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부재중!
우리 집 대명사다. 어떤 행사에도 아빠는 대부분 없다. 가족의 중요한 행사 말고는 대부분 아빠의 자리는 비어 있었고, 아이들 유년 사진에도 아빠는 어쩌다 가끔 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남편은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유독 싫어한다. 가진 자들의 여유라는 것이 그 이유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해야 하는 아빠도 많은 세상이고, 아빠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려올 뿐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내 부재가 만들어 준 아이들과의 소중한 추억 몇 개 있는 것이 그나마 남편의 유일한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전주에 있던 딸아이가 바다에 가고 싶다며 주말 딸과 함께 군산으로 내려왔다. 건강 때문에 직장을 쉬고 있지만, 병원에 다니며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느라 대부분 주말이 되어야 집에 왔다. 집에만 오면 늦게까지 잠자던 딸아이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옷을 고르고 있었다. 딸아이의 옷차림만 보면 벌써 여름 휴가철이었다.
“밖에 비 와서 쌀쌀할 수도 있어.”
“엄마 카메라 가지고 갈 거지? 나 오늘 사진 많이 찍어 줘. 멋있게!”
“너만 찍어?”
“응, 나만 찍어 줘.”
“그런데 엄마도 카메라 들고 나간 지가 오래돼서 제대로 찍을 수나 있으려나 모르겠네?”
“휴대전화 사진보다는 낫잖아. 엄마 어디로 갈까? 무조건 나는 모래사장이 있어야 바다인 것 같아. 그러니까 해수욕장으로 가면 안 될까?”
“대천 가려면 너무 늦었고 가까운 변산 해수욕장 갈까?”
“아무 데나 좋아!”
목적지는 변산 해수욕장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새만금 방파제를 지나 변산 해수욕장 근처까지 갔지만, 공사 중이라 진입할 수 없었다. 내가 자주 가는 바다는 변산 해수욕장이었다. 갈등이나 고민, 버려야 할 감정의 부산물들은 모두 변산 해수욕장에 버렸다. 바다는 기꺼이 그런 나를 맞아 주었다. 그런데 내가 버려야 할 감정의 부산물이 없었던 탓일까? 변산 해수욕장은 앞뒤로 모두 차단되어 있었다.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생각나는 곳이 고사포 해수욕장이었다. 작년 여름 휴가철에 서예학원 사람들과 함께 와서 바다에 굴러다니는 조개를 줍기만 했는데 한 바가지였던 것이 생각났다.
아직 더워지기 전이지만 꽤 많은 사람이 자그만 양동이와 모종삽, 소금통을 들고 모래사장을 휩쓸고 다녔다. 딸아이는 바다를 보자마자 금방이라도 바다에 뛰어들 기세로 달려갔다.
“엄마 사진 찍어 줘!”
500여 장이 넘는 사진을 찍으며 딸아이는 활짝 웃었다. 그러나 밝은 그 웃음 뒤에 고단함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엄마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알 수 없는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딸아이를 짓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학생인 동생에게 용돈 받는 누나의 입장이 되고 보니 그다지 마음은 편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여기 맛조개 잡나 봐.”
“응, 작년에 왔었는데 이 근처는 없고 저쪽 솔섬 근처로 가면 맛조개 정말 많아!”
“그래? 난 맛조개 하면 아빠가 생각나. 아빠랑 함께 놀았던 기억은 거의 없는데 유일한 기억이 맛조개야!”
“왜? 아빠랑 놀이 공원도 가고, 동물원도 가고, 한산 모시축제도 갔었잖아? 그리고 갈대밭도 갔었고…. 많은데?”
“그런데 그건 기억이 하나도 없어. 처음에 엄마랑 넷이 갔던 것이랑, 나중에 엄마 자고 있으니까 아빠가 맛조개 잡으러 가자고 해서 간 것은 정말 어제 일처럼 또렷해!”
“그때가 초등학교 1학년 정도였고, 동물원은 중학교 때였는데? 동물원은 생각 안 나고 맛조개만 생각나?”
