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힘들고 지칠 때, 잡을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손이 누굴까. 아마 부모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부모이기에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자신의 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느꼈을 때, 뒤돌아선다면 그것은 모두 부모의 힘겨움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분명 아이는 부모에게 손 내밀지 못한다. 부모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면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 믿었다. 아니 잘 되고 있었다. 딸아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전공을 살려 광고 기획사까지 들어갔으니 이제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부터 아이의 힘겨운 신음 소리가 들렸다.
“엄마, 이번 주도 내내 야근에 밤샘작업 해야 할 것 같아.”
“힘들어서 어떡해?”
“어쩔 수 없지 뭐. 일단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볼게.”
“힘들어서 이건 아니다 싶으면 포기해도 돼!”
“어떤 일을 한다 해도 처음에는 힘든 것은 마찬가지잖아.”
“그래, 일단 수습기간만이라도 채워봐!”
사실 대화 속에 나의 꼼수가 숨어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된다며 미리 말을 꺼내면 아이는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망설이고 있는 일도 먼저 하지 말라고 부추기면 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더 기울어졌다. 그리고 가끔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딸아이는 그 누구보다 더 자존심이 강했다. 그 자존심을 건드려주면 포기하려 다짐했다가 다시 일어나는 성향이 있었다.
딸아이의 신음 소리가 점점 심해진 것은 취업 후 6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미 정직원이 되었고, 연봉 계약도 끝났다. 수습사원이 아니기에 복지 혜택도 주어졌고,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딸아이는 그만둬야 할 이유를 매일 찾고 있었다.
“엄마, 우리 사수가 이상해. 아주 정신병자 같아.”
“왜? 또 뭐라고 해?”
“응, 나 수학은 정말 못하잖아. 그런데 여기서 매일 숫자만 적고 있어. 그런데 서류 하나 초안 잡으라고 해서 지시한 내용대로 해서 올렸거든? 그런데 그중에 숫자 하나가 잘못됐었나 봐. 나한테 초안 잡으라고 했으면 본인이 점검은 해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보지도 않고 바로 결재 올렸나 봐. 나 때문에 위에 올라갔다가 혼났다고 아주 사람들 많은 데서 소리 지르고 개망신 주잖아.”
“그래서 또 울었어?”
“그런데 더 웃긴 것은 내가 작성해서 올린 것이 성과가 있잖아? 저번에 냈던 광고 기획안이 그대로 반영됐거든. 그러면 그건 자기가 만든 것으로 둔갑해 버려. 그래서 그때 기획안 포상도 사수가 받았잖아.”
“아주 못된 놈이네. 그걸 그냥 뒀어?”
“그럼 어떡해? 내 직속상관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때? 그 사수랑 비슷해?”
“아니, 다른 사람들은 정말 잘해줘. 같은 대리인데 옆에 팀 대리는 나 정말 잘 챙겨주거든. 나 대신 우리 대리한테 뭐라고 하기도 하고….”
“그래, 그게 위안이 되기도 하겠다. 직장생활 하다가 보면 이런저런 일 많아. 네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을 때까지는 감수해야 하는 것이 많지 뭐. 그러다가 정 힘들면 기획국장이랑 이야기라도 해 봐. 팀을 옮길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내가 들어온 것이 이 팀에 결원이 생겨서 들어온 거라. 옮기기는 힘들 것 같아.”
“그래?”
딸아이는 점점 지쳐가는 것 같았다. 일에 지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지치고 있었다. 인생살이에서 사람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희망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딸아이가 광고 쪽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그때는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꼈던 터라 일단 대학은 심리, 산업광고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광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TV 광고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았다. 직접 제작한 공익광고나 광고 공모전을 보면 독특한 아이디어에 놀라기도 했었다. 그런 아이가 광고에 지쳐 허덕이고 있었다.
“엄마, 나 그만둘까 봐.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인터넷 온라인 광고 쪽이라서 짜증도 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면 대리한테 깨지면서도 배운다는 욕심이 생기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오늘도 사람들 많은 데서 한바탕하더니 밥 먹을 때는 다 나를 위한 것이라고 괴변 늘어놓고 있잖아.”
