터 찾았다.
아파트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당이 있는 집도 아니었다. 슈퍼마켓에 딸려있는 작은 집.
방은 2개였지만 하나는 컴퓨터가 있고, 책들로 꽉 차 있는 서재였고, 아이들과 생활은 안방에서 같이했다. 병아리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아주 작은 통로 격인 거실과 부엌, 그리고 안방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종이 상자에 넣어두었다. 키가 작아서 밖이 보이지 않아 답답한 것일까? 아이들을 찾는 것일까? 온종일 삐악삐악 울어댔다. 듣기 싫어서 잠깐 내놓으면 조용하지만 분주하게 온 집안을 휩쓸고 돌아다녔다.
3일째 되는 날.
병아리 한 마리가 꺼내 놓아도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잘 움직이지 않았다. 세 마리는 신이 나서 삐악 대며 돌아다니는데 한 마리는 시들시들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러더니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에 죽어버렸다. 종이 관을 만들었다. 병아리를 눕히면 딱 맞는 크기의 상자를 만들어 놓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역시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뛰어들어와 병아리를 찾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아!”
나는 머뭇거렸다. 병아리가 죽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물론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정이 들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내심 조심스러웠다.
“있잖아, 겨울이 죽었는데?”
“응? 왜? 엄마가 죽였어?”
“아…. 아니야. 너희가 매일 손으로 만지니까 병 난 거야!”
“다른 병아리는 괜찮은데?”
“너희가 자꾸 만지면 저 세 마리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래? 다 죽으면 또 사올까?”
내 표정은 굳어졌다. 들고 있던 종이 관을 내려놓았다. 내 표정을 본 딸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무엇인가 잘못했다는 것을 표정으로 아는 모양이었다.
“자영아, 다 죽으면 또 사오면 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병아리가 정말 많지? 돈만 주면 사올 수 있지? 그런데 왜 학교 갔다 오면 병아리부터 찾아? 왜 이름까지 지어줬어? 강아지도 아닌데?”
“잘못했어요.”
“무엇을 잘못했는데?”
“…….”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 엄마가 화 난 것 같으니까 무조건 잘못했다고 했지?”
“네.”
“자영아, 병아리도 살아있는 생명체야. 자영이도 살아서 숨 쉬고 있지? 병아리도 살아서 숨 쉬고, 배고프다고 삐악 거리고, 물 한 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자영이가 봐도 살아있는 것 맞지? 자영이 다치면 아프지? 병아리는 아프지 않을까?”
“아파요.”
“아픈 것을 느끼는 생명인데, 죽었다면. 어떨까? 슬플까? 안 슬플까?”
“슬퍼요. 엄마, 제가 사오자고 한 건 잘못했는데요. 병아리도 생명이라고 했잖아요. 근데 아저씨들도 그냥 병아리 죽이잖아요.”
“어떤 아저씨가?”
“저기 파는 아저씨가 병아리가 쓰러지니까 그냥 까만 봉투에 넣고 꽉 묵었어요. 거기에 죽은 병아리가 많았는데.”
“그건 아저씨가 나쁜 거야. 아저씨한테는 그냥 병아리가 파는 물건이라는 생각밖에 안 한 거야. 그렇다고 자영이도 사는 물건으로만 생각하면 나쁜 거잖아? 아저씨랑 똑같이 나쁜 사람인 거잖아”
“네.”
“남아있는 병아리 죽으면 이제 절대 병아리 사 오지 못하게 할 거야. 저 세 마리가 죽으면 이제 절대 병아리 안 키우는 거야. 알았지?”
“네.”
내가 억지를 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 자영이가 바라본 어른 세상에서는 병아리는 하찮은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매일 치킨을 먹으면서, 통닭을 먹으면서 병아리도 생명이니 소중한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병아리를 종이 관에 넣어서 월명산 중턱에 묻어주고 돌아왔다. 자영이가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슬퍼하지 않은 것 같았다. 병아리 죽었다고 울고불고했다면 나 또한 난감했을 터였다.
그렇게 생명은 소중하다고 아이에게 말해놓고 보니 문제가 생겼다. 대부분 일주일 안에 죽는 병아리가 죽지 않았다. 노란 날개 털 사이에서 하얀 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꺼내지 않아도 날갯짓으로 상자 위로 올라와 거뜬하게 거실로 들어왔다. 병아리가 고개를 들면 밖을 볼 수 있는 작은 상자였다. 상자가 작아서 병아리가 마음 놓고 넘나드는 것 같았다. 병아리가 넘어오지 못하게 조금 큰 상자로 바꿨다. 그래도 큰 병아리가 고개를 들면 고개는 상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정도였다.