“응!”
딸아이와 주말 딸은 어느새 사람들이 맛조개를 잡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 있는 곳에 서 있었다. 주말 딸 현이는 맛조개를 처음 보는 듯 신기해하며 그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어머니, 이 조개 이름이 뭐예요? 대나무 같이 생겼어요!”
“맛조개. 대맛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대나무를 닮았다 해서 죽합이라 부르기도 해.”
“우와! 너무 신기해요. 소금 뿌리면 왜 쑤욱 올라와요?”
“바닷물 들어온 줄 알고 나오는 거지. 짠맛 때문에…”
“우와! 대나무에 조갯살이 매달려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너 맛조개 처음 봐?”
“네!”
“잡아본 적 없어? 예전에 오식도나 비응도 쪽에 사람들 맛조개 잡으러 많이 다녔잖아! 자동차 공장 생기기 전에!”
“우리 엄마가 그때도 장사하셨잖아요. 그래서 한 번도 가본 적 없어요.”
“난 아빠랑 갔었어. 저거 삶아서 초장 찍어 먹어도 맛있는데, 구워 먹어도 맛있다!”
“진짜?”
두 딸은 어느새 맛조개 맛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이야기를 어제 경험했던 이야기 하듯 상세하게 설명했다.
맛조개는 보통 여름이 제맛이다.
장마가 끝나고 비가 오락가락할 때였다. 비가 오면 일을 못 하는 건설업의 특성 때문에 저녁에 내린 비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주말이었기에 아이들은 집에 있었고, 남편은 심심하다는 듯 자는 나를 깨웠다.
“새벽에 잠든 것 아는데 애들이랑 비응도나 다녀올까?”
“응? 비응도는 왜요?”
“누가 그러던데? 비응도에 요즘 맛조개 많이 나온다고….”
난 벌떡 일어났다. 두 번 오지 않을 기회였다. 비 오는 날이면 일이 없어도 사무실에 있어야 정보도 얻고 업무도 볼 수 있다면서 집에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집에 있더라도 대부분 잠들어 있거나 책상에 서류를 잔뜩 쌓아놓고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남편이 아이들 데리고 바다를 가자 하니 싫을 이유가 없었다.
아이들은 아빠랑 함께 나간다는 자체가 즐거운 모양이다. 가는 차 안에서 내내 동요를 부르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남편도 덩달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아이들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했다.
바다에 도착하자 아이들에게 장화를 신겼다. 그러나 완전한 갯벌이어서 아이들이 걷기에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까지 아이를 하나씩 업고 가야 했다. 발은 장화 끝까지 갯벌에 빠지고 있었다. 내 몸무게에 아이들 몸무게까지 더하니 걷는 것이 지친다 싶을 때 모래가 섞인 갯벌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맛조개가 있을 거야.”
“근데 맛조개를 어떻게 잡는데요? 소금은 왜 가져왔어요?”
“어제 다녀온 사람한테 들으니까 조그만 구멍이 있으면 그걸 모종삽으로 살짝 떠보라고 하던데? 그럼 구멍이 약간 8자 비슷하게 나 있는 것들이 있대. 거기다가 소금을 뿌리고 5초 정도 기다리면 맛이 쏙 올라온다던데?”
“그럼 당신도 맛조개는 한 번도 안 잡아 봤어요?”
“내가 이런 데 올 기회가 있었겠어?”
나는 사람들이 맛조개 잡는 곳으로 다가가 유심히 바라보았다. 남편이 말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맛조개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동네 사람인 듯 보이는 분들은 갈고리를 이용해 작은 구멍에 갈고리를 넣고 잡아당기면 맛조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난 사람들이 어떤 구멍에 소금을 뿌리는지 유심히 바라보느라 아이들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와! 아빠 나왔다. 나왔다. 맛조개 나왔어요!”
아이들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느새 작은 동이에 맛조개 몇 개가 들어있었다.
“엄마, 아빠가 조개 잡았어! 이거 봐!”
“그러게…. 자영이도 엄마랑 잡아보자! 태훈이는 아빠랑 잡고.”