딸아이가 진지하게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낸 것은 입사 후 8개월 만이었다. 엄살도 어리광도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딸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려도 안 되는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그만두라고 호응을 해 줄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방 계약도 아직 몇 개월이 남아 있는 상태라 보증금까지 날리고 다시 내려와야 하는 상황에 선뜻 그렇게 하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말을 들어주고 조금 더 생각해 보자는 말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딸아이가 대학을 마치고 취업할 때쯤 그동안 하던 일을 그만뒀다. 더는 사람에게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사는 것이 싫었다.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수면을 취해보는 것이 소원이었고, 얼개 짜놓은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딸아이가 취업할 때까지라는 다짐으로 일하며 싸워야 할 일도 많았지만, 그냥 가슴에 묻어두는 일이 더 많았다. 딸아이가 취업했을 때 마침내 참았던 것이 터졌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러니 당장 딸아이가 군산으로 내려온다면 대책이 서지 않는다. 걱정이 앞섰다. 맞벌이로 씀씀이가 커진 생활비를 줄여야 했지만,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매달 생활비가 적자였다. 딸아이 편을 마음껏 들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엄마, 나 조퇴했어. 어젯밤에 위경련이 일어나서 응급실 갔다가 아침에 출근했는데, 다시 위경련이 와서 병원 들렀다가 조퇴했어.”
아찔했다. 딸아이의 스트레스가 몸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딸아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경련이 일어났다. 견딜 만큼 견디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더는 결정을 미룰 수 없었다.
“너무 힘들면 그만둬. 벌써 병원이 몇 번째야? 그건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를 넘어서고 있다는 이야기잖아. 자영아. 그만두자. 그냥 내려와!”
“그만두고 싶은데…. 조금만 더 견디어 볼 생각이야. 엄마가 그랬잖아. 정말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을 때 그만두라고. 미련이 남았다면 그 미련을 떨쳐버릴 수 있을 때까지 견디는 것이 다시 그 일에 대해 돌아보지 않는 방법이라고…. 그래서 일단 해보는 데까지는 해 보려고 하는데, 자꾸 병원에 가게 되네?”
“건강 더 해치기 전에 그만뒀으면 좋겠다. 네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것도 건강했을 때 이야기야. 무엇보다 네 건강이 우선이라는 것만 잊지 마.”
결국, 딸아이는 설이 지나고 봄이 시작될 무렵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내려오자마자 병원에 입원부터 했다. 이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쳐있었다. 병원에 입원해서 일주일 동안 잠만 잤다. 허리 디스크 물리치료 시간 말고는 내내 잠들어 있는 딸아이를 보며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약한 체력을 탓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힘겨운 사람과의 전쟁을 다시 해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딸아이는 병원에서 치료받지 않으면 안 될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견디고 있었다.
딸아이는 간단한 수술과 시술을 거듭하고 난 후 퇴원을 했지만, 통원 치료를 계속 받아야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났을 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엄마, 나 전주로 나가서 살면 안 돼? 사실 아빠 눈치도 보이고, 집에 있으면 내가 뭘 해야 할지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혼자 있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그래, 내가 봐도 너 집에서도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동생은 학교 다니면서 돈 벌고 있지. 아빠는 계속 신경질 부리지. 나도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아빠와 너 중간에서 스트레스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야. 전주에 방 얻어 보자. 거기에서 직장이라도 알아봐야지!”
“엄마, 전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회사로 복직할게. 내가 회사 그만둘 때, 치료 후, 복직한다는 조건으로 그만둔 것이라서 가능성은 있어.”
“근데 복직한다면 그 사수랑 다시 일할 수도 있잖아. 그건 네가 또 이렇게 스트레스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고.”
“일단 전주에서 일 좀 찾아보고….”
그러나 쉬이 일 할 수 있는 자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기업 쪽이든 중소기업이든 가리지 않고 홍보 관련 분야에 자리가 있으면 이력서를 내보는 것 같았지만, 모두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다. 매달 딸아이의 생활비와 잡비를 감당해야 하는 나 또한 지쳐가고 있었다. 가끔 아들아이가 딸아이 자존심을 건드는 것 같았다.
“누나는 대학 다닐 때도 수업료 엄마가 다 내줬잖아. 그럼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누나 생활비는 벌어야 하는 것 아니야? 매일 그렇게 빈둥거리면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지 않아?”
“태훈아, 말 함부로 하는 것 아니야. 누나도 지금 힘든데 너까지 보탤 필요는 없잖아!”
“엄마가 누나 편을 너무 많이 들어줘서 그래. 당장 생활비 없어 봐. 누나가 저렇게 놀겠어?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그러니까 생활비 끊어. 카드도 뺏고….”
“그건 아니지!”
“그래, 나 백수다. 왜! 누가 아르바이트하기 싫어서 안 해?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 힘들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고! 누가 하기 싫어서 안 하느냐고! 엄마, 아빠한테 생활비 타 쓰는 나는 속 편한 줄 알아?”