(그림=임솔빈)
무엇인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생명은 소중하다고 아이에게 말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말을 바꿀 수가 없었다. 병아리는 무럭무럭 자랐다. 손 위에서 놀던 병아리가 주먹만 해졌다. 제법 날갯짓도 하고 회 치는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노란 털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얀색에 거뭇거뭇 회색이 섞인 닭이었다. 이제 상자를 바꿔도 소용없었다. 파드닥 날아서 상자 위에 앉았다가 가뿐하게 안방으로 들어왔다. 온 방을 휩쓸고 돌아다녔다. 병아리 때는 배설물도 아주 작아서 치우기도 쉬웠지만, 병아리가 점점 자라면서 배설물도 커지기 시작했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병아리 쫓아다니며 배설물 치우는 것이 내 일과가 되어버렸다.
한 달 조금 넘게 자라니 병아리는 영계가 되어 있었다. 집에 오는 우체부도 닭을 보면 놀랐다. 집에 오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건네는 것은 의례적인 인사가 되어버릴 지경이었다. 모두 비슷한 말이었다.
“아이고, 이런 데서 닭을 키워요? 닭 냄새가 좀 나네요?”
“놀랐어요. 닭이 안방을 돌아다녀요. 이 좁은 데서 왜 닭을….”
비슷한 말에 똑같은 답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혼자만이 잔인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튀김 통닭과 양념 통닭을 시켰다. 그리고 아이들이 돌아오자 닭이 나오지 못하게 넣어둔 상자 앞에 나란히 앉혔다.
“저건 뭘까요?”
“닭!”
나는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통닭 상자를 들고 나왔다.
“그럼 이건 뭘까요?”
“통닭!”
“음 통닭은 무슨 고기야?”
“닭고기.”
“그럼 저 상자에 있는 건?”
“닭…고기.”
“똑같은 닭이네? 있잖아, 태훈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는 돼지 살이잖아? 돼지는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가서 봤지? 그걸 도축장에 가서 아저씨들이 고기로 만드는 거야. 닭고기도 그렇겠지? 지난번에 시골 갔을 때 할아버지가 자영이한테 닭 잡아오라고 했는데, 자영이가 못 잡아서 엄마가 잡았잖아. 그거 어떻게 했어?”
“할머니가 삼계탕 해줬어!”
“그렇지? 그럼 저 닭은 어떻게 할까? 좁은 집에서 키우니까 냄새도 나도, 엄마는 매일 응가 치우러 다녀야 하고 아빠는 신경질 부리는데….”
“엄마가 살아있는 것은 죽이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래도 자영이 통닭은 잘 먹잖아?”
“음….”
“지금 닭 이름이 봄, 여름, 가을이잖아? 이름을 초복이, 중복이, 말복이로 하면 어떨까?”
“그게 뭐야?”
“음, 한여름에 더우면 사람이 기운이 없잖아. 처음 더운 날을 초복이라고 하거든? 그때 사람들이 몸보신 한다고 삼계탕 먹는 날이야. 그래서 초복이는 초복 날 삼계탕 해 먹고, 중복이는 중복 날 해먹고….”
아이들은 말없이 닭만 바라보고 있었다. 딸아이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엄마가 살아있는 것은 뭐든 소중하다고 했는데, 왜 죽여야 해요?”
그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다 죽으면 병아리 다시 사자는 아이를 나무랐던 기억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그럼 나중에 기열이 삼촌 시골 내려갈 때, 할아버지 댁에 가져가라고 하자. 집에서는 키울 수가 없을 것 같아.”
“응!”
언제나 집에서 키우기 벅찬 짐승은 외할아버지댁으로 데려갔었다. 강아지도 그랬고, 고양이도 그랬다. 아이들은 그때야 자리에서 일어나 닭 모이를 한주먹 쥐고 상자 앞으로 다가갔다.
“엄마가 안 잡아먹는다고 했어. 다행이지? 할머니 집에 가면 더 오래 살 수 있을 거야!”
딸아이가 닭에게 하는 말을 듣던 나는 자책감이 들었다. 학교 앞에서 사 온 병아리가 닭이 될 줄 꿈에도 생각 못 했기에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햇볕이 뜨거워지기 시작할 무렵, 병아리는 이미 중닭이 되어 있었다. 모두 수탉이었다. 새벽 4시가 되면 한 마리가 알람처럼 울었고, 뒤따라 두 마리가 연달아 울었다. 멀리서라도 소리를 받아주는 닭은 없었다. 새벽부터 울어대는 수탉 소리에 남편의 짜증이 시작되었다.