“응!”
아이들은 어느새 조개 잡는 것에 푹 빠져 있었다. 일단 게 구멍을 뺀 작은 구멍을 모종삽으로 한 삽 떠봤다. 그리고 약간 구멍이 8자 비슷하게 생기거나 조금 길게 보이면 소금을 뿌렸다. 아이는 쪼그리고 앉아 맛조개가 올라오기만 기다렸다. 나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약간 펴고 구멍 앞에서 기다렸다. 5초 정도 지났을까? 거짓말처럼 맛조개가 쏙 올라왔다. 그러나 눈으로 확인하고 잡아야 한다는 생각 하느라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조개는 모래 속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아빠, 엄마가 조개 놓쳤어요. 아빠는 잘 잡았는데….”
“그럼 다음 잡을 때는 자영이가 잡으면 되잖아. 태훈이는 벌써 한 마리 잡았는데?”
“진짜? 태훈이가 잡았어요? 엄마, 나도 잡을 거야!”
“그래! 이제 자영이가 잡아 봐. 엄마가 해보니까 망설이면 놓쳐. 그러니까 맛조개 보이면 바로 딱 잡아서 뽑는 거야 알았지?”
“응!”
다시 소금을 뿌리고 기다렸다. 잠시 후 맛조개가 모습을 보이자 딸아이는 망설임 없이 있는 힘을 다해 잡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 잡았어! 내가 맛조개 잡았어요!”
아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하겠다며 소금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금의 양을 조절하지 못해서 너무 많이 뿌리거나 적게 뿌리니 맛조개는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대신 딸아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아들은 직접 소금 뿌리고 맛조개를 동시에 잡는 것이 힘든 모양이다. 어느새 소금이 든 양념 통은 갯벌에 뒹굴고 있었다.
딸아이는 조심스럽게 소금을 손바닥에 뿌렸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찾아낸 방법이었다. 먼저 손바닥에 소금을 뿌린 후 손가락으로 집어서 구멍에 넣었다. 그것이 더 적당히 뿌려진 모양이다. 잠시 후 맛조개가 고개를 내밀자 소금을 집었던 손가락으로 맛조개를 사정없이 낚아챘다.
그렇게 몇 시간 잡은 맛조개는 어느새 자그만 양동이로 가득 차고 있었다. 중간에 태훈이가 재미없다며 갯벌을 삽으로 파며 흙장난을 했다. 그런데 동죽(노랑 조개) 몇 개가 나타났다. 태훈이는 신나서 다시 모래를 모종삽으로 떴다. 생합이 나왔다. 백합이 나오고 가끔 작은 게가 놀라서 태훈이 주변을 서성이기도 했다. 아들아이는 어느새 게 잡는 것에 빠져 있었고, 딸아이도 맛조개 잡는 것이 재미없는지 아주 작은 갈퀴로 갯벌을 휘젓고 있었다.
“엄마, 이 조개 이름은 뭐야?”
“생합. 국 끓이면 맛있어!”
딸아이도 조개 몇 마리 잡더니 재미없는지 태훈이와 함께 게를 잡으며 갯벌에서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남편은 꽤 많은 맛조개를 잡았다.
“아이들 지루해하는데요? 그만 갈까요?”
“그래, 곧 물 들어올 시간도 됐어. 사람들 나오잖아. 우리도 그만 일어나게!”
남편은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맛과 조개를 모두 바닥에 쏟아놓고 하나씩 바닷물에 헹구고 난 후 양동이에 담았다.
“뭐하게요?”
“기다려 봐. 여기서 저녁 해결하고 들어갈 수 있게 준비해왔지. 당신 자는 동안에!”
다시 아이들을 하나씩 업고 밖으로 나왔다. 따로 주차장이 없었기에 여기저기 어지럽게 주차된 차 사이를 가로질러 우리 차 앞으로 왔다. 남편은 주변 넓은 풀밭에 돗자리를 깔더니 언제 챙겼는지 보온 도시락과 찬밥을 꺼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려는 배려가 보였다. 차 트렁크에서 식수를 꺼내더니 라면을 끓이고 그 안에 맛조개와 다른 조개 몇 개를 넣었다.