딸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아들아이는 말을 뱉어 놓고 미안한지 머뭇거리다가 밖으로 나가 버렸다. 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부터 해버린 아들아이가 바라보는 누나는 어리광이 심한 것으로 판단되었던 모양이다. 딸아이는 체력이 약했지만, 아들은 강한 체력을 타고났기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딸아이 등을 토닥였다.
“자영아, 엄마는 항상 네 편이야. 걱정하지 마. 이건 엄마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 미안해하지도 마. 그렇게 따지면 엄마가 미안하지. 강한 체력을 주지 못해서….”
“그게 엄마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 태훈이가 날 보면 한심하게 생각되는 것도 알아. 학교 졸업하고 벌써 2년이 지났잖아. 그런데 아직 이러고 있으니 한심하겠지.”
“아니, 무조건 뛴다고 모두 빨리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움츠린 개구리가 더 멀리 뛰는 법이고, 목적을 정해놓고 뛰는 사람이 먼저 목적지에 도달하는 법이야. 난 지금 자영이가 더 멀리 뛰기 위해 움츠리고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나도 빨리 뭔가 결정 났으면 좋겠어.”
그렇게 딸아이는 인생의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유난히도 뜨거운 여름. 더위에 지치고 생활에 지쳐가는 때 딸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나 이번에 이력서 넣은 것 안되면 서울 갈게.”
“응? 왜? 너 서울살이 힘들잖아. 좀 더 있으면서 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아빠도 너 전주나 대전쯤에 있었으면 하고….”
“기획 국장님한테 전화 왔어. 이제 복귀하라고. 그 사수 과장 됐다는 이야기 듣고 이제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사수가 그만뒀다는데?”
“왜?”
“몰라, 과장 된 지 두 달 만에 그만뒀나 봐. 전에 나 대신 경력사원으로 인원 보충했잖아. 그 언니한테 인수하면서 그 언니랑 친해졌었거든. 근데 그 언니 한 달 만에 도저히 못 하겠다고 회사 그만뒀잖아. 그때 나보고 어떻게 9개월씩이나 버틸 수 있었냐고 대단하다고 했었거든. 회사 그만두면서 그 언니가 기획국장하고 면담할 때 그랬대. 9개월이나 버틴 자영이가 존경스럽다고. 그래서 기획국장님이 이제 사수도 그만뒀으니 복직하라면서 자신이 뽑은 200 대 1의 경쟁력을 포기할 수 없다고 빨리 오라는데?”
“그래서 다시 가려고?”
“지금 이력서 넣어 둔 곳 안 되면 올라가야지. 언제까지 엄마한테 생활비 타면서 이력서만 넣을 수는 없잖아. 또 서울에 원룸이라도 얻어야 해서 그것도 엄마한테 미안하긴 한데….”
“난 그게 걱정이 아니라, 너 또 힘들어서 병원을 집처럼 다닐까 봐 그게 걱정이야. 그 원인은 스트레스인데…. 버틸 수 있겠어? 아무리 그 사수가 그만뒀다 해도 또 다른 문제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해야지. 이번에 올라가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야지. 그만한 각오는 되어 있어 엄마.”
“그래! 하지만 엄마한테 미안해서 견딜 생각하지 마!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인 것도 잊지 말고. 또 하나는 일보다 네 건강이 먼저라는 것도 잊지 말고.”
“엄마! 아직 올라가는 것 결정 안 됐어! 이력서 넣어 놓은 거 연락 오지 않으면 간다니까.”
“내가 봤을 땐 네 직장은 서울인 것 같아. 그 회사랑 인연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래.”
그랬다. 결국, 이력서 넣은 회사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고, 딸아이는 복직하기로 했다.

(그림=임솔빈)
아이들이 성장해서 결혼할 때까지. 아니 부모가 아닌 또 다른 보호자가 생길 때까지 힘겨울 때 가장 먼저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부모여야 한다. 그것이 상식에서 벗어난 일일지라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부모가 아니면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누구나 알 수 있는 진실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잡아 달라고 손을 내밀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면, 딸아이는 아마 서울에서 또 다른 일자리를 찾느라 끼니를 걸러가며 아르바이트하는 생활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부모에게 손 내밀어 도와달라는 말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는 것에 조금은 안심이 된다. 또 힘겨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다시 인생의 컴컴한 벽 앞에 당도했을 때, 엄마에게 손 내밀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다시 시작되는 서울살이에 힘겨워할 딸아이의 내일을 걱정하면서….
“딸 힘내!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인 것 잊지 마! 힘들면 언제든지 엄마 품으로 와!”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시낭송가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