“잠을 충분히 자야 새벽에 일을 가지! 새벽부터 울어대는 닭소리에 놀라서 깨니 원. 저 닭들 얼른 치워!”
초복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남편은 짜증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었다. 말이 나왔을 때 해결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닭 좀 어찌 해보게. 애들 없을 때 하자. 애들 보면 울고불고 난리 날 것 같아.”
며칠 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없었고, 셋째 오빠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능숙한 솜씨로 닭을 해치웠다. 닭을 넣어두었던 상자를 밖에 버리고 들어오자 셋째 오빠는 자그맣고 볼품없는 닭 세 마리를 쟁반에 담아 두었다.
“털이 있을 때는 상당히 크게 보이더니 진짜 작네?”
“운동량이 없잖아. 먹는 것도 부실하고…. 더군다나 얼마 전부터 계속 이 좁은 상자에만 가둬두고 있었잖아.”
“그거야 돌아다니면서 똥 싸니까.”
“닭이 근육이 없어 흐늘흐늘하더라”
“이걸로 두 식구 삼계탕으로는 적겠지?”
“많이 부족하지?”
“그럼 좀 더 사다 두 식구 몸보신이나 하지 뭐. 오늘 저녁은 힘들 것 같고, 닭이 없어지자마자 삼계탕 올라오면 시골에 보냈다는 것이 거짓말인 걸 알아차릴 것 같아.”
아이들이 냉동실을 열더라도 보이지 않은 곳 깊숙이 닭을 감췄다.
새벽마다 울어대던 닭이 없어졌다. 아이들은 시골로 가져갔다는 말에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며칠이 지난 후 냉동실에 넣어 둔 세 마리의 닭과 새로 사 온 닭을 솥단지에 넣고 두 가족이 먹을 삼계탕을 끓였다. 아이들은 어떤 의심도 없이 맛있게 삼계탕을 먹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던 탓일까? 아이들은 닭에 대해 두 번 다시 묻지 않았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외가에 내려가서도 닭에 대해 단 한마디도 묻지 않은 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리 쉬었다.
주말이어서 잠시 집에 온 딸아이에게 물었다.
“자영아, 혹시 초복이, 중복이, 말복이 생각나?”
“아, 병아리? 원래 봄, 여름, 가을이었잖아. 엄마만 그렇게 불렀고.”
“기억하네?”
“당연하지. 그때 모두 수탉이었잖아. 그게 원래 양계장에서 수탉은 필요 없어서 내다 파는 거래. 양계장에서 알 낳는 것은 암탉이잖아. 근데 엄마 그거 알아?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는 병이 들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키우는 방법을 모르고, 또 환경이 맞지 않아서 죽는 거래.”
“그래? 근데 우리 집에서는 잘 컸잖아.”
“그러니까 신기하지. 하긴 병아리만 그런 것 아니잖아? 뭐든 집에 오면 나중에 뒷감당이 안 됐잖아.”
“그러게 우리 집은 짐승은 참 오래 살아. 그리고 번식을 너무 잘해!”
“아, 참 엄마. 그때 우리 비 온 날 삼계탕 먹었잖아. 그거 그 병아리였지?”
“응?”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병아리였겠다 싶더라고.”
“그런 건 기억 안 해도 되는데.”
“뭐 그 전에 엄마가 닭은 먹는 가축이라고. 그게 운명이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이야기했잖아. 혹시라도 우리가 상처받을까 봐.”
“그걸 알고 있었어?”
“어휴 엄마. 당연히 알지. 매일 먹는 통닭이 닭고기인 것은 유치원 다니는 애들도 알잖아. 엄마가 걱정이 많은 거였지. 그냥 닭은 먹는 가축이다. 하고 먹으면 됐을걸.”
“엄마가 잡아먹자고 하니까 네가 안 된다고 했잖아?”
“그거야 또 혼날까 봐 그랬지.”
딸아이와 마주 보며 깔깔거리고 말았다.
분명 모든 생명이 소중한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진실을 이야기해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세상살이에 정답이 없듯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느냐는 것에 답은 없다. 가장 훌륭한 답은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래간만에 딸아이와 통닭에 생맥주 한 잔이 그리운 날이다. 삼계탕도 괜찮을 것 같다. 오늘은 닭고기가 맛있을 것 같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