비릿한 바닷냄새 나는 바람을 맞으며 먹는 맛조개라면은 두말이 필요 없는 일품이었다.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자 남편은 그 자리에서 냄비를 씻더니 맛조개를 넣고 끓였다. 슈퍼마켓에서 사 온 초장이 어느새 아이들 앞에 놓여 있었다. 라면에서 건진 맛조개를 초장에 야무지게 찍어 제대로 먹고 있었다.
“아빠 조개 더 주세요!”
어느새 냄비에서 다닥다닥 소리를 내며 조개가 익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젖먹이 때 친정어머니께서 매운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고추장을 손가락으로 살짝 묻을 듯 말듯 찍어 아이들 입에 가져가곤 했다. 처음에 간드러지게 울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입맛을 다셨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매운 것을 가리지는 않았다.

(그림=임솔빈)
자동차 불빛을 의지 삼아 밤늦게까지 맛조개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뿐만 아니라 그곳에 왔던 사람들 일부는 돌아가고 일부는 우리 가족처럼 그 자리에서 요리해 먹거나 술안주 삼아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배부른지 차에 들어가더니 어느새 잠들었다. 뒷정리를 끝낸 남편이 아이들을 바로 눕히더니 나를 향해 씩 웃었다.
“오늘 즐거웠지? 일은 좀 못했지만….”
“네, 재미있었어요. 자주 나왔으면 좋겠네요!”
“또 기회가 생기겠지!”
그런데 그 기회는 며칠 뒤 또 생겼다. 그러나 나는 함께하지 못했다. 새벽 5시까지 일하고 난 후 여섯 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고 저녁 무렵이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어렴풋이 잠이 깨어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앞 베란다 쪽에서 소리가 났다. 깔깔거리는 딸아이 웃음소리에 섞인 남편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한테 비밀로 해야 해! 알았지?”
“응, 엄마한테 우리 조개 잡으러 갔다 왔다고 하면 안 되는 거지요?”
“말해 버리면 비밀이 아니잖아?”
“아빠, 그럼 누나랑 맛조개 먹었다고 해도 안 돼요?”
“바보야. 그럼 우리 바다 다녀온 거 엄마가 알게 되잖아!”
난 그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며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 아이들과 남편의 소중한 추억을 남겨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몰래 안방 창문을 통해 베란다를 바라보았다.
세 명이 가운데 일회용 가스렌즈를 두고 동그랗게 앉아 있었다. 바닥에는 어느새 돗자리를 깔고 있었고, 아이들은 초장을 하나씩 들고 대기 중이었다. 딸아이가 혹시 내가 들을까 봐 조용히 속삭였다.
“아빠, 조개가 뜨겁나 봐요. 혀를 날름거려요.”
“이번에는 구워 먹어보자. 어떤 것이 더 맛있는지….”
“저번에 삶아 먹는 것도 맛있었어요.”
“자, 익었다. 자영이가 먹어 봐. 어떤 것이 더 맛있나!”
“아빠, 나도 주세요. 조개!”
“자, 태훈이도 먹어 봐야지?”
셋은 깔깔거리며 한동안 앞 베란다를 떠날 줄 몰랐다. 그들의 추억어린 식사가 끝나갈 무렵, 아무것도 모른다는 시늉을 하며 안방에서 딸아이를 불렀다.
“자영아! 밖에 나갔나? 자영아!”
앞 베란다에서 부산한 소리가 들렸다. 뒷정리를 서두르는 소리였다. 딸아이는 부리나케 안방으로 달려왔다. 입가에 초장이 잔뜩 묻어 있었다.
“엄마 자는 동안 태훈이랑 잘 놀았어? 엄마가 너무 오래 잤나 보네? 미안해!”
“응, 아빠랑 태훈이랑 맛조개….”
“응? 맛조개? 아빠랑 맛조개 잡으러 갔어?”
“아…. 아니, 맛조개 잡으러 가자고 했는데 안 갔다고 말하려고 그랬어!”
“그랬어? 그럼 아빠는 어디 갔어?”
“베란다에서 맛조개…. 아니 청소해!”
딸아이의 거짓말은 벌써 들통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아빠랑 함께 놀았던 것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아빠가 비밀이라고 했기에 나름 조심하는 중이었다.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침대에 누웠다.
“피곤하네. 애들이랑 놀기도 쉽지 않네. 내가 당신 자라고 일부러 애들 데리고 바다 다녀왔어!”
“치! 애들한테 비밀이라고 해 놓고 아빠가 먼저 비밀 발설했네요?”
“당신도 어차피 알고 있었잖아? 아까 일어나서 베란다 봤잖아!”
“알고 있었어요?”
“그럼 인기척이 느껴지는데 모를까 봐?”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비밀이었다. 엄마 없이 아빠와 함께 몇 시간 동안 함께 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언제나 엄마가 곁에 있었고, 아빠는 부재중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엄마에게 비밀을 만들고, 아이들과 아빠만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것이 소중한 행복인 모양이다. 이미 성인이 된 딸이나 아들 모두 맛조개 하면 연상되는 것이 아빠라고 했다.
“맛조개는 구워 먹으면 진짜 맛있어. 프라이팬 위에 포일을 깔고 그 위에 맛조개를 올려. 그럼 애들이 혀를 날름거리면서 몸을 뒤집으려고 해. 자동으로 뒤집는 거지 뭐. 맛조개 잡으면 구워 먹어야지!”
“어머니! 저도 맛조개 잡아보고 싶어요!”
“그래 언제 다시 오자. 너 그 나이 먹도록 뭐했냐? 바닷가에 살면서 맛조개도 못 잡아보고?”
“그러니까요. 자영이는 정말 안 해본 것 없더라고요. 그래서 뭐든 잘 아나 봐요!”
“엄마, 우리 장마 끝나고 햇볕 뜨거워지면 애들이랑 펜션 예약하고 오자. 썰물이 언제인지 모르니까 시간 맞춰오기도 힘들잖아!”
“일박 이일로 오자고?”
“그래도 좋고, 그냥 당일치기도 옷 버리면 씻고 옷 갈아입을 곳 필요하잖아!”
“그래 뭐 엄마 바쁘지 않으면 오자. 성인의 맛조개 체험이 되는 거야?”
“어머니, 저는 꼭 해보고 싶어요. 맛조개 잡는 것!”
딸아이는 뭔가 생각난다는 듯 휴대전화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딸아이 입가에는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주말 딸은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서 맛조개 잡는 것만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빠아! 바빠요? 으응…. 지금 엄마랑 맛조개 잡다가 아빠가 베란다에서 구워준 맛조개가 생각났어요. 이번 여름에도 맛조개 한 번 잡으러 와요. 여기 고사포 해수욕장. 맛조개 많아요. 응. 이번에도 아빠가 구워 준 맛조개 먹고 싶어요. 해 주실 거지요?”
남편이 뭐라 하는지 들을 수는 없었지만, 딸아이 표정 보니 밝았다. 아빠와 대화를 나누며 밝고 환하게 미소를 머금은 것을 본 것이 언제였던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만큼 건강과 취업이라는 벽에 부딪혀 점점 미소를 잃어가는 중이었다. 일상에 지친 나와 스트레스에 지친 딸아이는 그렇게 바다에 삶의 찌꺼기를 모두 버리는 바다에 토해냈다.
엄마의 부재가 만들어 준 아빠와의 추억은 언제까지 아이들 가슴에 남아있는 모양이다. 엄마와 다녔던 모든 일은 일상이지만, 엄마 없이 아빠와 함께했던 그 하루는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이며 행복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지 몇 개월 만에 딸아이가 활짝 웃는 것을 본다. 아빠와의 소중한 추억이 딸아이의 가슴에 따뜻한 위로가 되는 모양이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시낭송가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